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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390화 (390/472)

<천검지애 390화>

390화. 불화(2)

“저도 그게 좀 의아했습니다. 추 태상호법님께서 저희들을 살행에 보낼 때 절대 다섯 명 이상은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상을 보내면 아무리 조심해도 목격자가 꼭 나타난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사효조의 말을 들은 악불군은 담수련을 보며 물었다.

“소걸아에게 이곳으로 와 달라고 하신 이유가 그것입니까?”

“정보력과 감시 능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개방에서 전혀 발견한 것이 없다는 점이 좀 이상했어요.”

“아가씨께서 이곳을 들러서 가자고 하신 이유가 그것이었군요?”

“지금 혈교와 측천무후궁도 상대하기 힘든데, 태양천 세력이 여전히 중원에서 혈겁을 벌이는 것을 그냥 둔다면 결국 후환이 될 거라고 판단했어요.”

맞는 말이었다.

시시한 세력도 뒤에서 공격을 받으면 위험할 수 있는데, 태양천은 절대 간과할 수 없는 강력한 적이었다.

하지만 담수련이 이 일에 신경을 쓰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악불군을 영웅으로 만들겠다는 그녀의 계획은 예측을 넘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한 가지 모자란 것이 있었다.

악불군에게는 태양천과 직접적으로 싸웠다는 전공이 없었다.

만약 영웅회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무림인들이 악불군에게 ‘모두가 목숨을 걸고 태양천과 원나라를 몰아내기 위해 싸우고 있을 때 너는 뭐 했냐!’라고 말하면 대응하기가 곤란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담수련은 악불군의 명성에서 모자란 마지막 흠결을 없애기 위해서 이들을 꼭 처리해야 한다고 결정한 것이다.

“사 호법.”

“예!”

“시간이 좀 지나기는 했지만 이백 명 가까운 사람이 죽은 현장입니다. 샅샅히 뒤진다면 분명 조그마한 흔적이라도 있을 겁니다. 흑 호법에게 경계를 서는 방도들도 모두 수색에 참여하게 하라고 전하세요.”

“알겠습니다.”

사효조가 사라지자 악불군은 담수련을 보며 말했다.

“소걸아가 오고 있습니다.”

“그래! 시간을 딱 맞춰 오시는 것을 보니, 계속 우리 주위를 따라오는 것 같지 않아?”

“제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자기 볼일을 본다며 왔다가 금방 가곤 하는데, 연락만 하면 딱 시간에 맞춰 오는 것을 보면 저희 주위를 계속 맴돌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소걸아 소협이 우리를 감시할 리는 없으니, 우리를 호위하는 거네.”

담수련의 말에 악불군은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소걸아와 알게 된 후, 신기할 정도로 그들을 따라다니는 자들이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악 방주!”

악불군과 담수련은 그들의 귀를 울리는 즐거운 목소리에 저절로 미소를 짓고 말았다.

* * *

숲속 깊은 곳에 위치한 폐장원.

마치 귀신이라도 나올 듯 불빛 하나 없는 폐장에 한 여인이 옷을 펄럭이며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달빛에 빛나는 금빛 머리카락과 너무나도 아름다운 얼굴은 마치 월궁의 선녀 같았다.

금잔화였다.

폐허로 변한 폐장이었지만 그래도 멀쩡한 전각이 하나 있었다.

전각 안으로 들어선 주위를 살피더니 벽 쪽으로 걸어갔다. 한 걸음만 더 들어가면 그대로 벽에 부딪힐 것 같았지만 그녀는 조금도 망설임이 없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녀는 마치 유령처럼 벽을 그대로 통과하는 것이 아닌가…….

더욱 놀라운 것은 벽 안이었다.

전각보다도 더 큰 정청이 나타났는데, 밖과는 달리 안은 매우 밝았고 척 보기에도 비싸보이는 가구와 장식들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그녀는 이미 여러 차례 왔었던 듯 익숙하게 걸어가더니, 중앙 벽에 놓여 있는 태사의에 앉았다.

그렇게 일다경쯤 지났을까……

얼굴에 가면을 쓴 여인 세 명이 어디선가 나타났다.

“금령각주, 금후님께 인사드립니다.”

“은령각주, 금후님께 인사드립니다.”

“동령각주, 금후님께 인사드립니다.”

세 여인은 금잔화 앞에 급히 부복을 하며 소리쳤다.

“내가 온 것을 언제 알았느냐?”

