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355화 (355/472)

<천검지애 355화>

355화. 소문(1)

“교주님, 악불군의 행태가 도를 넘고 있습니다. 흑선산장이 사라지면 본 교에도 피해가 생깁니다. 아무래도 제어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혈뇌의 말에 혈우대마종은 고개를 살살 끄덕였다. 맞다는 건지, 아니란 건지 알 수 없는 행동이었다.

“교주님,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혈뇌는 혈우대마종의 의중을 모르겠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흑선산장은 포기한다.”

“정말이십니까?”

“악불군이 그 계집들의 주구를 체포해 무림맹으로 압송했다고 했지?”

“예, 하지만 압송은 실패했습니다. 그 계집들의 간세가 얼마나 많은 곳에 넓게 퍼져 있는지, 저도 새삼 놀랐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악불군처럼 가시적인 성과를 낸 놈들이 없었지. 지금 본 교의 가장 큰 방해물은 그 계집들이다. 악불군이 최대한 그 계집들을 들쑤셔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린다.”

“악불군이 흑선산장까지 없앤다면 무림에서의 위상이 너무 커집니다.”

“아무리 커져도 그 계집들보다 더 커질 수는 없다. 천호방은 아무리 커진다 해도 악불군만 제거하면 그냥 무너진다. 좀 더 놔둬라. 악불군은 언제라도 내가 제거하면 된다.”

“알겠습니다.”

혈뇌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천하의 누구도 혈우대마종이 제거하려고 한다면 살아날 수 없다는 믿음이었다.

* * *

“흑선산장에서 애가 탈 것 같습니다.”

악불군의 말에 담수련은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흑선산장에서 반나절 거리에 있는 양우현의 객잔이었다.

빨리 가면 오늘 안으로 도착할 수도 있었지만, 담수련은 최대한 천천히 움직이자고 했다.

“흑선산장이 애타라고 천천히 움직이는 거 아니야. 소군이 흑선산장과 싸우고 있다는 것을 전 무림이 알게 하기 위해서 길게 끌고 가는 거지.”

큰 소문은 모든 소문을 덮을 수 있지만, 이미 끝난 소문은 작은 소문에도 밀려나기 마련이었다.

끝났기 때문에 화제성이 떨어져서였다.

담수련은 악불군의 이름을 높일 수 있는 이번 기회를 최대한 길게 끌어, 천하인 모두의 뇌리에 악불군의 이름을 각인시킬 생각이었다.

[주군, 흑선산장에서 사신이 왔습니다.]

흑석영의 전음을 들은 악불군은 담수련을 쳐다보았다. 담수련의 예측이 또 맞았기 때문이었다.

[들여보내십시오.]

“왜 그렇게 쳐다봐?”

눈치 빠른 담수련의 물음에 악불군은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가씨께서 예측한 일이 또 맞아서 감탄한 눈입니다.”

“뭐가 맞았는데?”

“흑선산장에서 사신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건 예측일 것도 없어. 책사라면 누구라도 당연히 생각할 수 있는 일이거든.”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하며 은근히 잘난 척을 하는 그녀의 모습이 악불군의 눈에는 너무나 귀여워 보였다.

“누구나는 아니라고 봅니다. 아가씨니까 가능한 일이지요.”

악불군의 칭찬에 담수련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사신은 어디쯤 왔대?”

“이미 객잔에 들어왔습니다.”

“그럼, 지금 만나러 가야겠네?”

“예.”

* * *

객잔의 한 방으로 안내된 적미신군은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태양천이 물러나고 영웅회가 무림맹으로 바뀌는 동안, 무림인들은 혼자서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판단한 듯 곳곳에서 이합집산을 했다.

새로운 신생 문파가 수십 개나 생긴 이유였다.

무림맹은 물론 구천마성과 혈해마계 또한 이 시기에 상당히 많은 고수들을 영입했다.

하지만 천호방은 낭인들만으로 방도를 모았다고 알려져 있었다.

‘소문과 전혀 달라. 천호방이 어디서 저런 고수들을 수하로 받아들인 거지?’

적미신군은 천하가 천호방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악불군과 담수련이 안으로 들어섰다.

적미신군은 그가 악불군임을 즉각 알아차렸다. 그에게서 풍기던 절대자의 기세가 더욱 진해졌기 때문이었다.

