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358화 (358/472)

<천검지애 358화>

358화. 생사결(2)

천호무적검이 일성마황을 일 초에 죽였다는 소문은 전 무림을 강타했다.

심지어 천호무적검이 무황보다 더 강하다고 떠벌이는 호사가들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짐이 사람을 잘못 보지는 않았군.”

유백온의 보고를 받은 주원장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같은 정파로서 무림맹 정도만 견제해도 대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잘하면 마도와 사파까지도 제어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강호행을 하면서 양민들을 그렇게 돕는다고?”

“예, 거기다 황상의 뜻이라는 말을 꼭 한다고 하니, 그 충성심이 아주 대단하다고 하겠습니다.”

“황후의 신변도 그 아이 덕에 구할 수 있었으니 뭔가 큰 상을 내리긴 해야 하는데, 뭐가 좋을까?”

“황후마마를 노리는 자들이 아직도 있을 것입니다.”

“신비 조직이라고 했지?”

“예, 악 방주가 공표한 것에 의하면 여인들을 이용하여 남자들을 조종한다 하니, 실로 무서운 조직이라 하겠습니다.”

“하긴 남자들이 여인에게 약하긴 하지. 금의위를 더 키워야 할 것 같다.”

“금의위가 이미 너무 비대해졌다는 말이 있습니다. 더욱 키우신다면 후일 골칫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따로 생각해 놓은 것이 있다.”

주원장은 가장 다루기 쉬운 환관들을 이용한 새로운 친위 조직을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 악불군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하남에 들어섰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모든 관과 군은 악불군이 도움을 요청하면 물심양면으로 도우라 해라.”

“이미 그리하고 있습니다.”

“무림까지 황실의 명을 따르게 만든다면 명나라는 천하제일 제국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

* * *

하남에 도착한 악불군은 먼저 개봉으로 향했다.

개방에 들르기 위해서였다. 이미 소걸아를 통해 배첩을 보낸 터였다.

천호방 깃발을 높이 치켜들고 개봉에 들어선 악불군은 개방 방주가 직접 영접을 하는 극진한 환영을 받았다.

일성마황을 일 초에 죽인 사건이 개방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 버린 것이었다.

“방주님께서 이렇게 직접 나오시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악불군은 무룡신개를 보자 공손히 인사를 했다. 무황급의 명성을 가지게 된 악불군이 자신들의 방주에게 너무 예의 있고 겸손한 모습을 보이자, 개방 간부들의 표정도 상당히 부드러워졌다.

개방의 총단에 들어가자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남궁세가의 화려했던 산해진미와는 달리 조촐했지만 나름 정갈하게 준비한 것 같았다.

“거지들이 준비한 음식이지만 최대한 깨끗하게 만들었소이다.”

무룡신개의 말에 악불군은 미소를 지며 답했다.

“음식이건 사람이건 진심이 들어 있는 것이 가장 훌륭한 것이지요. 제가 그동안 본 음식 중 가장 훌륭한 음식입니다.”

악불군의 말에 무룡신개는 흡족한 듯 환한 미소를 짓고는 간부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남궁세가에서의 대화도 부드러운 편이었지만, 개방 간부들과의 대화는 화기애애하다고 할 정도로 좋았다.

이야기는 우선 일성마황을 일 초에 죽인 그의 업적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곧 그가 천륭검가를 잇고 있다는 말로 대화가 넘어가면서 모두는 숙연해졌다.

“악 방주께서 천륭검가의 후계자라니, 이렇게 강하신 이유를 알 것 같군요. 개방과 천륭검가는 큰 인연이 있었습니다.”

장로중 한 명의 말에 악불군이 놀란 듯 물었다.

“어떤 인연이 있었습니까?”

“태양천에 의해 개방 총단이 무너지고 항전을 택한 제자들은 우선 도망을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천륭검가가 있는 중경으로 도망간 제자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지요. 태양천이 중경에는 들어가지를 못했으니까요. 어찌 보면 천륭검가는 개방을 구해 준 셈이지요.”

“개방같이 정의롭고 협의가 충만한 문파라면 누구라도 도와줄 것입니다.”

식사가 끝나고 잠시 덕담이 이어지더니 간부들이 하나둘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두가 나가자 무룡신개가 일어서더니 악불군을 보며 말했다.

