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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344화 (344/472)

<천검지애 344화>

344화. 습격(2)

‘……?’

아무런 답이 없자 천미루주의 안색이 변했다.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일선은 거기 있느냐?]

그녀는 또 다른 수하에게 전음을 보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무 답이 없자, 그녀는 급히 객청 외곽으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녀의 은신술은 거의 흑석영과 맞먹을 정도로 은밀했고 빨랐다.

[들어오는 것은 자유지만, 나가는 것은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주위를 경계하며 빠르게 객청을 벗어나던 천미루주는 누군가의 전음에 깜짝 놀라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객청을 둘러싼 나무뿐이었다.

“누, 누구냐?”

[침입한 사람이 그렇게 소리를 내서야 되겠습니까?]

천미루주는 전음을 보낸 방향을 감지하고는 전음으로 다시 물었다.

[누구냐!]

[이미 소리를 냈는데 다시 전음으로 말한다고 달라지겠습니까? 이미 들을 사람은 다 들었을 겁니다.]

이어지는 악불군의 전음에 치욕을 느낀 천미루주는 검을 꽉 쥐며 다시 물었다.

[설마, 나랑 같이 온 수하들을 네가 죽였느냐?]

[죽이지는 않고 제압만 했습니다. 왜 들어왔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악불군?]

천미루주는 전음을 보낸 자가 누군지 드디어 눈치를 챘다.

‘살수 무공까지 나보다 더 완벽하게 펼치다니! 본 궁에서 이자에 대해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 아닌가?’

대부분의 무림인들은 살수 무공을 천하고 비겁한 무공으로 멸시했다. 특히 정파인들이 살수 무공으로 누군가를 상대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더 이상 정파인으로 쳐주지 않을 정도였다.

하나 초절정 고수가 살수 무공까지 익혔을 경우 살상 능력이 배가된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궁에서 저를 죽이라고 보낸 것 같지는 않고, 목적이 뭡니까?]

악불군의 질문에 천미루주는 좋은 생각이 났는지 급히 말을 받았다.

[악 방주에게 물어볼 말이 있어서 온 것뿐이다. 싸울 생각은 없으니, 제압한 제 수하들을 풀어 줘라.]

[사실 같지는 않지만 한번 들어는 보겠습니다. 급조하신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하들은 물론 당신도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실 겁니다.]

‘이, 이놈이…….’

처음 당해 보는 협박이었지만, 이미 기세에서 밀린 그녀는 저항할 생각조차 못 했다.

[본 궁에서는 악 방주가 갑자기 강호행을 하는 이유가 뭔지 알고 싶어 한다.]

[혈교에 대한 정보를 제게 보내 주신 것이 귀궁 아닙니까?]

[그……건 맞다.]

천미루주는 갈등을 하는 듯, 약간은 찝찝한 말투로 인정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 정보가 맞는지 사실 확인을 위해 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보낸 정보는 전부 사실이다.]

[귀궁의 정체도 모르는데 그냥 사실이라는 말 한마디에 믿으라는 것은 좀 무리한 말 아니겠습니까?]

[어쨌든 악 방주가 강호행에 들어간 이유를 알았으니 우린 이만 돌아가겠다. 제압된 수하들은 이제 풀어 줘라.]

[그것을 알기 위해 왔다면 다른 장소에서 알아보면 될 것인데,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남궁 세가까지 침입했다는 게 좀 의아하군요?]

[너무 급작스럽게 명이 내려와서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군요. 그런데 두 가지가 영 마음에 안 드는군요.]

[무슨 말이냐?]

[변명이 너무 허접해서 믿기 힘든 판에 말투까지 너무 무례하니, 이대로 그냥 보내 준다면 세상 사람들이 저 보고 뭐라고 하겠습니까?]

[무림의 공적이라고 할 혈교의 정보를 준 것이 본 궁이라는 것을 모르느냐?]

[그거야 귀궁 역시 그리 좋은 집단은 아니니 할 말이 아닌 것 같군요.]

[우리를 자꾸 궁지로 몰아간다면 네게도 좋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느냐?]

[제게 안 좋을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아! 저와 잠룡세가와의 관계를 말하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뭔가 생각을 잘못하고 있는 것 같군요. 전 그 사실이 밝혀진다 해도 손해 날 것이 거의 없는 사람이니까요.]

[……정녕, 본 궁과 척을 지겠다는 것이냐?]

