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검지애 347화>
347화. 사건(1)
“천미루주 이하 열 명의 영주들이 모두 제압당해 무림맹으로 압송될 거라고 합니다.”
운우각주의 보고에 천후전의 공기는 싸늘하게 변했고, 천미각주는 머리를 바닥에 대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세히 보고해라.”
“처음 계획은…….”
운우각주는 천미루주가 담수련의 납치에 실패한 경위를 자세히 보고했다.
“남궁세가의 경비대에게 제압됐다고?”
“공표는 그렇게 했지만 천미루주가 고작 남궁세가의 경비 무사에게 제압당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제 짐작으로는 악불군에게 당한 것 같습니다.”
“기습했음에도 죽은 것이 아니라 제압당했다라? 악불군의 무공이 우리의 예상을 넘어서는 것 아니냐?”
천후의 말에 운우각주는 즉답을 하지 못했다. 악불군의 무공 수위에 대한 분석은 그녀의 몫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보다는 천미루주가 남궁세가를 거사 장소로 정한 것이 실수로 보입니다.”
“가능했다면 장소는 아무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담수련을 그런 식으로 납치하려고 한 것 자체가 실수였다.”
“죄송합니다.”
천미각주는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빌었다.
“담수련 옆에 은화가 한 명 있지?”
“예.”
“이번 기습으로 은화가 걸리지는 않았느냐?”
“은화에게도 도움을 청했는데, 도움을 주기도 전에 제압을 당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다만, 남궁세가에 심어 놓은 간세들이 걸렸습니다.”
“태후의 일이 꼬이면서 궁주님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고 했는데, 나까지 꼬이니 큰일이군.”
“천후님, 담무룡을 사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천후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벌써 사용하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느냐?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쓸 패다.”
“하지만 저희들의 생각하고는 다르게 행동하고 있습니다. 예측이 안 되는 상대는 대계에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이미 변수가 됐다. 우선 악불군이 혈교에게 어떤 행동을 하는지 두고 본다. 천미각주.”
“예, 천후님.”
“똑바로 앉아라. 이미 벌어진 일, 이제부터 수습이 중요하다.”
“명령만 내리십시오. 도산검림이라도 쳐들어가겠습니다.”
“남궁세가에서 무림맹 안휘지부에 천미루주와 영주들을 넘겼다는 말은 방금 들었지?”
“예.”
“어떤 방법을 쓰건 다 구해 와라.”
“존명!”
* * *
“대장님, 악 방주님께서 급히 할 말씀이 있다고 찾으십니다.”
순찰천강대를 이끌고 악불군의 뒤를 따르던 소걸아는 수석천강조장 광호개의 말에 반문했다.
“남궁세가에서 나왔어?”
“예, 지금 합비 외곽에 있는 주문현에 계십니다.”
“가깝네.”
“예.”
“식사는 한 것 같더냐?”
“주루를 찾고 계셨습니다. 아마 지금쯤 자리를 잡으셨을…….”
말하던 광호개는 소걸아가 보이지 않자 놀란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 먼저 갈 테니까 너희들은 따라와.]
그때 그의 귀에 소걸아의 천리전음이 들려왔다.
“빠르기도 하시네? 그런데 뭐가 저리 급하시지?”
광호개는 자신이 답을 하기에는 이미 멀어졌다는 것을 느끼자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까지 너무 태평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소걸아는 정말 급했다.
악불군이 주루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다 먹기 전에 도착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 * *
“남궁세가에서 직접 압송하겠다고 했는데 굳이 무림맹 지부에 넘기라고 하신 이유가 있으십니까?”
주루에 자리 잡은 악불군은 뭔가 느끼는 것이 있는 듯 물었다.
“신비 조직에서 분명 그들을 구하기 위해 기습을 할 거야. 남궁세가와는 혈맹지약까지 맺었는데 피해를 주면 되겠어?”
“그들이 진짜 구하러 온다면 무림맹 지부의 무인들 정도로는 막기 힘들 것입니다.”
말하던 악불군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소걸아 소협께서 벌써 오시나 보지?”
“그러게 말입니다.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모양입니다.”
악불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걸아가 주루 이 층으로 날듯이 뛰어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후아! 늦지 않았지?”
