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검지애 348화>
348화. 사건(2)
“사실 남궁세가에서 저들을 인수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무림맹으로 보내야 하는 놈들이면, 지부에서 압송하는 것이 맞지 않습니까?”
무림맹 안휘지부장 신출완의 말에 소걸아는 당연한 것 아니냐는 듯 반문했다.
“보통은 그렇지만 저들이 천호방에서 공표한 신비 조직의 일원이라면 남궁세가에서 대단히 큰일을 한 것인데, 직접 무림맹으로 압송해 가는 게 모양이 좋지 않겠습니까?”
“겉으로 볼 땐 그런데, 실제로는 그러지 못한 이유가 있겠지요. 그런데 압송하는 무사들 수가 너무 적지 않습니까?”
완전 밀폐된 네 대의 마차를 호위하는 지부의 무사는 모두 이십 명, 그리고 남궁세가에서 압송에 도움을 주기 위해 보내 준 무사 다섯 명과 개방의 천강개 열 명이 합세해 있었다.
보통 이 정도의 인원수면 제법 큰 녹림의 산적들이라도 함부로 공격할 수 없는 전력이었다.
물론 상대는 산적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신비 조직이었다.
“사실 그래서 무림맹에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연락했는데, 위수현으로 무력대를 보낼 것이니 거기까지 오라고 하더군요. 그만큼 급하다는 의미겠지요? 그래서 최대한 사람들 통행이 많은 대낮에 압송하는 것이지요.”
신출완의 말에 소걸아는 주위를 슬쩍 둘러보았다. 관도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상식적이라면 누구라도 이런 곳에서 구출을 시도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더구나 구출하는 데 성공한다 해도, 빠져나가는 것도 만만치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급하면 무슨 상황에서건 공격할 수 있는 자들이 무림인들이었다.
“저자들이 정말 중요한 자들이라면 대낮이라고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그래서 불안했는데, 소걸아 소협께서 저희와 같이 가 주신다고 해서 정말 안심했습니다. 아마 무림맹에서도 개방에 따로 감사를 표할 것입니다.”
사실 소걸아가 지휘하는 천강개는 백 명이 넘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수가 호위하고 있으면 오히려 그들이 공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담수련의 말에 열 명만 데리고 온 것이었다.
[대주님, 저 정도면 일각 안에 모두 제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멀리 관도가 보이는 산기슭에 서서 압송 행렬을 보던 온지선은 수하의 전음에 고개를 갸웃했다.
[개방의 거지들이 합류한다는 정보는 없었지 않느냐?]
온지선은 이미 압송하는 무인들에 대한 정보를 다 입수한 듯했다.
[오늘 아침에 갑자기 나타나 같이 가겠다고 한 모양입니다.]
[이유는?]
[아직 그것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예상과 달라지면 안 되는데?]
[천강개 열 명으로는 큰 변수는 안 될 것입니다.]
온지선은 정보와 다른 상황이 좀 찝찝했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혹,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마차에 있는 본 궁 사람들까지 모두 죽여야 한다.]
[대원들에게 모두 숙지시켰습니다.]
[외부영주에게도 연락을 했느냐?]
[아마 지금쯤 수하들을 이끌고 경안산에 도착했을 겁니다.]
[그럼 준비는 다 끝났군. 가자!]
말을 마친 온지선은 발끝으로 땅을 살짝 찼다.
* * *
“소군.”
“예.”
“내가 계속 생각했는데, 뭔가 좀 이상해.”
“뭐가 말입니까?”
“무림맹 지부에서 위수현까지 반나절 거리잖아?”
“그 정도 될 겁니다.”
“제갈 대협은 탕마회의 일원이야. 그렇다면 신비 조직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계시지 않을까?”
“무상 진인께서 알고 계시는 정도는 알고 계실 겁니다.”
“그렇다면 신비 조직이 매우 무서운 집단이라는 것도 아시겠지?”
“당연하지요.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당연한 질문을 심각하게 묻는 담수련을 보며 악불군은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럼 신비 조직의 일원을 체포했다는 보고를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대단히 중요한 단서를 잡았다고 생각하셨겠지요.”
악불군의 대답에 담수련은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를 생각하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정말 무서운 조직이야…….”
“왜 그러십니까?”
“안휘 무림맹 지부의 지부장의 무공은 절정 고수급이라고 했어. 그렇다면 그 수하들은 대부분 일류급 정도일 거야.”
순간 악불군은 그녀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안휘지부에 위수현까지 그녀들을 압송해 오라는 명령에 뭔가가 있군요?”
