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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392화 (392/472)

<천검지애 392화>

392화. 대공(2)

“개방에서 곧 눈치를 채고 대규모로 몰려올 것이다. 최대한 빨리 증거를 모두 없애고 행적을 숨겨야 한다.”

“한 시진이면 깨끗하게 정리될 것입니다.”

“이번 임무는 지금까지 상대한 적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잊지 마라!”

“예!”

“그럼 나가 봐라.”

명을 들은 온금화가 나가자, 철무정은 그의 옆에 앉아 있는 두 명의 태양십존을 보며 물었다.

“이곳에서 가까운 문파들도 많은데 굳이 까다로운 제갈세가를 겨냥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공은 임무에 대한 명을 자신의 최측근인 태양십존 중 태양삼존과 팔존, 그리고 태양혈랑단 이 개 대를 남기고는 반 시진도 안 되어 다른 곳으로 떠났다.

절대 옆에서 떼어 놓지 않는다는 태양십존과 태양전사단과 함께 태양천 최고의 정예로 일컬어지는 태양혈랑단까지 남겨 놓고 갔다는 것은, 이번 임무를 반드시 성공시키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천주님께서는 중원의 지낭 역할을 하는 제갈세가를 먼저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하신 듯합니다.”

분명 전쟁에 필요한 것은 무력이었다. 하지만 머리가 없으면 그 힘은 제대로 운용할 수조차 없다.

“제갈세가는 여기서 최소한 삼 일은 가야 하는데 개방 놈들이 아직도 사방에서 수색하고 있으니, 그게 좀 걱정입니다.”

“그래서 속전속결을 해야지요. 놈들이 우리를 발견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놈들을 죽이고 간다면, 놈들은 우리 뒤나 쫓게 될 것입니다.”

철무정의 아버지인 철장표는 태양십존의 무공이 십대고수로 불리는 자신보다 더욱 높다고 표현했다. 그런 그들이 둘이나 옆에 있으니, 철무정으로서는 무서울 것이 없어야 했다.

하나, 그는 이상할 정도로 불안했다. 하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태양천의 소천주로 겁쟁이 같은 모습을 보일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불안해하는 사람은 그만이 아니었다.

태양십존은 대공과 함께 수백 번이 넘는 전투를 벌인 백전노장이었다.

초원의 전사로서 싸우다 죽는 것을 가장 명예롭게 생각하는 그들에게 두려움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 대공이 떠난 후, 그들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그런 느낌을 내색할 수는 없었다.

“천주님과 연락은 언제 될까요?”

철무정은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기 위한 듯, 화제를 돌렸다.

“일이 성공하고 확실하게 그들의 추적까지 벗어나면 그때 천주님께서 연락이 오실 것이오.”

대공은 자신의 행적을 절대 먼저 알려 주지 않았다. 그의 행적을 아는 자가 잡힐 경우, 고문이든 회유로 자신의 행적을 적에게 토설할 것을 우려해서였다.

“그래도 소천주로서 천주님께서 어떤 일을 계획 중이신지 정도는 알 자격이 되지 않겠습니까?”

“……천주님께서는 직접 적들의 요인을 암살하시기로 했다는 것만 알려 드리리다.”

“드디어 천주님께서 직접 움직이시다니, 곧 태양천의 시대가 다시 돌아오겠군요?”

철무정의 얼굴이 환해졌다.

대공이 직접 무림의 고수들을 제거한다면 다시 무림을 차지하는 것은 여반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태양삼존과 팔존의 입은 굳게 닫혀 있을 따름이었다.

* * *

흑석영을 비롯한 호법들과 무공이 강한 방도들만 끌고 온 악불군은, 남민산의 중턱에 도착하자 손을 들어 행렬을 멈췄다.

“누구 있어?”

백설을 타고 악불군의 옆에 바짝 붙어 있던 담수련은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약 이백 장 앞에 상당수의 무림인들이 모여 있습니다.”

말을 타고 달리는 도중에 이백 장 거리에 있는 무림인들을 감지한다는 것은 실로 경악할 일이었지만, 담수련은 이제 그 정도로는 놀라지 않았다.

“태양천일까?”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이제부터 모든 대화를 전음으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말을 마친 악불군은 호법들을 보며 명을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신법을 사용해서 갑니다. 우선 흑 호법과 사 호법은 천호특수단을 끌고 제가 가리키는 곳으로 가십시오. 대단한 고수가 있는 것 같으니 모두 은잠술을 사용하십시오.]

[예!]

