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356화 (356/472)

<천검지애 356화>

356화. 소문(2)

“난 지금 믿을 사람이 악불군밖에 없다고 생각하네.”

“그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많다는 것은 아시지요?”

“아네. 잠룡세가와 연관이 있다는 소문을 말하는 것이 아니신가?”

“그것을 아시면서도 그를 그렇게 믿으시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사해신개는 그동안 악불군을 만났던 시간들을 반추해 보았다. 그리고 확신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 아이를 처음 보았을 때, 그 아이는 천상신녀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가 있는 방 앞에서 벽에 등을 대고 자고 있었다네. 그 후 그 아이의 명성이 높아지고 천호무적검이라는 명호까지 받으며 승승장구할 때 다시 만났어. 그런데 여전히 천상신녀를 그렇게 아끼고 보호하더구나.”

“자신의 지위가 높아졌는데 변함이 없었다는 것이군요?”

“사람은 타고난 천성이라는 것이 있다네. 방주는 소걸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

“소 사질은 개방에서 보기 드문 인재이지요. 전 소 사질이 언젠가는 개방의 명성을 높여 주는 인물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방주 역시 소걸아를 개방의 제자로서만 보고 있구먼.”

“제가 모르는 다른 것이 있습니까?”

“소걸아의 내면을 보아야 하네. 소걸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골통이라는 선입견이 있지. 세상 사람들이 그 아이의 관점에 맞지를 않으니 누구와도 친해지기 싫고, 위선적이니 자꾸 비꼬다 보니 그런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이지.”

무룡신개는 뭐라 답을 할 수 없었다. 그 역시 소걸아로 인해 골치를 썩은 적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사해신개는 계속 말을 이어 갔다.

“소걸아는 내 사손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깨끗한 심성을 가지고 있다네. 천성적으로 전혀 욕심이 없고 그러면서도 정의감이 있지. 거기다 뺀질거리면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은 꼭 하네. 책임감도 있다는 뜻이야. 그런데 악불군은 첫눈에 소걸아의 천성을 알아차렸어. 같은 심성을 지닌 사람은 서로를 금방 알아본다고 생각하네. 난 악불군이 분명 진정한 대협의 풍모를 지니고 있다고 믿네.”

수십 년간 남개방을 이끌고 결국 궁가방을 물리치고 정통성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해신개는 현재 개방의 방주 이상의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무룡신개 역시 자신의 사부가 태양천과의 전투에서 사망한 후 사해신개에게 모든 무공을 배우다시피 했으니 또 다른 사부라고 할 수도 있었다.

“사숙님의 말씀을 염두에 두고 결정하겠습니다.”

* * *

“장주님, 흑선산장이 이곳에 자리 잡은 것이 사십 년입니다. 그런데 고작 일 년밖에 안 된 신생 문파의 방주 놈이 우리 보고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하다니, 이놈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전체적인 전력은 우리가 월등합니다. 준비하고 있다가 한꺼번에 공격을 시작한다면 모조리 죽일 수 있습니다!”

적미신군의 보고를 들은 흑선산장의 간부들은 분노가 탱천하여 소리쳤다.

일성마황은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가 앉은 태사의의 팔걸이가 그의 손에 의해 가루가 되어 버린 것을 보아 그 역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놈 말대로 정말 주원장이 우리를 제거할 생각을 하고 있다면, 버티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적미신군의 말에 십미호귀가 발끈하며 받았다.

“주원장이 황제가 되는 데는 우리도 일조했습니다. 진우량과의 전투 때 우리가 물심양면으로 도왔지 않습니까? 주원장이 우리에게 이러면 안 되지요!”

“주원장의 뜻이라는 것도 그놈의 말일 뿐, 아직은 확실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암권마도 동의한다는 듯 말하자 적미신군은 더 이상 반박하지 못했다.

사실 그도 악불군을 직접 만나지 않았다면 이들과 똑같이 흥분하여 당장 악불군을 죽이자고 주장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손도 대지 않은 채 자신을 제압했던 무시무시한 악불군의 기세를 몸으로 느끼고 온 터였다.

오는 동안에도 그는 일성마황이 악불군을 이길 수 있을지 계속 고심했다.

“적미신군.”

일성마황의 부름에 그는 깜짝 놀라 대답했다.

“예, 장주님.”

