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검지애 363화>
363화. 대오(1)
광천 대사의 말대로, 악불군이 따라온 기가 흘러 들어가는 곳은 초옥의 바로 뒤에 있는 동굴이었다.
‘이곳으로 들어가도 되는 건가?’
악불군은 이 동굴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잠시 고심하던 그는 동굴로 들어가기로 결정한 듯 걸음을 옮겼다. 동굴의 높이는 상당히 낮아서, 키가 큰 그로서는 허리를 많이 숙여야 했다.
통로는 일 장 정도의 길이로 그리 길지는 않았다.
그렇게 도착한 동굴의 끝에는 동그란 공간이 있었다.
‘기가 여기서 산에 흡수되고 있구나.’
악불군의 그곳이 인간으로 따지면 단전과 같은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때 그의 눈에 중앙에 살짝 튀어나온 바위 하나가 눈에 띄었다. 누가 갖다 놓은 것이 아니라 산 자체에 박혀 있는 바위였는데, 사람이 정좌를 하고 앉으면 딱 알맞은 모양으로 닳아 있었다.
악불군은 이상하게 그곳에 한번 앉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용서하십시오. 잠깐만 앉아보겠습니다.”
아무도 없는 돌을 향해 인사한 악불군은 그 자리에 정좌를 하고 앉았다.
그리고 그가 눈을 감는 순간, 동굴 안으로 모이던 기들이 갑자기 출렁이기 시작했다.
“여기가 산의 자연기가 충돌하는 자리였구나!”
악불군은 너무나도 시원한 느낌에 자신도 모르게 운기조식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천불전에서 보았던 천불상들의 모습이 그의 뇌리에 떠올랐다.
내공이란 자연이 머금고 있는 기를 단전호흡을 통해 받아들인 후 운기조식을 통해 몸에 축적한 것을 말한다.
정종 심법으로 칭하는 소림사나 무당파 같은 정파의 운기조식법은 정순한 기를 축적하는 데는 좋았지만, 축적의 속도가 느려 마구잡이로 축적하는 마공보다 효과가 느린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같은 내공 수위라면 더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당연하게도 자연기를 많이 모인 곳에서 운기조식을 하면 내공의 증가 속도는 빨랐다.
많은 고수들이 심산유곡에 들어가 수련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자연기가 많은 곳에서 운기조식을 한다 해도 그 기를 느끼지 못한다면 없는 곳에서 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 악불군은 숭산의 기를 느끼고 있었다.
* * *
대화를 나누던 광천 대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것은 악불군이 운기조식을 하고 일각쯤 지났을 때였다.
“무, 무슨 일이 있나요?”
“악 시주에게 나쁜 일은 아닐 게다.”
뭔가를 느낀 광천 대사는 초옥 뒤로 걸음을 옮겼다.
“여긴 어딘가요?”
작은 동굴을 발견한 담수련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 숭산의 자연기가 폭풍처럼 안으로 밀려 들어가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에는 그저 조용한 동굴일 뿐이었다.
“달마 조사님께서 칠 년 면벽을 했다는 달마동이 바로 이곳이다.”
“전설이라는 소문과는 달리 진짜 달마동이 있었군요?”
광천 대사는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반장을 하며 불호를 외었다.
“허허허~ 아미타불! 선재로구나. 수천 명의 제자들이 소림을 거쳐 갔건만 조사님의 심득을 얻은 것은 본 사와 전혀 연관이 없는 아이라니, 부처님의 뜻이 정말 오묘하구나.”
하지만 그 역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는 악불군이 그 나이에 자연기를 느낀 것에 놀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달마 대사는 흡수하기 위해서는 해탈하거나 등선할 정도의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소림의 최고승들에게만 달마동에서 수련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가 은거하듯 이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있는 것도 달마동에서 자연기를 흡수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동안 상당히 진전도 있었기에 악불군이 자신을 발견했을 때 그렇게 놀란 것이다.
“그럼 지금 악 방주님께서 달마동 안에 들어가신 건가요?”
“소림사의 금지에 들어가 운기조식까지 하고 있으니 큰 벌을 받을지도 모르겠구나.”
담수련은 깜짝 놀란 듯 반문했다.
