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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372화 (372/472)

<천검지애 372화>

372화. 드러나는 실체(2)

“신법으로 달리는 거 맞아? 백설이 이렇게 빨리 달리는 것은 처음 봐.”

“대단한 무공을 지닌 여인입니다. 신법의 경지가 백설의 속력에 맞먹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계속 이 속도로 달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담수련을 안은 채 백설을 몰고 있는 악불군도 상당히 놀란 듯 말했다.

“소군, 이 여자 진짜 무공이 대단히 높은 것 같은데, 어느 정도 수준 같아?”

“신법은 내공 소모가 굉장히 심합니다. 그런데도 이 정도의 속도로 한 시진 가까이 달리는 걸 보면 최소한 이 갑자는 많이 상회하는 듯합니다. 제가 보기에 동정어옹 어르신도 당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좀 이상해서. 수하들을 보니까 목숨을 완전 도외시한 채 싸우더라고. 그런데 이 여자는 그런 무공을 지니고도 왜 도망을 택할까?”

처음에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해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공격은 필사의 각오로 준비한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망을 선택했단 사실이 의아했던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제가 두려워서 도망을 선택한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아?”

“평상시는 알기 어렵지만 어려운 상태에 빠지면 사람들은 눈에 자신의 감정이 나타납니다. 저 여인의 눈에서는 두려움보다는 아가씨를 납치하지 못한 안타까움이 더 강렬했습니다.”

“집념이 강한 여자라는 말이네?”

“그렇지요.”

잠시 생각하던 담수련은 실망스러운 듯 말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총단으로 돌아가지 않고 또 우리를 공격할 계획을 세울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러면 어떻게 하지요?”

담수련은 고심하는 표정으로 악불군의 가슴에 머리를 갖다댔다. 초조하던 마음이 좀 풀리는 듯했다.

“나 이렇게 하고 생각 좀 할게. 괜찮지?”

“예.”

악불군은 그녀의 머리를 손으로 살짝 감싸고는 백설의 고삐를 강하게 잡아당겼다.

* * *

“운우각주가 담수련의 납치에 실패했다고 합니다.”

묘묘선자의 말에 측천무후는 비소를 지으며 말했다.

“천후가 뭔가 될 것처럼 큰소리를 치더니, 애 좀 타겠구나.”

“삼후님들은 겪어 보지 않은 일이 거의 없다고 할 정도의 백전노장들입니다. 측천무후궁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러자 기다란 용두장을 든 노파가 끼어들었다.

“왜? 신고는 내가 천후와 척을 지려는 것 같아?”

노파는 측천무후궁의 호법인 능파신고였다.

“너무 밀어붙이거나 무시하시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가장 껄끄럽던 태후까지 내게 승복을 했다. 천후나 성후는 그냥 따라올 것이다.”

“태후님께서 전대 궁주님 때부터 본 궁의 이인자이셨습니다. 궁주님께 승복했다고 하지만 그분을 수하 취급을 하시면 안 됩니다.”

“신고는 잔소리가 너무 많다는 거 알아?”

“삼후님들을 소신 같은 수하들과 같이 취급하시면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궁주님 마음에 안 드시면 언제든지 죽여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삼후님들은 수하가 아니라는 것을 상기하십시오.”

측천무후는 듣기 귀찮다는 듯 나가라는 듯 손짓을 하고는 묘묘선자를 보며 물었다.

“악불군이 요즘 명성이 대단하다고?”

“명성 따위야 개나 소나 다 얻을 수 있는 것이니 크게 문제 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무공이 발전하는 속도가 실로 경이롭습니다.”

“천륭검보는 나도 익혔다. 어느 순간 깨달음을 얻으면 대단히 빠르게 강해진다.”

“소신은 그를 그냥 죽이는 것보다는 이용할 수 있을 때까지는 이용했으면 싶습니다.”

“네 말은 천후가 회유에 실패하더라도 죽이지 말라는 것이냐?”

“천후님께서 실패하시면 궁주님께서 직접 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나보고 가서 직접 상대하라는 말이냐?”

“거룩하신 궁주님께서 잠룡세가의 호위나 하던 천한 남자 놈을 직접 상대하신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능파신고가 또 끼어들자 측천무후는 흘낏 보며 말했다.

“나가라는데 아직도 안 나갔어?”

그녀의 무공상 능파신고가 안 나간 것을 모를 리 없었다. 한마디로 입 다물고 있으라는 의미였다.

“정보를 분석한 결과 악불군은 담수련이 조종합니다.”

