소설리스트

천검지애-342화 (342/472)

<천검지애 342화>

342화. 담화(2)

“젊은 나이에 너무 빨리 두각을 나타내서 도대체 누가 있어 악 방주 같은 분을 키워 낼 수 있을까 매우 궁금했는데, 이제야 의문이 풀리는 것 같습니다.”

남궁원웅은 천륭검가라는 말에 역시!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무림인들에게 천륭검가는 천외천의 성역 같은 곳이었다.

그때 현기수사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악 방주, 천륭검가는 무황을 배출한 무림 최고의 세가였습니다. 그곳을 욕보이는 발언을 하시면 안 됩니다.”

“사문을 밝혀 달라고 해서 말씀드렸는데, 마치 제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듯이 말씀하시는군요? 선배님이야말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저의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악불군의 반문에 현기수사는 주위를 슬쩍 살피고는 급히 말했다.

남궁세가의 간부들이 그를 못마땅한 눈으로 보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천륭검가에서 살아난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것을 모르는 무림인들은 없소이다. 더욱이 천륭검가가 멸문된 시기와 악 방주의 나이에는 그 격차가 너무 큽니다.”

“그건 천륭검가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무림인들이 없다는 의미일 뿐이지요. 멸문했다는 문파들이 영웅회를 만들고 수십 년을 싸워서 새로이 문파를 재건하고 있습니다. 천륭검가는 영웅회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것뿐, 후예는 당연히 있었습니다.”

악불군의 반박에 현기수사는 잠시 멈칫했다. 그의 말이 틀린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악 방주께서 천륭검가를 부활시키지 않고 천호방을 세운 이유가 뭡니까? 누가 봐도 비상식적인 행보가 아니겠습니까?”

“그거야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 그런 것일 뿐입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뭐란 말입니까?”

“선배님의 그 질문은 강호의 도의에 어긋나는 것 같군요. 어떤 대답을 원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사문의 세세한 문제까지 말씀드릴 의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천륭검보와 천륭검을 악 방주께서 가지고 있으시다는 것입니까?”

“그 대답 역시 제가 할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또 한 번의 격돌이 패배로 기울자 현기수사는 마지막 공격을 꺼냈다.

“악 방주께서 잠룡세가의 소가주와 만나는 모습을 보았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해명하시겠습니까?”

악불군은 자신을 보는 남궁세가 사람들을 보더니 침통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현기수사 선배님께서는 만나는 사람들이 다 누구인지 아시고 만나십니까? 제가 강호행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수천 명은 될 것입니다. 그 사람들의 정체를 제가 다 알고 해명해야 한다 주장하신다면 여기 계신 어르신들이 납득하실까요?”

담수운을 만났는지 안 만났는지, 그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남궁세가의 간부들의 눈은 현기수사를 쳐다보고 있었다.

“현기수사, 그만하게.”

보고 있던 태웅왕이 안 되겠다고 생각한 듯 끼어들었다.

“악 방주.”

“예, 어르신.”

“오늘 우리가 악 방주에게 너무 큰 결례를 한 것 같네.”

“아닙니다. 현기수사 선배님은 무림맹의 군사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질문을 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야말로 너무 반박하듯 대답한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아닐세. 아주 명쾌하게 이해했네. 그래 군산 쪽으로 올 계획은 있는가?”

“아마 갈 것 같습니다.”

태웅왕은 품에서 패 하나를 꺼내더니 악불군에게 슬쩍 날렸다. 술잔과는 달리 패는 아주 천천히 날아와 악불군의 앞에 섰다.

“무림맹 호법패네. 무림맹을 드나들거나 연락을 할 때 요긴할 걸세. 군산에 오면 들르게나.”

“그렇게 하겠습니다.”

악불군은 패를 품 안에 넣었다.

“이제 무림맹에도 친분을 가진 사람이 생겼으니 의논도 하고.”

“예.”

끝까지 평정심을 보이며 공손한 악불군을 보며 태웅왕은 가볍게 한숨을 토해 내더니 남궁원웅을 보며 말했다.

