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385화 (385/472)

<천검지애 385화>

385화. 태동(1)

혈뇌의 말에 혈우대마종은 냉소를 입가에 그리며 말했다.

“계책이라기보다는 너무 뻔한 수작 같은데, 태양천주가 넘어가겠냐?”

“태양천주는 대단히 똑똑한 머리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자이기에, 뻔한 수작이 오히려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뻔한 수작으로 상대해 보겠다? 재미있는 발상이구나. 서로 이용하려 드는 경우 아쉬운 놈이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법이다. 네게 전권을 줄 테니 알아서 태양천을 상대해 보거라.”

“알겠습니다.”

“보고할 것이 더 있느냐?”

“천마전에서 원로 세 명과 천살단이 악불군을 제거하기 위해 공격했는데, 모두 시신으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천마전 원로면 상당한 고수들이 아니더냐?”

“예!”

“그런데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하고 모두 죽었단 말이지?”

“예.”

“악불군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무당파에 방문한 후, 지금 호남으로 넘어갔습니다. 다음으로 밝힌 행선지는 제갈세가라고 합니다.”

“그놈이 정파들을 방문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본 교와 그 계집들에 대해 공표한 후 시작한 강호행이니, 우리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하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연히 그럴 것 같긴 한데…… 무림맹을 안 간단 말이야?”

“악불군은 젊은 나이에 너무 빨리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아마 무황들도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신감이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무림맹과 대적할 것이라는 의미냐?”

“제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 권력을 눈앞에 두고 욕심을 부리지 않은 자는 없었습니다. 악불군 역시 자신이 정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려고 한다면 천제무황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당연히 무림맹을 분열시켜야겠지요.”

“악불군이 천제무황과 척질 거라는 말이냐?”

“당장은 아닙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될 것입니다.”

혈우대마종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사람의 욕심이란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은 법이지. 그런데 악불군 그놈은 좀 다른 것 같던데…….”

“지금 악불군은 가는 곳곳마다 사파들을 제거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양민들에게는 이미 무황들의 명성을 뛰어넘는 인기를 얻었습니다. 아직 세력으로는 많이 밀리지만 대세라는 것이 있습니다. 거기다 언제나 모든 공을 주원장에게 돌리는 것도 다 후일을 위한 포석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종들에게 재량권을 줬으니 두고 보도록 하자. 넌 태양천과의 협력에 대한 것에만 신경을 쓰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나가 봐라.”

“예!”

혈뇌가 나가자 혈우대마종은 창가로 다가가더니 뒷짐을 진 채, 밖을 보았다.

“빨리 정리한 것이 나았을까……?”

그는 악불군을 일찌감치 제거하지 않은 것이 실수였나 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 * *

백천학과의 만난 후, 열흘이 지났다.

무림 세력들을 보면 무조건 피하던 양민들이었지만 천호방의 깃발을 높이 든 악불군 일행이 나타나면 모두 나와 환영을 했다.

보통 정파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경우 사파와의 충돌을 피했다. 싸워 봐야 제자들이 다칠 뿐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담수련은 이번 강호행에서 양민들을 많이 괴롭히는 세력은 모조리 제거하는 것을 원칙으로 세웠다.

호북에서 호남으로 내려온 열흘 동안 멸문한 사파가 여섯 곳이나 됐고 불구자가 된 흑도 왈패들은 수십 명에 달했다.

그 소문이 퍼진 탓인지, 천호무적검이 온다는 소문이 나면 사파들이나 흑도들은 모두 현을 도망쳤다.

덕분에 양민들이 천호방을 환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와중 악불군의 위상은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천호방이 자신의 현으로 온다는 말을 들으면 그곳을 세력권으로 하는 문파는 간부들은 물론 수장까지 현의 입구까지 나와 영접을 할 정도였다.

심지어 현령이 나와 인사한 현도 있을 정도였다. 무황이 지나가도 현령이 나와 인사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제 무림만이 아니라 양민들까지 소군을 영웅으로 칭송하고 있는 거 알지?”

담수련은 창밖을 보더니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이 있는 주루의 밖에는 악불군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기 위해 수많은 양민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전 좀 불편합니다.”

“왜?”