“진을 통과할 때 저희에게 신호가 왔습니다. 오신다고 연락을 주셨으면 배웅이라고 나갔을 것인데, 어찌 말도 없이 오셨습니까?”

“대공이 내 정체를 눈치챘다.”

측천무후궁에서는 원나라 황실에 삼십 명이 넘는 간세를 심어 놓았었다.

간세들의 수장은 금잔화의 어머니인 금령궁주였다. 비록 후궁에 불과했지만 황제의 총애를 받은 덕에 대단한 권력을 행사했던 여인이었다.

금잔화는 어머니 덕에 태어나면서부터 측천무후궁의 궁도가 되었다.

금령궁주인 그녀의 어머니는 큰 공을 인정받아 측천무후궁의 최고위직인 후에 봉해지면서 금후로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십 년 전 일어났다. 황궁의 암투 중에 금령후가 누군가에게 암살을 당하고 만 것이었다.

측천무후궁의 금후로서가 아니라 황제의 후궁으로 권력을 휘두르다 화를 입은 것이다.

측천무후궁에서는 아직 어린 금잔화를 다음 대 금후로 봉한 후 원나라 황실을 맡겼다.

황제는 금령후의 죽음에 대노하여 어사대를 총 출동시켜 범인 색출에 나섰지만 결국 범인은 찾아내지 못했다.

후궁의 딸은 어머니가 죽으면 군주의 직위를 받는다. 하지만 말만 군주지, 언제 죽을지 모를 정도로 위태로운 자리이기도 했다.

측천무후궁에서는 금령궁주와 같은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그녀의 경호를 더 철저하게 했지만, 황궁의 암투는 누가 적인지조차 알 수 없어서 보호하는 데 문제가 많았다.

그런 그녀에게 커다란 행운이 찾아왔다.

우연히 황궁에 들른 대공의 눈에 띄어 태양천과 연관을 맺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대공은 그녀의 특이한 신체를 단박에 알아보고는 황제에게 간청해 그녀를 태양천으로 끌어들였다.

그녀가 대공의 밑으로 들어간 것은 그녀에게는 실로 천우신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인 황제 역시 몇 년 후 암살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대공이 없었다면 그녀는 새로운 황제와 권력자들에게 어떤 꼴을 당했을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태양천주인 대공의 비호를 받는 그녀였기에. 새 황제조차 건드리지 못했다.

거기다 태양천 덕에 황궁 밖 출입이 자유로워지면서 자신의 근거지를 천하 여러 곳에 구축할 수 있었고, 측천무후궁의 무공까지 익힐 수 있었다.

의심 많은 대공이 금잔화를 믿었던 이유도, 그녀가 그를 만날 때까지 황궁을 나간 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간세일 줄은 그조차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보고해 봐라.”

금잔화의 명에 금령각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천후께서 왜 금후님은 연락이 되지 않느냐고 저희에게 역정을 내셨습니다.”

순간 금잔화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태후 산하의 은화였던 어머니가 큰 공을 인정받아 금후가 되었지만, 천후는 여전히 같은 후인 자신을 수하처럼 대하는 것이 매우 못마땅한 그녀였다.

‘늙은 여우가 매번 짜증 나게 하는군.’

“이유가 뭐냐?”

“악불군에게 대해서 알아볼 것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금잔화의 아미가 좁아졌다.

악불군을 자신의 수하로 삼기 위해 계책을 세웠던 그녀에게 악불군에게서 손을 떼고 건드리지 말라고 해서 떼었는데, 이번에는 알아보겠다고 연락했다니 그녀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뭐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고 하더냐?”

“그것은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악불군과 담수련에 대해서는 천화궁주가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왜 내게 묻는 거지?’

잠시 생각하던 금잔화는 다시 물었다.

“천후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 지 아느냐?”

“얼마 전, 운우각주가 악불군에게 죽었습니다. 아무래도 그 일 때문에 그러시지 않나 싶습니다.”

“운우각주가 악불군에게 죽었다고?”

“예.”

“자세히 말해 봐라.”

천후궁의 여러 계획이 악불군에 의해 무산되면서 제거 명령까지 떨어졌다는 보고를 듣는 순간, 금력군주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나타났다.

‘악불군이 운우각주를 그렇게 간단히 제거할 정도로 강해졌다는 말인데……. 악불군만 내 수하로 거둘 수 있다면 금후궁의 힘이 다른 궁을 압도할 수도 있겠군.’