[지금 저랑 척을 지겠다고 작정한 것은 당신들 아닙니까? 다시 한번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또 거짓말을 한다면 당신들을 모두 무림맹으로 보낼 겁니다. 오늘 이곳을 침입한 이유가 뭡니까?]

무림맹에 보낸다는 말에 천미루주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무림맹으로 압송될 경우, 운 좋게 빠져나온다 해도 더 이상 궁의 신뢰를 얻기는 불가능함을 알기 때문이었다.

‘저쪽이다!’

대화를 하는 와중에도 악불군이 숨은 곳을 찾기 위해 계속 살피던 그녀는 드디어 기를 감지하고는 그대로 짓쳐 들어갔다.

천미루는 천미각에 소속된 여러 루 중에서 암살과 납치를 전담하는 곳이었다. 당연히 천미루주의 무공은 백대고수의 상위권에 들 정도로 강했고, 살수 무공 역시 특급 살수를 상회하는 실력자였다.

물론 악불군과 견주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했다.

‘없다…….’

확신을 가지고 공격했다. 더욱이 그 거리가 일 장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노린 장소는 비어 있었다.

그녀는 즉시 몸을 회전하며 뒤쪽을 검으로 훑었다. 대단한 임기응변이었고 뛰어난 반사 신경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녀의 검에 걸리는 것은 없었다.

[잘못했으면 큰일 날 뻔했네요.]

천미루주는 자신의 귀를 간질이는 악불군의 전음에 다시 몸을 돌리려 했지만, 견정혈이 뜨끔하며 온몸이 마비되자 허탈한 표정으로 짓고 말았다.

스르르-

드디어 나타난 악불군의 모습에, 천미루주의 눈이 커졌다.

자신이 그에게 너무 허무하게 제압당한 것에 그녀는 이미 놀라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욱 경악하게 만들었다.

‘천하가 네놈에게 속고 있구나…….’

어느새 아혈까지 짚인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 * *

“어서 오시게.”

남궁원웅을 맞은 남궁세황은 그의 앞에 차를 한 잔 놓았다.

“상당히 늦은 시각인데 어찌 아직 주무시지 않으셨습니까?”

“남궁세가의 앞날이 걸린 일이라 생각하니 잠이 들 수가 없었다네.”

“악 방주와 면담한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가주께서는 혈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무림맹에 장로로 계시는 세민 숙부님께서 보내오신 서찰에 따르면, 제갈 군사께서 천년마교의 잔당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혈교는 실체가 있다는 말이군?”

“저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 그 신비 조직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예전에 숙부님께서 제게 말씀하신 적이 있던 그 조직이 악 방주가 말하는 신비 조직과 같은 것입니까?”

“기억하시는구려?”

“그땐 제가 허술하게 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도 처음에 그 조직에 대해 들었을 때, 가주처럼 믿지 못했다네. 그런데 신비 조직은 있다네.”

“정말입니까?”

“많은 무림의 원로들이…….”

남궁세황은 탕마회에 대해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이 이어질수록 남궁원웅의 눈이 커졌다.

“그게 사실이라면 왜 그들을 그냥 놔두고 있는 것입니까?”

“실체를 모르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원나라에 쫓기는 와중에도 그들을 추적했지만 소득이 전혀 없었다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혈교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는 자들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이 존재하는 한 무림은 언제나 편할 수 없을 게요.”

“그럼 그자들을 왜 공론화하지 않은 것입니까?”

“공론화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매번 신중론에 밀렸다네. 더 문제는, 무림을 휩쓸었던 그 광풍의 시대를 모르는 젊은 무인들이 믿지를 않는다는 것이라네.”

“그래도 말씀하신 탕마회의 어른들이라면 각 파의 최고 어른들이신데, 밀어붙이셨다면 따르지 않았겠습니까?”

“믿고 따르는 것과 억지로 따르는 것은 다르다네. 오히려 탕마회의 존재가 드러난다면 우리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네.”

“그렇다고 이대로 둘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로서는 사실 방법을 찾지 못해 고심하던 중이었다네. 그런데 그자들을 직접 나서서 제거해 주겠다는 청년이 나타났다네. 우리로서는 정말 단비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겠지.”

“그가 악 방주입니까?”

“그렇다네.”

“숙부님께서 고심하시는 이유가 무엇이십니까?”

“가주는 본 가의 이익과 명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하시겠는가?”

“이익과 명분이라면, 어떤?”