“저를 따라오시게.”

악불군과 담수련은 알았다는 듯이 목례를 하고는 그의 뒤를 따라갔다.

몇 개의 문을 지나고 도착한 방에는 사해신개를 비롯한 세 명의 노개와 한 명의 중년개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너라.”

악불군을 본 사해신개가 친손자라도 본 듯 훈훈하게 맞았다.

“어르신이 안 보이셔서 외유라도 나갔나 생각했습니다.”

악불군과 담수련이 급히 포권을 하자 사해신개는 기분 좋은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네가 온다는데 어딜 가겠느냐? 자 인사해라. 이쪽은 본 방의 수석장로인 헌원신개다.”

“말학후배 악불군, 어르신께 인사드립니다.”

“헌원신개네.”

“그리고 이쪽은 무림맹에서 자네를 보기 위해 달려온 무림맹 장로인 구지신개.”

악불군은 다시 정중하게 포권을 했다. 각 문파는 무림맹에 주요 인물을 장로로 파견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림맹의 주요 현안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듣던 대로 대단한 기재로군. 구지신개라네.”

구지신개는 손가락이 하나 잘려 네 개만 남은 손을 보이며 익살맞게 웃었다.

“전 장로인 신룡신개라고 합니다.”

중년 거지는 직접 인사를 했다.

“그 아이가 노부의 제자다. 소걸아의 사부이기도 하지.”

소걸아의 사부라는 말에 악불군이 놀란 얼굴로 급히 포권을 하며 말했다.

“소걸아와 제가 친구의 의를 맺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존칭을 하시면 제가 많이 불편해집니다. 말을 편하게 하십시오.”

“방주님께서 존칭하는데 제가 어찌 말을 놓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럼 방주님께서도 말을 놓으시면 되겠네요. 사해신개 어르신께서 제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생각한다면 개방과 저는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라고 보고 있습니다. 더구나 제게 한 명밖에 없는 친구도 개방의 제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래 방주나 너도 공적인 자리에서는 존칭을 하되, 우리끼리 있는 자리에서는 말을 놓거라.”

사해신개의 말에 모두는 웃음을 터뜨렸다. 단번에 개방과 가족의 연으로 묶어 버리는 악불군을 보며 담수련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자신이 없어도 악불군 혼자 세상을 견딜 수 있겠다는 안심이 든 것이다.

훈훈한 인사가 끝나자 곧장 본론에 들어갔다.

그리고 담수련이 나섰다.

“그러니까 이곳들을 한 번에 공격한다는 말이냐?”

사해신개는 담수련이 펼친 지도를 보며 물었다.

지도에는 거의 삼십 개 가까운 표식이 되어 있었다.

“검은색은 혈교이고 빨간색은 신비 조직입니다. 악 방주께서 안휘를 지나오며 몇 군데 없앴는데, 다행히 무력은 그리 강하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정보를 수집하는 거점 같습니다.”

“혈교나 신비 조직처럼 숨어 있는 세력에게 정보망은 눈과 귀의 역할을 하는 아주 중요한 곳이지.”

“그렇습니다. 우선 정보망을 먼저 없애 그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하는 것이 그들을 제거하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담 군사가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무림맹에 지금 큰 혼란이 생겼다네.”

구지신개의 말에 담수련이 안다는 듯 답했다.

“천무성궁의 장로가 간세로 밝혀진 사건 말씀하시는 것 아니십니까?”

“알고 있었구만, 천무성궁 같이 충성심이 강한 문파에도 간세가 있다면 본 개방에는 더 많은 간세가 있을 것이고 다른 문파 역시 같은 사정일진대, 우리가 정보망의 거점을 공격한다면 그들이 모를 리 있겠나?”

“그래서 한 번에 공격해야 한다고 하는 겁니다. 믿을 수 있는 지휘자를 세우시고, 목적을 말하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 공격하는 것이지요. 물론 지휘자가 간세라면 그 공격은 실패하겠지만, 그 덕에 간세를 한 명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전격적인 공격을 하려면 이 정보가 확실하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하지 않겠소?”

신룡신개가 신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이에요. 확인하지 않고 공격하는 것인지라, 정보가 틀리다면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우를 범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희가 안휘성을 올라오면서 확인한 것입니다. 그리고 확실한 정보라는 심증을 얻었습니다.”

