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350화 (350/472)

<천검지애 350화>

350화. 정리(2)

천후에 말에 모두는 고개를 들었다.

“담무룡은 중요한 시기에 사용하신다고……?”

“온지선이 이끄는 섬전천후단 일대가 전멸했다. 이게 중요한 시기가 아니면 언제가 중요하단 말이냐?”

“그럼 어떻게 할까요?”

“담수련에게 아비를 구하고 싶으면 우리가 원하는 장소로 오라고 서찰을 전해라. 단, 악불군에게 말하면 담무룡을 그냥 죽일 것이라는 말을 덧붙여라.”

“그런다고 해서 담수련이 악불군에게 말하지 않을까요?”

“담수련이 자라 온 과정을 너희도 읽어 보지 않았느냐? 대단한 효녀라고 했으니 우리 말을 따를 게다. 거기다 스스로 자신이 오음절맥임을 알고 있다. 아무리 버틴다 해도 스물 이전에 죽는다는 것을 알 터. 자신의 안위를 위해 담무룡이 죽을 수도 있는 결정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 외로 그녀들은 담수련에 대해서 상당히 많이 알고 있는 듯했다.

“담무룡이 확실히 살아 있다는 증거를 원할 것인데, 그것은 어떻게 할까요?”

“담수련은 이미 담무룡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게다.”

천후의 말에 모두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수긍한 듯 고개를 숙였다.

“천미각주.”

여러 차례의 실수로 아무 말도 못 하고 이마를 바닥에 대고 있던 천미각주는 천후의 부름에 급히 대답했다.

“예! 천후님.”

“예서령에게 전해라. 천화궁의 정보망을 악불군에게 알려 준다.”

“천후님, 만약 잘못되면 천후님까지 책임 추궁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운우각주가 놀란 듯 말했다.

“지금 악불군이 무슨 생각으로 강호행을 하고 있는지 아느냐?”

운우각주는 천후의 반문에 멈칫하더니 조심스럽게 답했다.

“……은화가 악불군과 같이 움직이고 있으니 곧 보고가 있을 것입니다.”

“모든 상황을 보고하는 은화가 지금까지 아무 보고하지 않는 이유를 아직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단 말이냐? 담수련과 악불군이 주위 사람들을 믿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

천후의 질책에 운우각주는 답을 못하고 머리를 숙였다.

“악불군이 무슨 짓을 할지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다. 심지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있어!”

“주위 정파를 방문해 자신이 공표한 정보에 대해 보충 설명할 것이라고 공표하긴 했습니다.”

“어떤 정파를 어떤 경로로 움직일지 아느냐?”

“남궁세가로 간다는 것은 알렸지만, 다음 행선지는 아직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궁주님께서는 악불군이 정파의 새로운 구심점이 되기를 원하시고 계신다. 한마디로 정파를 분열시키는 계획에서 핵심이 그놈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우린 그놈의 동선은 물론 무슨 속셈인지조차 모르고 있다.”

“…….”

천후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지자 모두는 입을 닫고 머리를 조아렸다. 이럴 경우 말 한마디 실수하면 그대로 죽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천후는 모두를 한 번 둘러보더니 다시 말을 이어 갔다.

“너희는 밀지를 가로챈 적동마수가 왜 천호방에 갔는지 아느냐?”

“…….”

“천호방을 공격한 내부영주의 생사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느냐?”

“…….”

“운우루주가 누구에게 죽었느냐? 천미루주는 생포되었고 구출하러 간 온지선은 대원들과 함께 전멸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사정을 아느냐?”

“…….”

“왜 답이 없어!”

계속되는 질문에 아무도 답을 하지 않자 천후가 버럭 소리쳤다.

“…….”

하지만 이번에도 모두는 이마를 바닥에 댄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희들이 아무 말도 못 하는 이유가 뭔지 아느냐? 악불군이 무슨 생각을 하고 저런 행동을 하는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대계에 이용할 놈이 무슨 짓을 할지 전혀 모른다면 어떻게 이용할 수 있겠느냐?”

“천후님,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는 아예 악불군의 정체를 천하에 알려 버리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정체만 알린다면 아마 순식간에 매장해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너희는 궁주님께서 악불군이 예뻐서 그냥 놔두고 있는 줄 아느냐? 지금 그놈의 정체를 까발린다면 아마 무림맹에서 당장 무림 공적으로 지정하고 악불군을 제거하려고 할 게다. 지금의 악불군으로서는 그 공격을 견뎌 내지 못한다. 하나 궁주님께서는 악불군이 더 많은 정파들과 친분을 가지고 더 큰 전력을 갖추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분열과 이간질을 통해 자중지란을 일으켜 자멸하게 만들면서 자신들의 전력은 보존해 온 것이 그들의 전략이었다.

