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381화 (381/472)

<천검지애 381화>

381화. 정리(1)

[흑석영, 주군의 무공은 끝이 어딜까? 우리가 처음 뵈었을 때와 비교해도 너무 강해지신 것 같지 않아?]

대독관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가 더욱 놀란 것은 불길의 움직임이었다.

불길은 지나가는 길목에 있는 나무를 순식간에 태워 버릴 정도로 강하고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강력한 불길은 당연히 옆으로 퍼질 수밖에 없었다.

소위 말하는 산 전체를 태우는 산불이 되는 것이다.

하나 불길은 악불군에 의해 완벽하게 제어되는지, 앞으로만 타고 들어갈 뿐 옆으로 번지지 않았다. 심지어 지난 길의 불은 저절로 꺼지고 있었다.

대독관은 이런 큰불을 내공만으로 조종한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주군은 우리들 같은 사람이 판단할 수 없는 분이다. 말 그대로 신인이신 거 같구나.]

흑석영의 표정에서는 존경을 넘어 신앙심까지 느껴지고 있었다.

[주군께서 움직이셨다. 가자!]

두 팔을 앞으로 뻗은 채 불길을 조종하던 악불군의 몸이 땅에서 한 자 정도 떠오르더니 앞으로 미끄러지듯 이동하자, 사효조를 제외한 세 명의 호법이 수하들을 이끌고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불길에 우왕좌왕하는 적들을 청소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뒤를 남은 수하들의 호위를 받으며 마차가 따르기 시작했다.

* * *

“이런 개 같은! 화공 따위에 천살단을 반 이상 잃다니…….”

불길을 피한 삼불귀마는 불길에서 살아남은 수하들을 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극심한 분노에 초절정 고수인 그조차 명경지수를 유지할 수 없었다.

기습을 완벽하게 하기 위하여 천살단원들은 은신술로 몸을 감춘 상태에서 귀식대법을 펼치고 있었다.

귀식대법은 상대에게 자신의 기를 숨기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었지만 급박한 상황에서 대처가 느리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것이 천살단의 피해가 막심해진 이유였다.

“불이 잦아들고 있다!”

봉미독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지금 일어난 불길은 천호방과 그들 사이를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그런데 물도 뿌리지 않고 불을 끄기 위한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는데 불이 꺼지고 있었다.

“이게 뭐지?”

사비쌍검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상황에 판단력을 잃은 것이다.

그 와중에도 가장 먼저 상황을 파악한 자는 삼불귀마였다.

‘서, 설마 악불군 그놈이 이런 엄청난 화염까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 상황은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휘이이이익!

귀를 울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이기어검! 악불군이다!”

사비쌍검이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날아오는 검을 발견하고는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검의 속도는 그의 목소리보다 빨랐다.

“으아악!”

“악!”

순식간에 다가온 검은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던 천살단원 세 명을 한 번에 관통하고는 하늘로 날아올라갔다.

심지어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하늘로 올라간 검은 방향을 바꾸더니 다시 빠른 속도로 그들을 향해 내려갔다.

“피해라!”

삼불귀마의 외침에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천살단원들이 사방으로 몸을 피했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흑석영을 필두로 한 천호방도들의 공격이었다.

여전히 수적으로는 우세했고 실질적인 무공도 큰 차이가 없었지만, 이미 화공과 이기어검에 의해 혼비백산한 그들은 천호방도들의 공격에 빨리 대처할 수가 없었다.

탕!

공중을 날아다니며 십여 명의 천살단을 제거한 천륭검의 다음 목표는 사비쌍검이었다.

초절정 고수답게 그는 천륭검을 받아쳤다.

사비쌍검은 검이 튕겨나가자 자신의 손을 쳐다보았다.

강력한 충격에 손에 큰 고통을 느꼈을 뿐 아니라, 검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시간이 있다는 방심이었다.

“컥!”

사비쌍검은 복부가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에 짧게 단발마를 터뜨렸다. 분명 악불군의 검을 쳐 냈는데…….

자신의 복부를 헤집고 등으로 빠져나간 것은 천륭검이었다.

천륭검이 원래 쌍검이라는 것을 발견한 악불군은 두 검을 분리해서 공격하는 방법을 계속 연구해 왔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기어검을 시전하는 동안에도 검을 분리할 수 있을 정도가 된 것이었다.

사비쌍검의 복부를 관통한 천륭검은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조금 전에 튕겨나갔다가 다시 방향을 바꿔 날아오던 또 다른 천륭검과 합쳐진 후 악불군의 손으로 날아갔다.