“무서운 조직이기는 하지만, 또 하나의 단서를 우리에게 알려 줬어. 무림맹 지부에게 공식적으로 허위 명령을 보낼 수 있는 자. 그자가 간세야.”
담수련의 말이 맞다면 그는 장로급의 고위 인사일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그 명령을 안휘지부로 보낸 자만 찾으면 무림맹 간세들의 꼬리를 잡을 수 있겠군요?”
“문서로 남길 정도로 미련한 자는 아닐 거야. 하지만 제갈 대협이라면 충분히 찾아내실 수 있을 거야.”
전서로 오가는 문서를 제갈우명에게 전하지 않고 먼저 볼 수 있으며, 심지어 허위 명령까지 내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용의자를 좁히기에 충분한 단서였다.
그때 악불군의 귀에 흑석영의 전음이 들려왔다.
[주군, 십여 명의 무림인들이 경안산 입구에 공고문을 하나 붙였다고 합니다.]
[무슨 공고인지 확인했습니까?]
[산적이 출몰해서 얼마간 통행을 금한다는 공고랍니다.]
[알았습니다. 우선은 그냥 두십시오.]
[예!]
“뭐래?”
전음이 끝나자 담수련이 즉각 눈치채고 물었다.
“십여 명의 무림인들이 산 입구에 산적이 출몰해서 통행을 금한다는 공고를 붙였답니다.”
산적은 양민들에게는 공포의 존재지만 무림인들에게는 양민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양민들만 통행을 금하게 하는 데는 아주 적당한 핑계였다.
“하긴 자신들의 존재를 감추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그들이, 수많은 양민들이 보는 앞에서 싸우기는 어려울 거야. 소군은 어떻게 할 거야?”
“우선 두고 보라고 했습니다. 괜히 먼저 건드렸다가 놀라 그냥 돌아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담수련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물었다.
“소군, 적들이 무지 강하면 어떡하지?”
담수련의 계획의 기본은 적들이 악불군보다 약하다는 전제가 바닥에 깔려 있었다. 그러나 적들의 진정한 능력을 알지 못하니 언제나 불안한 그녀였다.
“걱정 마십시오. 아가씨 걱정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때 다시 전음이 들려왔다.
[주군, 압송 행렬이 경안산 입구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내가 나서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 * *
“이 작은 산에 갑자기 무슨 산적이 나타났다는 거지?”
공고문을 본 신출완이 손을 들어 행렬을 멈추게 하자 소걸아가 물었다.
“왜 멈추십니까?”
“경안산은 산세가 작아 산적들이 출몰할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공고문이 붙었으니, 좀 의심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신중한 표정으로 말을 하고는 수하 두 명에게 오라고 손짓을 했다.
“예!”
“너희들이 먼저 척후를 다녀와야겠다.
신출완에게 지시를 받은 두 무사는 경안산 위로 말을 달렸다.
역시 무림맹의 지부장을 맡은 이유가 있었다.
“산적들이 위협이 되겠습니까?”
지금 그들은 무림맹기를 높이 들고 이동 중이었다.
무림인도 그 기를 보면 몸을 사리고 피할 상황인데, 하물며 산적 따위가 시비를 걸 배짱은 없을 것이었다.
“진짜 산적이라면 문제가 안 되겠지요. 그래서 척후를 보낸 것입니다.”
“역시 강호의 경험이란 무시할 수가 없군요. 대단하십니다.”
‘골통이라고 기피해야 할 인물 일 호라고 했는데, 소문이 좀 와전이 된 모양이군?’
신출완은 소걸아가 자신이 듣던 것과는 달리 예의가 바르자 고개를 갸웃했다.
사조인 사해신개도 어쩌지 못한 소걸아를 이렇게 예의 바르게 만든 것이 악불군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그가 악불군은 안 것이 한 달 남짓밖에 안 됐고, 실지로 얼굴을 보며 대화를 나눈 시간은 그보다 훨씬 적기 때문이었다.
“괜찮은 모양입니다.”
신출완은 척후를 갔던 수하들이 조금의 동요도 없이 달려오는 모습을 보자 손을 들어 출발을 명했다.
‘척후 따위를 믿다니, 신중한 척 무게를 잡기에 걱정했는데 역시 저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
멀리서 행렬의 동태를 살피던 온지선은 압송 행렬이 다시 길을 떠나자 비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지금 그녀가 이끌고 있는 수하들은 신출완이 보낸 척후 정도는 얼마든지 따돌릴 수 있는 고수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공격 명령을 내리면 즉시 저들을 모두 죽여라. 일각 안에 모든 것을 끝내고 돌아가야 한다.]