“남궁 가주, 만찬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우린 일어나야 할 것 같소이다.”

“그래도 남은 식사는 하시고 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지금 분위기로 보아 우리가 계속 있는 것은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닌 듯싶소이다. 모양새는 좀 나쁘지만 지금 일어나는 것이 좋을 것 같소.”

남궁원웅은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남궁원익을 보며 말했다.

“지금 내가 움직이는 것은 어려우니, 원익이 네가 나 대신 배웅을 좀 해 드리거라.”

“알겠습니다.”

“나도 같이 배웅을 하지.”

남궁원익이 일어서자 남궁세준도 따라 일어났다. 상황이 이러니 그까지 나갈 필요는 없었지만 태웅왕과의 친분상 그대로 있을 수는 없는 듯했다.

“그럼 숙부님께서도 같이 나가십시오.”

태웅왕과 현기수사가 나가자 모두의 시선이 악불군에게 향했다.

“악 방주께서 천륭검가의 후손이라면 일찍 말하지 그러셨습니까? 그랬다면 무림인들이 악 방주께 가지고 있는 의구심을 일시에 불식시킬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남궁원웅의 말에 악불군은 죄송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도 그러고 싶었지만 그렇게 못하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남궁세가에서도 문파 차원에서 말하지 못할 사정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긴 그렇지요. 하지만 이제 악 방주의 위상은 한 단계 더 높아질 겝니다.”

“지금 많은 분들이 제게 대해 주시는 것만 해도 과분할 정도인데, 그러기까지 하겠습니까?”

“악 방주께서는 천륭검가의 위상이 무림인들에게 얼마나 대단하지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모든 무황들이 태양천을 피해 숨었을 때, 천륭검가만은 중원을 지켰습니다. 검황이 살아 계실 때까지 원나라는 물론 태양천까지 그들의 세력권으로 들어가지 못했지요. 한마디로 천륭검가는 무림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악 방주께서 천륭검가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무림인들이 얼마나 열광하겠습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일찍 밝힐 걸 그랬나 보네?’

남궁원웅의 말에 놀란 것은 오히려 담수련이었다. 사실 그녀도 천륭검가의 위상이 이렇게까지 높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가주님 말씀이 맞습니다. 이 소문이 퍼지면 아마 천하가 또 한 번 들썩일 겁니다.”

“천륭검가가 이대로 사라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악 방주께서 젊은 나이에 이렇게 강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남궁원웅의 말이 끝나자 다른 간부들도 한마디씩 하며 자신들도 놀랐다는 것을 표현했다.

그렇게 놀람의 시간이 끝나자, 남궁세가의 군사이자 총관인 남궁원상은 슬슬 본론에 들어가야겠다고 판단한 듯 슬쩍 물었다.

“악 방주님, 이제 식사도 끝난 것 같은데 남궁세가를 첫 방문지로 정하신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그래야겠지요.”

악불군은 기다렸다는 듯이 품에서 서찰을 꺼내 남궁원웅에게 건넸다.

“이게 뭡니까?”

“하나는 혈교에 관한 정보이고, 또 하나는 신비 조직에 대한 정보입니다. 직접 읽어 보십시오.”

남궁원웅은 깜짝 놀라 서찰을 읽기 시작했다.

혈교의 정보는 그도 여러 차례 읽은 것이었다.

“악 방주, 여기 적힌 정보를 믿으십니까?”

남궁원웅의 얼굴이 하얗게 변해 묻자, 다른 남궁세가의 간부들 역시 뭔가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얼굴이 굳어졌다. 태양천과 수많은 전쟁을 펼친 남궁원웅은 여간해서는 표정이 변하는 경우가 없었다.

“믿는 정도가 아니라, 거기 적힌 것보다 더 강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정보를 누가 준 것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솔직히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추측컨대 정황상 혈교에 대한 정보는 신비 조직에서 보낸 것이고, 신비 조직의 정보는 혈교에서 보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추측한 이유가 있습니까?”

