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검지애 379화>
379화. 습격(1)
섬서와 호북의 접경에는 거대한 산맥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다. 심지어 개중 제법 큰 산에는 대부분 녹림의 산적들이 진을 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대호법, 명색이 관도인데 사람이 전혀 없군요?”
“산길이 하나같이 험준하고 산적들도 많아 대부분 뱃길을 이용합니다. 저희 같은 무림인들이나 이 길을 이용하지요.”
대독관의 답에 악불군은 의아한 듯 물었다.
“호북에는 무당파가 있고 섬서에는 종남파와 화산이 있는데 산적들이 그렇게 많이 있다니, 의외군요?”
“무림인들은 산적이나 수적들이 직접적으로 건들지 않는 이상 상관하지 않는 편입니다. 양민의 부류에 속하기 때문에 관부의 일로 치부하지요.”
“그건 좀 이상하군요. 양민들이 괴롭힘을 당하면 정파로서는 돕는 것이 당연할 텐데, 모른 척하다니요?”
“산적이나 수적은 마적들과 달리 양민들이 먹고살기 힘들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없앤다 해도 곧 다시 나타납니다.”
“없애도 없애도 계속 나타나는 잡초 같다는 말이군요?”
“그렇지요. 없애 봐야 또 나타날 거니 그냥 두는 거지요.”
대독관의 말에 악불군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이해는 가지만 좀 씁쓸한 사실이군요.”
말하던 악불군은 산 쪽을 보며 다시 말했다.
“지금 우리가 넘는 이 산에도 산적이 있습니까?”
“이 근처 산에는 모두 산적들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악불군은 의아한 표정으로 산 쪽을 다시 한번 주시했다.
“왜 그러십니까?”
“꽤 많은 기가 위에서 느껴집니다.”
“산적일 것입니다. 이 산에 있는 산적은 그 수가 백 명에 육박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길이 가장 빠른 길임에도 통행이 거의 없는 것이지요.”
“산적들의 무공 수준은 보통 어느 정도입니까?”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만 들은 바에 의하면 두목급은 일류급 이상의 무공을 지니고 있고, 중간 간부들은 이류와 삼류 정도의 무공을 지니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외에는 대부분 무공을 모르는 양민 출신들이라고 하더군요.”
“그들이 우리도 공격할까요?”
“요즘 천호방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겠습니까? 산적들은 여간한 무림인들도 건드리지 않습니다. 하물며 천호방 깃발을 저렇게 높이 달려 있는데 어찌 감히 공격하겠습니까?”
대독관의 말은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악불군은 호위 무사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다. 조금의 위험도 그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그래도 유비무환이라고 했으니 만약을 위한 준비는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주변에 대한 경계를 좀 강화하라고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대독관은 즉시 손가락으로 수하 몇 명을 지적하더니 이곳저곳을 가리켰다. 그러자 지적을 받은 수하들이 몸을 날려 사방으로 퍼졌다.
그동안 악불군은 흑석영과 최욱걸에게 전음을 날려 일 마장 정도 앞까지 매복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명령을 내렸다.
* * *
[봉미독수, 준비는 끝났나?]
[완벽하게 끝냈다.]
[네 쪽은 어때?]
삼불귀마는 또 다른 장로인 사비쌍검에게 물었다.
[우리도 완벽해. 놈들은 오늘 죽는다.]
“이번 습격이 성공하면 너희들은 목숨도 건질 수 있을 뿐더러 큰 상도 받을 것이다.”
천살단 일 대주 예춘벽의 앞에는 최소한 백여 명은 됨직한 산적들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열 명씩 무리를 지어 서 있었다.
각 무리에는 천살단원들이 산적으로 변장해 사이사이에 끼어 있었다.
예춘벽은 무리를 주욱 둘러보더니 한 명을 지명하며 나오라는 듯 손가락을 까닥댔다.
지명된 산적은 사색이 되어 뒷걸음을 쳤다. 변복한 천살단이 그의 팔을 잡아 앞으로 끌고 나갔다.
“사, 살려 주십시오.”
산적은 급히 엎드리며 사정하기 시작했다.
“네 얼굴을 보니 도망칠 생각을 하는 모양이구나?”
예춘벽의 말에 산적은 혼비백산한 모습으로 소리쳤다.
“저, 절대 아닙니다. 시키신 대로 죽을 각오로 싸울 것입니다!”
예춘벽은 그의 말은 듣지도 않고 모두를 보며 말했다.
