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359화 (359/472)

<천검지애 359화>

359화. 비보(1)

“공을 세워서 죄와 상쇄시키겠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혈교와 신비 조직을 없애는 일은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악불군의 말에 사해신개는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 악불군이 잠룡세가 사람이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잠룡세가의 사람들을 보호한다는 것이 알려지면 문제가 되기는 하겠지만, 그가 천륭검가라는 무림 명가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으니 우선 상황이 악화된다 해도 편을 들어줄 수 있는 명분이 생긴 것이다.

“그럼 본 방이 도울 것은 더 없는가?”

무룡신개가 다시 물었다.

“담 군사께서 개방에 꼭 도움을 받을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악불군이 담수련을 보며 말하자,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사실은 그 서찰에 적힌 정보와는 별개로 제가 조사한 것이 있습니다.”

“말해 보게.”

“저희가 천호방을 운영해 보니,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가 않더군요.”

“자금이 필요하신가?”

“아, 아닙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보아도 혈교나 신비 조직은 대단히 방대한 조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 그들이 운영 자금을 어디서 충당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담수련의 말에 모두의 눈이 커졌다.

어찰단과 태양천의 눈을 피해 지하에서 암약하던 영웅회는 고질적인 자금 부족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었다.

다행히 정파에 도움을 받았던 여러 사람들과 나라를 찾겠다는 염원을 지닌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 준 돈으로 간신히 꾸려 나가기는 했지만, 돈이 없어 굶는 경우도 비일비재할 정도였다.

만약 원나라가 무너지지 않고 더 이어졌다면 영웅회는 자금 부족 때문에라도 무너졌을 수 있었다.

“그래, 자금이 없이는 어떤 세력도 버틸 수 없지. 혹시 뭔가 단서라도 잡은 것이 있느냐?”

사해신개가 아주 정확한 요점을 짚어 냈다는 듯 급히 물었다.

“방주님께서 혈교인으로 추정되는 자들을 여럿 제거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품에서 만물상단의 전표를 다량으로 발견했습니다.”

“만물상단이면 천하 사대 상단으로 일컬어지는 곳인데?”

“그 상단을 감시해 주십시오. 제가 듣기로 총단이 하남에 있다고 하더군요.”

“원래는 하북에 있었는데, 원나라와 명나라 간에 전쟁이 하북에서 치열하게 벌어지면서 하남으로 옮겨 왔지. 알았네. 본 방이 다른 것은 몰라도 감시는 천하제일이라고 자부하네. 그들과 혈교 간에 연관이 있다면 필히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네.”

무룡신개가 흔쾌히 허락하자 담수련은 몸을 일으켰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어르신들께서 악 방주님을 믿으시고 어려운 결정해 주신 것도 정말 감사합니다.”

그녀는 한 명 한 명 포권을 하며 진정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그녀의 인사를 받는 모두는 그녀가 잠룡세가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지만 누구도 묻지 않았다. 차라리 모르고 있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아는 담수련이기에 그들의 배려가 더욱 고마웠다.

* * *

“악 방주!”

빈청의 작은 정자에 앉아 있던 악불군은, 소걸아가 뛰어오자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물었다.

“자네, 개방에서 배분이 상당히 높다면서 이렇게 뛰어다니면 어쩌나?”

“상관없어. 나 촐랑대는 거 총단에서 모르는 제자들 한 명도 없으니까. 드디어 소림사에서 방문을 허락한다는 연락이 왔다.”

순간, 악불군의 얼굴에 편한 미소가 떠올랐다.

악불군은 며칠간 사해신개 및 무룡신개와 계속 회합을 가지며 현 무림 상황에 대한 대처와 그가 하려는 일에 대한 도움 등 여러 사안을 의논했다.

그러면서 소림사에 배첩을 보냈고 허락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어쩌면 이번 외유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 소림사였다.

소림사는 현재 무림에서 가장 강한 세력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소림사는 무공의 특성상 오랜 수련을 거쳐야 했다. 허나 원나라와 대적 중 많은 원로 고수들을 잃으면서 아직 예전의 성세를 다시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소림사는 구파일방의 수좌이자 무림의 태산북두로 불렸다.

천하의 어느 문파건 소림사와 척질 경우 정파 무림과 척질 생각까지 해야 했다. 중원의 모든 무공의 원류가 소림사에서 파생되었다는 상징성 때문이었다.

