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393화 (393/472)

<천검지애 393화>

393화. 악불군(1)

악불군의 한마디와 동시에 악불군의 몸에서 감당하기 힘든 거력이 뿜어져 나오자, 태양삼존과 팔존의 얼굴이 확 변했다.

‘이, 이, 이놈 뭐야?’

악불군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절대자의 기도를 느낀 태양삼존은, 자신들이 악불군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태양천에서는 악불군을 운 좋게 천륭검보를 얻어 무공만 높아진 무림인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철무정이었다.

자신의 손가락 하나만 까닥하면 무릎을 꿇리고 죽일 수 있었던 악불군이 자신을 능가하는 기도를 보이자, 그렇지 않아도 가지고 있던 질투심이 더 폭발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천륭검보를 반드시 자신이 차지해야겠다는 욕심까지 더 커졌다.

일개 호위무사 따위가 천륭검보를 얻어 저 정도가 되었다면 자신은 당장에 무림의 황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담무룡이 수십 년 동안 검보를 가지고 있으면서 익히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는 전혀 생각도 안 하는 그였다.

철무정은 자신의 도를 악불군에게 겨누며 소리쳤다.

“악불군! 천륭검보는 천한 네놈이 가질 물건이 아니다. 천륭검보만 순순히 내놓는다면 오늘 네놈의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철 공자는 가질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나? 너는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떤지 파악도 못 하는 미련한 자다. 그런 머리로 천륭검보를 어떻게 익히겠다는 것이냐?”

철무정은 대노한 듯 얼굴에 살기를 띠며 말했다.

“천한 놈이 자신의 위치도 모르고 입을 함부로 놀리는구나! 지금 네놈의 수하들이 어떤 꼴인지 안 보이느냐?”

철무정의 말대로 지금 천호방은 형편없이 몰리고 있었다. 흑석영을 비롯한 두 명의 호법이 분전하고 있었지만, 수적인 열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악불군의 천륭검이 여전히 날아다니며 공격하고 있지 않았다면 벌써 전멸했을 수도 있었다.

“내가 이 자리에 있음이, 바로 너희가 이길 수 없는 이유다.”

소리친 악불군은 천륭검보의 자세를 취하며 소매를 뿌렸다. 그러자 그의 소매에서 이십 개가 넘는 단검이 날아갔다.

“으아악!”

“커억!”

순식간에 이십여 명의 태양천 무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저, 저게 가능한 것인가…….’

태양삼존과 태양팔존은 가슴이 서늘해 오는 것을 느꼈다.

악불군의 천륭검이 아직도 날아다닌다는 것은 그가 여전히 이기어검을 펼치고 있다는 증거였다.

거기다 태양삼존과 팔존 그리고 철무정이 삼 면으로 그를 포위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암기 공격을 한다는 것은 악불군이 기를 세 곳으로 나누어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인데, 경험이 풍부한 태양삼존과 팔존조차도 기를 세 개로 나눈다는 것은 생각조차 해 본 적 없었다.

[저놈이 양심신공이라도 익힌 것 같다. 하지만 더 이상 기를 나눌 수는 없을 터, 당장 공격한다!]

태양삼존은 악불군이 자신의 병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듯, 전음을 보내자마자 공격에 들어갔다.

전음을 들은 태양팔존 역시 공격을 시작했다.

수십 년을 같이 싸운 그들의 협공은 대단히 빠르고 시기적절했다.

피잉! 핑!

순간 악불군의 손에서 무엇인가가 빠르게 둘을 향해 날아갔다. 어찌나 빠른지 마치 빛줄기가 그들을 향해 날아가는 듯했다.

육관우의 혈단궁을 바탕으로 담수련이 새로이 설계하여 만든 천호단궁이었다.

탕!

타탕!

태양삼존과 팔존은 너무 빠른 속도에 더 이상 공격하지 못하고 급히 무기를 들어 막아 냈다.

둘이 천호단궁에 의해 멈칫하는 사이 악불군은 자세를 빠르게 바꿔 가며 태양천 무인들을 향해 장을 뿌렸다.

“으아악!”

“아악!”

태양삼존과 팔존 사이로 뻗어 나간 강력한 강기는 한 번에 무려 삼십여 명을 강타했다. 그들이 뭉쳐 있었기에 그 피해는 더 컸다.

그리고 그들의 진세가 흐트러지자 흑석영을 비롯한 호법들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쳐라!”

그때 어디선가 소걸아의 외침이 들려왔다.

‘좀 빨리 오지, 쯧!’

소걸아의 외침을 들은 악불군은 혀를 살짝 찼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그려지고 있었다.

갑자기 백 명이 넘는 거지들이 나타나자 철무정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는 온금하에게 빨리 모두 제거하고 악불군 공격에 가담하라고 전음을 보냈었다.