“그건 어르신께서 기를 따라가 보라고 하셨기 때문이 아닌가요?”
“달마동 앞까지만 갈 줄 알았지, 안에까지 들어가서 운기조식을 하라는 말은 아니었다.”
“그럼 어떻게 하지요?”
“보통 선연으로 이어진 사람을 벌을 주기는 힘들지. 아무래도 소림사하고 친하게 지내는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광천대사의 말에 담수련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녀가 잠룡세가의 천금이라는 것을 알면서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은, 그가 그녀를 용서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어르신,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할 필요 없다. 대신 시주들이 할 일이 더 막중해 졌음이야.”
말을 하는 광천대사의 눈은 계속 달마동을 향해 있었다.
* * *
운기조식을 하는 악불군은 신기한 상황을 겪고 있었다.
잠시 앉아, 이런 구도(求道)적인 폐관은 어떤 것인지 정도만 경험하려고 했던 그로서는 의도치 않았던 현상이었다.
운기조식을 스스로 멈출 수 없을 정도로 빠질 경우, 보통은 무아지경에 빠진다. 그런데 지금 악불군은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다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악불군이 느끼기에 너무나 신기하고 또 신묘한 상황이었다.
‘그동안 내가 무엇을 빠뜨렸던 것인지, 이제 어느 정도 다 알겠구나.’
그동안 악불군은 천륭검보를 수련할 때 언제나 직접 몸을 움직이곤 했다. 그런데 지금 그는 몸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생각만으로 모든 자세를 수련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 흐름은 예전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부드러웠다.
‘천불상이 그린 것이 이곳을 흐르는 기와 같아. 둘은 같은 것이었어. 설마 이게 같이 안배된 것이었을까? 그리고 어째서 천륭검보와 연결이 되는 걸까?’
생각하는 동안 악불군의 몸은 삼 자 정도 공중으로 떠오르고 있었지만 그는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가 느꼈던 자연기가 회오리를 치며 공중으로 떠오른 악불군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악불군의 검미가 좁아졌다. 담무룡의 시술 이후 고통을 거의 느끼지 못했던 그가 고통을 느낀 것이다.
단전에서 시작된 고통은 혈맥을 타고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통이 백회혈에 다다르자 금빛 강기가 그의 머리를 감쌌다.
그리고 곧 그의 머리 위로 다섯 개의 고리가 형성되는가 싶더니 정수리 위로 세 개의 꽃봉오리가 같이 피어났다.
삼 갑자의 내공을 넘어야 만들 수 있다는 삼화취정(三華聚頂) 오기조원(五氣朝元)의 현상이었다.
물론 그가 전력을 다하면 사 갑자 이상의 내공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단전에 내공이 축적되지 않아 겉으로 느끼기에는 삼십 년 정도의 내공만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었다.
그런데 단전에 순식간에 삼 갑자 이상의 내공이 축적된 것이었다.
그렇게 천륭검보의 자세를 서른여섯 번이나 반복한 후에야 그의 몸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그리고 곧 그의 머리에 형성된 고리와 꽃봉오리가 기화하더니 그의 콧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달마 조사님이 고금 십대고수에 들어가 있는 이유를 알겠구나. 잠시 운기조식을 한 것만으로도 이렇게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는데, 칠 년을 면벽하셨으니 완전히 신인이 되셨을 것 같구나.’
생각하던 그는 깜짝 놀라 급히 밖으로 나갔다. 광천 대사를 믿기는 하지만 그래도 담수련을 너무 오래 혼자 둔 것이 걱정돼서였다.
밖으로 나온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길어야 일, 이각 운기조식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밖이 어두워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야?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렀나?’
악불군은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적설이 멀리에서 천천히 돌고 있는 모습을 보자 안심한 듯 표정을 풀었다.
담수련에게 문제가 생겼다면 적설이 저렇게 한가로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었다.
급히 초옥 앞으로 간 악불군의 얼굴에 미소가 나타났다. 광천 대사와 담수련이 뭐가 재미있는지 만면에 웃음을 띠고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제야 나오느냐?”
악불군이 다가오자 고개를 돌린 광천 대사의 눈에 이채가 나타났다. 아까 보았을 때와 사뭇 달라진 악불군의 모습에 대오각성이 있었음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감히 달마동에 들어가 조사님께 큰 결례를 했습니다.”