대답한 흑석영과 사효조가 악불군이 가리킨 방향으로 십여 명의 수하들을 이끌고 달려갔다.

[대호법.]

[예!]

[대호법은 천호사기단원 두 명과 함께 산 밑으로 내려가십시오. 소걸아가 이끄는 천강개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을 데리고 저곳으로 오십시오.]

[알겠습니다!]

대독관이 두 명의 천화사기단을 데리고 산 밑으로 사라지자 악불군은 최욱걸에게 명했다.

[싸움이 시작되더라도 최 호법은 끼지 말고 담 군사님만 호위하십시오.]

[예!]

[그럼 올라갑니다.]

* * *

“소천주님,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온금하가 보고하자 철무정은 태양십존을 보며 말했다.

“두 분께서는 말을 타시겠습니까?”

“우린 신법이 더 편합니다.”

태양삼존의 말에 철무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온금하를 보며 말했다.

“가자!”

밖으로 나오자 도열해 있던 이백 명이 넘는 수하들이 철무정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오룡세가 시절 철무정은 태양천의 정예들을 볼 때마다 그들이 자신의 수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그런데 태양천에서도 가장 강한 태양전사단과 태양혈랑단이 지금 자신의 앞에서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철무정의 입에서는 흡족한 미소가 나타났다.

그때, 태양삼존과 태양팔존의 얼굴이 굳어졌다.

“느꼈냐?”

“너도?”

서로를 쳐다본 둘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무엇을 느꼈다는 것입니까?”

철무정은 의아한 듯 물었다.

“소천주께서는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뭘 말입니까?”

“장원 주위에 수상한 놈들의 기가 느껴졌습니다. 대략 서너 명쯤 됩니다.”

“서너 명이면…… 이 거지 놈들이 정말 질기군.”

철무정은 또 개방의 제자들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개방 놈들이 아닙니다. 소천주님이나 온 단주 무공이면 느낄 수 있는 거리인데 못 느끼시는 것을 보면, 살수 무공을 익힌 놈들입니다.”

“살수라는 말입니까?”

“느껴지는 기가 살수들입니다.”

철무정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그도 악불군의 수하 중 살수로 보이는 자들이 많다는 소문은 들은 터였다.

“온 단주!”

“예!”

“주위에 쥐새끼들이 있는 모양이다. 당장 잡아들여라!”

* * *

장원을 발견한 사효조는 우선 수하들에게 포위를 명했다.

‘이것 봐라……. 너무 많은데?’

안을 살피던 사효조는 예상외로 많은 무사들의 기를 느끼자 깜짝 놀랐다.

지금 악불군을 호위하는 천호방도는 겨우 삼십 명 정도였다.

그렇다고 무공이 낮은 것 같지도 않았다. 아니 정면 대결을 한다면 오히려 천호특수단원들이 밀릴 것 같았다.

‘우리가 너무 급하게 행동한 것 같구나…….’

수적(數的)으로도 열세인데 무공까지 밀린다면 싸움이 될 수가 없었다.

[모두는 조금의 소리도 내지 말고 감시만 해라.]

악불군에게 빨리 보고해야겠다고 판단한 그는 수하들에게 전음을 보내고는 몸을 날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몸을 숨기고 말았다.

장원 안에서 삼십 명이 넘는 무인들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사효조는 긴장한 표정으로 그들을 살폈다. 그들은 모두 무기를 빼들고 있었다.

‘설마…… 우리를 느낀 자가 있다는 말인가?’

장원에서 가장 가까운 수하도 최소한 이십 장은 떨어져 있었고, 거기다 은신술까지 펼치고 있었다.

사효조는 자신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고수가 안에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예상대로, 밖으로 나온 무사들은 방도들이 숨어 있을 것 같은 장소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뒤로 물러선다!]

살수가 자신보다 강한 자를 죽일 수 있는 것은 목표물이 살수의 위치를 모를 때 가능한 일이었다. 그 것은 위치가 발각되는 순간 살수는 죽는다는 말이었다.

사효조의 전음을 들은 방도들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움직인 것이 더 큰 위험으로 그들을 몰고 갔다.

“쥐새끼 같은 놈들!”

대주 한 명이 즉시 눈치를 채고는 공격에 들어갔다.

챙!

무기와 무기가 마주치는 소리와 함께 천호방도의 모습이 나타났다.

[공격해라!]

수하가 피할 길이 없다고 판단한 사효조는 명령을 내리며 공격에 들어갔다.

“아악!”

