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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343화 (343/472)

<천검지애 343화>

343화. 습격(1)

상당히 심각한 의제가 오가며 딱딱하게 흐를 것으로 보였던 만찬은, 악불군이 천륭검가의 후손이라는 뜻하지 않은 정보와 태웅왕을 상대로 보여 준 엄청난 무위 덕인지 생각 외로 아주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끝났다.

더욱이 담수련의 해박한 지식과 현 무림 상황에 대한 분석은 남궁원상에게 큰 감명을 준 듯했다.

남궁세가의 군사로서 그를 힘들게 했던 여러 사안이 있었는데, 담수련의 말에서 활로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악불군과 담수련이 객청으로 돌아가자, 모두는 그대로 가주 집무실로 자리를 옮겨 간부 회의를 시작했다.

시간을 끌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원상아.”

“예! 형님.”

“군사로서 네 의견부터 말해 보거라.”

“이건 온전히 제 주관적인 조언입니다.”

제갈우명이나 현기수사 같은 책사는 아니지만 두뇌 회전이 빠르고 상황 파악과 분석이 남다른 그는 영웅회 때부터 남궁세가의 지낭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능력이 군사로서는 모자라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꼭 주관적인 조언이라는 말을 꺼낸 이후에야 의견을 말했다.

단지 조언일 뿐이니 자신의 말만으로 결정을 내리진 말라는 의미였다.

“알았으니 말해 봐라.”

“우선 혈맹지약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혈맹지약을 하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우선 거리가 가까워야 하고 두 문파 간의 전력이 비슷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인데, 서로 같은 가치관을 공유함과 동시에 신뢰가 확고해야 합니다.”

모두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남궁원상은 다시 말을 이어 갔다.

“본가와 천호방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으니 첫 조건은 충족됐고, 문파 간의 전력으로 따지면 아직 확고하게 안정하지 못한 본가보다는 절강성을 확실하게 장악한 천호방이 더 강하다고 보입니다. 약한 것보다는 강한 것이 유리하니 두 번째 조건도 총족됩니다.”

남궁원상이 말을 끊자 남궁원익이 답답하다는 듯 물었다.

“계속 말하지, 왜 멈춰?”

“다시 말하지만…….”

“알았어. 주관적인 조언이라는 거 아니까 말해 봐.”

“오늘 보인 악 방주의 모습에서 마기나 사기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으로 그는 정파인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또한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의구심을 주었던 신분 문제도, 천륭검가의 후손이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더 이상 의구심을 가질 수는 없다고 봅니다. 문제는 오늘 보셨다시피 무림맹에서 천호방을 좀 못마땅해하는 듯하다는 점입니다. 혈맹지약을 맺었을 경우 무림맹의 심기를 거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확히는 무림맹이 아니라 천무성궁이 못마땅해하고 있는 것이다.”

듣고 있던 남궁세열이 입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가장 배분이 높은 그의 말은 가주와 맞먹을 정도의 무게가 있었다.

“형님, 그런 말은 좀…….”

남궁세준이 급히 그의 말을 막으려 했다.

“남궁 성씨끼리 모인 자리에서 황상 욕이라도 못하겠느냐?”

“그래도 이속우원(耳屬于垣)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담에도 귀가 있다는 그의 말에 남궁세열은 혀를 차며 말했다.

“쯧! 쯧! 난 본가의 담에는 귀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믿음이 없으면 어찌 남궁의 이름을 쓸 수 있겠느냐?”

“숙부님께서 그런 생각을 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그러자 남궁원웅이 물었다.

가주가 인정하고 묻자, 남궁세준은 더 이상 반박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오늘 태웅왕과 현기수사가 정말 지나다 들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느냐?”

“글쎄요, 하나 저는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남궁원웅의 대답에 남궁세열이 반문했다.

“그럼 가주께서는, 무림맹 차원에서 악 방주에 대해 알기 위해 사람을 보낸 거라면 누굴 보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가?”

“현기수사는 부군사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한 사람은 장로 중의 한 분을 보내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바로 그걸세. 하지만 오늘 온 자들은 둘 다 천무성궁 출신이네. 무림맹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천무성궁에서 천호방의 비상(飛上)을 그다지 탐탁지 않아 한다는 의미일세.”

