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검지애 349화>
349화. 정리(1)
온지선의 질문에 악불군은 답 없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간결하게 한마디 내뱉었다.
“당신들까지 압송하는 것은 너무 번거로운 것 같으니, 안타깝지만 그냥 죽일 생각입니다. 혹시 독단 같은 거 있으면 괜히 힘들이지 말고 그냥 삼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내가 너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하느냐?”
온지선은 쌍지검을 자신의 가슴에 십자로 세우더니 그대로 짓쳐 들어갔다. 악불군의 실력을 이미 알고 있는 그녀는 시작부터 자신이 펼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절초를 펼치기 시작했다.
“광선강폭(光線剛爆)이라는 겁니다. 그동안 연구만 하고 처음 펼치는 것이니 조심하십시오.”
온지선이 일장 앞까지 도달할 때까지 가만히 서 있던 악불군은 순식간에 네 가지 동작을 펼치며 검을 휘둘렀다.
펑!
마치 포탄이 터지는 듯한 파열음과 함께, 달려들던 온지선이 그대로 뒤로 죽 밀려 나갔다.
“이렇게 강하다니…….”
온지선은 자신의 손을 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쌍지검은 완전히 박살이 난 탓에, 그녀의 손에는 검의 손잡이만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검의 파편이 모두 그녀의 몸에 박힌 것이다.
전신이 피로 물드는 것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 온지선은 고개를 들어 악불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악불군은 이미 끝났다고 판단한 듯 이미 몸을 돌려 다른 쪽으로 몸을 날렸다.
* * *
“분타주님, 신민철입니다.”
천호방 상산분타주 진태욱은 대주 신민철의 외침에 문을 열고 나갔다.
“무슨 일이냐?”
“태홍장 장주가 큰 상처를 입고 왔습니다.”
“태홍장 장주?”
“예, 태홍장이 정체를 모르는 자들에게 기습을 당했다며 도움을 청하러 왔다고 합니다.”
상산현은 원래 태홍장의 영향력하에 있던 지역이었다. 하지만 악불군의 정책에 따라 태홍장은 상산현을 비롯한 절강에 속한 모든 세력을 포기하는 대신 어려움이 생기면 도와주기로 약속을 한 터였다.
“지금 어디 계시냐?”
“빈청에 모셨습니다. 부상이 심해 우선 의원에게 상처부터 치료를 받도록 했습니다.”
“잘했다. 가자.”
* * *
“이런 상처를 입고 여기까지 달려오셨다니, 인내심이 대단하십니다.”
상산분타의 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문숙은 태홍장주의 상처를 치료하며 놀란 듯 말했다. 여간한 사람들은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의 고통을 느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분타주님은 언제쯤 오십니까?”
“지금 오고 계실 겁니다.”
“조금 재촉해 주십시오.”
그의 간절한 표정을 본 문숙은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문숙이 아는 태홍장주는 절정 고수였다. 그런 그가 양민들이나 보일 공포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진태욱과 신민철이 안으로 들어왔다.
“분타주님 오셨습니다.”
문숙의 말에 태홍장주는 급히 몸을 일으켰다.
“태홍장주 전출환입니다.”
포권을 하는 그를 보며 진태욱도 마주 포권을 하며 말했다.
“천호방 상산분타주 진태욱입니다. 도움을 청하신다고요?”
“분타주님, 태홍장이 지금 기습을 당했습니다. 도와주지 않으시면 저희 태홍장의 수십 식솔은 모두 죽습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전후 설명도 없이 무조건 도와 달라고 하는 태홍장주의 모습은 황당 그 자체였다.
“신 대주.”
“예!”
“분타의 모든 대원들을 소집해라. 태홍장으로 간다.”
“분타주님, 좀 알아보고 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태홍장은 본 방에게 조금의 저항도 하지 않고 뜻을 따라 줬다. 그렇다면 우리도 약속을 지키는 것이 맞다. 빨리 소집해.”
“알겠습니다.”
신민철이 나가자 진태욱은 태홍장주를 자리에 앉히며 물었다.
“수하들이 다 모이면 태홍장으로 갈 것입니다. 우선 진정하시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말해 보십시오.”
진태욱의 말에 태홍장주는 넋이 빠진 눈으로 태홍장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온지선이 이끄는 섬전천후단은 대단히 강했다.
