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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367화 (367/472)

<천검지애 367화>

367화. 추적(1)

가마가 안가에 도착하자 소혈선이 이끄는 섬전천후단이 주위를 감쌌다.

“그 여인이 담수련이냐?”

안에서 한 여인이 담수련을 안고 나오자 소혈선이 물었다.

“예, 담수련입니다.”

“천하절색이라는 소문에는 조금 미치지 못하는 거 같지 않느냐?”

“저도 이상해서 만져 보니, 역용한 것 같습니다.”

“알았다. 각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안으로 들어가자.”

* * *

마혈이 풀리고 정신이 든 담수련이 눈을 뜨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이 드느냐?”

소리 난 쪽을 쳐다본 담수련은 흠칫 놀랐다.

삼십여 명의 여인들이 둘러싼 가운데 괴이한 가면을 쓴 여인이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제게 서찰을 보낸 사람인가요?”

“그렇다.”

“아버님은 어디 계시지요?”

“담 가주는 편히 계시다.”

“직접 보게 해 주세요.”

“네가 내 말을 다 듣고 동의한다면 그땐 담 가주를 볼 수 있다.”

“제가 약속을 지켰으니 당신들도 약속을 지켜야 하지 않나요?”

“네가 오지 않으면 담 가주를 죽인다고 했지, 너와 만나게 해 준다고는 쓰지 않았다.”

“……당신이 신비 조직의 궁주인가요?”

“나 정도를 어떻게 궁주님과 비교를 하겠느냐? 난 천후궁의 소속의 운우각주다.”

“당신들의 궁의 이름이 천후궁인가요?”

“본 궁은 측천무후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조직된 측천무후궁의 산하 세 궁 중 하나다.”

담수련의 눈에 이채가 나타났다. 이들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는 점보다 이들의 뿌리가 측천무후라는 것에 더 놀란 것이다.

“그렇다면 신비 조직이 측천무후 때부터 이어져 왔다는 것인가요?”

“그렇다. 본 궁이 세워진 것은 육백 년이 넘었다.”

“도대체 측천무후의 유지가 무엇이기에 천하를 상대로 이런 도발하는 거지요?”

“측천무후께서는 세상이 남자 위주로 짜여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셨다.”

담수련의 얼굴이 살짝 변했다. 이미 생포했던 차성령으로부터 어느 정도는 짐작한 바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계획을 육백 년이 넘게 이어 왔다는 점에서 거의 종교화되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천하는 남자와 여자가 어우러져 사는 것입니다. 어찌 그것을 남자 위주로 짜여 있다고 하시는 건가요?”

“담수련, 너는 대단히 똑똑하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좀 실망이구나! 역사를 보아라. 나라를 다스리는 황제는 거의 다 남자다. 관리도 남자고, 집안의 가장도 남자다.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느냐?”

“남자를 움직이는 사람이 여자 아닌가요? 좋은 황제들을 보면 언제나 그 옆에 좋은 황후가 있었습니다. 당신들은 세상을 너무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네요.”

“그게 지금 네가 세뇌를 당한 이유다.”

“제가 세뇌를 당할 정도로 미련하지는 않아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믿는 당신이야말로 세뇌를 당한 것 같네요.”

“네가 남자였다면 이런 시간을 낭비하는 일 따위는 벌이지 않았을 게다.”

담수련은 운우각주의 몸에서 살기가 일어남을 느꼈다.

하지만 그런 것에 주눅이 들 그녀가 아니었다. 더구나 그녀는 악불군이 자신을 지켜 주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아버님을 핑계로 저를 이곳에 데려온 이유가 있겠지요? 그거나 말씀해 보세요.”

운우각주는 당돌하게 말한 담수련을 날카롭게 주시하더니 물었다.

“지금 네가 어떤 처지인지 모르는 모양이구나?”

“찾아오면 아버님을 만나게 해 준다는 말에 온 겁니다. 그런데 아버님은 보여 주지도 않고 제 처지만 얘기하다니, 결국 나를 잡기 위한 미끼였나요? 전 이미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고 믿고 있었어요. 당신이 아버님을 만나게 해 주지 않는다면 전 더 이상 당신의 말을 믿지 못합니다.”

“담무룡은 천후궁의 뇌옥에 갇혀 있다.”

운우각주는 회유를 포기한 듯, 담무룡의 위치를 직접 언급하기 시작했다.