소걸아는 숨까지 헉!헉! 대며 물었다.
“대화 좀 나누자고 했을 뿐, 시간은 정하지 않았다.”
“그거 말고, 식사 아직 안 했지?”
“그거 때문에 그렇게 빨리 달려 오신 거예요?”
무림 고수인 소걸아가 헐떡일 정도면 전력을 다했다는 의미인데, 그 이유가 음식이라는 사실에 담수련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거지에게 식사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소걸아는 악불군의 옆에 앉으며 다시 말했다.
“좀 비싼 걸로 먹고 싶은데, 괜찮겠냐?”
악불군도 피식! 미소를 지며 점소이를 불렀다.
“주문을 조금 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난 많이 하고 싶은데?”
너무 지저분한 모습에 점소이는 마음이 불편했지만 무림인에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말씀만 하십시오.”
“우선 통오리구이하고…….”
소걸아의 입에서 비싼 요리 이름이 열 가지쯤 나오자 담수련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 많은 것을 정말 다 드실 수 있으세요? 우선 조금 시키시고 부족하면 더 시키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음식은 푸짐하게 있어야 보기도 좋습니다.”
소걸아는 음식에 관한 한 양보할 생각이 없다는 듯 말하고는 악불군을 보며 물었다.
“그래, 나한테 할 얘기가 뭐냐?”
“제가 말씀드릴게요. 남궁세가에서 신비 조직의 일원으로 보이는 자들을 체포한 것은 아시지요?”
“이미 합비 전체에 소문이 났는데 당연히 알지요.”
“지금 그들을 무림맹 지부로 옮겼습니다.”
“그것도 들었습니다.”
“아마 신비 조직에서 그들을 구하기 위해 기습을 할 것 같아요.”
“정말입니까?”
“예측입니다.”
“무림맹 지부에 있는 무인들로서는 기습을 당하면 상대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그래서 소걸아 소협을 부른 것입니다.”
“저를요? 왜요?”
“지금 우리가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소걸아 소협밖에 없잖아요?”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자기밖에 없다는 말에 소걸아는 기분이 좋은지 씨익!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기분이 좋은 것은 좋은 것이고, 잘못하면 개방의 정예인 천강개들이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사안을 속 편히 그러마 하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어느 정도의 고수들이 올 것 같으십니까?”
“지금 제압당한 자들의 무공이 백대고수와 맞먹는다고 합니다. 그중 한 명은 상위급이라고 하니 대단한 고수일 거예요. 당연히 구출하러 오는 자들은 더 강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럼 천강개들의 피해가 상당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천강개들만 가면 당연히 피해가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저희까지 가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악 방주와 호법들도 같이 간다면야 문제가 없지요. 하지만 악 방주가 같이 동행한다면 그들이 공격할까요?”
“악 방주님께서 있다는 것을 알면 당연히 기습하지 않을 겁니다.”
말을 마친 담수련은 품에서 지도를 꺼내고는 다시 말을 이어 갔다.
“안휘성 지도예요. 무림맹 지부가 여기고, 무림맹으로 압송을 한다면 아마 이 길을 통해 가다가 여기 위수현에서 배를 탈 겁니다.”
“군산까지 간다면 그게 가장 빠르고 안전한 길이지요.”
“배를 타는 순간 기습은 어려워져요. 물론 그래도 공격할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보는 눈도 많고 퇴로도 만만치 않아요. 성공한다 해도 추격을 뿌리치기 쉽지 않을 거예요. 그렇다면 기습할 곳은 여기 경안산밖에 없어요.”
“담 군사님께서 몰라서 하는 말인데, 경안산은 기습하기에 그리 좋은 장소는 아닙니다.”
경안산은 많은 상인들이 오가는 곳이었다. 산세도 별로 험하지 않고 크기도 작아 그 흔한 녹림 산적조차 없는 곳이었다.
“조건이 좋은 곳이 아니라는 말씀은 맞아요. 하지만 그들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없어요. 이 동선에서는 가장 좋은 조건이니까요.”
“그럼 어떻게 하시려고요?”
“저희가 먼저 그곳에 가서 매복을 하고 있을게요. 소걸아 소협께서 무림맹 지부장을 설득해서 신시쯤에 그쪽으로 오세요.”
