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검지애 370화>
370화. 모여드는 군웅들(2)
“각주님, 도화전의 모든 제자를 전부 뺄 수는 없습니다.”
도화전주는 운우각주의 총동원령에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 일은 도화전이 하는 일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잔말 말고 모두 동원해라.”
운우각주의 엄명에 도화전주는 잠시 갈등했지만, 결국 명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거역한다면 그녀의 성정상 자신을 죽이고라도 모두 끌고 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소 단주.”
“예.”
“섬전천후단은 몇 명이나 모을 수 있겠느냐?”
“주위에 있는 모두를 불렀으니 최소한 삼십 명은 모일 것입니다.”
“악불군을 호위하는 천호방도의 숫자가 대략 사십 명 정도다. 백 명이 그들을 상대하고 나머지가 악불군을 맡는다. 그때 우린 담수련을 납치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이백 명 이상이 움직여야 한다.”
“알고 있습니다. 외부 영주가 열 명이 넘으니 그들이 끌고 올 수하들도 백 명은 족히 될 겁니다. 그럼 거의 삼백 명가량 되니 계획을 실행하는 데는 문제없을 것입니다.”
“오늘 밤까지 모든 준비를 마치고 출발한다.”
운우각주는 이번까지 실패하면 끝이라는 생각에 사생결단의 자세를 보이고 있었다.
* * *
“크하하하! 천제무황 그놈의 코가 납작해졌겠구나?”
천무성궁의 장로가 간세로 밝혀졌다는 정보를 들은 혈해사황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소문이 퍼질까 봐 원체 쉬쉬하고 있어서, 아직은 아는 자들이 많지는 않다고 합니다.”
“자신의 권위에 흠이 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놈이니 소문이 퍼져 나가는 것을 열심히 막고 있겠지. 하지만 이미 우리가 알았지 않느냐? 소문이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게다.”
그러자 뇌혼광뇌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주군, 이게 웃을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무슨 의미냐?”
“천무성궁은 규율이 엄정하기로 유명합니다. 심지어 천제무황은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이라고 들었습니다.”
혈해사황은 젊을 적 천제무황의 모습이 생각난 듯 비소를 그리며 말했다.
“완벽이 아니라 아주 건방진 놈이었지. 그런데 그 말을 하는 이유가 뭐냐?”
“천무성궁의 장로가 간세라면, 본 계에도 간세가 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순간 혈해사계의 눈에 광망이 번쩍했다.
“그래……. 악불군이라는 놈이 공표한 것이 사실이라면, 혈교나 신비 조직의 간세들이 본 계에도 분명 있을 게다. 혈교에 대한 정보를 우리에게 보낸 놈은 아직도 잡지 못했느냐?”
“서찰이 본 계에서도 중지인 군사전 앞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전혀 종적을 잡을 수 없는 것으로 보아, 본 계 내에 있는 자가 놓고 간 것은 분명합니다.”
“뇌혼광뇌.”
“예.”
“화산이나 사천의 정파 놈들은 아직 움직임이 없지?”
“그놈들도 제 코가 석 자일 것입니다. 수십 년 동안 잃었던 고토를 다시 장악한 것이 겨우 몇 달밖에 안 된 터에 새외 연합 놈들이 찝쩍대고 있으니, 저희까지 상대할 여력은 없을 것입니다.”
동진하던 혈해사계는 공동산 앞에서 딱 멈췄다. 지금 공동파를 건드렸다가는 사천과 화산의 협공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들 역시 옥문관에서 계속 모습을 보이는 새외 연합 때문에 정파와 전쟁을 벌이는 것은 무리였다.
“그럼 이번 기회에 혈해사계를 청소 한번 해야겠다.”
“그게 무슨?”
“뇌혼광뇌, 집법전과 형당 그리고 감찰당까지 네게 지휘할 수 있는 전권을 주겠다.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수상한 놈들은 모조리 심문해서 간세를 모두 잡아내라. 확실하다 싶으면 고문도 허락하겠다.”
“존명!”
담수련이 무림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원로들의 의견을 따르다가는 영원히 적들을 잡을 수 없다는 판단하에 천하에 까발린 효과가 차츰 나타나고 있었다.
