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검지애 375화>
375화. 다가오는 위험(1)
“계획은 잘 짰느냐?”
“악불군의 무공 수준에 대한 정보가 너무 천차만별이라, 우선 가볍게 시험 삼아 공격해 볼 생각입니다.”
천마종의 질문에 나채현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나 군사가 이렇게 조심스러운 것은 처음 보는데?”
“악불군에 대한 소문과 정보 간의 괴리를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들어온 정보가 상당히 많지 않느냐? 게다가 그놈에게 당한 본교의 호법들과 장로들이 한두 명이 아닌데, 왜 아직까지도 분석이 안 됐다는 것이냐?”
악불군에게 죽은 혈교의 고수들의 무공 수준은 그들이 완벽하게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상대의 무공 수준을 알아내는 것은 여반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오늘 싸울 때의 수준과 내일 싸울 때의 수준조차 가늠이 안 될 정도입니다.”
“그렇게 빨리 무공이 늘고 있단 말이지?”
“현재까지의 분석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놈이 현재 어디에 있느냐?”
“화산파에서 나와 무당파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잠시 생각을 하던 천마종은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나 군사.”
“예.”
“가볍게 시험을 한다면 어느 정도를 보낼 생각이냐?”
“천살단 이 개 대와 원로 세 명을 내보낼 생각입니다.”
“천마단이 아니고 천살단을 보낸단 말이냐?”
“악불군의 호위대들이 살수 무공을 익힌 것 같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살수 무공을 지닌 천살단을 보낼 계획입니다.”
“원로 세 명에 천살단 이 개 대라면 가볍다고 보기 어렵지 않느냐?”
“제거하는 데 성공을 한다면 좋고, 실패해도 그의 무공 수준을 확실하게 알아낼 수 있는 정도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럼 공격은 호북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하도록 해라.”
“그럼 두 번째 공격을 할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의 기습이 실패한다면 악불군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전력을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 공격을 전혀 안 하면 교주님 보기 좀 그러니까 한 번쯤은 공격을 해야겠지만, 악불군을 죽이는 공로는 혈마종에게 넘기도록 하자.”
호북은 혈마전의 세력권이었다. 천마종은 말로는 공을 혈마종에게 넘기겠다고 했지만 실지로는 그에게 피해를 떠넘기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리고 곧 그의 생각을 읽은 나채현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 * *
섬서의 성도인 서안에 도착한 담수련은 오랜만에 주위 풍광을 구경할 여유가 생긴 듯 창문을 열고 밖을 보고 있었다.
“군사 언니, 마음이 좀 풀린 모양이네요?”
“내가 안 좋아 보였어?”
“며칠 동안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았어요.”
동방소령의 말에 담수련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하고 방법을 찾으려고 고심하는 것만이 최선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어. 이제 그런 일은 없을 거야.”
“그럼 언니, 우리 뭐 좀 살래요? 기분이 좀 그럴 때는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물건들을 사면 기분이 풀려요. 특히 옷 사면 진짜 기분 좋아요.”
담수련도 절강과는 다른 섬서 특유의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오면서 보니 노리개들이 예쁘던데, 구경하러 가 볼까? 추국.”
“예.”
“방주님께 가서, 어디서 잠시 쉬자고 해.”
“알겠습니다.”
* * *
“장로님, 저분이 천호방의 악 방주입니다.”
주루 이 층에 자리 잡은 한 중년인이 앞에 앉은 노인에게, 담수련과 동방소령의 뒤에 서서 시장을 거닐고 있는 악불군을 가리키며 말했다.
“명성에 비해 아주 소탈하구먼?”
악불군 정도의 명성을 얻는다면 수많은 수하들을 거느리고 양민들은 주위에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악불군은 두 명의 여인하고 단출하게 시장을 돌며 양민들에게 여러 가지 물건을 사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할까요?”
“잠시 짬을 내서 쉬는 것 같은데, 기다려 보자꾸나.”
“알겠습니다.”
그들은 종남파의 장로인 사진청과 종남삼검 중 한 명인 심적산이었다.
종남파 역시 구파일방 중 한 곳이었고 화산파와 같은 섬서에 자리하고 있었다.