“형님, 비약이 너무 심하신 것이 아닙니까? 제가 아는 천무성궁의 사람들은 권력을 탐하는 분들이 아닙니다.”

천무성궁 사람들과 친한 남궁세준이 다시 반박했다.

“그럼 아우는 혈맹지약을 맺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악 방주가 천륭검가의 후손이라고 밝힌 이상, 혈맹지약을 맺는 것이 본가에 손해날 것은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맺기 전에 무림맹의 의견은 물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본가가 비록 무림맹 소속이기는 하지만, 규약에 맞춰 본가의 무인들을 무림맹에 보냈어. 혈맹지약은 무림맹 일이 아니라 본가의 사안인데 왜 무림맹의 의견을 물어야 한다는 거냐? 스스로 그들의 종속이 되려는 것이냐?”

“종속이라니요? 제 말을 어찌 그렇게 곡해를 하십니까? 전 다만 무림맹과 돈독한 사이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들의 체면은 살려 줘야 한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태양천과 어찰단에게 목숨을 잃은 본가의 제자들이 한두 명이더냐? 그런데 어느 문파나 한 명씩 주는 장로 자리 하나만 달랑 우리에게 주고, 중요한 자리는 천무성궁의 인물들이 다 차지했다. 그들이 본가의 체면을 살려 주지 않았는데 왜 본가는 그들의 체면을 살려 줘야 한다는 말이냐?”

남궁세열이 무림맹에 불만이 많은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남궁원웅 역시 비슷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높은 자리 하나 차지하겠다는 욕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때 밖에서 호위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주님, 남궁영진입니다.”

“회의중에 무슨 일이냐?”

“태상호법 어르신께서 가주님을 긴히 뵙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 왔습니다.”

남궁세황의 부름에 모두의 긴장한 표정으로 남궁원웅을 쳐다보았다. 다른 사람들이 뭔가를 보고하기 위해 그를 찾아가는 경우는 있었지만, 그가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특히 세가의 장인 가주를 불렀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 있다는 뜻을 내포했다.

“알았다. 내 지금 가마.”

말을 마친 남궁원웅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내가 숙부님을 뵙고 올 동안 이 문제에 대해 계속 토론하십시오. 내일 악 방주가 떠나기 전 결정을 내고 싶습니다.”

* * *

간부 회의가 열리고 있던 그 시각.

[이쪽은 안전하냐?]

남궁세가의 한쪽에서는 누군가의 전음이 남궁세가의 경계 무사의 귀에 들려왔다.

[어디에 계십니까?]

경계 무사는 전음이 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음을 보낸 여인은 천미루주였다. 주위에는 열 명의 내부영주들이 은신해 있었지만 경계 무사는 아무도 발견할 수 없었다.

[알 것 없다. 너는 천호방 방주와 같이 온 담 군사가 있는 곳으로 안내만 하면 된다.]

[제가 움직이는 방향으로만 따라오십시오.]

경계 무사는 나무 사이사이를 지나며 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명색이 남궁세가인데 경계가 너무 허술하구나?]

[아직 정리가 잘 안 되어 있고, 제자들도 상당수가 돌아오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렇다 해도 허술하다고 느끼시는 건 선자님들의 은신술이 대단하셔서 그런 거지, 보통의 무인들이 들어왔다면 벌써 걸렸을 겁니다.]

그렇게 걷던 무사는 한 전각이 보이는 곳에 서더니 말했다.

[저곳이 객청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담 군사라는 계집은 우측 두 번째 전각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미 객청의 지도를 입수하고 상세한 모습을 숙지한 천미루주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천호방주는 어디에 머물고 있느냐?]

[우측 첫 번째 전각입니다. 거리가 겨우 십 장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저 안의 경비는 어떠냐?]

[천호방도 이십 명 정도가 객청 주위를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내가 전하라고 한 밀지는 전했느냐?]

[말씀하신 기호를 그리고 밀지를 숨겨 놓기는 했지만, 가져갔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알았다. 이만 가 봐라.]

[예.]

경계 무사가 급히 자신의 임무지로 사라지자 천미루주는 내부영주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각자 맡은 임무는 잘 숙지하고 있겠지?]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습니다.]