정파는 물론 간세들에 대해 별 신경도 안 쓰던 사파까지 자체적으로 간세들을 색출하는 작업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 * *
대룡현은 화산에 접해 있는 작은 현이었다.
거리상으로는 화산파로 가는 가장 가까운 길목에 위치해 있었다.
하나 험준한 화산을 타고 가야 하는 관계로 무림인들이나 사용할 뿐, 시간이 금이라는 상인들조차 사용할 생각을 못 했다.
[소군, 상황은 어때?]
담수련은 대룡현에 도착하자마자 전음을 보냈다.
[상당한 고수들이 많이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공격할 정도의 전력은 아닙니다. 아직 모두 모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담수련은 운우각주의 목적이 자신의 납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공격 방식은 단 몇 가지로 예측이 가능했다.
[소걸아 소협께서 잘하고 계시겠지?]
[아직 아무 연락도 없긴 하지만, 아가씨께서 말씀하신 대로 준비하고 있을 것입니다.]
소걸아가 준비가 안 됐다면 어떻게든 연락을 줬을 것이다. 연락이 없으니 준비가 되었을 것이라는 악불군의 판단은 그만큼 소걸아를 믿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대룡현에는 주루가 하나밖에 없었다. 대룡현을 지나는 여행자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서 오십쇼!”
악불군 일행이 도착하자 점소이는 반가운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오랜만에 도착한 대규모 손님에 신이 난 것이다.
주루 안에는 무림인으로 보이는 무리들이 옹기종기 않아 있었다.
“무엇을 드릴까요?”
악불군과 담수련이 자리에 앉자 점소이가 재빨리 다가와 물었다. 이들이 물주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악불군은 간단한 음식 몇 가지를 주문한 후 물었다.
“무림인밖에 안 보이는데 원래 이렇습니까?”
“하남에서 화산파로 가려면 여기를 거쳐 가는 길이 제일 빠릅니다. 그래서 이곳을 지나는 분들은 대부분 무림인들이시지요.”
“그렇군요. 그럼 계속 주문을 받으십시오.”
“예!”
점소이가 다른 자리로 옮겨 가자 악불군은 기를 끌어올렸다. 주위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살피기 위해서였다.
일 장, 이 장, 삼 장…….
계속 기를 넓혀 가던 악불군의 검미가 살짝 꿈틀했다. 반 마장 거리에 최소한 삼십 명의 기가 몰려 있는 것이 잡혔기 때문이었다.
“뭐가 잡혔어?”
“반 마장 거리에 삼십 명 정도의 무림인들이 모여 있습니다.”
“삼십 명? 그 정도로는 우리를 습격하기 어려울 텐데?”
“제가 아직 잡아내지 못한 자들이 있을 겁니다.”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담수련이 뭔가 생각난 듯 다시 물었다.
“그런데 정말 반 마장 바깥에 있는 사람들 기가 느껴져?”
상대가 어디에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삼 갑자 이상의 고수라면 반 마장 바깥에 숨은 무림인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 방향만 조사하는 것과 사방을 조사하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사방을 뒤질 경우에는 오십 장만 넘어가도 특정한 기를 감지하기가 불가능하다는 말이 있었다. 사방 오십 장이면 너무 많은 기가 섞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방 반 마장이면 얼마나 많은 기가 느껴질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넓이였다.
“그냥은 어렵고 집중을 하면 가능합니다.”
“그럼 평상시에는 어느 정도까지 가능해?”
“그게 궁금하십니까?”
“그냥 신기해서 알고 싶어.”
어려서부터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그녀였다. 악불군은 귀여운 듯 싱긋! 미소를 지며 말했다.
“그냥 아무 생각이 없을 때도 사방 십 장 정도는 모두 느낍니다. 좀 경계 태세에 돌입하며 삼십 장에서 오십 장 정도까지는 감지되는 것 같더군요.”
그러자 담수련은 자부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소군의 능력이 점점 대단해지니까 나까지 강해진 것 같아.”
“제가 강해지면 당연히 아가씨께서 강해지신 것입니다. 제 능력은 어느 무엇보다 아가씨를 위해 사용될 것이니까요.”
악불군의 말에 담수련은 기쁨과 걱정이 동시에 밀려왔다.