“이게 한 문파가 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닌데, 거기에 대한 계획은 있나?”

담수련은 후기지수들을 모아 새로운 조직을 만들 계획을 설명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남궁세가와 비슷한 반응이 나타났다.

“노부가 느낀 바에 따르면 무림맹에서는 천호방에 대해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네. 그런데 정파의 후기지수들을 모아 새로운 조직을 만든다고 한다면 분명 문제가 생길 것이네.”

구지신개의 말에 모두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담수련은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천무성궁에서 간세가 나타나서 중요한 용의자들을 죽이고 자결했습니다. 저희가 후기지수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것은 혈교와 신비 조직의 간세들을 배제하기 위해서입니다. 무림맹에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 이상, 대놓고 적대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담수련은 이미 모든 질문이나 사안에 대해 대처할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천호방에서 궁극적으로 원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나?”

담수련은 악불군을 쳐다보았다. 이 대답은 악불군이 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전 전쟁의 와중에 양민들이 얼마나 어렵게 사는지를 직접 체험했습니다. 할아버님과 아버님은 의원의 치료도 받지 못하고 병으로 돌아가셨으며, 어머님은 기아로 돌아가셨습니다. 돈을 벌 곳은 없었고, 아이들은 모두 구걸을 하거나 도둑질을 해야 먹을 수 있었습니다.”

악불군의 말에 모두는 그가 매우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음을 알 수 있었다.

“전 천하가 안정을 이루고 양민들이 평화롭게 자신들의 생활을 영위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을 뿐입니다. 힘이 없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수동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움직였지만, 미약하게나마 힘이 생긴 이상 양민들을 위해 이 힘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무림에서의 명성도, 명예도, 그렇다고 세력을 키우는 것도 아닌 양민을 위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악불군의 말은 모두를 감동시켰다.

개방을 세운 개신이 말했던 이상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개신은 양민이 아니라 거지가 편하게 구걸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했지만, 맥락은 같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럼 본 방에서 해 줄 것은 무엇이 있겠나?”

무룡신개의 말에 악불군은 감사하다는 듯 포권을 하며 말했다.

“남궁세가와 본 방 간에 혈맹지약을 맺었습니다. 개방과도 혈맹지약을 맺었으면 합니다.”

예상한 대로 드디어 혈맹지약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모두는 서로를 한 번 보았다. 이미 이들은 결정한 사안이었기 때문이었다.

“본 방은 악 방주를 믿네. 본 방은 기꺼이 혈맹지약을 받아들이겠네.”

허락을 하자 악불군이 죄송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를 그렇게 믿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먼저 말씀을 드려야 하는데 늦었습니다. 제 말을 들으신 후에 마음이 바뀌셔도 상관없습니다.”

“말하거라.”

사해신개는 뭔가 짐작이 간 듯 말했다.

“제겐, 절대로 갚아야 할 은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무림에 부역자로 몰려 있습니다.”

순간 모두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정보망이라면 천하제일인 개방이었다.

그들은 이미 악불군에게 쏟아지는 여러 의구심에 대해 알고 있었다. 다만 증거가 없을 뿐이었다.

“말하지 않고 넘어가면 될 것을 굳이 말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사해신개는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혈맹지약은 말 그대로 피로 맺어진 약속입니다. 어르신들이 이렇게 믿어 주시는데 제가 거짓으로 대한다면 어찌 혈맹지약이 되겠습니까? 거절하셨다면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믿는 분들께 실망을 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은인이라는 자들이 잠룡세가인가?”

헌원신개가 물었다.

“예.”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다른 세력이라면 어떻게 무마가 될 수도 있지만, 오룡세가라면 도저히 부역자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악 방주.”

“예.”

“우리는 그 말을 듣지 않은 것으로 하겠네.”

“그게 되겠습니까?”

“문파 간의 약속에 대해 다른 문파에 알릴 의무는 없지. 잠룡세가를 보호하려면 그들의 죄를 덮고도 남을 만큼 중원 무림에 큰 공을 세우게. 그때 우리가 도움을 주겠네.”

순간 담수련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녀의 계획 중 중요한 고비를 또 하나 넘은 것이다.

이제 가장 중요한 곳 하나만 넘어가면 그녀의 계획은 절반은 성공한 셈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