“소림사도 여러 가지로 복잡하실 텐데, 내 배첩을 받고 곤란해하시지는 않았나 모르겠네?”

악불군의 말에 소걸아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사실 나도 소림사가 이렇게 빨리 허락할 줄은 몰랐거든! 역시 사람은 명성이 높고 봐야 해.”

“소걸아, 소림사의 어른들에 대해 아는 것 있냐?”

“개방과 소림사는 제일 친한 문파야. 당연히 알지. 우선 최고 어른으로는 탕마신승으로 불리시는 광천 대사님이 계시지.”

소걸아는 현 소림의 어른들에 대해 줄줄 말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영웅회 당시 어떤 공을 세웠고 어느 정도의 무공을 지니고 있는지까지, 마치 소림사 제자라도 된 듯 다 알고 있었다.

“소걸아, 설마 소림만이 아니라 다른 문파의 어른들도 그렇게 다 아냐?”

“사부님께서 개방의 정보망을 총괄하시고 계시거든. 그래서 나도 곁눈질로 듣고 본 게 많을 뿐이다.”

“그럼 혹시 태양천주가 소림사에 들어가 단신으로 백팔나한진을 깼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것에 대해서도 아냐?”

“그건 사조님께 들었는데, 자세하게는 말씀을 안 해 주시더라고. 어찌 됐건 소림의 백팔나한진은 무림의 자존심 같은 건데, 새외의 무림인인 태양천주 단 한 명에게 무참히 패했으니 생각하시기도 싫으셨을 거야.”

“태양천주의 무공이 그렇게 강했냐?”

“이건 절대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면 안 된다. 사실은 검황이신 천륭검가의 가주님만 빼고 다른 무황들은 전부 태양천주에게 패했다는 소문이 있다.”

“그런 소문이 날 정도라면 아는 사람이 많았을 텐데, 애써 비밀로 할 이유가 있나?”

“무림의 치욕이잖냐? 사실 싸운 것을 본 사람도 없었고, 무황들이 현재 무림의 절대자이자 최대 세력의 수장들이니까, 정파건 사파건 그 말을 언급하면 당장이라도 죽일 듯 덤비거든.”

“태양천주가 지금도 살아있을까?”

“태양천주는 아직도 건재하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때 태양천주인지 새로운 태양천주인지는 모르겠다.”

“원나라가 쫓겨나고 태양천의 세력이 붕괴됐는데, 왜 태양천주의 이름은 들리지 않는 걸까?”

악불군은 그 점이 계속 거슬렸다. 그렇게 강한 자라면 이대로 물러설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자세한 이유는 모르지만, 개방에서 취득한 정보에 의하면 태양천에 내분이 있었다는 것 같더라.”

“어떤 내분?”

“거기까지는 모르지. 하지만 무림맹에서는 태양천이 여전히 무림에 남아 있다고 보고 있나 보더라.”

무림의 상황에 대해 소걸아는 정말 모르는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많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덕에 악불군은 자신이 몰랐던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특히 무림의 백대고수들이나 각 문파의 이름난 고수들에 대해 얻은 정보는 그에게는 매우 도움이 되는 정보였다.

“뜻하지 않게 너무 좋은 정보를 많이 들었다. 고맙다.”

사실 고철황과 추명혼을 통해서 무림인들에 대해 상당히 많은 정보를 들은 그였다.

그런데 소걸아는 그들이 모르는 정보도 상당히 많이 알고 있었다. 특히 성격이나 좋아하는 것 등은 소걸아처럼 정파인으로서 곁에서 같이 지내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정보였다.

“호사가들도 다 아는 얘기라 정보랄 것도 없어.”

고개를 끄덕인 악불군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럼 우린 이만 떠나야 할 것 같다.”

* * *

개봉에서 소림사가 있는 숭산까지는 이틀 거리였다.

하남은 정파에서 가장 강력한 소림과 개방이 있는 곳으로, 여타 지역과는 달리 마도나 사파의 준동이 거의 없었다.

당연히 악불군의 행렬은 매우 순조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악불군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으신 거 같은데?’

개봉을 떠나 첫 밤을 보낼 때까지 담수련은 대단히 기분이 좋았다. 남궁세가에서도 예상보다 일이 잘 풀렸는데 개방에서는 더 잘 풀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침에 마차에 타는 그녀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았다.