오로지 그녀만을 생각하는 악불군을 생각하면 너무 고맙고 기뻤지만, 그렇기에 측천무후궁에서 자신을 노린다는 생각을 하자 걱정이 든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잡혀 적들이 소군을 이용하게 만드는 상황이 오면 무조건 자살할 거야.’
담수련은 입술을 굳게 다물며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 * *
“각주님의 예상대로 악불군이 대룡현에 들어섰습니다.”
소혈선의 보고를 받은 운우각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궁장을 하고 있던 그녀가 경장을 하고 손에 검까지 든 것으로 보아 대단한 결심을 하고 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외부영주들은 진의 보호를 받으며 매복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는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좋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군. 모두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라.”
“예!”
대룡현에서 화산파로 가는 길은 좁고 휘어진 곳이 많았다. 거기다 양옆으로 나무들이 빽빽해 매복하기도 수월했다.
그녀는 악불군의 무공을 생각해 미혼진으로 매복을 하게 했다. 아무리 무공이 강한 악불군이라 해도 진까지 뚫고 매복을 감지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악불군은 대부분 선두에 서 있었다.
선두와 마차까지의 거리는 대략 일 장 정도였다.
하지만 좁은 길은 좌우를 호위하던 자들을 늘어설게 할 것이고, 그 거리는 더 늘어날 것이었다.
적당한 거리에 드는 순간, 외부영주가 이끄는 수하들이 선두와 후위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에 들어가면서 선두와 마차 사이를 끊는다.
물론 악불군이 마차를 향해 몸을 날릴 것이었다. 그때 섬전천후단이 암기와 독을 이용해 악불군을 공격하여 걸음을 늦추고, 운우각주는 마차로 돌진해 담수련을 납치한다.
그녀가 도망을 치는 동안 도화전주와 소혈선이 그의 앞을 막는다. 그녀에게 수하들의 죽음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실로 매우 치밀한 계획이었고 대단한 전력까지 갖추었으니 실패하래야 실패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악불군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 더욱이 그는 그녀의 계획을 이미 예상하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 * *
“소 도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 아니오?”
소걸아의 부탁을 받은 화산파에서는 운양자와 운성자를 삼십 명의 제자와 함께 보냈다.
소걸아와 약속한 장소에 도착한 그들은 상당히 놀랐다. 소림사와 개방에서 보낸 제자들이 이백 명 가까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매복하고 있는 지점이 운양자의 심기를 거스르게 했다.
이곳은 화산의 일부분이기에 그가 잘 아는 지형이었다. 대룡현을 질러가는 길은 이곳에서 무려 일 마장이나 떨어져 있었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최소한 이각은 걸릴 거리였다.
“아직, 그들이 공격할 지점을 특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더 가까이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의 무공이 대단히 뛰어납니다. 더 가까이 가면 오히려 그들에게 기습을 당할 수도 있고, 그들이 공격을 취소하고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이번 작전은 최대한 그들을 생포하는 것입니다. 싸우는 소리가 들리면 즉시 그 지점을 포위하고 압박할 겁니다.”
“그러다 천호방이 크게 피해를 보면 어쩝니까? 우리가 도우러 온 보람도 없지 않겠습니까?”
운양자의 말에 소걸아는 씨익! 미소를 지며 말했다.
“운양자 도장께서는 악 방주에 대해 모르시는군요?”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소문보다 두 배 이상 강하다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그 친구를 안다면 그런 걱정은 안 하실 겁니다.”
소걸아의 말에 운양자와 운성자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미 천하에 퍼지고 있는 소문이 무황과 맞먹는다고 할 정도인데, 그것보다 두 배 이상 강하다면 도대체 얼마나 강하다는 말인가……
둘은 소걸아가 허풍을 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미타불! 운양 도우, 소걸아 도우의 말을 믿어도 됩니다.”
그때 보고 있던 소림사의 승려가 끼어들었다.
“아, 아직 인사 못 드리셨지요? 이분은 소림사의 혜초 스님이십니다.”
운양자와 운상자는 혜초라는 말에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소림의 십팔나한승이 직접 왔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무량수불, 빈도가 혜초 도우를 몰라뵙고 인사가 늦었습니다.”
“아닙니다. 지금 상황이 매우 급박하니 이해합니다.”
십팔나한들과 화산의 도사들이 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있던 소걸아의 눈이 커졌다.
약속했던 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