“흑선산장의 호법인 적미신군입니다.”

적미신군이 공손하게 포권을 하자 악불군도 포권을 했다.

“천호방 방주 악불군입니다. 사신으로 오셨다고요?”

“예, 장주님께서는…….”

“우선 앉아 차부터 마시고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대화하는 와중에 말을 끊는 일은 비일비재하게 겪는 일이었다. 하지만 악불군의 끊음은 이상하게 그의 심장에 덜컥하는 충격을 주었다.

“그, 그러지요.”

적미신군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 앉고 말았다.

그는 당당하게 악불군에게 이러는 이유를 묻고 더 이상 소모적인 싸움을 그만두자고 요구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몇 마디 나누기도 전에 주눅이 들어 버렸다.

“차 맛은 어떠십니까?”

차를 한 모금 마신 악불군이 묻자 그는 재빨리 답했다.

“아주 좋군요.”

“다행입니다. 그래 일성마황 선배님께서 저희에게 어떤 말을 전하라고 하시던가요?”

“장주님께서는 본 장과 천호방 간에 척을 진 일이 없는데 일이 이렇게 커진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셨습니다.”

“본 방의 방도가 네 명이 죽고 여덟 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유감 표명 정도로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지요.”

“……본 장은 칠십여 명이 죽었습니다.”

“흑선산장 측에서 먼저 공격했으니, 그것은 저희에게 책임을 물을 사안이 아닙니다.”

“그런 억지가 어디에 있습니까? 분명 본 장의 세력권에 다짜고짜 들어온 것은 천호방이었습니다.”

“저희가 지나간 곳은 흑선산장의 세력권이 아니고 안휘성의 관도였습니다.”

“무림에는 무림만의 불문율이 있습니다. 다른 무림세력의 세력권에 들어갈 때는 그에 상응하는 예의를 갖추는 것이 불문율입니다.”

“흑선산장은 무림인들이 나타나면 무조건 죽이거나 쫓아냈더군요. 더욱이 양민들에게 돈을 상납하라고 많이도 괴롭혔다고 들었는데, 이제 와서 불문율을 따지니 좀 생경하군요?”

“본 장은 한 지역의 패주로서, 세력권에서 여러 분란을 일으키는 무림인들을 징치할 권한이 있습니다. 양민들에게 보호비를 상납받는 것은 천호방 역시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본 방에서 보호비는 받습니다. 하지만 보호비를 안 낸다고 죽이지는 않지요.”

“설마, 그래서 일부러 시비를 건 것입니까?”

“일부러 시비를 걸었다고 하는 것은 좀 과한 추측 같군요? 어쨌든 유감 표명까지 하셨으니 더 이상 전쟁은 피하고 싶다는 의미겠지요?”

“장주님께서는 악 방주께서 본 장의 세력권을 지나는 것에 대해 양해해 달라는 서찰을 한 장 써 주신다면 더 이상 앞길을 방해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순간 담수련의 입가에 미소가 나타났다. 그의 제안 역시 그녀가 예상한 그대로였기 때문이었다.

“아주 건설적인 제안이시네요. 하긴, 싸우는 것보다는 대화로 일을 풀어나가는 것이 좋긴 하지요. 하지만 모든 대화에는 오고 가는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누구?”

적미신군은 인사도 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끼어드는 담수련을 보자 의아한 듯 물었다.

“본 방의 군사입니다. 담 군사라고 호칭하시면 됩니다.”

“천호방의 군사시구려. 오고 가는 것이라면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이오?”

“저희도 흑선산장과는 싸우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흑선산장이 안휘에 버티고 있는 이상 그대로 갈 수는 없습니다. 저희도 체면을 차릴 정도의 뭔가를 보여 주셔야지요.”

“무엇을 보여 달라는 말입니까?”

“흑선산장을 다른 지역으로 옮겨 주셔야겠습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적미신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미 세력권을 형성한 문파에게 다른 곳으로 옮기라는 말은 문파가 멸문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과한 요구였다.

어느 문파이건 그런 요구를 받아들인다면 어떤 수하들이 남아 있겠는가…….

수장의 권위 역시 땅에 떨어져, 명령을 내린다 해도 들을 리 만무했다.

벌떡 일어섰던 적미신군의 얼굴이 흑색으로 변했다. 그의 온몸을 조이는 강력한 힘에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들어짐을 느낀 것이다.

