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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382화 (382/472)

<천검지애 382화>

382화. 정리(2)

우문상일은 제갈우명의 단언에 동의한다는 듯 답했다.

“저도 그들일 것 같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허나, 혈교는 천년마교의 후신이고 신비 조직은 무림을 궤멸시키려는 자들인데, 화룡세가에서 그들과 손을 잡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를까요?”

“알겠지. 하지만 지금 그들의 상황이 막다른 골목에 몰린 생쥐 꼴이니, 누구라도 손만 내민다면 잡을 수밖에 없을 게다. 우문 총책.”

“예!”

“화룡세가와 구천마성 간에 전쟁이 벌어질 경우, 그 결과가 어찌 될지는 이미 분석이 끝났겠지?”

“여러 상황을 상정해 분석해 보았는데, 모든 결과가 화룡세가의 멸문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구천마성의 피해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만약 혈교가 화룡세가를 돕는다면 어찌 될 것 같으냐?”

“저번 들어온 혈교의 정보가 사실이라면 구천마성 역시 회생 불능의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동귀어진이라……. 아무래도 손익 계산은 맹주님과 의논해 봐야 할 것 같으니, 우선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거라. 특히 구천마성의 동태는 전부 보고하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보고서의 다음 장을 넘긴 제갈우명은 눈이 살짝 커졌다.

“악 방주가 종남파까지 들렀다고?”

“예, 천호방에서 발표한 공표에는 종남파의 방문은 없었는데, 갑자기 악 방주가 종남파에 배첩을 보내면서 회담이 성사되었다고 합니다.”

“흠~ 역시 똑똑한 청년이야.”

그 순간 제갈우명은 악불군이 종남파의 체면을 세워 주기 위해 벌인 일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네. 그럼 다음 행선지가 무당파겠군?”

“예, 하지만 무당파 다음의 행선지는 아직 밝히지 않았습니다.”

“곧 알려 주겠지. 그런데 아직도 각 문파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알려진 것이 없느냐?”

“이상할 정도로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본 맹과 소통이 원활하던 간부들조차 그 사안에 대해서만은 모른다고 딱 잡아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은, 좋은 의미가 아니라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는 말도 되겠지.”

“그런데, 중원 총순찰께서 악 방주를 만날 모양입니다.”

“나도 아직 듣지 못했는데 그건 어떻게 알았나?”

“중원 총순찰께서 제게 악 방주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은밀히 물어보셨습니다.”

“은밀히라……? 하긴 다음 대 무림을 책임질 두 사람이 아직까지 만나지 않았다는 것은 좀 늦은 감이 있긴 하지.”

제갈우명은 악불군과 백천학 간에 최소한의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만약 둘 사이가 나쁘다면 정파 무림에 큰 불행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현기수사 부군사께는 알리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제갈우명은 이유를 알겠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중원총순찰은 대단히 현명한 분이다. 누구의 말에 흔들릴 분이 아니지.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할 것이니 우리가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제갈우명은 백천학이 커 가는 모습을 자세히 본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내가 보아 온 모습이 틀린 것은 절대 아닐 게야…….’

제갈우명은 현 무림맹이 권력을 탐하는 자들에 의해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백천학이 바로잡아 줄 수 있기를 그는 기대하고 있었다.

* * *

“군사님, 방금 급보가 들어왔습니다.”

“들어와라.”

아수라마전의 군사 야명독효는 부군사인 묵견불마가 안으로 들어서자 물었다.

“어디서 온 것이냐?”

“총단에서 보내온 전갈입니다.”

“총단에서? 가져와 봐라.”

야명독효는 묵견불마가 전해 준 서찰을 읽더니 혀를 찼다.

“쯧! 쯧! 대단한 거물이 되었군.”

“누굴 말씀하시는지요?”

“악불군 말이다. 이런 놈을 우리가 건드려서 너무 큰 전력 소실을 봤는데, 이번에는 천마전에서 손해를 본 모양이다.”

“천마종께서 화가 많이 나셨겠군요?”

“천마종보다는 혈마종께서 화가 많이 나셨을 게다.”

“혈마종께서요?”

“악불군이 호북으로 넘어갔거든. 천마종께서는 실패는 했지만 죽이려고 공격했으니 체면치레는 했고, 이제 공은 혈마종께 넘어간 셈이지.”

“혈마종께서 악불군을 제거하려고 하실까요?”

“교주님께서 각 마전에 일임하신다고 하셨다. 그 말은 제거해도 좋다는 허락이신데, 혈마종께서 최소한 시늉이라도 하지 않겠느냐?”

“도대체 악불군이 얼마나 강하기에 본 교의 모든 공격을 다 물리치고 있을까요?”

“처음은 십대고수와 맞먹는 정도로 분석했었지.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빨리 늘어. 총단에서도 제거로 전략을 바꾼 이유가 바로 그것일 게다.”

“군사님께서도 제거를 바라시지 않으셨습니까?”