“넌 지금까지 강경한 자세를 견지해 왔지. 그런데 악불군에게 사신으로 다녀온 후 갑자기 약한 말만 하고 있다. 이유가 뭐냐?”

적미신군은 당황한 듯 잠시 머뭇거렸다. 만약 악불군의 무공이 너무 강했다고 말을 한다면 일성마황의 자존심을 건드려, 오히려 자신이 죽을 수도 있었다.

“저희가 아는 것과는 달리 천호방도들의 무공이 대단히 강했습니다. 저희가 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예상외로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지금 무림은 각 세력이 패권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본 장은 당장 남궁세가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전력을 많이 상실한다면 이후 다른 세력들과의 싸움에서 버틸 수 있을지 그게 걱정이 됩니다.”

적미신군은 당장이 아니라 이후의 문제를 걱정한다는 것으로 말을 돌렸다.

다행히 그의 말에 설득력이 있었는지 일성마황의 고개가 천천히 끄덕여졌다.

“남궁세가에서 전력을 완전히 정비하고 무림맹의 도움까지 받는다면 우리에게는 상당한 위협이 될 것이다. 여기서 더 이상 전력을 잃는 것은 위험하다.”

일성마황의 말에 절심마자가 나섰다.

“하지만 우리가 싸워 보지도 않고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고 한다면 천하의 조롱거리가 될 것입니다. 더구나 장주님께서는 무림 십왕이 되기 위해 영웅대회에 나가실 예정인데, 그런 수모를 당한다면 명성이 크나큰 누가 될 것입니다.”

그러자 십미호귀가 거들었다.

“악불군 그놈은 황상과의 친분을 이용해, 어린 나이에 경합도 없이 무림 십왕이 되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장주님께서 그놈을 제거한다면 무림 십왕으로 봉해지는 것은 기정사실이 될 것입니다. 황상이 인정한 십왕을 남궁세가라고 해도 공격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맞습니다. 장주님께서 그놈과 일대일 대결을 하시어 제거한다면 본 장의 전력을 잃지 않고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암권마까지 호응하자, 적미신군의 의견에 설득된 듯하던 일성마황의 눈에 욕망이 타올랐다.

만약 악불군을 자신이 제거한다면 이 모든 난관을 한 번에 해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런데 그놈이 나와 일대일 생사결을 하려고 하겠느냐?”

“그놈은 스스로 정파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대일 대결을 거절한다면 그놈의 명성은 땅으로 곤두박질치고, 본 장과의 싸움을 계속할 명분도 잃게 됩니다.”

문파의 수장 대 수장의 대결은 여간해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지는 쪽은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큰 타격을 입기 때문이었다.

하나 그런 제안을 거절하는 것 역시 문파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기 십상이었다. 겁이 나서 피한다는 인상을 심어 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오른 수장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그런 제안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지금 이들이 악불군에게 그런 제안을 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일성무황이 악불군을 반드시 이길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건 아닌데…….’

적미신군은 상황이 뭔가 잘못 흘러가고 있다고 느꼈지만 반대의견을 말할 수는 없었다. 마도문에서 모든 간부가 찬동하는 일을 혼자만 반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 * *

“척후의 보고에 따르면 이제 한 시진만 가면 흑선산장이 보일 거라고 합니다.”

“모두에게 준비는 시켰지요?”

“예.”

악불군은 뒤를 슬쩍 보았다.

담수련은 마차에서 나와 백설을 타고 있었다. 백설의 위험 감지 능력은 인간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심지어 악불군의 은신술까지도 백설은 눈치를 챌 정도였다.

담수련의 주위는 사화와 잠봉단은 물론 사효조까지 합세하여 보호하겠지만, 최종 위험이 닥친다면 백설이 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었다.

악불군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확실하게 찾아내라고 했지만, 너무 늦는군.’

악불군은 적설이 좀 아쉬웠다. 담수련을 보호하기 위한 훈련을 열심히 시켰는데, 막상 필요할 때에 없는 것이 아쉬웠다.

“멈춰라!”

선두에서 인솔을 하던 대독관이 손을 들며 소리쳤다.

모두는 즉시 무기를 빼 들며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이십여 명의 무인들이 흑선산장의 깃발을 날리며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솔하고 온 암권마는 삼 장 앞에 말을 멈추더니 포권을 했다.

“저는 흑선산장의 장로인 암권마라고 하오.”

그러자 대독관이 앞으로 나섰다.