“제가 무슨 수로 지부장을 설득합니까? 그 지부장하고는 별로 친하지 않은데요?”
“다른 분이라면 어렵겠지요. 하지만 소걸아 소협께는 불가능이 없을 것 같아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불가능이 없다고?’
소걸아가 좋아할 말만 콕 골라서 하는 담수련을 보며 악불군의 얼굴에는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단순한 소걸아는 그대로 넘어갔다.
“하하하! 하긴 제게 불가능이란 없긴 하죠. 괜히 제가 무적신개겠습니까? 해내겠습니다.”
* * *
“천미루주면 누구에게 쉽게 제압당할 분이 아닌데, 어떻게 남궁세가의 무인들에게 당한 것입니까?”
천후의 직속 무력 집단인 섬전천후단의 대주인 온지선은, 천미루수주를 비롯한 열 명의 내부영주들을 구출하라는 명을 받자 고개를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명이 내려온 것이다. 이번 임무의 특징은, 구출하되 압송하던 자들은 한 명도 살려 두지 말라는 것이다. 혹여, 강적이 있어 구출이 어렵거나 구출한 자들 때문에 퇴각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천미루주까지 모조리 죽여도 된다.”
섬전천후단의 단주인 소혈선은 최고위직 중 한 명인 천미루주까지 제거하라는 말을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명했다.
“거기에 대한 정보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간세가 보낸 말에 의하면 요수에서 배를 타고 장강의 지류를 이용한다면 우리로서도 공격하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호북으로 넘어가는 순간 호북 지부의 무인들까지 합세한다 하니, 그 전에 임무를 끝내야 할 것이다.”
“그럼 기습할 장소가 만만치 않습니다.”
“안다. 그래서 경안산에서 시작할 생각이다.”
“경안산은 통행이 많아서 사람들 눈을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상관없다. 천미루주를 압송하는 무림맹 무인들은 물론, 우리의 모습을 본 자들을 모두 죽이면 된다.”
“수하들에게 자진용 독단을 모두 착용하라고 해라. 백주대낮에 벌이는 일인지라, 아무리 죽인다 해도 목격한 자들이 분명 있을 게다. 만약 생포를 당할 것 같은 상황에 닥치면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존명!”
“시간 없다. 당장 출발한다.”
* * *
악불군과 헤어진 후 곧장 무림맹 안휘지부로 달려간 소걸아는 지부장 신출완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사실 신출완은 남궁세가가 보내온 신비 조직의 일당들을 보며 상당히 못마땅한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자신들이 잡았으면 자신들이 직접 압송까지 맡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그 짐을 지부에 전가했기 때문이었다.
악불군이 공표한 신비 조직에 대해서는 그도 일찌감치 분석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압송이 생각 외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소걸아는 자신이 사해신개의 소손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그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소 대협, 분명 기습이 있을 거라고 하셨지요?”
“분명 기습은 있겠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현재 지부의 인원은 몇 명이나 됩니까?
“본 지부의 인원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만약 기습이 시작되면 싸우지 말고 모두 피하십시. 대신 싸워 줄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요.
“대신 싸워 줄 사람이라면…….”
“안심할 만한 친구입니다.”
* * *
소걸아와 헤어진 후 마차와 호위수하들에게 북진을 명한 악불군은, 담수련과 사대호법중 세 명 그리고 천호사기단 천호특수단과 천호 특별단 십여 명만을 데리고 은밀하게 경안산으로 향했다.
가장 더운 낮 시간임에도 경안산은 상인 및 양민들의 통행이 꽤 많았다.
[주군, 매복이 끝났습니다.]
흑석영의 보고에 악불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나서기 전까지는 아무도 먼저 나서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예.]
흑석영을 포함한 백인막 출신의 무인들이 은신술을 사용해 주위에 숨자, 악불군은 천호사기단의 대주인 오일웅을 불렀다.
[오 대주.]
[예! 방주님.]
[사기단은 산 아래에 내려가 적들의 이동을 탐지하십시오.]
[알겠습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악불군은 공터 한곳으로 가더니 진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와 담수련이 숨을 장소였다.
그리고 그 둘까지 진으로 사라지자 산길은 또다시 정적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