“……솔직히 난 악불군이 광동에 나타났을 때부터 그가 본 교의 대업에 큰 장애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야명독효는 악불군이 광동에 나타나 아수라마전과 시비가 붙은 이후 그를 죽이기 위해 원로와 장로들을 계속 보냈다. 하지만 가는 족족 오히려 다 죽어 나가자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가 혈마전의 구역인 호남 북부로 넘어간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쉴 정도였다.

“그리고 구천마성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는 보고입니다.”

“그대로 넘어갈 놈들이 아니지. 본격적으로 무림을 장악하는 대계의 시작이 본 전이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 * *

무림맹 맹주전.

태사의에 앉은 천제무황의 앞으로 천무사왕과 현기수사가 도열해 있었다.

“보고해 봐라.”

묵직한 천제무황의 목소리가 떨어지자 현기수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악불군이 무당파에서 오늘 나왔다고 합니다.”

“대부분 이틀 정도만 머무는 모양이구나.”

“예, 다음 행선지는 제갈세가라고 합니다.”

“제갈세가라…….”

“주군, 무당파에서 본 맹이 제갈세가보다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제갈세가로 간다고 한 것은 본 맹을 들르지 않겠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팔수권왕은 악불군의 행보가 약간 못마땅한 듯했다.

“솔직히 무림맹을 무시하는 것 같아 기분은 좀 안 좋습니다.”

한세도왕도 팔수권왕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차갑게 말을 받았다.

“진격아, 악불군이 방문한 문파에서는 아직 아무런 연락도 없느냐?”

천제무황은 그들의 말에는 답 없이 현기수사에게 물었다.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한 문파도 연락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악불군이 방문한 문파들은 모두 무림맹에 가입한 정파들이었다. 당연히 중요한 사안이 생기면 무림맹에 연락을 주는 것이 관례였다.

태웅왕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주군, 악불군에게 무림맹에 방문해 달라고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것은 안 됩니다.”

그러자 즉시 현기수사가 반대를 했다.

“왜 안 된다는 것인가?”

태웅왕은 현기수사의 반응이 마음에 안 드는 듯 반박했다.

“무림맹은 정파를 대표하는 조직입니다. 악불군이 스스로를 정파라고 자청한 이상, 먼저 찾아와 맹주님께 배알을 청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맹에서 먼저 방문을 청한다면 무림맹의 권위가 떨어질 것입니다.”

“이미 악불군은 무림 십왕에 봉해졌고, 천호방은 당당하게 절강성의 패자로 등극했네, 그를 우리가 먼저 부른다고 설마하니 권위가 떨어지겠나?”

“천하는 아직 혼란한 상황입니다. 무림맹의 권위가 떨어지면 정파는 다시 흔들릴 수 있습니다.”

현기수사가 너무 강력히 주장하자 태웅왕은 더 이상 고집할 수가 없었다.

“그만! 천학이가 악불군을 직접 만나 보겠다고 하니까 천학이가 돌아오면 그때 다시 회의를 한다. 그만 가 보거라.”

천제무황의 말에 천무사왕은 몸을 일으키더니 공손히 인사를 하고는 나갔다.

“넌 왜 안 나가느냐?”

현기수사가 나가지 않자 천제무황은 의아한 듯 물었다.

“주군, 공자님께서 악불군을 만나러 가십니까?”

“이미 네게도 말했다고 하던데, 몰랐느냐?”

백천학은 현기수사가 악불군을 만나는 것을 반대하자 그에게 의논을 아예 안 한 듯했다.

“맹주님, 공자님께서 악불군을 만나는 것을 막아 주십시오.”

“악불군을 부르는 것이야 네 말대로 무림맹의 권위 때문에 안 된다고 해도, 천학이가 만나는 것은 상관 없지 않느냐? 그리고 악불군을 만난다는 것은 천학이가 직접 결정한 것이다.”

“주군께서 허락을 안 하시면 만나지 않으실 겁니다.”

“한번 마음을 먹으면 내 말도 듣지 않는 천학이 성격을 잘 알지 않느냐? 천학이 말이 네가 너무 반대한다고 하던데, 왜 그렇게 악불군과 천학이가 만나는 것을 극구 반대하는 것이냐?”

“악불군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잠룡세가와 연관 말이냐?”

“지금 증거를 찾지 못했지만 조만간 제가 찾아낼 것입니다. 하지만 공자님을 만나게 되면 증거를 찾아도 그를 단죄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천학이와 연관됐다는 말이 돌까 걱정하는 것이냐? 그런 걱정은 마라. 만약 잘못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상대가 누구이건 죄를 물을 아이다. 공과 사가 얼마나 철저한 아이인 줄 너도 잘 알지 않느냐? 솔직히 말해 봐라. 네가 고집을 부리는 이유가 따로 있느냐?”

“그, 그게…….”

현기수사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천제무황의 표정이 굳어졌다.

