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364화 (364/472)

<천검지애 364화>

364화. 대오(2)

악불군은 빈청에 도착한 후, 달마동에서와 같은 운기조식이 가능한지를 알아보기 위해 곧장 수련에 들어갔다.

그리고 달마동이 아닌 곳에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자 날이 새도록 수련을 했다.

예전부터 꾸준히 행해 오던 몸을 직접 움직이는 것보다 효과도 더 좋았다.

[주군, 공효 대사님께서 묘시 중반에 아침 식사를 같이했으면 좋겠다고 연락하셨습니다.]

사효조의 전음을 받은 악불군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이미 해가 뜨고 있었다.

[담 군사님께도 연락했습니까?]

[예, 곧 준비하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럼 시간에 맞춰 가겠다고 해 주세요.]

* * *

“아가씨, 어제 방주님과 어디 갔다 오셨어요?”

아침 식사를 하자는 전언을 들은 후 준비하던 담수련에게 연화가 슬쩍 물었다.

“그냥, 소림사 구경을 했지. 왜?”

“두 분만 나가셨다가 늦게 오시니까 그냥 궁금해서요.”

순간, 담수련의 눈에 이채가 나타났다.

“사화 너희들은 내가 악 방주와 나가면 궁금해하지 않잖아?”

“걱정은 안 하지만 궁금해하긴 하지요.”

“사실은 두 분이 소림사 경내에서 보이지 않는다면서, 이상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연화가 그러는 걸 거예요.”

듣고 있던 추국이 슬쩍 부언했다.

“소군과 내가 소림사 경내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누가 그랬어?”

담수련의 말에 추국과 연화는 서로를 한 번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누가 말했는데……. 추국아, 누가 그랬는지 알아?”

“아가씨께서 나가고…… 아! 맞아. 잠봉단이랑 수다 떨 때, 누군가 말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누구냐고?”

“확실히 기억은 안 나는데 잠봉단원 중 누군가 말한 것은 분명해요.”

“잠봉단원 전체가 모이지는 않았을 거고……. 내가 아침 식사하고 돌아올 때까지 같이 대화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모두 적어놔.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말고.”

“예.”

그때 문이 열리며 매향이 고개를 안으로 넣으며 말했다.

“아가씨, 악 방주님께서 나와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았어. 너희는 나오지 말고, 어제 있었던 일들을 모두 소상히 적어놔.”

담수련은 임무를 하나 더 주고는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녀에게 미소를 띠게 만드는 사람, 그것은 악불군이었다.

“추국아, 내가 뭘 잘못했니?”

담수련이 나가자 연화는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냥 지나가는 말로 물은 것일 뿐, 특별한 의도는 없었는데 담수련이 이상할 정도로 정색을 했기 때문이었다.

“글쎄, 나도 네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는데? 다만 요즘 아가씨께서 기분이 안 좋으신 거 같아.”

연화는 여전히 불안한 듯 고개를 갸웃하더니 급히 붓을 들었다.

“어제 일까지 다 적으라고 하시니까 우선 그것부터 적자.”

* * *

소림사의 식사는 매우 단출했다. 조그만 목기에 담긴 채소 반찬 서너 가지와 밥이 전부였다.

“소림사에 온 분들이 가지는 가장 큰 불만이 식사지요.”

악불군 옆에 앉은 공선 대사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며 말했다.

“제겐 진수성찬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전 정성이 깃든 음식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때 공허 대사가 안으로 들어섰다.

“아미타불!”

모두 일어서며 반장을 하며 불호를 외자, 그는 같이 반장을 하더니 자리에 앉았다.

“아미타불! 부처님께서 이런 만남과 식사를 주셨으니 우선 먹고 얘기하십니다.”

공허 대사의 말에 모두는 다시 반장을 하고는 젓가락을 들었다.

“악 시주와 담 시주도 식사부터 합시다.”

“예.”

소림사의 식사 예절은 매우 엄숙했다. 특히 대웅전주인 공혜법승은 음식을 입에 넣을 때마다 불호를 욀 정도였다.

악불군과 담수련 역시 최대한 조심스럽게 먹었다.

식사가 다 끝나고 뜨거운 물까지 한 잔 마시고 나니, 곧 수행승들이 안으로 들어와 그릇을 가지고 나가더니 문까지 꼭 닫았다.

악불군은 수십 명의 무승들이 청 밖을 세 겹으로 포위하다시피 한 채 경계를 서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미타불! 악 시주.”