온지선의 명이 떨어지자 삼십 명이 넘는 인영들이 산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 * *
[주군, 압송 행렬이 올라옵니다.]
[뒤를 따르는 자들의 무공이 예상보다 더 강한 것 같습니다. 모두는 방심하지 말라고 하십시오.]
[예!]
경안산 관도 주위의 나무를 타고 빠르게 산을 오르는 섬천천후단의 대원들의 무공이 상당히 강하다는 것을 느끼자, 악불군은 일행에게 주의를 주고는 검을 빼 들었다.
* * *
산의 절반을 넘었을 무렵.
소걸아의 검미가 살짝 올라갔다.
‘이것 봐라……. 도대체 몇 명이야?’
행렬의 주위로 몰리는 미약한 기들은 그가 담수련의 말을 듣고 정신을 집중하고 있지 않았다면 놓쳤을 정도였다.
소걸아는 담수련의 예측 능력에 감탄하면서도, 주위에 느껴지는 기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한 명, 한 명이 압송을 호위하는 무사들의 무공을 월등하게 상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왔겠지…….’
자신이 느끼지 못하는 고수도 있다는 것을 느낀 그는, 만약 악불군이 약속대로 이곳에 없다면 모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소걸아. 여기서 멈춰라.]
위험 신호가 극으로 치닫고 있을 때 알맞게 악불군의 전음이 소걸아에게 전해졌다.
“신 대협, 뭔가 이상합니다. 잠시 멈추고 경계 태세를 취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악불군의 전음을 받은 소걸아는 즉시 신출완에게 말했다.
그런데 신출완도 이미 이상한 느낌을 받고 있었던 듯 즉시 손을 들며 소리쳤다.
“경계 태세를 갖춰라.”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악 방주, 어떻게 된 거야?]
주위를 살피던 소걸아가 악불군에게 전음을 날렸다.
[지금 적들이 주위를 포위하고 있다. 우리가 그들을 역포위하고 있으니까 잠시만 기다려라. 오늘 그들은 한 명도 살아서 돌아가지 못한다.]
둘이 전음을 나누고 있던 그때. 또 다른 쪽에서도 전음이 한창이었다.
[대주님, 준비됐습니다.]
[최대한 빨리 끝낸다.]
[예!]
[시작해!]
온지선의 명을 받은 수하들이 사방에서 튀어나오더니 호위 무사들을 공격해 나갔다.
순간 신출완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해 버렸다.
상황을 빨리 정리하기 위해 시작부터 전력을 사용하여 공격해 들어오는 자객들의 무공이 자신조차 상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감지한 때문이었다.
‘천강개 둘 이상은 있어야 한 명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다…….’
소걸아도 다급히 타구봉을 들어 공격해 들어오는 자객의 검을 막아 나갔다. 그가 느꼈던 것보다 더 강한 적들의 공격에 그 역시 상당히 당황했다.
쉬이이익!
그때 공간을 가르는 살벌한 소리가 모두의 귀를 울렸다.
“아악!”
“으아악!”
단숨에 모두를 제거할 요량으로 강력하게 짓쳐 들어 가던 섬전천후단의 대원들 중 십여 명이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이기어검?’
온지선은 순식간에 십여 명의 수하를 제거한 검이 공중에서 방향을 틀더니 다시 다른 수하들을 향해 날아가자 다급하게 소리쳤다.
“후퇴해라! 함정이다!”
온지선은 이기어검을 보자 악불군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녀는 자신들이 오히려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알고 소리쳤지만, 이미 후퇴할 구멍은 없었다.
온지선의 외침에 공격을 포기하고 사방으로 몸을 날린 대원들은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공격에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네가 악불군이냐?”
온지선은 그의 앞을 막는 청년을 보자 자신의 진신무기인 쌍자검을 양손에 쥐며 물었다.
“귀 궁에 대한 평가를 좀 낮춰야 할 것 같습니다.”
‘귀 궁? 이자가 본 궁에 대해 뭔가 알고 있다는 건가?’
온지선은 자신들이 언급조차 하지 않는 궁에 대해 악불군이 아는 듯 말하자 불안감이 들었다.
“무슨 의미냐?”
“귀 궁이 천하에 한 짓을 듣고 정말 인간의 조직이 맞나 하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의 미끼에 이렇게 걸려 드는 것을 보니, 내가 너무 높게 평가했다는 생각이 든다는 의미지요.”
“서, 설마…… 천미루주를 무림맹 지부로 보낸 것부터 우리를 끌어들이기 위한 계획이었다는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