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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374화 (374/472)

<천검지애 374화>

374화. 시작(2)

운현은 한 가지 소문으로 들썩거리고 있었다.

현학장에서 벌어진 혈겁 때문이었다. 어느새 현학장 앞은 소문을 듣고 몰려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무슨 일이래?”

“하룻밤 사이에 수십 명이 죽었다는데?”

“가서 할 일들 하시오!”

포두 몇 명이 모인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지만 사람들은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아무도 몰랐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운현 포장 용호균은 현학장의 총관을 보며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시신이 모두 삼십이 구였다. 그런데 발견된 모습도 의아했다. 분명 하녀들이라고 했는데 모두 무기를 들고 있었고, 죽은 장소 역시 지붕이나 나무 위처럼 평소에 갈 리 없는 장소였다.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거기다 어제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다른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 방입니다.”

방 안으로 들어선 용호균은 섬뜩한 표정을 지으며 발을 들여 놓지 못했다.

방 안은 완전 쑥대밭이었다. 모든 가구는 가루가 될 정도로 부서져 있었고, 여보살이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현모양처로 알려진 연 부인은 손에 검을 든 채 절명해 있었다.

“연 부인께서 무공을 아십니까?”

“전혀 모르셨습니다. 작은 물건조차도 직접 들지 못하실 정도로 약하신 분이신데 어찌 무공을 알겠습니까?”

포졸들은 무공을 배우지 않은 양민들도 많았지만 포두들은 어느 정도 무공을 알고 있었다. 특히 포장이 되려면 최소한 이류 상위급이나 일류급의 무공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이건 나 따위가 조사할 사건이 아니야. 도대체 이런 고수가 왜 무림인도 아닌 학장을?’

중얼거리던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죽은 여인들이 모두 무기를 들고 있었고, 무공을 모른다던 연 부인 역시 무기를 들고 죽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죽은 여자들이 모두 무림인일지도 몰라…….’

용호균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고는, 우선 시신들만 수습하고 위에 보고할 생각을 했다.

“용 포장.”

그때 그의 옆에 중년 거지가 한 명 나타났다. 악불군에게 현학장에 대해 정보를 주었던 개방의 제자였다.

“그렇지 않아도 개방에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

용호균과 그는 상당히 친한 것 같았다.

강력한 무림 세가가 없는 지역의 개방 분타주들은 현의 현령은 물론 포장들과 친분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포두들만으로는 잡기 힘든, 무공이 높은 범죄자들을 잡을 때 개방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번 일에 관해 괜한 소문이 퍼지면 운현 전체가 큰 문제가 날 수 있어.”

“혹시 이번 사건에 대해 아는 것이 있으십니까?”

“이런 싸움은 나 같은 것은 끼지도 못해. 시시한 무림세력 간의 다툼이 아니라는 거지. 그냥 도적들이 들어와서 살인을 하고 물건을 훔쳐 간 것으로 마무리하게. 그게 현령이나 용 포장에게 좋을 거야.”

“하지만 보다시피 도적들의 짓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그렇게 하지 않고 사건을 키우면 운현 포두들은 물론 용 포장도 순식간에 죽을 수가 있어. 내가 용 포장과 친분이 있으니 이런 말이라도 해 주는 거지, 안 그랬다면 나도 모른 척했을 거야. 나도 죽기는 싫거든.”

그의 조언은 달리 들으면 협박 같기도 했다. 하지만 용호균은 그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진짜 위험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사건을 마무리할 테니, 혹시 현령님께서 물으시면 분타주님도 그렇게 말해 주십시오.”

“걱정 말게. 현령님도 무림인이 끼어 있다는 것을 알면 이해하실 걸세.”

죽은 여인들이 아무리 신비 조직의 인물이라고 해도,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정파인이 무공을 모르는 학사의 장원에서 이런 살육을 벌였다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해결사답게 삼십 명이 넘는 살인조차 덮어 버리는 개방이었다.

* * *

운성자와 운양자 덕인지, 소림사와 개방, 남궁세가까지 혈맹지약을 맺은 덕인지 화산에서의 만남은 너무 매끄럽게 끝났다.

“이제 무당하고 제갈세가만 남았나?”

사천 쪽만 빼면 가장 영향력 있는 문파는 두 개만 남은 상황이었다. 하북의 팽가를 비롯해 거대 문파는 아직 여럿 남아 있지만, 그들은 잠룡세가와는 부딪친 적이 없어서 원한 관계가 없었다.