“악불군이 천륭검가의 후손이라는 사실 때문이냐?”

“악불군의 주장일 뿐, 아직 그가 천륭검가의 후손이라고 밝혀진 사실은 없습니다.”

“넌 천학이가 나와 같은 길을 갈까 그게 두려운 것이냐?”

“주군! 절대 그런 뜻은 아닙니다. 공자님께서는 신인이십니다. 설령 악불군이 진짜 천륭검가의 후손이라 해도 어찌 공자님을 넘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네 고집이나 주장을 보면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보인다. 천학이는 나와 다르다. 그리고 이인자로 살게 내가 놔두지도 않는다. 그러니 두고 보자. 지금 상황에서 악불군을 계속 만나지 않는다면 피한다는 말이 돌 수도 있어.”

천제무황은 자신을 뛰어넘는 성취를 보이는 백천학을 굳게 믿는 듯했다.

그러나 그의 여유로움과는 달리 현기수사는 여전히 불안했다. 만약 천제무황이 악불군을 직접 보았다면 자신의 마음을 이해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현기수사는 더 이상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 *

“무상진인 덕분에 무당파의 일이 쉽게 풀린 것 같습니다.”

예상외로 그들의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이 되자 악불군도 기분이 좋은 듯 표정이 아주 편했다.

“소군이 천륭검가의 후손이라 것도 큰 영향을 준 것 같아.”

“제가 천륭검가의 후손이라고 말한 것이 며칠 안 됐는데 정말 빨리 소문이 퍼진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소걸아 소협께서 왔던 것 기억나지?”

“당연히 기억합니다. 우리가 식사를 다 했다는 말을 듣고 너무 실망하던 모습이 지금도 선합니다.”

“내가 소걸아 소협께 소문을 내달라고 부탁했어.”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요?”

담수련은 천륭검보를 익혔으니 후손이 맞다고 했지만, 사실 천륭검가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는 그로서는 거짓을 말하는 것 같아 불편했던 것이다.

“이미 효과가 사방에서 나고 있잖아.”

피식!

그녀의 말에 악불군은 미소를 짓고 말았다.

“하긴 저희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 것은 느끼겠더군요.”

그동안 악불군을 만난 정파인들의 대다수는 그를 상당히 경계했다. 아직 신분이 불명확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천륭검가의 후손이라는 말이 퍼진 후 갑자기 매우 극진하게 대해 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군, 누군가 오고 있습니다.]

그때, 흑석영의 전음이 들려왔다.

[이곳으로 오는 것 같습니까?]

[예. 그런 것 같습니다.]

[막지 말고 그냥 두세요.]

[예!]

“왜?”

“상당한 마기를 뿌리는 자가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마기? 여기가 호북인데 마도인이 오고 있다는 말이야?”

“아까부터 느끼고 있었는데 우리를 찾아오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혈교는 아니지?”

“느껴지는 마기가 혈교나 구천마성의 마기와는 다릅니다.”

잠시 생각하던 담수련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소군이 유명해지니까 이젠 정파인만이 아니라 마도인도 소군을 찾아오네?”

“누군지 짐작이 가십니까?”

“대충은…….”

쿵! 쿵! 쿵…….

그때 육중한 발소리와 함께 늑대의 가죽으로 만든 파풍의를 입은 세 명의 남자가 주루 위로 올라왔다.

그들은 주루를 한 번 둘러보더니 악불군과 담수련이 앉아 있는 곳으로 곧장 다가왔다.

순간 악불군의 검미가 꿈틀했다.

그리고 곧 그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말을 탄 노인과 청년 두 명이 주루 쪽으로 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들이 하필 지금 여긴 왜 오는 거지?’

공교롭게도 정체를 모르는 마도인이 나타난 지금, 악불군이 별로 만나고 싶지 않던 인물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천호방의 방주이십니까?”

그들의 앞에 선 파풍의를 입은 남자들이 악불군에게 포권을 하며 물었다.

악불군은 창밖으로 향했던 시선을 돌리며 몸을 일으키더니 포권을 하며 물었다.

“제가 천호방의 방주 악불군입니다. 누구신지요?”

“전 혈해사계의 호법인 나백귀왕이라고 합니다.”

혈해사계라는 말에 악불군은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본 방과 혈해사계와는 접점이 한 번도 없었는데 갑자기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본 계의 지존께서 방주님께 전하라고 하신 것이 있어 왔습니다.”

나백귀왕은 품에서 봉서 하나를 꺼내 악불군에게 건넸다.

“봉서 하나를 전하러 나백귀왕 노선배께서 직접 오시다니, 뜻밖이군요.”

“절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면 안 되기 때문이겠지요. 그럼 전 이만.”

몸을 돌리던 나백귀왕의 시선이 계단 쪽으로 향했다.

한 명의 청년과 노인이 계단 위로 올라오는 것이 보인 것이다.

‘저놈이 누구관데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떨리는 것이지?’

청년을 본 나백귀왕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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