담수련은 언제나 악불군의 얼굴만 봐도 뭔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큰소리쳐 왔다. 악불군 역시 그녀의 표정은 물론 몸짓만 보아도 그녀의 마음 상태를 느낄 수 있었다.

하룻밤 새 달라진 그녀의 모습에서 뭔가 있다는 것을 직감했지만 악불군은 묻지 않았다. 그녀가 말해 주지 않는데 묻는 것도 그녀를 불편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악불군의 예상대로 담수련은 지금 매우 혼란한 상황이었다.

동방소령과 추국은 마차에 타서도 계속 말없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담수련을 보며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근래 담수련이 이렇게 심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군사 언니.”

결국 참지 못한 동방소령이 입을 열었다.

“응? 왜에?”

뭔가 생각에 골똘하던 담수련은 그녀의 부름에 정신이 든 듯 물었다.

“무슨 걱정이 있으세요?”

“령매가 보기에 내가 걱정이 있는 것 같이 보여?”

“어제와 많이 다르셔서요.”

“생각할 게 좀 있어서 그래.”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한 담수련은 다시 생각에 빠졌다.

[추국 언니.]

동방소령은 추국에게 전음을 보냈다.

[응?]

[군사 언니 좀 이상하지 않아요?]

[그러게? 이러신 적이 거의 없는데?]

[방주 오라버니께 말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나도 그러고 싶은데, 아가씨께서 좋아하지 않으실 거야.]

담수련은 예전에도 자신이 불편할 때 그 사실을 악불군에게 말하면 부담을 준다며 절대 못하게 했다.

둘이 담수련의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담수련 역시 갑자기 그녀에게 닥친 뜻밖의 문제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악불군과 헤어진 후 사화와 잠시 대화를 나눈 그녀는 침상에 올라 잠자리에 들었다. 그때 그녀는 무엇인가 이불 속에 있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누군가 그녀에게 보낸 서찰이었다.

서찰을 본 그녀는 매우 놀랐다.

서찰이 그녀의 침상 이불 아래에 넣어져 있었다. 그녀가 누워야만 발견할 수 있는 자리였다.

서찰을 넣은 시간은 그녀가 악불군과 저녁 식사를 할 때가 가장 유력했다.

‘내 주위에 간세가 있어. 어제 그 객잔에 머문 것은 계획적인 것이 아니라 우연히 걸린 거야. 그런데 내가 묵을 객잔의 방을 알고 서찰을 넣었어. 누굴까?’

그녀의 방은 오직 여자들만이 드나들 수 있었다. 바로 사화와 잠봉단이었다. 심지어 잠봉단 중에서도 그녀의 침실에 들어간 단원은 몇 명 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단히 무공이 뛰어난 자가 아무도 모르게 들어와서 서찰을 넣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 의심의 범위는 악불군이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배치한 방주호법들과 그 수하들까지 넓어진다.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나를 죽일 수 있었다는 거 아니야?’

담수련은 생각을 하면 할수록 놀라웠다.

만약 그녀의 의심 범위에 든 사람들 중에 범인이 있다면, 악불군이 아무리 그녀를 보호하려 해도 한 침상에서 같이 자지 않는 이상 그녀를 보호할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더욱이 서찰의 내용은 그녀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하고 있었다.

- 담수련, 담무룡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너는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부터 내가 지시한 대로 행동해라. 만약 악불군을 비롯해 누구에게든 이 서찰에 대해 말한다면 담무룡은 처참하게 죽게 될 것이다. 내가 단지 협박을 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험을 해서 아버지를 죽게 만든 불효녀가 되는 우를 범하지 마라.

- 담무룡을 만나게 해 주겠다. 단, 너 혼자 와야 한다. 결정을 하면 잠룡세가의 비문을 네 방문 앞에 적어라. 그럼 너를 안내하는 자가 나타날 것이다.

시간은 이레다. 그 안에 결정하지 않는다면 담무룡은 더 이상 가치가 없는 것으로 알고 그의 목을 네게 배달해 주겠다.

서찰의 내용을 다시 반추한 담수련은 괴롭다는 듯이 손으로 이마를 잡았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추국은 놀라 물었다.

“괜찮아. 걱정 마.”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지만 누가 보아도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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