종남파에서는 악불군이 남궁세가에 들르고, 이후 흑선산장을 멸문시키고 일성마황을 제거했다는 소문이 퍼졌을 때까지만 해도, 악불군의 명성에 또 하나의 전공이 더해졌다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섬서와 절강은 거리상 마주칠 일이 별로 없었고, 종남파 역시 문파의 재건 때문에 다른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천호방이 개방과 소림사를 거쳐 섬서로 들어와 화산파까지 들렀다는 보고를 받자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우선 천호방이 밝힌 행선지에 종남파가 없었다. 그것은 같은 구파일방으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아직 어느 문파도 천호방과 혈맹지약을 맺었다는 공표를 하지 않고 있으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모든 문파에서 악불군을 대단히 융숭하게 대우했다는 정보도 그들을 안달 나게 하기 충분했다.
천호방이 무당으로 향한다는 보고를 받은 종남파의 장문인 무이명은 간부 회의를 소집했다.
이후 심도 깊은 논의 끝에 장로인 사진청을 보내, 악불군을 직접 만나 보고 호북으로 가는 길목에 종남파가 있으니 들러 주십사 부탁을 하도록 명을 내린 것이다.
구파일방에 속한 대문파인 종남파에서 신생 문파인 천호방에게 방문을 청한다는 것은 실로 파격적인 일이었다.
담수련이 말한 대로 악불군의 무림에 대한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 * *
담수련이 동방소령과 장신구 등을 보며 즐거워하자, 악불군의 얼굴에 미소가 저절로 떠올랐다.
효녀인 그녀가 담무룡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였다.
동방소령이 자색의 장신구를 들어 담수련에게 건넸다.
“군사 언니한테 이제 제일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장신구를 보던 담수련은 자신의 가슴에 대며 악불군에게 물었다.
“방주님 보기에는 어때요?”
“뭘하든 다 예쁘십니다.”
“그런 말 말고 진짜로 말해 봐요.”
“진짭니다.”
담수련은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주인에게 물었다.
“이건 얼마예요?”
“동전 여섯 냥은 주셔야 합니다.”
그러자 동방소령이 끼어들었다.
“뭐가 그렇게 비싸요! 타지에서 왔다고 바가지 씌우는 거 아니에요?”
그녀는 담수련과 달리 이런 거래를 자주했던 경험이 있었다.
“아닙니다. 지금 장사가 잘 안돼서 본전에 주는 겁니다.”
“넉 냥만 받아요.”
“넉 냥은 손해입니다.”
“그럼 안 사요.”
“알았수다. 그럼 넉 냥에 주기는 하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마쇼.”
담수련은 주인이 너무 빨리 깎아 주자 놀랍다는 눈으로 동방소령을 쳐다보았다.
악불군도 물건의 가격을 깎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는지 신기하다는 표정이었다.
“령 매, 손해라는데 너무 깎은 거 아니야?”
장신구를 가슴에 달아주는 동방소령을 보며 주인에게 좀 미안한 듯 담수련이 슬쩍 말했다.
“손해 아니에요. 아마 원가는 동전 한 냥이나 두 냥 정도일 거예요.”
“령 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군사 언니는 다 똑똑하신데 세상 물정은 정말 모르시네? 저랑 자주 시장에 나와서 물건을 사 봐야겠어요.”
그때 악불군의 고개가 살짝 왼쪽으로 향했다.
‘대단한 자들인데 누구지?’
분명 미미한 살기를 느꼈지만, 그가 고개를 돌리는 그 짧은 시간에 살기는 사라졌다.
“왜?”
악불군의 움직임에 예민한 담수련은 즉각 뭔가를 눈치챈 듯 물었다.
“여러 가지 사셨으니까 이제 가시지요.”
그리고 이어지는 악불군의 말에 담수련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는 말은 주위에 적이 나타났다는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 * *
[어찌 됐느냐?]
천마전의 장로인 삼불귀마는 물건을 고르는 척하고 있는 천살단 일 대장인 예춘벽의 옆으로 슬쩍 다가가더니 모른 척 물었다.
[대단히 예민한 자입니다. 제가 삼십여 장 밖에서 시험 삼아 살기를 아주 미약하게 올렸는데 즉시 제 쪽을 쳐다보더군요. 들킬 뻔했습니다.]
[삼십여 장 밖에서 살기를 느꼈단 말이냐?]
삼불귀마는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천살단은 요인 암살을 위해 천마전에서 심혈을 기해서 키운 살수 집단이었다. 특히 대주 이상은 모두 특급 살수로서 실제 무공 역시 대단히 강했다.