“예, 장문 어르신.”

“식사가 너무 부족하지 않으셨소?”

“원래 적게 먹는 편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공허 대사는 천천히 다시 물었다.

“그래, 부처님과 인연은 맺으셨소?”

“제가 불가의 인연에 대해 아는 것이 없습니다. 하여 장문 어르신께서 생각하시는 인연을 맺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 관점으로 말하라 하시면 인연을 맺은 듯싶습니다.”

“그 인연이 선연이라고 생각하시오, 아니면 악연이라고 생각하시오?”

“인연이 맞다면 분명 선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그 인연에서 배운 것이 무엇이오?”

“부처님께서 제게 금강역사가 되어 마귀로부터 세상을 보호하라고 하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대답은 공허 대사는 물론 같이 식사한 오대 전주들 모두 예상치 못한 답이었는지, 다들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으시오?”

“부처님께서 제가 자비를 베푸는 성인이 되기를 원하셨다면 당연히 전 학사가 되거나 스님이 되어야 인연이 맺어졌다고 할 것입니다. 하나 전 자비가 아닌, 혈교와 신비 조직을 제거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그런 내게 부처님의 인연이 이어졌으니 당연히 세상의 악을 제거하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아미타불! 악 시주가 바라는 것이 본 사와의 혈맹지약과 적들을 대적할 후기지수들의 차출이시오?”

“희망일 뿐입니다. 장문 어르신께서 거절하신다 해도 전 이해합니다.”

고개를 끄덕인 공허 대사는 장경각주를 보며 불렀다.

“공선 사제.”

“예.”

“소림은 천호방과 혈맹지약을 맺을 것이다. 또한 그의 요청이 있을시 십팔나한들을 보내 주도록 해라.”

“아미타불! 방장 스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이미 결정이 난 듯 오대 전주 모두는 반장을 하며 외쳤다.

“악 시주.”

“예!”

“더 원하는 것이 있으시오?”

“아닙니다. 지금 해 주신 것만으로도 전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입니다. 저를 믿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빈승이 믿은 것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믿으셨으니 우리로서는 따를 수밖에 없지 않겠소?”

“소림에서 얻은 인연을 절대 부끄러운 일에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연히 그래야 할게요. 그럼 다음 행선지는 어디로 정하셨소?”

“섬서로 가 화산파에 들른 후, 호북의 무당에 갈 생각입니다.”

“언제 떠나실 생각이시오?”

“당장 떠날 생각입니다.”

* * *

원형의 탁자에 세 명의 여인이 앉아 있었다.

의자가 하나 비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아직 오지 않은 사람이 있는 듯했다.

백발의 여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하얀 백발에 입고 있는 옷으로 미루어 최소한 육십은 넘어 보였지만, 얼굴만은 이립을 갓 넘은 정도로 보이는 상당히 특이한 느낌을 주는 여인이었다.

“내게 밀지 하나 보내는 것도 제대로 못 해 잊어버리다니, 너무 조심성이 없어진 것 아니냐?”

백발 여인의 말에 한 여인이 아미를 꿈틀했다. 놀랍게도 그녀는 절대 고수급의 각주들을 가벼운 손짓 하나로 날려 버리던 천후였다.

“태후께서도 계속 실패하시는 것 같던데 제게 그렇게 말하시다니 좀 서운하네요.”

“어떤 놈이 주원장에게 마황후가 위험하다는 고변을 넣는 바람에 잠시 계획이 지체되고 있지만, 머지않아 황궁은 내 손아귀에 들어온다. 하지만 무림은 제대로 해 놓은 것이 전혀 없지 않느냐?”

“태후께서 저를 질책할 지위가 아니신데 마치 수하 다루듯이 하시네요? 무림은 제가 다 알아서 할 것이니 태후께서는 황궁이나 확실하게 하시지요.”

“네가 천후가 됐다고 눈에 뵈는 것이 없나 보구나!”

태후는 노기에 찬 눈으로 천후를 보며 소리쳤다.

“두 분께서는 왜 이러십니까? 곧 궁주님께서 들어오실 텐데, 이런 모습을 보면 얼마나 실망하시겠습니까?”

말한 또 한 명의 여인은 보타검각의 성후였다.

“성후, 너도 궁주님께서 우리를 소집한 이유를 모르느냐?”

태후의 말에 성후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저도 갑자기 소집령을 받고 들어온 것입니다. 알 리가 없지요.”