지금의 악불군의 세력은 정파에 자중지란을 일으키기에는 너무 약하다는 것이 그들의 판단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림맹과 양패구상할 정도로 악불군의 전력이 커지는 순간이었다.

“제가 염려하는 것이 있습니다.”

“뭐냐?”

“운우각에서 그가 강호에 나온 이후 그가 벌인 모든 싸움을 분석하던 중, 굉장히 놀라운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현상? 어떤 현상이냐?”

“악불군의 무공이 너무 빠르게 강해지고 있었습니다. 처음 강호에 나왔을 때에 비해 지금의 무공이 최소한 세 배 이상 강해졌습니다. 일 년 남짓한 시간 동안에 그렇게 빨리 강해진다면 후일 감당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그 보고서는 보았다. 확실히 특이한 현상이기는 하지만 어차피 악불군의 무공은 천륭검보에서 익힌 것이다. 천륭검보의 무공은 본 궁의 무공을 이기지 못한다. 그러니 그런 쓸데없는 걱정은 그만하고 당장 내 명을 시행하도록 해라.”

놀랍게도 이들은 천륭검보의 무공까지 알고 있었다.

“존명!”

* * *

안휘 북쪽으로 향하는 악불군의 행렬은 커다란 화제를 몰고 있었다.

지나가는 현마다 흑도왈패들을 모조리 불구자로 만들어 버렸고 도박장은 그대로 부숴 버렸다. 특히 고리대금업을 하는 자들이 있으면 재산을 몰수해서 돈을 뺏긴 양민들에게 돌려주었으니, 그에 대한 칭송이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백성들에게 좋은 일이기는 했지만 아무리 무림인이라 해도 그의 행동은 너무 초법적인 면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주원장이 직접 봉해 준 왕야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관에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더욱이 그는 자신이 행하는 행동이 황상의 뜻이라며 모든 칭송을 황상에게 돌리는 세밀함까지 보였다.

패황인 주원장의 오해를 받는 일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심지어 그 와중에 신비 조직에서 보내 준 정보에 적혀 있는 혈교의 조직까지 제거하고 있음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령매.”

마차를 타고 가면서 다음 계획을 만들고 있던 담수련은, 동방소령의 표정이 침울해 보이자 의아한 듯 물었다.

“오늘 령매 기분이 별로인 것 같네? 무슨 일 있어?”

“제가 여아(女兒) 같이 보여요?”

“여아? 누가 령매한테 여아라고 했어? 내가 보기에는 다 큰 처자 같은데?”

“언니 보기에 분명 저 다 컸지요?”

“무슨 일인데 그래? 나한테 말해 봐.”

“방주님께서 저를 완전히 어린애 취급만 하세요. 아침에 제가 방주님께 너무 멋있으시다고 말했는데, 어린 여아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조신해 보이지 않는다고 하시잖아요.”

“방주님께서 좀 그럼 면이 있긴 하지. 령매는 방주님이 좋은 모양이네?”

“저 처음 볼 때부터 좋아했어요.”

“처음 볼 때?”

“악양에서 언니와 방주님께서 주루에서 식사하실 때 저도 할아버지랑 같이 거기에 있었거든요.”

“나도 기억해. 그때 동방 장로님께서 낚시꾼 차림이셨지?”

“언니는 기억하시구나! 그런데 방주님은 저를 기억 못하세요.”

그녀의 말에 담수련은 미소를 지었다. 악불군은 담수련조차 감탄할 정도로 극강의 기억력을 지니고 있었다. 심지어 관도에서 스쳐 지나간 수백 명의 얼굴까지 다 기억할 정도였다.

그런 그가 동방소령을 기억 못 할 리 없었다.

“령매는 방주님이 정말 좋은가 봐?”

담수련의 반문에 동방소령은 얼굴이 발개지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담수련은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동방소령보다 더 어린 나이임에도 악불군만 보면 좋아서 하루 종일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심지어 잠룡세가의 시녀들 중 악불군의 얼굴을 본 시녀들은 한 번 더 보기 위해 담수련의 거처에 심부름 오는 것을 서로 가겠다고 지원한다는 말을 사화에게 들은 적도 있었다.

덜컥!

그때 갑자기 마차가 멈췄다.

“무슨 일이지?”

담수련의 말에 추국이 물었다.

“알아볼까요?”

“길이 막혀서 그런 것일 수도 있으니까 잠깐 기다려 봐.”

“예.”