“그럴 만한 자격이 있긴 한지 모르겠습니다.”

“소군은 그럴 만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어. 너무 겸손한 것도 소군에게 환호하는 저분들에게는 실례가 될 수 있어.”

“알겠습니다.”

“아직 식사 전이지?”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자 악불군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주루에 온 지 꽤 됐으면서 왜 지금 올라온 거냐?”

“이미 알고 있었어? 내가 개인적인 볼일이 좀 있었다.”

소걸아의 말에 악불군은 미소를 지었다. 그가 올라오기 전 매향과 대화를 시도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식사 전이니 너도 음식이나 시켜라.”

“먹을 새는 없고, 좀 싸서 갈 테니까 돈만 내라.”

“뭐가 그렇게 바쁜 거냐?”

“겨우 친구 하나 사귀었는데 그 친구 보살피기가 너무 힘드네!”

너스레를 떨며 자리에 앉은 소걸아는 담수련을 보며 물었다.

“담 군사님 식사를 제가 방해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소걸아 소협은 언제든지 환영이니까 그런 염려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감사하고요. 사실은 남 무림에서 사건이 벌어져서 왔다.”

“남무림?”

“강서 남부에 정천보라는 신생 문파가 생겼는데, 누가 세운 건지는 몰라도 처음부터 상당히 강력한 전력을 가지고 나타났다. 화룡세가의 위성 문파 같다는 첩보도 있긴 한데 정확한 것은 아니라서 말하기 그렇고. 어쨌든 구천마성이 강서 남부의 동쪽을 장악하고 있는데 갑자기 서쪽을 장악해 버렸으니 두 세력 간에 알력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건데…….”

악불군과 담수련은 정천보가 화룡세가에서 세운 곳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화룡세가의 모습이 잠룡세가와 크게 다를 것이 없어서였다.

“그 정도 말을 하려고 온 것은 아닐 테고, 사건이 정확하게 뭔데?”

“정천보가 밀리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거든, 그런데 갑자기 보름 전에 구천마성이 오히려 전멸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어.”

“보름 전까지 밀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강해졌다는 말인가요?”

담수련이 흥미가 생긴 듯 물었다.

“본 방의 제자들이 계속 주시하고 있었는데, 정천보가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화룡세가가 움직인 것은 아닌가요?”

“화룡세가 역시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또 사건이 벌어졌지 뭡니까?”

“정천보가 당한 모양이군요?”

“……허걱! 그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소걸아는 깜짝 놀란 듯 반문했다.

“구천마성이 어떤 세력인가요? 당하면 반드시 갚아 준다는 곳이 바로 그곳이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소걸아, 자세하게 말해 봐라.”

“구천마성에서 무려 삼백 명이 넘는 인원이 기습했고, 정천보는 완전 시산혈해로 변했다고 하더라.”

“결국 구천마성을 죽인 자들이 정천보가 아니었다는 말이네요.”

“그렇게 되는 겁니까?”

소걸아의 반문에 담수련은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 말했다.

“상황이 그렇잖아요?”

“그럼, 범인이 누군지도 아십니까?”

“소걸아 소협.”

“예!”

“생각하면 소걸아 소협도 금방 아실 거예요.”

“헤헤~ 전 생각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소걸아 소협, 얼마 전에 혈해사계에서 악 방주님께 어떤 제안을 했어요.”

“혈해사계요? 아니 그렇게 중요한 정보를 왜 지금 말씀해 주십니까?”

“악 방주님께서 말씀해 주시지 않으세요?”

소걸아는 악불군을 쳐다보았다.

“그건 네가 나타나지를 않아서 그런 거니까 뭐라고 하지 마라.”

“사방이 개방 제자들이니 아무나 불러서 말하면 내가 금방 달려올 텐데, 그게 변명이 되냐?”

“혈해사계에서 어떤 제안을 했는지 알고 싶지 않으세요?”

“아닙니다. 말씀하십시오.”

“혈해사계에서 천호방과 협력 관계를 맺고 싶다네요.”

“예? 그놈들이 미쳤나?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말이 안 되나요?”

담수련의 반문에 소걸아는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 받았다.

“사파 놈들은 언제 배신할지 모르는 자들입니다. 신의가 없는데 어떻게 협력을 하겠습니까?”