“이, 이, 이런 강력한 힘이…….”

경악한 듯 말하던 적미신군은 입술조차 움직이기 힘들어지자 얼굴이 완전 사색으로 변해 버렸다.

전 내공을 끌어올려 풀어 보고자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결국 타의에 의해 다시 자리에 앉게 된 후에야 그 힘은 사라졌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신 모양입니다. 담 군사님의 말은 부탁이 아닙니다. 제가 지금 흑선산장이 무서워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줄 아십니까? 그저 살인을 지양하고자 기회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본 장에서는 천호방이 부역자로 공지된 백인막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계속 이렇게 나가신다면 저희도 이 사실을 무림맹에 알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협박이 된다고 믿으십니까?”

“협박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저희로서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입니다.”

“그건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래도 조금은 통하지 않을까 했던 적미신군은, 악불군이 너무 태연하자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물었다.

“흑선산장과 천호방 간에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그런 요구를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적미신군은 이미 악불군의 기세에 완전하게 눌린 듯 말투가 사정조로 변해 있었다.

“제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흑선산장이 그동안 너무 많은 죄를 저질렀더군요. 어찰단의 탄압 속에서도 멀쩡하게 버티셨는데 부역자로 몰리지 않은 것은 좀 의아하기는 하지만, 그건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문파가 황도가 있는 강소성과 너무 가까운 이곳에 있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안 드십니까?”

적미신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서, 설마 천호방의 지금 행동이 황상의 뜻이란 말입니까?”

만약 주원장이 흑선산장을 없애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흑선산장이 버틸 방법은 없었다.

“저는 황상의 뜻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아시겠지만 황상의 의중을 함부로 떠벌이면 역모가 됩니다.”

악불군의 말은 주원장의 뜻이라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매우 모호했다.

“그럼 어디로 옮기라는 것입니까?”

“그거야 흑선산장에서 판단하실 문제가 아닐까요?”

“이 문제는 너무 중요한 사안이라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저희가 흑선산장에 도착하려면 하루 정도 걸릴 것 같군요.”

“하루는 너무 짧습니다.”

“이런 결정은 빨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 * *

“소군, 황상을 연결할 생각은 어떻게 했어?”

적미신군이 떠나자 담수련은 놀랐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명분을 좀 준 것뿐입니다.”

“그렇다고 저들이 말을 들을까?”

“아마 거절할 겁니다.”

“그걸 알면서 명분을 줄 필요가 있을까?”

“한 번의 전투로 방도들이 여러 명 죽고 다쳤습니다. 흑선산장에서의 싸움에서는 더 많은 사상자가 나올 것입니다. 그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최대한 노력은 하고 싶었습니다.”

담수련은 악불군의 마음이 이해가 가는지 그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우린 무림인이야. 방도들도 무림인이고, 우리 모두는 언제든지 죽거나 다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결정해서 무림인이 된 거야. 소군이 그 문제로 자책할 필요는 없어.”

“이제 더 이상 자책 같은 것은 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을 책임진 방주로서 보호할 책임을 다하고자 할 뿐입니다.”

* * *

“소걸아가 보내 온 정보는 보셨습니까?”

개방의 방주인 무룡신개는 사해신개를 보자 급히 물었다.

“봤네. 방주 생각은 어떠신가?”

“가장 폐쇄적이고 충성심 높다는 천무성궁에 간세라니요? 솔직히 보고를 받고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것도 장로급이라고 했네. 개방도 간세가 없다고 장담할 수 없다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또다시 백 년 전의 그 혼란이 다시 반복되게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아직 세상에 공표는 하지 않았지만, 남궁세가와 천호방 간에 혈맹지약을 맺었다고 하네.”

“남궁세가가 혈맹지약을요? 놀랍군요?”

“남궁세황 대협은 아주 신중한 분이네. 그의 허락 없이 혈맹지약을 맺었을 리는 없네. 그리고 천호방의 다음 행선지는 개방일세.”

“본 방에게도 혈맹지약을 맺자고 할 수 있겠군요?”

“아마 그럴 걸세.”

“간부들이 찬성할까요?”

“반대도 만만치 않게 있겠지. 하지만 결정은 어차피 방주의 몫이네.”

“사숙께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솔직한 말을 듣고 싶으신가?”

“예.”

사해신개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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