“천후도 그렇게 말하더구나.”

“담수련은 담무룡이 조종할 수 있습니다.”

“지금 천후가 벌인 계획이 그것 아니더냐?”

“천후님의 계획은 담무룡을 이용해 담수련을 협박하여 따르게 하는 것입니다. 억지로 따르는 경우에는 언제나 문제가 따릅니다.”

“그래서 너는 다른 방법이라도 있다는 거냐?”

“담무룡이 우리를 따르게 하면 됩니다.”

“천후의 보고에 따르면 담무룡의 자존심이 원체 강해서 회유나 협박, 심지어 고문도 통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그런 자들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우리 편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자들은 바로 그게 약점이기도 하지요.”

“말해 봐라.”

“우선 담무룡을 총궁으로 불러들이십시오. 이후…….”

묘묘선자의 계획을 듣던 측천무후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고 있었다.

“일리 있구나. 능파신고.”

“예.”

“천후궁에 연락해서 담무룡을 총궁으로 보내라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어떤 계획인지는 모르지만, 정말로 담무룡이 이들을 스스로 돕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담수련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악불군 역시 크게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 * *

“이곳에 있다고?”

“적설이 멈춘 곳이 바로 저곳의 위입니다.”

드디어 적설이 멈춘 곳에 도착한 담수련은 의아한 듯 물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운현이라는 곳으로, 성도인 무한과 더불어 호북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한 곳이었다.

무당파가 있는 무당산과도 겨우 하루 거리에 있으며 학사들을 유난히 많이 배출하여 학도(學都)라는 별칭까지 가지고 있었다.

적설이 멈췄다고 악불군이 가리킨 곳은 운현의 중심가였다. 눈에 보이는 거대 장원만 십여 개, 작은 장원과 양민들이 사는 집까지 합치면 이백 채는 넘어 보였다.

“예전 고 장로님께서 도망을 다닐 때, 쫓아는 오지만 정확하게 자신을 찾지는 못했다는 말이 이래서였나 보네?”

“예전에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다르지요.”

악불군은 적혈이 유유히 떠 있는 곳과 그 밑의 집들을 번갈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각쯤 지났을까…….

“어느 집인지 찾았습니다.”

악불군의 모습을 보던 담수련은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정말 대화한 거야?”

“그냥 교감만 했습니다.”

“교감만 했는데 어떻게 집을 특정해?”

“적설이 그 집을 향해 일을 좀 봤습니다. 그리고 제가 떨어진 곳을 찾았고요.”

“일을 봐? 무슨 일?”

뭔가 궁금한지 꼬치꼬치 묻는 담수련의 질문에 악불군은 답하기 곤란한지 잠시 머뭇대더니 돌려서 답했다.

“그냥 모두가 보는 일입니다.”

말을 마친 악불군은 말에서 내리더니 고삐를 잡고는 운현으로 걸음을 옮겼다.

‘모두가 보는 일이 뭐야?’

하지만 여전히 궁금한 담수련이었다.

* * *

적설이 특정해 준 곳에 도착한 악불군은 당장 쳐들어가지 못하고 가까운 곳에 있는 주루를 먼저 찾았다.

잠시 후, 거지 한 명이 안으로 들어오더니 악불군 앞에 놓인 패를 흘낏 보더니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그가 앉자 몇몇 손님은 먹던 음식까지 그냥 두고 나갔다. 점소이는 매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가 개방의 제자라는 것을 아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을 알고 싶으신지요?]

개방의 제자는 악불군에게 슬쩍 전음을 날렸다.

[현학장에 대해서 아시는 대로 말해 주십시오.]

현학장은 적설이 특정한 장원의 이름이었다.

[현학장은 한림원 원로학사이신 진소운 태학사님의 장원입니다. 대대로 수십 명의 학사를 배출하셨고…….]

[현재만 말해 주십시오.]

[아! 예, 지금은 진 태학사의 손자인 진규웅 학사님과 그 아들인 진소일 학사가 부인들과 함께 사십니다.]

[그런데 웬 사람들이 저렇게 드나드는 겁니까?]

악불군이 즉각 쳐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바로 수많은 양민들이 현학장을 드나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학장은 운현의 학사들의 모이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내로라하는 학사들과 운현의 여러 고관들이 드나들다 보니 그분들을 따르는 하인들과 하녀들 역시 많이 드나드는 것입니다.]

[무림인들은 드나들지 않습니까?]

[학문에 관심이 있는 무림인들도 꽤 드나듭니다.]