어차피 곧 알게 될 일을 굳이 귀찮게 알아볼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마차는 일각이 지나도록 움직이지를 않았다.

“추국, 호법님께 물어봐. 왜 이렇게 오래 걸리나?”

추국은 급히 앞 창문을 열고는 마부에게 물었다.

“호법님, 무슨 일 생겼어요?”

마부는 뜻밖에도 방주호법인 사효조였다.

“누군가 앞을 막은 모양입니다.”

“누가요?”

“그건 아직 저도 모르겠습니다.”

창문을 닫은 추국은 이번에는 옆 창문을 열고는 마차를 근접경호하고 있는 잠봉단 대주인 홍유경에게 물었다.

“홍 대주.”

“예, 추국님.”

“앞에 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보고해.”

“예.”

대답한 홍유경은 말을 몰아 앞으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지?’

앞으로 간 그녀는 악불군과 거지 행색을 한 중년인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자, 의아한 듯 호위 무사에게 물었다.

“담 군사님께서 무슨 일인지 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호위 무사는 담 군사라는 말에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짜고짜 행렬을 막더니 방주님과 대화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방주님께서 계속 대화하신 거예요?”

“예.”

‘행색을 보니 개방의 인물 같은데, 누구지?’

소걸아가 이끄는 천강개는 분명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대화가 끝났는지 악불군이 포권을 하며 감사를 표하자, 중년거지는 황송하다는 듯 허리까지 굽히며 마주 포권을 했다.

“무림의 영웅이신 천호무적검 악 방주님을 이렇게 직접 보고 대화까지 나누었다는 것을 친구들이 알면 부러워할 것입니다. 제게 자랑거리를 주셔서 저야 말로 감사합니다. 그런 이만 가 보겠습니다.”

중년 거지는 신법을 사용하며 사라졌다.

심각한 표정으로 말에 탄 악불군은 행렬의 선두를 맡고 있는 대독관에게 출발하라는 신호를 보내고는, 자신을 보고 있는 홍유경에게 다가가 물었다.

“홍 대장, 아가씨께서 무슨 일인지 알아오라고 했나?”

“예.”

고개를 끄덕인 악불군은 담수련이 있는 마차 쪽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뭔가 안 좋은 소식을 들은 게 분명해. 뭘까?’

잠시 생각한 홍유경은 급히 악불군의 뒤를 따랐다.

* * *

“방주님께는 연락을 했습니까?”

동정어옹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철황에게 물었다.

“예, 개방을 통해 급보로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고 장로, 어떤 놈들인지는 알아냈습니까?”

추명혼의 물음에 고철황은 침통한 표정으로 답했다.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모여 있는 곳은 천호방 총단 장로전이었다. 장로와 호법은 물론 총단에 남아 있는 모든 간부가 모인 장로전의 분위기는 침통 그 자체였다.

“제가 외당의 수하들을 이끌고 직접 가겠습니다.”

마진우의 말에 고철황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큰 피해를 입었는데 마 당주까지 다치면 안 되네. 우선 좀 더 알아본 후에 수하들을 움직여야 할 것이네.”

“제가 쉽게 다치는 놈이 아닙니다.”

“상산현의 진 분타주 이하 삼십 명의 분타원 모두가 전멸당했네.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네.”

그들이 모인 것은 태홍장을 도우러 강서로 간 상산현의 분타원들이 모조리 시체로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태홍장주는 살아 있다고 하던데, 확인해 보셨습니까?”

장로인 천수옹이 말했다.

“태홍장주의 상처가 심해 분타에서 치료를 받게 한 덕에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도 그는 범인의 윤곽은 알 거 아닙니까?”

“처음 보는 자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태홍장주 역시 가족들이 모조리 죽었다는 말을 듣고 지금 제정신이 아닙니다.”

“혈교나 신비 조직 중 한 곳이 아닐까요?”

내당당주인 상경호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노부도 그럴 확률이 있다는 생각에 알아봤는데, 그 조직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확실한 겁니까?”

“도문이 다른 것은 몰라도 이런 정보는 개방보다 빠를 수 있습니다.”

“태양천입니다.”

그때, 추명혼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태, 태양천이라고요? 이미 새외로 빠져나갔다고 들었는데, 아니라는 겁니까?”

고철황까지 놀란 듯 반문했다. 태양천이 원나라 황실을 보호하며 새외로 사라졌다는 말은 들었지만, 여전히 그들에 대한 공포는 장로전의 공기를 싸늘하게 만들었다.

“지금쯤 방주님께서도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새로운 명이 올 것이니 우선은 조금만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고철황은 담수련의 계획에 변수가 생겼음을 직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