“소실봉에 숭산의 기가 모이는 날은 몇 년에 한 번 생긴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 기를 느끼지도 못하지. 그런데 네가 그것을 느꼈고 안에서 깨달음이 있었다면 그거야 부처님께서 네게 내린 기연이 아니겠느냐? 네게 자격이 없었다면 그런 기연을 내려주지 않으셨을 게다.”
악불군은 허리를 굽혀 최대의 공경을 보이며 말했다.
“어르신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저로서는 어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네가 진정으로 감사를 느낀다면, 무엇을 할지는 이 아이하고 다 얘기했으니 내려가면서 듣거라.”
광천대사는 더 이상 얘기할 것이 없다는 듯 축객령을 내렸다.
“……그럼 다음에 다시 가르침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악불군과 담수련은 이번 인연은 여기까지라는 것을 느끼고는 공손히 인사를 했다.
악불군과 담수련이 내려가는 뒷모습을 보던 광천대사는 미소를 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생연분이로군. 한 명은 업보를 막아 주고, 한 명은 임무를 끌어 주고…… 장문인이 천제무황을 설득하려면 꽤 힘들겠군.”
* * *
“아가씨, 피곤하셨지요?”
담수련을 안은 악불군은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걱정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난 괜찮아? 그런데 소군은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원래대로라면 이미 물었어야 할 질문을 지금에야 묻자 악불군은 의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뭔가 큰 것을 얻은 것 같긴 한데, 그게 무엇인지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좀 연구해 본 후에 확실해지면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소군.”
“예.”
“…….”
“왜 말을 하지 않으십니까?”
담수련은 광천 대사와 화기애애하게 대화하긴 했지만 계속 마음이 무거웠다.
광천 대사가 마치 그녀의 고민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 결정을 잘하라는 말을 몇 번이나 강조했기 때문이었다.
“아, 아니야.”
“아가씨, 무슨 일인지 말씀해 보십시오.”
“광천 대사님께서 내게 소군을 잘 보필하라고 하셨어.”
“보필이요? 대사님께서 저희의 관계를 잘 모르셔서 한 말씀이실 것입니다.”
“내가 역용을 풀고 누군지도 말씀드렸어. 우리 관계에 대해서 잘 아셔.”
담수련은 다시 역용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런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까?”
“내가 판단을 잘못하면 소군이 힘들어질 거라고…….”
“그런 걱정은 마십시오. 아가씨께서 어떤 결정을 하건, 전 아가씨께서 옆에만 계시면 절대 힘들지 않습니다.”
“왜?”
“예?”
“왜 내가 소군 옆에만 있으면 절대 힘들지 않아?”
“전에 이미 말씀드렸는데요?”
“다시 말해 줘.”
악불군의 그녀의 눈에서 슬픔을 느끼자 이상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다시 입을 열었다.
“아가씨는 제게 운명입니다. 아가씨를 본 후 저는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지금의 저는 모두 아가씨께서 제 옆에 있기에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게 다야……?”
뭔가 원하는 듯한 눈으로 그녀는 조그맣게 반문했다.
“……그, 그게…….”
악불군은 뭔가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며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지만 더 이상 말을 하지는 못했다.
악불군의 품에 안겨 있는 담수련은 악불군의 심장이 격하게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돼.”
작게 말한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악불군의 목을 두 손으로 감았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고민을 말하지 못했다.
* * *
“장문 사형, 악 시주께서 내려오셨다고 합니다.”
공효 개사의 보고에 염주를 굴리던 공허 대사는 눈을 뜨며 물었다.
“꽤 늦게 내려왔구나. 어디에 갔다 왔는지는 아느냐?”
“감시를 붙이지 않아서 거기까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말을 멈추느냐?”
“빈청을 지키던 제자들 말이 악 시주께서 아까와는 뭔가 많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달라졌다고? 뭐가 말이냐?”
“그게 뭐가 달라졌는지 설명하기가 좀 어렵다고 합니다.”
“달라진 것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뭐가 달라졌는지는 모르겠다는 말이구나.”
“예.”
“아미타불! 진짜로 부처님과의 인연을 찾은 모양이구나.”
공허 대사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