[여자들은 어떻습니까?]

[진규웅 학사의 아내 되시는 연 부인은 덕이 많고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시어 칭송이 자자하십니다. 여보살이라는 불릴 정도이지요. 그 아들인 진소일 학사의 아내는 혼인한 지 얼마 안 되어 저희들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알았습니다. 오늘 대화는 얼마간 비밀로 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개방의 제자는 대화가 끝나자 점소이를 보며 소리쳤다.

“야! 거지는 손님 아니냐? 왜 안 와?”

그는 점소이들의 표정이 두려움으로 사색이 되자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나도 돈 있다고! 치사해서 안 먹는다.”

악불군과 대화한 것을 숨기기 위한 연극을 자연스럽게 끝낸 그는 구시렁대며 주루를 빠져나갔다.

[뭐래?]

[현학장이…….]

악불군이 들은 얘기를 모두 전하자 담수련은 혀를 차며 말했다.

[대단하네. 이러니 못 찾지.]

[운우각주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적설이 이곳을 특정했다면 여기에 있는 것이 확실하잖아?]

[그렇지요.]

[그렇다면 가장 범인이 아닐 것 같은 사람이 범인이겠지. 진규웅 학사의 아내가 운우각주란 여인일 거야. 소군, 안에 무공을 지닌 자들이 있는지 살펴봐.]

[이미 살폈습니다. 무공을 지닌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 * *

현학장에서도 심처인 안채, 그곳에서도 가장 중지인 연 부인의 거처는 꽤 깊은 밤임에도 촛불이 일렁이고 있었다.

안에는 연 부인과 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진규웅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해시가 되자마자 침소에 들었습니다.]

[운우전에 연락해 모을 수 있는 모든 가용 인원을 모으라고 전해라.]

[각주님, 너무 많은 수하들을 잃으셨습니다. 천후님께서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렇게 된 이상, 담수련을 어떻게든 납치하는 수 외에는 활로는 없다. 기호지세(騎虎之勢)란 말의 뜻을 확실히 알 것 같구나.]

[이번에도 실패하시면 좌천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나도 또 실패한다면 살 생각을 포기했다. 내가 죽든 성공시키든 둘 중의 하나 외에는 더 이상의 다른 길이 없어.]

[그럼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지금 악불군은 화산으로 갔다. 다음 행선지는 무당이다. 화산에서 무당으로 오는 가장 빠른 길은 배를 타고 운현으로 오는 길이다.]

[육로를 택할 수도 있습니다.]

[악불군은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언제나 가장 빠른 길만을 택했다. 이번에도 분명 그럴 것이다.]

[운현에 온다 해도 무당까지는 대부분 큰 관도이고 큰 현들이 계속 이어집니다. 그들을 공격할 장소가 거의 없습니다.]

[이번 공격은 그들이 알고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들이 눈치챌 수 없도록 허를 찌를 생각이다. 기습은 운현에서 한다.]

듣고 있던 수하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급히 말했다.

[운현은 보는 눈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 보는 눈이 많은 시장 거리에서 기습을 할 생각이다.]

[많은 양민들이 죽을 것입니다.]

연 부인, 아니 운우각주는 입술을 잘끈 씹더니 말을 이어 갔다.

[큰일을 위해 작은 피해는 감수해야 한다. 그날 최소 오백 명 이상의 양민들을 시장 거리로 모이게 해라. 동전 오백 냥이면 가능할 게다. 그리고 악불군 일행이 들어서는 순간 그들로 하여금 마차 주위를 끼어들게 한 후 호위 무사들을 에워싸게 한다. 악불군이 죄 없는 양민들을 무차별 죽일 수 있을지 한번 두고 볼 것이다.]

그녀의 계획은 대단히 잔인한 것이었다.

양민들을 이용해 악불군의 호위 체계를 완전히 무력화시킬 생각인 것이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다가오는 양민들을 힘으로 밀어붙이거나 죽여야 하는데, 정파를 표방하는 천호방이 그런 짓을 운현 같은 큰 도시에서 행한다면 그 자체로 그의 명성에 큰 누가 될 것은 명약관화했다.

하지만 그녀의 계획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현령에게 포두 백 명을 준비하라고 해라. 만약 천호방의 호위들이 양민들을 때리거나 죽일 경우 포두들이 그들을 체포하게 해라.]

그녀의 계획은 잔혹했지만 누구라도 당한다면 당황할 계획임에는 틀림없었다.

하나 세상일은 안타깝게도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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