“화산에서 너무 쉽게 일이 풀려서 솔직히 놀랐습니다.”

악불군의 말에 담수련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게, 바로 영향력이라는 거야. 남궁세가와 혈맹지약을 맺었을 때의 영향력과, 개방과 소림사까지 맺었을 때의 영향력은 천지차이가 된 거야. 이제 다른 문파들이 스스로 혈맹지약을 맺자고 천호방을 찾아오게 될 거야. 이제 소군의 영향력은 무림에서 무황들과 맞먹을 정도로 커졌다고 봐도 무방할 거야.”

“제갈세가까지 방문하면 다음의 행보는 어쩌실 생각입니까?”

“아직 정하지 못했어. 하지만 곧 정하게 될 거야. 측천무후궁에서 연락할 것이 분명하니까.”

“그럴까요?”

“그들이라면 운현에서 운우각주란 여인이 죽은 것이 소군의 짓이라는 것을 눈치챌 거야. 만약 아버님을 해쳤다면 우리를 죽이려 할 거고, 아버님이 살아 계시다면 회유하려고 하겠지. 그런데 운현의 사건에 대해 전혀 소문이 안 나네?”

“저도 솔직히 놀랐습니다. 생각 외로 고수가 많아 많이 죽일 수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조용할 줄은 몰랐습니다. 개방의 능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우리로서는 잘 덮어져서 좋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덮이는 사건이 생각보다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현학장은 상당히 명망이 높은 집안인데도 이러는데, 힘없는 양민들이 무림인에게 죽었을 때는 정말 소리 없이 덮일 거 아니야.”

“최소한 절강에서만은 그런 일이 없도록 제가 막을 것입니다.”

악불군도 마음이 편하지 않은 듯했다.

“참! 상산분타에 대한 보고가 왔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됐어?”

“그렇지 않아도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도창분타에서 조사를 나갔지만 이미 모두 사라졌다고 합니다. 도창분타주는 추적에도 일가견이 있는데 흔적을 전혀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다만 소걸아 말이 그들의 수법이 태양천의 수법과 비슷하다고 하더군요. 아가씨의 예상이 맞는 것 같습니다.”

담수련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맞아, 혈교와 측천무후궁 때문에 태양천을 잊고 있었네. 아버지께서 누군가를 두려워하는 것을 본 적이 없지만, 대공 그자만은 두려워했던 걸로 기억이 나. 그런 자가 원나라가 패퇴했다고 해서 그대로 물러날 리가 없어. 뭔가 지금 작업을 하고 있을 거야.”

“그들이 태홍장주를 살려서 본 방의 분타로 보낸 것은 확실히 우리를 겨냥한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나도 그게 좀 의아해. 태양천이 무림을 흔들 속셈이라면 우리보다는 무림맹의 지부들을 건드리는 것이 훨씬 효과가 있을 텐데, 왜 본 방을 먼저 건드렸을까?”

담수련이 아무리 똑똑하다 해도, 철무정이 질투 때문에 먼저 천호방을 목표로 삼은 것까지는 추론하여 알아낼 수 없었다.

* * *

“천주님께 연락이 왔습니다.”

태홍장을 멸문시키고 도우러 온 천호방도들까지 모조리 제거한 철무정은 승리감에 도취해 또 다른 희생물을 찾고 있었다.

“가지고 와라.”

철무정은 서찰을 읽더니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좋은 소식이라도 있으십니까?”

태양전사단 단주인 온금하는 그의 미소를 보자 물었다.

“천주님께서 드디어 중원으로 들어오신다. 무림 놈들은 원나라가 물러났다고 다 끝난 줄 알지만 이제 태양천의 진정한 무서움을 알게 될 게다.”

철무정은 대공이 태양천의 모든 세력을 이끌고 중원에 들어선다면 무림인들을 다시 예전처럼 복속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 듯했다.

“언제쯤 오실까요?”

“곧 오신다고 했다. 우린 그 전에 천주님께 드릴 선물을 준비하자?”

“선물이라면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지요?”

“무림 세력 하나를 없애는 것이 어떻겠느냐?”

“태홍장 일로 지금 무림맹과 천호방이 사방에서 추격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움직이는 것은 좀 위험합니다.”