“똑똑히 봐라. 누구든 도망을 치면 그 순간 이렇게 된다.”
“아아아악!”
말이 끝나자 엎드려 있던 산적이 고통스러운 듯 처절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는 너무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더니 곧 온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그리고 칠공에서 피를 흘리며 천천히 죽어 갔다.
너무나도 공포스러운 장면을 본 산적들은 사색이 되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각 대원들은 모두를 끌고 가라.”
예춘벽의 명이 떨어지자 천살단원들은 산적들을 가축을 몰 듯 강압적으로 떠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 * *
나란히 앉은 동방소령과 추국은 앞에 앉은 담수련의 모습에 약간 불안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한동안 괜찮은 것 같던 담수련이 또다시 아미를 찡그린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녀는 악불군 앞에서는 최대한 태연한 척했지만 매일 밤 아비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로 고심하고 있었다.
담무룡에 대한 문제는 단지 뒤로 좀 밀렸을 뿐, 해결된 것이 전혀 없었다. 실지로 그들에게 억류된 것이 사실인지, 정말 살아는 있는지조차 아직 확실히 모르고 있지 않은가…….
‘아버지께서 정말 그들에게 억류되어 있을까……? 아니야, 운우각주라는 그 여인의 말투로 봐서는 아버지께서 잡혀 있는 것은 분명해. 아버지의 무공 수준이 누구에게 쉽게 제압이 될 분이 아닌데? 함정에 빠지신 게 분명해…….’
담수련은 그들이 서찰에 적힌 협박대로 담무룡을 죽이지 않았다 해도, 여전히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결국은 그를 통해 자신과 악불군을 협박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수작 몇 가지를 예상할 수 있었다.
가장 최악은 진짜로 담무룡을 죽여 그 시신을 그녀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아마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녀는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았다는 자책감으로 무너질 수도 있었다.
두 번째는 담무룡을 살려 둔 채 그녀를 계속 협박하는 것이었다. 적설이 없었다면 대처가 무척 힘든 상황이 되겠지만, 적설이 있기에 그녀에게는 담무룡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가장 원하는 상황이었다.
마지막으로 최악은 아니지만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은 담무룡이 멀쩡하게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녀는 담무룡의 야망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돌아온다면, 그리고 악불군의 능력이 자신의 예상을 훨씬 상회할 정도로 상상불가의 고수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면, 거기다 천호방의 세력이 생각 외로 강력하다는 것까지 더해진다면…….
“뭔가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모든 계획이 엉망이 될 거야.”
담수련이 갑자기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추국과 동방소령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가씨, 왜 그러세요?”
추국의 외침에 정신이 든 담수련은 급히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야, 내가 뭔가 좀 깊이 생각하다가…… 아무것도 아니니까 걱정 마.”
[추국 언니, 군사 언니 요 며칠 괜찮더니 또 시작하는 것 같은데요? 도대체 고민이 뭘까요?]
동방소령이 걱정 어린 표정으로 추국에게 전음을 날렸다.
그때 대독관의 외침이 들려왔다.
“이곳에서 잠시 쉬고 간다. 각 대는 말들에게 물을 주고 휴식할 수 있게 해라!”
담수련은 창을 열고 밖을 잠시 살피더니 추국을 보며 말했다.
“추국아, 나도 바람 좀 쐬어야겠다.”
“예!”
추국이 대답과 함께 마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마차를 따르던 삼화와 잠봉단이 빠르게 마차 주위를 감싸며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담 군사께서 나오신다고 하시더냐?”
그때 악불군이 마차 쪽으로 말을 몰고 오더니 물었다.
“예.”
“내가 옆에 있을 것이니 사화와 잠봉단은 좀 쉬거라.”
악불군의 말이 떨어지자 그제야 사화와 잠봉단은 경계를 풀고 그늘가로 가서 편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힘드셨지요?”
담수련이 마차에서 내리자 악불군이 백설에게서 내리며 물었다.
백설은 악불군이 내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어디론가 달려갔다. 물을 먹고 배도 채우고 올 심산이었다.
“마차 타고 온 내가 뭐가 힘들어. 말 타고 온 소군이 더 힘들지.”
담수련은 사라지는 백설을 보며 미소를 짓더니 악불군을 보며 답했다.
“그래도 산길이라 마차가 많이 흔들렸을 것입니다.”
사실 마차는 그리 편한 수단은 아니었다.
“내가 직접 설계한 마차야. 보통 마차보다는 편하니까 걱정 마.”
나무 밑에 있는 바위로 다가가 앉은 담수련은 주위를 살피더니 물었다.