태양전사단 한 명이 다리에서 극심한 고통을 느끼자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의 발목에는 예리한 겸이 박혀 있었다. 사효조의 애병이었다.

“이놈!”

그때 또 다른 태양전사단이 사효조를 향해 공격해 왔다.

“이놈들, 살수가 확실합니다!”

공격했던 태양전사단원은 사효조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자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으흑!”

그때 천호방도 한 명이 단말마를 터뜨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목에는 커다란 도가 박혀 있었다.

“서너 명이 아니다! 모두 조심해라!”

목에 박힌 도를 뽑아 낸 대주는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또 다른 천호방도가 대주의 등을 향해 검을 찔러 갔다.

쿵!

하지만 그는 어디선가 날아온 장풍에 허리를 맞고 일 장 가까이 날아가더니 아름드리나무에 강하게 부딪히며 떨어졌다.

장의 위력이 어찌나 강했는지 떨어진 천호방도는 축 늘어져 있었다. 입에서는 피를 콸콸 쏟아 내고 허리가 접힌 것이, 장풍에 의해 척추가 바스러진 것 같았다.

백인막이 자랑하는 특급 살수답게 사효조는 치고 빠지며 네 명의 태양전사단원을 쓰러뜨렸지만, 그사이 천호방도는 이미 여섯 명이나 죽고 말았다.

휘이이잉!

공간을 가르는 뾰족한 굉음과 함께 사효조를 향해 공격하던 대주가 가슴이 뚫린 채 고꾸라졌다.

“이기어검이다!”

대주의 가슴을 뚫은 천륭검이 방향을 틀어 또 다른 태양전사단원을 향해 날아가자 누군가 커다랗게 소리쳤다.

타타타타탁!

이기어검이라는 소리가 퍼지자 곧 장원 안에서 백 명이 넘는 무사들이 물밀 듯이 쏟아져 나왔다.

“악불군이냐!”

온금하의 호위를 받으며 밖으로 나온 철무정은, 하늘을 날며 종횡무진 자신의 수하들을 제거하는 천륭검을 보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외쳤다.

자신의 이름을 부른 자를 자세히 살펴보던 악불군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그의 앞으로 날아갔다.

“철 공자, 오랜만이오.”

“오랜만이오? 호위 무사나 하던 놈이 감히 내게 반말을 한 것이냐! 그때 그냥 죽여 버릴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살려 줬으면 구명지은의 감사를 해도 모자랄 판인데, 감히 대적까지 하려는 것이냐?”

악불군은 철무정의 노기에 찬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주위를 살폈다. 일급 살수들의 은신술을 금방 알아낼 수 있는 고수가 있을 줄은 그도 예상을 못했기 때문이었다.

‘실수구나……. 이렇게 많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검을 들어 앞으로 향한 철무정을 향해 악불군은 또다시 그의 화를 돋우는 말을 했다.

“천하의 철 공자가 이런 어두컴컴한 곳에 쥐새끼처럼 숨어서 목숨을 연명하고 있을 줄은 몰랐구나.”

“내 반드시 네놈의 입을 완전히 찢어 버려 주마!”

외침이 가시기도 전에 온금하가 악불군을 향해 공격을 가해 왔다.

대단히 현란한 초식이었지만 악불군을 상대하기에는 매우 부족한 움직임이었다.

그때 악불군의 눈이 철무정의 뒤에 서 있는 두 명의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나를 계속 자극한 자가 바로 저자들이었던가…….’

악불군은 태양삼존과 팔존을 보자 살짝 놀라고 있었다. 구천마성이나 측천무후궁의 장로급 고수들에 보다도 반 수 이상 강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네놈이 악불군이라는 놈이냐?”

무표정하게 서 있던 태양삼존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그렇다면 어쩔 생각이시오? 설마 내가 좋아서 따라다닌 것은 아니겠지요?”

악불군이 태양삼존과 대화까지 하면서도 자신의 전력을 다한 공격들을 간단히 막아 내자 온금화의 얼굴은 불안한 표정으로 변해 갔다.

악불군에 대한 소문은 그도 다 들었기 때문이었다.

“온 단주 너는 소천주님을 보호해라. 저놈은 우리가 제거하겠다.”

온금하의 실력으로는 악불군을 이길 수 없다고 본 듯, 태양삼존과 팔존은 몸을 날려 악불군의 앞뒤로 내려섰다.

“감히 스스로 죽을 곳을 찾아 들어오다니, 운이 참 없는 놈이구나.”

태양삼존의 말에 악불군은 차갑게 말했다.

“너희들은 오늘 이곳에서 한 명도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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