금잔화의 머리가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그녀 역시 악불군의 명성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그녀는 무엇을 믿고 악불군을 자신의 수하로 만들 수 있다고 자신을 하는 걸까…….

* * *

“그러니까, 담 군사님 말씀은 적이 먼 곳에 있지 않을 거라는 겁니까?”

소걸아가 가져온 태홍장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모두 자세히 읽은 담수련은 단언하듯 말했다.

“소걸아 소협도 생각해 보세요. 수십 명이나 되는 자들이 개방에 전혀 걸리지 않고 이곳을 빠져나간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담 군사님께서 개방의 정보력에 대해 대단하게 생각해 주시는 것은 좋긴 합니다만, 원래 거지란 것이 좀 게을러서 감시하면서 딴짓을 꽤 많이 합니다. 그러다 보니 감시할 사람이 많은 것에 비해, 놓치는 구멍이 꽤 많습니다.”

“그렇다 해도, 이렇게 완벽하게 사라진다는 것은 말이 안 돼요. 또 하나! 태홍장을 멸문시킨 후에 지금까지 가만히 있는 것도 의구심을 가지게 하는 일이지요.”

“그게 무슨?”

“태홍장 사건이 알려진 후, 사방을 이백 리 이상 뒤졌잖아요.”

“그렇지요. 사실 지금도 분타주들이 천강개까지 동원해 사방을 뒤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요. 태양천이라면 분명 다른 곳도 공격해야 해요. 그런데 아직까지 조용하다는 것은 개방의 눈을 피할 방법이 없기 때문일 거예요. 개방의 제자들이 뒤지는 이백 리 안에 그들의 근거지가 있는 것이 분명해요.”

말을 마친 담수련은 지도를 꺼내더니 태홍장의 위치를 살폈다.

“이것이 태홍장이에요. 개방은 그들의 정체를 알고자, 약 이백 리 길을 뒤지고 있어요. 만약 그들이 현에 숨었다면 이 세 곳, 사람들이 없는 곳에 숨었다면 여기 다섯 곳 중 하나에 그들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담수련이 가리킨 여덟 곳은 태홍장에서 이백 리 안에 들어 있는 곳이었다.

여덟 곳을 가리키는 담수련의 말에 소걸아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이곳에서 무슨 증거라도 찾으셨습니까?”

“여기 온 지 반 시진밖에 안 됐는데 무슨 증거가 있겠어요?”

“이백 리 안에 현만 이십 곳이고 산은 부지기수로 많은데, 그 여덟 곳을 콕 짚으시니 신기해서 그럽니다.”

“소걸아 소협께서 제게 계속 정보를 주셨잖아요? 그리고 오늘 가져온 정보가 제게 확신을 줬어요.”

소걸아는 담수련이 태홍장 사건에 대해 들은 이후, 계속 그들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사라졌을까를 분석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당장 특정하신 곳을 조사하라고 지시를 하겠습니다.”

“비록 위세가 떨어져 숨어 있지만 태양천입니다. 절대 방심하시면 안 됩니다. 수상한 점을 발견하면 즉시 저희에게 연락을 주세요.”

“태양천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담 군사님의 조언대로 최대한 조심해서 조사하겠습니다. 그럼 악 방주와 담 군사님은 어디로 가실 예정이십니까?”

“저희는 이곳으로 갈 거예요.”

담수련이 여덟 곳 중 한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녀가 예상한 지역 중 가장 의심스러운 곳이었다.

* * *

“찾지 못했습니다.”

온금하의 말에 철무정은 주먹을 꽉 쥐었다.

간신히 통로를 열긴 했지만, 금잔화에 대해 잘 아는 철무정은 추적이 가능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금령단이 모두 이곳에 있고 가장 측근인 금령사자도 없이 혼자 도망을 쳤다면, 갈 곳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 아니냐?”

금잔화는 생긴 모습부터 중원인들과 달라 사람들 눈에 확 띌 수밖에 없었다.

“……사방에 개방 놈들이 수색하고 있어서 저희도 무작정 추적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한 달이나 지났는데 개방 놈들은 왜 아직도 수색을 하고 있다는 거냐?”

“저희들의 짓이라는 것을 눈치챈 모양입니다.”

온금하의 말에 철무정의 표정이 굳어졌다. 괜한 자신의 욕심 때문에 쓸데없이 자신들의 흔적만 보인 것이, 지금 그들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그때, 수하 한 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천주님! 천주님께서 오셨습니다.”

철무정과 온금하는 벌떡 일어섰다.

드디어 대공이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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