하나 마차를 호송하던 무사들은 피해가 없었다. 온지선의 후퇴하라는 명에 그들과는 싸우지 않고 물러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도망을 막은 천호방 무사들은 생각 외로 피해가 컸다.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어기이검으로 열 명 이상이 죽었고, 지휘자인 온지선까지 악불군에 의해 죽었다. 더욱이 흑석영을 비롯한 방주호법들까지 같이 싸웠지만 방주호법단의 무사가 아홉 명이나 죽었고 부상자도 열 명 가까이 생긴 것이다.
“악 방주, 이자들 진짜 신비 조직에서 나온 자들이야?”
흑석영에게 피해 상황에 대해 전음으로 들은 악불군이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자, 소걸아가 급히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저들을 구하러 온 것이니 맞겠지.”
“하급 무사가 하나같이 절정 고수였다. 이게 말이 돼?”
분열과 이간질의 일삼는 비열하고 간악한 세력이라는 생각만 했던 소걸아에게, 이들이 보인 무공은 경악스럽기까지 했다.
“하급 무사는 아닐 거다.”
“이런 기습에 선봉을 선다는 것은 절대 간부가 할 일은 아니잖아?”
소걸아의 불안이 이해가 간다는 듯 악불군은 그의 어깨를 손으로 톡톡 치며 말했다.
“이자들은 특별한 자들일 거야. 어쩌면 신비 조직의 정예들일지도 모르지. 모든 조직원이 다 이렇게 강하다면 뒤에 숨어서 이간질이나 하지는 않았을 거다.”
“호, 혹시 천호무적검 악 방주십니까?”
악불군과 온지선의 결투를 보며 이미 놀랄 대로 놀란 신출완은 조심스럽게 다가와 포권을 하며 물었다.
“악불군입니다.”
“무림의 영웅을 이렇게 뵙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전 무림맹 안휘지부장 신출완이라고 합니다.”
“무림의 영웅이란 말은 제게 너무 과분합니다.”
“아닙니다. 오늘 악 방주님께서 나타나지 않으셨다면 아마 우린 모두 죽었을 것입니다. 제게는 구명지은을 주신 은사나 다름없습니다.”
“저들을 압송하는 중이시지요?”
“예.”
“그럼 이곳은 저희가 정리할 테니 빨리 압송하십시오.”
“저희를 구해 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정리까지 바라는 것은 너무 큰 결례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이렇게 무모한 기습까지 한다는 것은 이번 압송이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일 겁니다. 빨리 출발하십시오.”
악불군의 말에 신출완은 더 버틸 수가 없었다.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오늘 일은 모두 무림맹에 보고하겠습니다.”
신출완이 다시 행렬로 돌아가 모두에게 출발을 지시하자 소걸아가 슬쩍 물었다.
“악 방주, 이제 난 더 이상 같이 가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냐?”
“그렇긴 한데, 혹시 모르니까 위수현까지는 같이 가라. 이제 천강개들 다 불러서 움직여도 된다.”
“내 임무는 그게 아닌데?”
“자네 임무가 뭔데? 혹시 나 감시하는 거냐?”
“감시라기보다는 돕는 사람?”
“감시보다는 그게 좀 더 낫군. 우리는 안휘 북부로 갈거다. 가는 중간에 처리할 일이 있으니 위수현까지 갔다가 따라와도 늦지는 않을 게다.”
“안휘 북부는 왜 가는데?”
“흑선산장에 간다.”
“거긴 왜?”
소걸아는 흑선산장이라는 말에 놀란 듯 물었다.
“남궁세가를 위해 흑선산장을 정리하려고.”
“악 방주! 미쳤어? 흑선산장은 작은 문파가 아니야. 더욱이 장주인 일성마황은 백대고수 중 상위 열 명 안에 들어가는 엄청난 고수라고!”
“소걸아, 태산의 정상을 오르기 위해서는 작은 산들을 무수히 넘어야 한다. 넘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시도도 하지 않는다면 산 근처로 아예 가지 않으니만 못하다.”
‘하! 뭐 이런 놈이 다 있냐? 나하고는 아예 그릇이 다르네.’
소걸아는 악불군이 자신의 친구라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단, 내가 빨리 쫓아갈 테니까 그때까지는 흑선산장을 공격하지 마라.”
말을 마친 소걸아는 말에 올라타더니 압송 행렬의 뒤를 따라 달렸다.
“정말 좋은 친구를 사귄 것 같아.”
소걸아까지 떠나는 모습을 보자, 그제야 진을 풀고 나온 담수련은 악불군에게 말했다.