“넌 궁주님 곁에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그런 것도 모르고 뭐하는 거냐?”

태후의 힐책에 성후는 모른 척, 답 없이 고개를 돌렸다.

태후와 천후 그리고 성후는 지위는 같았지만 나이는 태후가 가장 많은 듯했다.

그때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들렸다.

세 여인은 급히 일어섰다. 궁주가 나타날 때 나오는 음악이었다.

문이 열리고 한 여인이 나타났다.

“삼 후, 궁주님께 인사드립니다.”

여인은 그들의 인사에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는 먼저 자리에 앉았다.

“앉으세요.”

“예~”

모두가 앉자 궁주란 여인이 물었다.

“삼 후께서는 제가 갑자기 소집한 이유를 아시나요?”

“…….”

삼 후는 그녀의 성격을 아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모르시나 보네요?”

“용서하십시오.”

“됐어요. 삼 후께서 저보다 더 잘 아시겠지만, 측천무후의 유지를 받들어 측천무후궁이 세워진 지 어느덧 육백 년이 지났습니다.”

놀랍게도 신비 조직은 당나라의 여황제였던 측천무후를 따르던 조직이었다.

궁주란 여인은 삼 후를 주욱 훑더니 다시 말을 이어 갔다.

“그런데 본 궁의 역사 이래 이번처럼 무능한 경우는 처음이네요. 안 그런가요?”

“궁주님, 여인 천하를 만들기 위해 평생을 노력하셨고 실지로 천하의 보좌에까지 오르셨던 초대 측천무후께서도 결국 세상을 바꾸지 못하셨습니다. 그만큼 여인 천하를 이룩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태후의 말에 궁주는 그녀를 보며 피식! 웃었다.

“태후께서는 전대 궁주님보다 더 많은 시간을 저와 보내셨지요?”

“일 갑자 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래요. 제게 무공도 가르쳐 주시고, 궁주가 된 후에도 진심으로 제게 충성했어요. 더욱이 자신의 혈족마저 배신하고 본 궁을 위해 전력을 다하신 것은 저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공으로 죄를 상쇄하는 것은 본 궁에는 없다는 것도 아시지요?”

“본 태후, 맹세코 궁에 죄를 지은 적이 없습니다.”

“아직까지는요. 하지만 계획 안에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신다면, 그것이 죄가 되겠지요?”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천후께서는 말이 없으시네요?”

“면목이 없습니다.”

“그래요. 면목이 없겠지요. 대계의 최고의 방해자인 혈교를 아직도 제대로 파악을 못하고 있어요. 그게 말이 되나요?”

“혈교는 본 궁이 멸문시킨 천년마교의 잔당입니다. 그들의 전력이 본 궁에 조금도 밀리지 않습니다.”

“초대 측천무후께서 천년마교의 제자였다는 것은 아시지요? 그럼에도 측천무후께서는 천년마교를 멸문시키셨어요. 그런데 그 잔당을 제거하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 거지요?”

“…….”

천후가 답을 못하자, 궁주는 이번에는 성후를 보며 물었다.

“성후께서는 본 궁의 재정이 지금 얼마나 어려워졌는지 아세요?”

“죄송합니다. 뜻하지 않은 방해자가 나타나는 바람에…….”

“악불군이 본 궁의 계획을 망쳐 놓은 것은 이미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천호방은 보타검각과 같은 지역에 있어요. 그런데도 성후는 그가 무슨 짓을 벌이려고 하는지 조금도 눈치를 못 챘어요. 게을러지신 건가요?”

“그것은 절대 아닙니다.”

“검후와 무후(巫后), 그 아이들이 그 나이에 후의 지위까지 받은 것은 다음 대 본 궁을 이끌 재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후께 교육을 맡긴 것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둘의 사이가 안 좋다는 보고까지 들어오더군요?”

삼 후의 표정이 굳어졌다. 오늘의 소집은 그녀들을 질책하기 위한 자리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근래 이상할 정도로 지시를 많이 하시더니, 이제 친전하실 생각이신가? 무엇이 변하게 만든 거지?’

태후는 궁주를 보며 의아한 듯 중얼거렸다.

궁주는 무공광으로 그동안 측천무후궁에서 모아 놓은 수많은 무공들을 익히느라 궁의 운영에 상관한 적이 거의 없었다. 하나, 일 년 전부터 갑자기 궁의 운영에 끼어들며 지시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변화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삼 후는 의아할 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