“악불군, 이놈! 무림인 간의 싸움에 화공을 사용하다니, 너는 강호의 도리도 모르느냐!”

“독과 화약을 사용한 자가 할 말은 아닌 것 같군요.”

“네, 네가 그것을 어떻게?”

“그것까지 알 필요는 없고, 혈교에서 오신 분들 같은데 전 혈교 사람들은 살려 줄 생각이 없습니다.”

말을 마친 악불군의 주위에 회오리바람이 불기 시작하며 그의 옷이 펄럭이기 시작했다.

삼불귀마와 봉미독수는 서로를 한 번 쳐다보았다. 도망을 치느냐, 아니면 합공해서 상대하느냐…….

하지만 그들은 도망도 쉽지 않음을 느꼈다. 어느새 천살단을 전멸시킨 천호방도들이 그들의 뒤를 막아섰기 때문이었다.

특히 범상치 않은 기를 뿜어내는 세 명의 호법을 보자, 그들은 무기를 굳게 잡았다. 이렇게 된 이상 죽기로 싸워 악불군을 제거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봉미독수, 내가 공격을 시작하면 넌 기회를 잡아 독을 뿌려라. 최소한 독에 중독을 시키면 동귀어진은 할 수 있다.]

[알았다. 그런데 저 바람을 가를 수 있겠냐? 조금의 틈만 만들면 내가 독을 쓸 수 있다.]

봉미독수는 가장 강력한 독을 손에 쥐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는 독공의 대가가 아니라 용독술의 대가였다.

용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람이었다.

지금 악불군의 주위를 도는 회오리바람이 문제였다. 그가 독을 뿌려 봤자 악불군에게 닿기도 전에 회오리바람에 날아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전력으로 삼불마장을 시전하면 저 정도 바람은 쉽게 뚫을 거다.]

[그럼 네 장풍에 내 독을 풀겠다.]

둘이 의논을 하는 동안 악불군은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이제 직접 움직이지 않으면서 수련이 가능해졌지만, 실전에서 사용해 봐야 어느 정도 유용한지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눈앞의 둘은 아주 좋은 연습 상대였다.

천마전의 원로로 마왕급에 속하는 그들을 악불군이 연습 상대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분통이 터져 쓰러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삼불마장은 초절정 마공 중 하나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나 속도가 느리다는 큰 단점 때문에 절대마공에 들지는 못했다.

삼불마장에 담긴 검붉은 강기가 악불군을 향해 날아갔다.

‘이놈이 아직 경험이 부족해 자신의 실력을 너무 과신하는구나. 그게 네 실수다.’

삼불귀마는 악불군이 피하거나 맞받아칠 거라고 생각했다. 하나 악불군이 그대로 그의 장을 호신강기로 버티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만근 바위도 가루로 만들 위력의 자신의 장이 악불군을 그대로 피떡을 만들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거기다 그의 장에는 봉미독수가 가미한 독까지 함유되어 있었다.

첫 수가 성공적으로 악불군을 강타하는 듯하자 삼불귀마는 연달아 공격을 더 날렸다.

마도인 그의 명호에 삼불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연달아 세 번의 장이 날아가면서 마치 불가의 연꽃 같은 모양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위력은 감탄할 만한데 속도가 너무 느리군요. 상대가 약하거나 비슷하면 큰 문제가 안 되겠지만, 강한 사람에게는 쉽게 패하겠습니다.”

마지막 삼장까지 악불군의 몸을 강타하자 ‘됐다!’ 하는 표정을 짓던 삼불귀마의 표정이 급속도로 일그러졌다.

자신의 삼불마장을 정통으로 맞았다면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들려오는 목소리는 너무 태연했고, 그의 무공의 가장 큰 단점까지 알려 주고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검붉은 강기가 사라지자 삼불귀마는 뒤로 주춤주춤 뒤걸음질을 쳤다. 자신의 강기가 악불군의 몸을 휘감고 있는 회오리바람에 말려 공중으로 휘말려 올라간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사, 사술이냐?”

자신이 공격한 기가 사라진 것도 아니고 포획이 되는 실로 듣도 보도 못한 신기한 수법에, 삼불귀마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받았으니 돌려 드려야지요.”

악불군은 그의 말에 대답 없이 손을 쭉 뻗었다. 그러자 회오리바람과 같이 돌고 있던 검붉은 강기가 그대로 삼불귀마를 향해 날아갔다.