“아버님께서 뇌옥에 갇혀 있다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담수련은 어이가 없다는 목소리로 반문했다. 그녀가 아는 담무룡은 치욕을 당하느니 죽음을 택할 사람이었다.

“담무룡은 지금 아주 처참한 상태로 뇌옥에 갇혀 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상황이지. 네가 본 궁의 말을 따른다면 담무룡은 좀 편해지겠지만, 거절한다면 더욱 비참한 상황에 빠지게 될 게다.”

운우각주는 회유가 아니라면 협박을 해서라도 담수련을 굴복시킬 생각이었지만,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당신들,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담수련! 너의 행동에 따라 담무룡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

“아버님께서는 치욕을 당하시느니 죽음을 택하실 분이다. 나는 그분의 딸로서 그런 모습을 하도록 놔둘 생각이 없다.”

그때 밖에서 섬전천후단원 한 명이 뛰어 들어왔다.

“각주님, 침입자가 있습니다.”

순간 운우각주의 눈이 담수련에게 향했다.

“네년의 짓이냐?”

“내가 방금 말하지 않았느냐. 너희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고!”

담수련이 이렇게 화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녀의 말에는 강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각주님, 미행은 불가능합니다. 저희들이 몇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소혈선이 의아한 듯 말했다.

“이미 적이 들어왔는데 가능하다 불가능하다를 따질 상황이더냐! 당장 저 계집의 마혈을 짚어라. 우선 피한다.”

지금은 적과 싸울 때가 아니었다. 그녀의 임무는 담수련을 회유하든지 아니면 천후궁으로 데려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예.”

대답한 소혈선이 옆에 있는 수하에게 눈짓했다.

컥!

순간 앉아 있던 운우각주가 벌떡 일어섰다.

담수련에게 다가가던 섬전천후단원이 단발마를 터뜨리며 그대로 고꾸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곧 담수련의 팔을 묶었던 끈이 스르르 풀렸다.

‘설마…… 아니야. 분명 악불군은 객잔에 있다고 했는데?’

운우각주는 무기를 꼭 잡았다. 만약 악불군이 나타났다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더구나 초은지는 실수하는 수하가 아니었다.

“악!”

“아악!”

포박이 풀린 담수련이 일어서자, 그녀를 제압하기 위해 몸을 날렸던 섬전천후단원 둘이 또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상당한 고수인 그녀들이 누구한테 당했는지도 모른 채 죽어 나가자, 모두는 운우각주를 둘러싸며 호위에 들어갔다.

[각주님, 저도 적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저희가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닌 것 같으니, 우선 피하십시오.]

소혈선의 전음에 운우각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녀도 지금 적이 어디서 섬전천후단원을 죽였는지 알아내지를 못하고 있었다.

적의 위치를 찾아내지 못한다는 것은 적의 무공이 그녀를 능가한다는 의미였다.

[악불군이다. 그놈이 아니면 이렇게 무공이 강한 놈은 천호방에 없다.]

운우각주는 조심에 조심을 했음에도 그가 이 안까지 나타났다는 것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밖의 상황도 그리 좋지는 않은 듯했다.

하나, 이대로 피해서 무사히 천후궁으로 돌아간다 해도 다음 일을 생각하면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각주님, 악불군이 맞다면 더욱 피하셔야 합니다.]

천미루주가 생포된 일로 가장 중요한 천무성궁의 간세까지 포기했다. 그런데 운우루주가 잡힌다면 천미루주와는 비교가 안 될 대사건이었다.

운우각주가 갈등하는 표정으로 어떻게 할지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또다시 섬전천후단원 네 명이 한꺼번에 쓰러졌다.

피를 대량으로 뿌리며 쓰러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누가 손을 쓰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운우각주는 급히 벽으로 가더니 뭔가를 건드렸다. 그러자 벽이 열리며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이 나타났다.

[각주님과 내가 안으로 들어가면 너희는 저놈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막아라!]

수하들에게 명을 내린 소혈선이 이미 들어간 운우각주를 따라 비밀통로로 사라지자 문이 스르륵 닫혀 버렸다.

그리고 둘이 사라지자, 마치 그들이 도망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스르륵 악불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가씨, 팔목은 괜찮으십니까?”

악불군이 나타나자 담수련은 안심이 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전혀 안 아파.”