“원수에게 복수하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본 가의 안전이 확실해질 수 있는 경우라면 어떻겠소?”

“복수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됩니까?”

“본가의 존망까지 위협할 수 있는 굉장히 위험한 적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을게요.”

남궁원웅은 뭔지는 모르지만 실질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말하고 있음을 직감하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협의와 의리를 신조로 삼는 남궁세가로서 이익을 위해 복수를 포기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냥 이익이 아닌 세가의 존망까지 걱정할 정도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한참을 답하지 않는 남궁원웅을 남궁세황은 재촉하지 않았다. 그 자신도 악불군과 헤어진 후 몇 시진 동안 결정하지 못했었다.

그가 생각을 정한 것은 악불군이 천륭검가의 후손이라는 말과 태웅왕과의 대결에 대한 얘기를 듣고 나서였다.

드디어 결정한 듯 남궁원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숙부님, 제 판단이 숙부님께 실망을 드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소리! 가주의 결정은 본 가 모든 식솔들의 결정이나 마찬가지라네. 나한테는 가주께서 어떤 결정을 하건 실망하는 자격이 없다네.”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개인적인 마음으로는 아마 명분을 택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 세가의 안전을 최우선해야 할 가주입니다. 더구나 무너졌던 세가를 다시 세운 것이 일 년도 안 됐습니다. 전 복수를 포기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남궁원웅의 말에 남궁세황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가주께서 그렇게 결정을 해 주시니 정말 고맙구려.”

“숙부님께서도 그게 맞다고 생각하셨습니까?”

“내 생각은 생각하지 마시게나. 가주께서 결정하신 이상 그게 옳은 결정이라네. 지금 천호방과의 혈맹지약 때문에 회의 중이라고 하던데, 맞소이까?”

“예, 너무 중차대한 일이라 결정하기 전에는 잠 잘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럼 나도 태상호법으로서 의견을 말하겠네.”

“말씀 하십시오.”

“난 천호방과 혈맹지약을 맺는 것을 찬성하겠네.”

* * *

“아가씨, 소군입니다.”

침입자를 모두 제압한 악불군은 담수련의 부름에 급히 달려갔다.

“침입자들이 있었다면서?”

“아가씨 깨지 않도록 조용히 처리하려고 했는데 결국 깨운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소군 때문에 깬 것이 아니라, 사화가 무슨 큰일이라도 난 듯 법석을 떨어서 깼어.”

“사화가요? 제가 주의를 주겠습니다.”

“사화는 그들의 임무 때문에 그런 건데, 주의를 줄 일은 아니지 않나?”

최욱걸이 이끄는 호위대가 전각을 철통같이 에워싸자, 전각을 지키던 잠봉단의 단주는 즉시 사화에게 보고를 했다.

“하긴 그렇군요.”

“침입자들은 어디서 온 자들이야?”

“신비 조직입니다.”

“동트려면 어느 정도 남았지?”

“인시가 끝나 갑니다.”

“그럼 나를 납치하러 온 거네.”

담수련의 말에 악불군이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소군이나 나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남궁세가까지 들어올 이유가 없지. 오히려 밖에서 공격하는 것이 더 쉬울 테니까. 그리고 지금 시간이 소군이 잠들 때를 겨냥해 들어온 거야. 그렇다면 목적이 나밖에 더 있겠어?”

“아가씨 말씀을 들으니 그게 가장 신빙성이 있는 추론 같습니다.”

“이들이 소군을 조종하기 위해 나를 납치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판단한 것 같아.”

“아가씨 신변 보호에 더 신경을 쓰겠습니다.”

“아니야, 그냥 지금처럼 해. 너무 경계가 심하면 시도조차 못할 테니까. 그들이 스스로 오늘처럼 나타나 준다면 그들의 꼬리를 잡기가 더 수월해지지 않겠어?”

담수련은 이 와중에 자신을 미끼로 적을 유인할 계획까지 만들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악불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다만, 이제부터는 주무시기 전에 침상 주위에 진을 치십시오.”

“알았어. 그런데 침입자가 있는데도 남궁세가에서 너무 조용하네?”

“최 호법이 전혀 눈치를 못 챌 정도로 은신술에 아주 조예가 깊은 자들이었습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여기까지 이렇게 쉽게 들어왔다는 것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은 것이 분명해. 남궁세가에도 간세가 있어.”

담수련은 모든 곳에 뻗쳐 있는 신비 조직의 마수가 두렵다는 생각까지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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