“지금 그놈들은 우리가 숨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으슥한 곳을 뒤지고 있다. 우리는 상향 쪽으로 이동한다.”

“소천주님, 상향이면 제갈세가가 있는 곳입니다. 거긴 몸을 숨기기 너무 위험합니다.”

“숨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제갈세가를 없애러 가는 거다.”

온금하는 깜짝 놀라 급히 말했다.

“제갈세가를 치는 것은 무리입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온 단주, 어찌 그리 약한 말을 하는 게냐? 죽음이 두려운 게냐? 태양전사단에게 패배는 없다.”

“저희가 죽는 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소천주님은 다음 태양천을 이끌어 나가실 귀하신 몸입니다. 어찌 위험을 자초하시려고 하십니까? 천주님께서도 허락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온금하의 말에 철무정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천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큰 선물을 준비하고자 하는 내 충정을 어찌 막으려는 거냐?”

“전 소천주님을 보호하러 왔습니다. 위험한 계획은 아니되옵니다!”

“흠!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그럼 다른 선물을 생각해 보겠다.”

“감사합니다.”

금잔화는 철무정의 방에서 하는 말을 다 들을 수 있는 소리통을 만들어 놓고, 그들이 나누는 얘기를 모두 듣고 있었다.

‘지랄을 해요. 지랄을…….’

금잔화는 철무정의 말을 들으며, 그가 온금하가 대공이 오면 있었던 일을 다 보고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자신이 이렇게 대단한 용기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연극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철무정은 절대 천주의 재목이 아닌데 왜 대공이 그를 소천주로 삼았을까? 칭기즈 칸 태하의 자손이라서? 아니야, 아무리 혈통을 따진다 해도 그릇이 안 되는 자를 소천주에 올릴 분이 아니야. 그럼 왜?’

딱!

금잔화는 잠시 생각하더니 손가락을 부딪치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철무정이 경솔하고 상황 판단은 좀 느리지만 무재는 있지. 거기다 철룡세가의 전력은 그대로 남아 있으니 철무정이 소천주라면 그들을 사지로 보내기도 편할 거고……. 그리고 최소한 배신을 안 할 테니 그것도 괜찮을 거고. 훗! 역시 대공께서는 용인술 하나는 인정해 줄 만하다니까.’

금잔화는 철무정이 결국 허울뿐인 소천주라는 판단을 내렸다.

소리통에서 귀를 뗀 금잔화는 문 앞에 엎드려 있는 금령사자를 불렀다.

“금령사자.”

“예, 군주님!”

“대공 전하께서 중원에 돌아오신단다.”

“아직 그런 전갈은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중요한 일조차 내게 따로 연락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공 전하께서 나를 믿지 않는다는 의미겠지?”

“대공 전하께서 군주님을 얼마나 아끼셨는데, 믿지 않는다는 것은 좀 과한 판단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분은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아낀다. 하지만 누구도 믿지 않는 것이 또 그분이지. 그래서 그분을 대할 때에는 조금의 의구심도 주어서는 안 된다. 하나, 난 이미 그분에게 의심을 심어 주었으니 이제 내 살길을 따로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구나.”

“군주님, 대공 전하께 대적하는 것은 죽음뿐입니다.”

“예전에는 그랬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군주님…….”

“계속 말해 봐.”

“…….”

“왜 내가 죽일까 봐 무서워?”

“제가 군주님을 모신 지 이미 오 년이 되었습니다. 저를 믿지 못하신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죽여 주십시오.”

“난 대공 전하와는 달리 한번 믿으면 계속 믿어. 대신 솔직해야지.”

금령사자는 긴장한 듯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

“내게 하지 못한 말들이 있을 텐데, 계속하라니까?”

“대, 대공 전하께서 군주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보고하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하, 하지만 군주님께 누가 될 보고는 하나도 하지 않았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피식!

금잔화는 그가 머리를 바닥에 대는 모습에 미소를 짓더니 종이 한 장을 던졌다.

“대공 전하께 보고서를 올려.”

“뭐, 뭐라고 할까요?”

“금령군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나 행동을 분석해 보니 아무래도 군주님께서 태양천주 자리를 노리고 있는 것 같다고 적어서 보내라.”

“여인이 태양천주가 된 적은 없습니다. 보고서를 그렇게 쓴다면 오히려 대공 전하께서 군주님을 더 의심하실 것입니다.”

“그런 것은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니 시킨 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

금잔화가 원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그는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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