담수련의 답을 들은 악불군은 자신을 향해 무기를 겨냥하고 있는 섬전천후단원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무기를 내려놓은 분은 살려 드리겠습니다.”

“섬전천후단은 죽을지언정 항복은 없다!”

대주중 한 명이 크게 소리치더니 악불군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러자 다른 섬전천후단원들이 그 뒤를 이어 공격을 시작했다.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살래살래 저은 악불군의 검이 뽑혔다. 그리고 달려드는 그들의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던 담수련의 눈이 동그래졌다.

예전의 악불군은 약간 이상한 자세를 취하고 움직임을 시작했다. 물론 그 후의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하나, 지금은 악불군이 적을 공격하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담수련의 눈에 보일 정도의 공격을 상당한 고수인 적들이 전혀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 초라고 할까, 이 초라고 할까…….

몇 초라고 초수를 붙이기도 어려울 정도로 물 흐르듯이 움직이며 단숨에 이십 명이 넘는 적을 모두 죽인 악불군은, 운루각주와 소혈선이 사라진 벽으로 다가가더니 장으로 그대로 쳤다.

쾅!

두두둑!

악불군의 장에 맞은 벽은 폭음 소리를 내며 그대로 부서져 내렸다.

“소군, 빨리 밖으로 나가자!”

그 모습을 본 담수련이 급히 소리쳤다. 벽을 부수면 건물 자체가 무너지도록 설계가 된 전각이란 것을 눈치챈 것이었다.

쉬익!

어느새 담수련을 안은 악불군은 바람처럼 전각을 빠져나왔다.

우두둑

타다다다당탕!

악불군이 나오기가 무섭게 전각이 그대로 폭삭 무너져 내렸다.

밖에 있던 여인들은 전각이 무너지자 즉시 사방으로 몸을 날려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곧장 알아챈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흑석영을 비롯한 세 명의 호법에게 상당히 많이 죽은 듯, 도망을 친 여인들은 서너 명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들도 사실은 일부러 죽이지 않은 것이었다.

[주군, 쫓을까요?]

[흑 호법은 남고 다른 분들은 추격하세요. 만약 그들의 근거지를 찾으면 절대 싸우지 마세요. 그리고 하루를 추격했는데 계속 도망만 치면 그냥 제거하고 돌아오십시오.]

[알겠습니다.]

[예!]

대답한 사효조와 대독관은 사라진 여인들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들이 사라지자 흑석영이 악불군 앞에 모습을 보였다.

“흑 호법, 저와 아가씨는 며칠간 어디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최 호법에게는 계속 내 대신 방주 행세를 좀 하게 하시고, 무슨 일이 생기면 흑 호법이 상황 판단을 해서 결정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홍유경은 어떻게 할까요?”

악불군은 담수련을 슬쩍 쳐다보았다.

사화와 더불어 그녀와 제일 친한 잠봉단원이 그녀였다.

잠시 침통한 표정으로 생각하던 담수련은 결심한 듯 말했다.

“죄에 상응하는 벌을 주지 않는다면 조직은 무너져요. 가면 그녀를 제압하고, 어떻게 간세가 되었는지 알아보세요. 그리고 알아내면…….”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그녀는 힘겹게 다시 입을 열었다.

“죽이세요.”

“알겠습니다.”

담수련은 매우 힘든 결정이었지만, 대답하는 흑석영은 당연하다는 듯 매우 간결하게 대답하고는 몸을 날렸다.

“아가씨, 마음이 많이 아프시지요?”

“다른 사람들은 가족에게도 배신당하던데, 그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무상 진인은 무림인들이 가장 믿는 사람들에게 죽는 일이 많이 벌어졌는데 모두 측천무후궁의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가 그 상황을 맞닥뜨린 셈이었다.

“아가씨의 결정은 옳은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 아파하지 마십시오.”

담수련은 자신을 애잔한 눈으로 보며 위로하는 악불군을 보자 미소를 지었다.

절대 그녀를 배신하지 않을 악불군을 보자 마음이 좀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비밀 통로로 사라졌는데 쫓을 수 있을까?”

“걱정 마십시오. 적설은 눈과 감응을 같이 사용합니다. 제가 저들의 기를 적설에게 알렸으니, 일 마장 안에서 나온다면 반드시 걸립니다.”

운우각주와 소혈선이 도망가도록 놔둔 것은 그들의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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