그런 그가 삼십 장 밖에서 살짝 비춘 살기를 감지해 냈다는 것은 악불군의 내공이 대단히 높다는 방증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의 주위를 은밀히 따르는 자들이 있습니다. 분명 저희들 같이 살수 무공을 익힌 자들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좀 더 완벽한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으니, 우선은 일대가 맡아서 계속 감시해라.]
[알겠습니다.]
삼절귀마는 그의 대답을 듣자마자 다른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담수련과 동방소령이 마차에 타는 것을 본 악불군은 흑석영을 불렀다.
[흑 호법.]
[예.]
[우리 주위에 수상한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살수 무공을 익히고 있으니, 경계를 더 철저히 하도록 방도들에게 주의를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흑석영과 대화를 끝낸 악불군은 손을 들었다.
출발 신호였다.
그러나 그들은 현을 빠져나가고 일각도 안 되어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한 명의 노인과 중년인이 그들의 앞을 막았기 때문이었다.
대독관이 나서려 하자 악불군은 그를 막고는 말에서 내렸다. 그들의 몸에서 풍기는 기가 정명한 것이 정파인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저는 천호방의 악불군이라고 합니다. 누구시기에 저희의 앞을 막으신 겁니까?”
악불군이 포권을 하며 묻자 노인이 급히 마주해 포권하며 말했다.
“막은 것으로 생각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저는 종남파의 장로인 사진청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제 사질이자 종남삼검으로 불리는 심적산입니다.”
종남파라는 말에 악불군은 놀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포권을 했다.
“이름 높은 종남파의 장로님 심 대협께서 이렇게 오시다니, 혹시 저희들이 종남파의 세력권을 허가 없이 들어선 것입니까? 만약 그랬다면 사과하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하지만 종남산이 여기서 멀지는 않습니다……”
잠시 뜸을 들인 사진청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장문인께서 시간이 되신다면 종남파에 방문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의 요청에 악불군은 뜻밖이라는 얼굴로 반문했다.
“정말이십니까?”
“예.”
“솔직히 종남파에도 방문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친분이 있는 분이 전혀 없어 요청을 드리지 못했는데 이렇게 먼저 말씀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제가 종남파에 방문 요청을 하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순간 사진청의 얼굴이 밝아졌다.
사실 그는 악불군이 거절하면 어떻게 하나 매우 걱정했었다.
종남파가 먼저 방문 요청을 한 것도 모양새가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다. 한데 거절까지 당한다면 구파일방의 일원으로 자부심이 큰 종남파로서는 체면에 큰 손상을 입을 수도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악불군이 흔쾌히 허락함은 물론, 심지어 방문 역시 자신이 먼저 요청한 것으로 하자고 말하니 그로서는 최상의 결과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 악불군에 대한 사진청의 호감도는 단번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 * *
“군사 언니.”
“응?”
“또 심각해지셨어요.”
마차로 돌아온 담수련은 물건을 살 때와는 달리 말없이 뭔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동방소령은 그런 그녀가 이해가 되지 않는 듯했다. 금방까지 그렇게 웃고 즐거워하다가 순식간에 심각한 표정으로 깊은 생각에 빠지는 것은, 낙천적이고 충동적인 성격을 지닌 그녀는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보여?”
“예.”
“이건 심각한 것이 아니라 분석하는 거야.”
“분석이요?”
“아까 악 방주께서 우리보고 이만 돌아가자고 했지?”
“예.”
“령 매는 아쉽지 않았어?”
“사실 좀 아쉬웠어요. 볼 것이 좀 더 있었거든요.”
“나도 그랬어. 그런데도 악 방주는 돌아가자고 했거든. 그것은 우리 주위에 위험 상황이 닥쳤다는 의미야.”
동방소령은 눈이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그 한마디에 그게 다 유추가 되세요?”
“다른 사람은 쉽지 않아도 악 방주는 그냥 돼.”
“언니, 악 방주님과 언니는 무슨 관계세요?”
“……”
뜻밖의 질문에 담수련은 잠시 답을 하지 못했다.
그녀 역시 악불군과 자신이 어떤 사이인지 특별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를 보면 그냥 좋고 행복했다. 언제나 옆에 있기에, 당연하게 영원히 그녀의 옆에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해 왔다.
생각하던 담수련은 자신의 가슴이 두근거리자 급히 가슴에 손을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