“필요한 부분만 협력한다면 가능하지 않겠어요?”

“담 군사님,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 겁니까? 농담이시죠?”

“농담 아니에요.”

“혈해사계와 협력 관계를 맺으면 악 방주가 지금까지 이룩한 명성을 단번에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은 생각 안 하십니까?”

“지금 혈해사계 때문에 사천과 섬서의 정파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모르세요?”

“혈해사계가 계속 세력을 확대하려고 하는데, 불안한 거야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럼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임으로써 그 주위의 문파들의 불안을 가시게 할 수 있다면 어떻겠어요?”

“그 문파들을 이해시킬 방법이 있다면 가능은 하겠지만, 혈해사계를 어떻게 믿습니까?”

“혈해사계와 천호방은 거리가 너무 멀어서 접점이 전혀 없어요. 그런데 왜 그들이 뜬금없이 우리를 찾아와서 그런 제안을 했을까요?”

“그거야 그놈들 마음인데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 대답에 담수련은 웃음이 나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이번에는 악불군을 보며 물었다.

“악 방주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 생각에는 혈해사계가 버거운 상대를 만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역시 악 방주님은 생각을 하시네요. 혈해사계가 구천마성하고 비교하면 좀 밀린다는 평가는 받지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다 아시지요? 그럼 어떤 세력이 그들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설마 저한테 물으시는 겁니까?”

소걸아는 당황한 듯 반문했다.

“걱정 마세요. 악 방주님께 물은 거니까요. 지금 남무림에서 일어난 일과 일맥상통하니까 잘 생각해 보세요.”

잠시 생각하던 악불군은 눈이 살짝 커졌다. 일맥상통이라는 말에 뭔가 머리에 떠오른 것이었다.

“혈교군요?”

“뭐? 혈교라고?”

“그래요, 혈교예요. 측천무후궁에서 우리에게 준 정보에 의하면, 혈교는 무림을 동서남북 네 구역으로 나누어 지배하고 있다고 했어요. 그들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그들이 남무림과 서무림에서 먼저 시작한 것 같아요.”

순간 소걸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만약 담수련의 예측이 사실이라면, 태양천을 몰아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무림에 혈겁이 몰아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었다.

* * *

“천후님, 도화각주님께서 배알을 청하십니다.”

측천무후를 만나고 천후궁으로 돌아온 천후는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녀는 측천무후궁의 전통적인 정책을 송두리째 바꾸려는 측천무후의 계획을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을 못 하고 있었다.

“들어오라고 해라.”

안으로 들어온 도화각주는 엎드려 절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방금, 남무림에서 혈교가 행동을 시작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정말이냐?”

“예, 확실합니다.”

“무림맹에서 부역자 처벌이 끝난 이후에 혈교가 발호할 것이라고 분석하지 않았느냐?”

“상황에 변화가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떤 변화?”

“저희는 정파가 부역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무림을 발칵 뒤집어 놓으면 그때 혈교가 무림맹의 뒤를 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때 저희 은화들을 이용해 구천마성과 혈해사계를 움직여 정사대전을 유발하고, 각 세력 내에 이간을 시켜 내분까지 만든다면 백 년 전의 혼란을 다시 야기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주원장이 영웅대회를 연다고 공표를 한 후, 무림 전체가 조용해졌습니다. 무림맹의 부역세력 추적도 중원 총순찰이 이끄는 세력만 움직일 뿐 어디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혈교에서는 더 기다리다가는 무림이 더 안정되고 전력도 더 강해질 것으로 예상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정면충돌까지는 하지 않겠구나?”

“혈교는 혼란만 줄 생각으로 나섰는지 모르지만, 그리 간단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유는?”

“악불군이 본 궁과 혈교에 대적할 세력을 규합하고 있다는 은화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또 악불군이냐?”

“천후님, 사도비류를 사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사도비류로 악불군을 제거할 수 있겠느냐?”

“독무각에서 사도비류에게 엄청난 독을 더 주입했습니다. 이미 혈독불사마공의 경지가 십성을 넘어섰습니다. 악불군의 검이 아무리 날카롭다 해도 사도비류의 몸을 뚫지는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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