“사, 삼, 삼불마장? 이런 말도 안 되는…….”

삼불귀마는 자신을 공격한 장법이 자신의 절기인 삼불마장인 사실을 깨닫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펑!

삼불마장과 삼불마장이 부딪치는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둘의 격돌이 얼마나 위력적인지 피어오른 흙먼지가 시야를 가릴 정도였다. 그러나 악불군이 손을 한 번 흔들자 먼지는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피를 콸콸 흘리는 삼불귀마와 봉미독수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아무리 악인이라지만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적응이 정말 안 되는군…….”

악불군은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흑석영을 보며 말했다.

“흑 호법.”

“예!”

“방도들 피해는 어떻습니까?”

“네 명이 죽고 두 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제가 좀 더 부지런했다면 피해를 더 줄일 수 있었는데, 죄송합니다.”

“생사를 건 싸움에 우리만 피해가 전혀 없을 수는 없겠지요. 방도들은 잘 묻어 주시고, 부상자는 덧나지 않도록 빨리 치료하십시오.”

“알겠습니다.”

“대 호법과 최 호법은 방도들을 데리고 적들의 시신을 사람 눈이 안 보이는 곳으로 치우세요. 어쨌든 관도인데 너무 많은 시신이 보이면 통행하는 사람들이 공포심을 갖게 됩니다.”

“존명!”

대독관과 최욱걸이 바짝 기합이 든 목소리로 답하자 악불군은 몸을 돌렸다.

싸움이 끝나면 그는 이상하게 담수련을 보고 싶었다.

* * *

우문상일이 가져온 보고서는 하루에 수십 장에 달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보고는 맨 첫 장이었는데, 그동안은 악불군의 행보에 관한 보고가 첫 장을 장식했었다.

“오늘은 천호방에 관한 보고가 첫 장이 아니군?”

제갈우명이 집어든 보고서에는 ‘남무림 현황’이라고 적혀 있었다.

“북쪽으로 확장이 막힌 구천마성은 우선 남무림부터 장악하기로 전략을 바꾼 후, 남무림에 있는 문파들을 강력하게 압박하고 있었습니다.”

우문상일의 부언을 들으며 첫 장을 넘긴 제갈우명의 검미가 살짝 좁아졌다.

“구천마성이 전멸? 이게 사실인가?”

당연히 구천마성이 어디까지 진출했다는 정보라고 생각했던 그는, 오히려 구천마성이 전멸했다는 보고가 언뜻 믿기지 않는 듯했다.

“저도 깜짝 몰랐습니다. 그동안 구천마성은 강서 남쪽을 장악하기 위해 신생 문파인 정천보를 공략하고 있었습니다.”

“군사전에서는 정천보를 화룡세가의 위성 세력으로 판단하고 있지 않나?”

“예, 화룡세가에서 부역 세력의 꼬리표를 떼기 위해 만든 문파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천보를 견제하던 구천마성의 정예 무인들 백여 명이 하룻밤 사이에 전멸했다면 정천보의 짓인가? 아니야……. 화룡세가에서 구천마성이 총 공세할 명분을 줄 리가 없는데?”

구천마성에서 화룡세가가 장악한 호남 남부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했다.

비록 세력권 밖이라고는 하지만 제갈세가가 있는 곳이 호남이었다. 거기다 구파일방은 아니지만 나름 영향력 있는 형산파가 남무림의 경계에 있었다.

더구나 점창파는 아예 남무림에 존재하고 있으니, 무조건 호남을 치고 들어가는 것은 무림맹과 정면 충돌할 위험이 있었다.

그런데 구천마성의 수하들이 전멸을 당했다면, 확실한 명분이 생긴 것이다.

“저희도 화룡세가의 짓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유는?”

“화룡세가에서 강서 쪽으로 무인들이 이동한 흔적이 없습니다. 한두 명이라면 몰라도 구천마성을 전멸시킬 정도면 최소한 백 명 이상이 움직였을 것인데, 우리에게 걸리지 않고 이동할 수는 없습니다.”

우문상일의 말에 제갈우명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남무림에서 구천마성의 정예 백 명을 하룻밤 사이에 전멸시킬 정도의 전력을 갖춘 문파는 아주 극소수였다. 하지만 어느 문파든, 잘못하면 멸문을 당할 수도 있는 위험을 안고 그런 시도를 할 이유가 없었다.

“혈교 아니면 신비 조직이라는 말이군.”

제갈우명은 확신하듯 중얼거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