“저 친구는 저와 만나 한 번도 손익을 따지는 것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악불군을 만난 사람들은 그에게서 언제나 이익이 될지 손해가 될지를 따졌다. 심지어 그를 처음부터 좋게 본 사해신개도 마찬가지였다.
“예상외로 적들이 너무 강했어. 이들에게는 이런 고수들이 도대체 몇 명이나 있을까?”
“한 명 한 명의 무공이 내부영주라는 여인과 맞먹었습니다. 적동마수의 말이 사실이라면 백 명은 넘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말이 맞기를 바라야지. 오늘 이 피해는 내가 계산을 잘못했기 때문이니까 소군은 자책하지 마.”
담수련은 악불군이 수하들의 죽음으로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을 느낀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실 이들을 빨리 제거를 시작했다면 한 명의 피해도 없이 제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들을 제거하는 장면을 신출완에게 보여 줄 생각을 했다.
적들이 무림맹을 공격했고 악불군이 그것을 막았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이기 위해서였다.
“아가씨 실수가 아닙니다. 저들이 죽은 것은 무림인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을 더 이상 보기 싫다면 무림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이젠 알 것 같습니다.”
악불군과 담수련이 강호행을 결정한 것은 겉으로는 주위 정파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친분을 쌓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지 이유는 혈교와 신비 조직으로부터 받은 정보를 토대로 그들의 근거지를 없애는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미꾸라지가 튀어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강바닥을 무차별적으로 헤집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오늘 죽인 신비 조직의 수하들은 거의 사십여 명에 육박했다. 그가 강호에 나와 바닥을 쓸고 다녔기에 얻은 수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를 노리는 자들이 수시로 나타날 수도 있어.”
“어차피 견뎌야 한다면 피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 * *
“뭐? 온지선 이하 대원들 전부 전멸이라고!”
천후의 외침과 동시에 엄청난 기가 청 안 전체를 휘몰아쳤다.
앞에 무릎을 꿇고 있던 가면인들은 머리를 바닥에 댔다.
쾅!
우장창!
기의 회오리에 청 안의 물건들이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사방에 부딪히며 박살이 났지만 누구도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타타탁!
천후의 화가 좀 진정이 된 듯 기가 수그러들자, 공중에 떴던 물건들이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언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냐?”
천후의 질문에 운우각주가 급히 답했다.
“어제 낮입니다.”
“범인은?”
“악불군입니다.”
“또…… 악불군!”
천후의 목소리가 또다시 올라갔다.
“…….”
모두 머리를 조아릴 뿐 답이 없자 천후가 다시 물었다.
“악불군이 거기에 나타난 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느냐?”
“제 생각으로는 천미루주를 압송한다는 것이 미끼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오히려 함정을 팠다는 말이냐?”
“그렇게 사료됩니다. 특이한 것은 한 명도 생포하지 않고 모두 죽였다는 것입니다. 천미루주 등을 제압해 무림맹으로 압송한다는 것은 정보를 캐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최소한 온 대주는 생포하려고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대로 살수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처음부터 죽일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섬전천후단을 키우기 위해 얼마나 큰 공과 돈이 들었는지 잘 알 게다. 그런데 한 문파를 멸문시킬 수 있는 전력을 하루아침에 날려 버렸다.”
“용서하십시오!”
모두는 다시 이마로 바닥을 짓치며 소리쳤다.
“천미루주는 지금 어디쯤 있느냐?”
“어제 위수현에서 배를 탔다고 합니다. 내일 아침이면 무림맹이 있는 군산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그 배에 본 궁의 간세가 타고 있느냐?”
“천무성궁의 은화(隱花)가 타고 있습니다.”
“무림맹에 도착하기 전에 전부 죽이라고 전해라.”
“천후님, 무림맹 군사전에 있는 은화의 정체가 발각될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이번 일을 도모했습니다. 그런데 천무성궁의 은화까지 잃는다면 본 궁의 손해가 너무 막심합니다.”
“천미루주가 무림맹에 들어가서 본 궁의 정보를 토설하면 그 피해는 더 커진다.”
“어떤 고문이 있더라도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행을 바라고 위험을 감수하자는 것이냐? 그랬다면 지금까지 본 궁의 정체를 감출 수 있었을 것 같으냐? 내 명대로 모두 죽이라고 해라.”
“존명!”
“은우각주.”
“예!”
“더 이상 악불군이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을 더 이상 좌시할 수는 없다. 담무룡을 이용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