“그동안 제가 혈교와 신비 조직으로 보이는 자들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그 둘의 관계가 견원지간(犬猿之間)이라할 정도로 나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럼 이런 정보를 우리에게 전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두 세력은 모두 중원 무림과 먼저 싸우고 싶은 생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서로 정보를 우리에게 전해서 무림과의 양패구상(兩敗俱傷)을 획책했다는 것입니까?”

“저는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그럼 본 세가에 와 이런 얘기를 전해 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남궁세가는 천하가 인정하는 대협의 가문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피해를 입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 이들을 제거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움을 원하십니까?”

“저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강한 적입니다.”

“그렇다면 무림맹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 가장 바르지 않겠습니까?”

“그 대답은 제가 드려도 되겠습니까?”

듣고 있던 담수련이 끼어들었다. 무림맹에 안 좋은 소리를 악불군이 직접 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하는 것이, 상황이 변했을 때 악불군이 빠져나갈 수 있는 출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말씀하십시오.”

경험이 많은 남궁원웅은 그녀가 나서는 이유를 알겠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

“혈교 역시 천하 곳곳에 간세와 첩자들을 심어 놓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비 조직은 차원이 다릅니다. 심어 놓은 정도가 아니라, 그가 진짜 간세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정도 깊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설마 담 군사는 무림맹도 믿지를 못한다는 말인가?”

듣고 있던 남궁세열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했는지 끼어들었다. 담수련의 말은 무림맹뿐만이 아니라 정파인들 전체를 의심하는 말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조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금 정파의 모든 무력은 무림맹에 집중되어 있는데, 무림맹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어디서 조력자를 구할 생각이란 말이신가?”

다시 이어지는 남궁세열의 말에 모두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그들의 손아귀에 빠져들지 않은 사람. 방주님께서는 아직 혼인하지 않은 후기지수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조직을 만들고자 하십니다.”

모두의 표정이 일변했다.

거의 모든 정파는 각 문파에 할당된 제자들을 무림맹으로 보냈다.

하지만 문파에 남은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무림맹 소속은 아니었다. 그들 중에서 제자들을 뽑아 다른 조직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나, 실질적으로 그런 행동을 할 경우 무림맹과 척을 지게 될 것은 명약관화했다.

그때 남궁원웅이 뭔가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런데 혼인하지 않은 후기지수로 못 박은 이유가 있습니까?”

“전 신비 조직이 여인들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심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분열과 이간질이 여인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때 악불군의 눈은 남궁세가의 모든 간부들을 순식간에 살피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동요하는 자들을 찾기 위해서였다.

“원익 장로에게 혈맹지약이라는 말을 했다는데, 그래야 할 이유를 한 가지만 말해 주시겠소?”

“남궁세가가 만약 혈교나 신비 조직에 공격을 당한다면 어느 문파에 도움을 청하시겠습니까?”

“그거야…….”

말하던 남궁원웅이 말을 흐렸다.

남궁세가를 도울 정파 중 가장 가까운 곳은 천호방이었다. 물론 군산에 있는 무림맹에 도움을 청하겠지만, 무림맹의 지휘 체계상 빠르게 도움을 주는 것이 어려움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수많은 문파의 연합체이기 때문에 장로회의 결정을 얻어 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만약 한 문파라도 어깃장을 놓는다면 시간이 지체될 수 있는 것이었다.

“지금이 평화롭다고 생각하신다면 혈맹지약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 지금의 무림이 일촉즉발의 아주 위험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남궁원웅은 남궁원상을 슬쩍 보았다. 그러자 남궁원상이 나섰다.

“제가 남궁세가의 총관 겸 군사직도 같이 맡고 있습니다. 방주님이나 담 군사의 하시고자 하는 의미는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무림맹과의 마찰의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당장 결정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어찌 그것을 저희가 모르겠습니까? 그들이 본 방에 그 정보를 보낸 것이 아직 한 달이 채 안 됐습니다. 아직은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니, 좀 더 중지를 모으신 후에 결정해도 될 것입니다. 언제든지 결정을 내리시면 천호방 총단으로 연락하십시오. 그리고 지금 제 말은 그저 제안에 불과합니다. 거절하신다 해도 저희는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니 부담을 가지실 필요는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