[좋다. 시작하자.]

인시(寅時).

기습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었다.

사람들이 가장 깊이 잠들어 있을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한 가지 모르는 것이 있었다.

악불군은 천륭검보를 수련하는 것이 운기조식을 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거의 밤을 새며 수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기감이 가장 예민하게 발휘되는 시간이 바로 밤이었다.

* * *

담수련이 잠자리에 드는 것을 확인한 악불군은 두 시진째 천륭검보의 자세를 연달아 취하고 있었다.

악불군은 매일 밤 머릿속으로 적의 공격을 상상하면서 그 상황에 가장 알맞은 자세를 취하는 수련을 했다.

특히 천륭검보의 자세를 빠르게 할수록 온몸에 힘이 충만해지고 피곤이 풀리는 경험을 한 후론 최대한 빨리 자세를 취하는 수련을 반복했는데, 근래에는 그 많은 자세를 한 시진 동안 무려 백 번 이상 반복해서 취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의 무공이 일취월장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뭐지?’

수련을 하던 악불군이 자세를 멈추더니 기를 사방으로 퍼뜨리기 시작했다.

‘이것들이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악불군은 십여 명이 은밀하게 객청 안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끼자 검미를 찌푸렸다.

[최 호법.]

[예, 주군.]

방주 호법 네 명은 밤에는 교대로 두 시진씩 주위에 대기하고 있었다.

[침입자가 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다시 최욱걸의 전음이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제가 감지하지 못할 정도라면, 지금 경계를 서는 수하들도 감지 못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살수 무공을 익힌 자들입니다. 은신술이 대단한 경지에 오른 것 같으니, 최 호법은 수하들과 함께 담 군사님의 전각을 철통봉쇄하십시오. 분명 경계 무사들을 유인하기 위해 수작을 부릴 것이니, 동요하지 말고 담 군사의 전각만 지키십시오.]

[알겠습니다. 당장 움직이겠습니다.]

최욱걸이 사라지자 악불군은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내가 새로 만든 무공을 시험해 볼 아주 좋은 기회로군.’

악불군은 그동안 추명혼을 통해 살수 무공의 원리를 배워 왔다. 특별히 수련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이미 익히고 있는 배교의 탈혼귀무와 은밀잠영을 혼합해 그만의 살수 무공을 만들어 낸 터였다.

하지만 사용해 볼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었다.

천미루주를 비롯한 침입자들의 무공은 최욱걸이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대단했지만 악불군에게는 그저 무공을 시험할 상대 정도로 느껴질 정도이니, 그의 무공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알 수 있었다.

* * *

객청은 세 개의 전각이 복도로 이어진 형태로 지어져 있었다.

‘복도에 열 명, 마당에도 대략 열 명 거기다 각 지붕마다 두세 명씩 경계를 서고 있다. 그런데 보이지 않아……. 살수들이야! 천호방에 살수 무공을 익힌 자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지?’

객청 전각 가까이 다가간 천미루주는 순간 멈칫했다. 어떤 철통같은 경계망도 뚫을 자신이 있는 그녀였지만, 지금 이곳은 만만치 않음을 직감적으로 느낀 것이다.

[원리야, 그쪽은 어떠냐?]

천미루주는 다른 쪽으로 잠입해 가는 수하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경계가 생각보다 삼엄합니다. 거기다 모두 살수들 같습니다.]

[소향이 시작하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마라. 쉽게 움직였다가는 실패할 수도 있겠다.]

[알겠습니다.]

악불군만을 염두에 두고 계획을 짠 천미루주는 뜻하지 않게 호위 무사들의 경계가 만만치 않자 신중하게 접근하기로 결정하고는 담수련이 있다는 전각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담수련이 묵고 있다는 전각에 갑자기 삼엄한 경계망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왜? 설마…… 뭔가 눈치라도 챘다는 말인가?’

천미루주는 당황한 듯 중얼거렸다. 이 시간에 갑자기 경계가 높아질 이유는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원리야, 소향이 왜 시작하지 않는지 알아 봐라.]

천미루주는 급히 전음을 보냈다. 온몸으로 위험이 느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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