그동안은 대부분 악불군이 직접 상대했지만, 이제부터는 상대의 지위에 맞춰 상대하라는 담수련의 조언에 따른 것이었다.

“천호방의 호법인 대독관입니다.”

‘대독관? 호법인데 무명소졸이라……?’

암권마는 이미 마두로서 명성이 상당히 높았지만 대독관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무슨 일로 오셨는지 용건을 말하셔야지요?”

암권마가 말이 없자 대독관은 냉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장주님께서는 천호방의 행동에 대해서 대단히 불쾌해하고 있소이다.”

“그게 용건입니까?”

대독관의 말투가 더욱 차가워졌다. 암권마에 전혀 밀리지 않겠다는 기세가 보였다.

암권마는 서찰 하나를 꺼내더니 대독관을 향해 살짝 날렸다.

“이게 뭡니까?”

“장주님께서는 집단 전투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 천호방주님과 일대일 생사결을 요청하셨소. 천호방주께서 진다면 흑선산장에 사과하고 손해를 배상하시고, 만약 장주님께서 지신다면 흑선산장을 해체하시겠다고 하셨소. 받아들일 수 있겠소?”

암권마의 얼굴에는 감히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는 자부심이 보였다.

“방주님께 전달하겠소이다.”

대독관은 대답 없이 뒤에 있는 악불군에게 다가가 서찰을 공손히 바쳤다.

‘바로 뒤에 있으면서 인사도 하지 않고 모른 척하고 있다는 것은 나를 무시한다는 거겠지?’

암권마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따지지는 못했다.

두 장의 서찰에는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결투를 공식적으로 하기 위한 결투장으로, 한 장에는 이미 일성마황의 이름과 장인이 찍혀 있었다.

악불군은 마음에 든다는 듯 미소를 짓더니, 품에서 먹물을 꺼내 비어 있는 종이에 자신의 이름을 쓰고는 장인을 찍었다.

“대 호법.”

“예! 방주님.”

“이틀 후, 결투 장소에 시간에 맞춰 도착할 것이라 전해라.”

* * *

갑자기 사방이 바빠졌다. 전서가 날아다니고 소식을 전하기 위해 수많은 무사들이 말을 타고 달렸다.

무림십왕에 봉해진 천호무적검과 무림백대고수 중 상위 열 명에 들어가는 일성마황과의 결투는 실로 근래에 보기 드문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정식 결투장을 주고받은 생사결이기에 무림인들이 대놓고 구경할 수가 있었다. 그들이 하나의 증인이 되기 때문이었다.

결투는 이틀 후, 그 시간 안에 올 수 있는 무림인들은 결투에 늦지 않기 위해 안휘 북부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소문이 급속도로 퍼진 것은 소걸아가 이끄는 개방의 천강개들이 수고한 덕분이었다.

물론 담수련이 부탁한 것이다.

악불군의 명성이 높아질 기회는 조금도 놓치지 않는 그녀였다.

만약 시간만 많았다면 수만 명이라도 몰릴 기세였지만 결투 시기가 너무 코앞이라 안타까울 정도였다.

* * *

“장주님, 이상합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소문이 순식간에 퍼지고, 수많은 무림인들이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적미신군의 보고에 일성마황의 검미가 살짝 흔들렸다. 결투를 신청한 것은 흑선산장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악불군이 꺼려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너무 흔쾌히 받아들였고, 더욱이 소문이 너무 빨리 퍼졌다.

흑선산장에서 퍼뜨린 것이 아니니 천호방에서 퍼뜨렸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경험상 소문을 퍼뜨리는 것은 자신이 있는 자들이 하는 행동이었다.

일성마황은 지금까지 수백 번이 넘는 생사결을 벌여 왔다. 그리고 계속 이겼기에 아직까지 살아남아 한 문파의 주인이 되었다.

그는 생사결을 할 때 두려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상대를 죽여 피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번 비무는 이상할 정도로 찝찝했다.

천호방이 시비를 벌인 과정부터 결투까지 모든 것이 자신도 모르게 밀려서 이루어진 것 같았다.

“상관없다. 오히려 무림 십왕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죽인다면 괜한 구설수도 없고 내겐 더 좋을 것이다.”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지만 표정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그때 암권마가 들어왔다.

“장주님, 천호무적검이 도착했습니다.”

결투 장소는 흑선산장의 정문 앞 공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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