“여기 관도는 맞지?”
“호북으로 넘어가는 가장 빠른 관도라는데, 생각보다 많이 험합니다. 더구나 이 근처에서는 가장 큰 세력을 지닌 산적도 있다는군요.”
“산적들이?”
“대호법 말로는 천호방 깃발이 있어서 공격은 안 할 거라고 하는데, 수상한 느낌이 들어서 공격에 대비하라고 명은 내렸습니다.”
“내가 보기에 혈교에서 우리를 노린다면 가장 좋은 장소인 것 같아.”
“저도 그렇게 보았습니다.”
“저들은 소군의 무공에 대해 어느 정도는 분석하고 있을 거야.”
“그렇겠지요.”
“그렇게 쉽게 생각할 일은 아니라고 봐. 소군의 무공 수준을 알면서도 공격을 하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만약 그들이 소림사에 들어가기 전의 무공으로 분석한 것을 가지고 전력을 구성했다면, 그들은 오늘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왜…… 갈수록 멋있어지는 거야…….’
담수련은 몽롱한 눈으로 악불군을 쳐다보았다.
“아가씨, 어디 아프신 거 아니십니까?”
담수련의 약간 멍한 것 같은 표정을 본 악불군은 걱정스러운 듯 급히 물었다.
‘확실히 눈치는 정말 없어…….’
“안 아파!”
* * *
[흑석영, 저놈들 우리를 공격하려는 거 아니야?]
백인막 살수 출신 십여 명을 데리고 조사를 나온 흑석영과 최욱걸은, 산적들로 보이는 자들이 관도 주위에 숨어 있는 것을 보자 고개를 갸웃했다.
[넌 저놈들이 정말 우리를 공격할 수 있다고 보나?]
흑석영의 말에 최욱걸은 슬쩍 쳐다보며 반문했다.
[무슨 의미야? 포진하고 있는 게 분명 공격할 태세인데?]
[지금 천호방을 모르는 산적이 있을까? 우리를 건드렸다가 수십 개의 수적 집단이 몰살당한 소문은 천하에 퍼져 있어.]
흑석영의 말에 뭔가를 느낀 최욱걸은 사방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수상한 장소들을 발견했다.
[이놈들, 종남산에 갔을 때 우리가 쫓던 놈들이다. 대단한 은신술이야. 어떻게 할래?]
흑석영은 신중한 표정으로 고심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우선 돌아가서 방주님께 보고한다.]
흑석영은 실력도 높았지만 육감도 매우 발달해 있었다. 특히 위험 상황을 매우 정확하게 감지했다.
최욱걸도 그의 능력을 잘 아는 터라,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흑석영은 같이 온 수하들에게 후퇴 신호를 보내고는 몸을 날렸다.
* * *
[몇 놈들이 왔다 갔다.]
사비쌍검의 전음에 삼불귀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흑석영과 최욱걸은 들키지 않았지만, 같이 왔던 수하들 몇몇은 사비쌍검의 기감에 걸린 듯했다.
[역시 예상대로 척후를 보냈군.]
삼불귀마의 입가에는 회심의 미소가 그려졌다.
[삼불귀마, 솔직히 이럴 때 보면 나 군사의 능력이 대단하긴 해. 지금까지 나 군사가 말한 그대로 저놈들이 움직이고 있잖아?]
[천호무적검의 신화가 오늘로써 끝나겠군. 자, 우리도 준비하자. 천호무적검은 결국 우리가 죽여야 할 거다.]
* * *
악불군과 대화를 나누던 담수련은 악불군의 표정을 보자 금방 느낀 듯 물었다.
“흑 호법이 왔나 봐.”
“이제 점쟁이라고 해도 다 믿겠습니다.”
“내가 그랬잖아. 소군의 표정이 움직이는 모습만 보고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다 안다니까.”
“예, 흑 호법이 왔다고 연락했습니다.”
“흑 호법께 나타나라고 해 줘. 내가 직접 들어 보게.”
“알겠습니다. 흑 호법.”
작은 소리였지만 흑석영은 즉각 모습을 보였다.
“예!”
“담 군사께서 직접 듣고 싶으시다니까 척후 보고를 해 보세요.”
“약 오십 장 앞에 산적들이 우리를 기습하기 위해 포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종남산에서 추적했던 살수들로 보이는 자들이 주위에 은신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흑석영의 보고를 듣던 담수련의 눈에 이채가 나타났다. 인위적인 구석이 확연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