하지만 소걸아와 천강개의 합세로 악불군을 그들 세 명으로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도대체 천륭검보에 어떤 무공이 수록되어 있기에 저 천한 호위무사 놈이 이렇게 강해진 거지?’

철무정은 태양삼존과 팔존까지 함께 협공하면서도 자신이 겁을 내고 있는 지금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태양삼존과 태양팔존 역시 떨고 있다는 것을 그는 몰랐다.

그들은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들이 왜 지금 떨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알고는 있지만 믿을 수 없다는 말이 맞았다.

상대를 기만으로 겁을 줄 수 있는 경지는 최소한 두 단계가 위여야 했다. 그리고 태양삼존과 팔존은 화경의 경지에 이른 초절정 고수였다.

다음 단계는 현경의 경지인데 반선지경의 경지라고도 불린다. 화경에 이른 고수는 무림에 수두룩했다.

그러나 현경에 오른 고수는 한 세대에서 몇 명밖에 없을 정도로 극소수였다.

한 단계 차이지만 그 차이가 엄청남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두 단계라면…….

그것은 하늘과 땅 차이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저놈이 설마…… 생사경에 올랐다는 말인가……. 아니야, 저 나이에 말도 안 돼.’

중얼거리던 태양삼존은, 악불군이 누군가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시선을 따라갔다.

[온 단주, 피해라!]

악불군이 주시한 자는 태양천에서 가장 활약이 큰 온금하라는 사실을 깨달은 태양삼존은 급히 전음을 보냈다.

태양삼존의 전음을 들은 온금하는 깜짝 놀라 좌우를 둘러보았다.

쉬이익!

온금하는 자신을 향해 빠르게 날아오는 천륭검을 보자 다급하게 보법을 펼쳤다.

초절정 고수답게 그는 현란한 보법을 사용해 천륭검을 피하는 데 성공했다.

천륭검을 피한 온금하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태양삼존의 경고가 없었다면 그대로 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헉!”

안도하던 온금하는 자신의 옆구리를 관통하는 극심한 고통에 침음성을 터뜨렸다.

자신을 지나친 검과 자신을 관통한 검.

분명 한 개의 검이 두 개로 분리된 것이다.

“비, 비겁한 놈!”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느낀 온금하는 억울한 듯 손가락을 들어 악불군을 가리키려고 했다.

“컥!”

“주군께 불경하게 구는 놈은 죽음뿐이다.”

온금하는 자신의 사타구니를 뚫고 심장까지 검이 꽂히자 즉사하고 말았다. 그를 끝장낸 사람은 흑석영이었다.

“온…… 단주…… 악불군! 네 이놈!”

온금하가 죽는 것을 본 철무정은 미친 듯 소리를 치며 악불군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핑!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천호단궁이 날아갔다.

탕!

천호단궁을 쳐낸 철무정은 그대로 짓쳐나가며 도를 내리쳤다.

그 순간 태양삼존과 태양팔존도 악불군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들이 악불군이 온금하를 죽이는 것을 보면서도 공격을 하지 못한 것은 이미 악불군에게 기에서 밀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철무정이 천호단궁까지 쳐 내며 공격에 들어가자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것이다.

둘까지 공격에 가담하자 악불군의 자세가 빠르게 바뀌기 시작했다.

태양삼존과 태양팔존은 순간 표정이 불안하게 변했다.

악불군의 자세는 너무 빨라 자세히 볼 수도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초식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을 정도였다.

[소천주, 이번 공격이 실패하면 우선 피하십시오. 악불군은 저희 둘이 막겠습니다.]

태양삼존은 이미 자신들이 악불군의 상대가 안 된다고 판단한 듯, 철무정을 피신시키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태양삼존의 전음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철무정의 도는 악불군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설명은 길었지만 철무정이 공격한 시점과 태양삼존이 전음을 보낸 시점은 찰나라고 해도 될 만큼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 이놈이! 이게 무슨 수법이야……?’

철무정은 자신의 도가 분명 악불군의 머리를 가격했건만 마치 연기처럼 그대로 통과해 버리자 당황한 표정이 역력해졌다.

보법의 초절정으로 불리는 이형환위(移形換位) 수법과 비슷했지만 분명 그것은 아니었다.

악불군은 천륭검보의 자세를 통해 무공을 사용할 때 보법이 필요 없다는 것을 얼마 전 알았다.

그 자세 안에 보법까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검법은 물론 도법, 장법, 권법 심지어 강기공까지 모든 수법으로 변환이 가능한 무공이 바로 천륭검보였다.

검황이었던 구문황까지 몰랐던 깨달음이었다.

악불군의 손이 철무정의 목을 잡아 갔다. 하지만 그의 등과 허리를 노리는 태양삼존과 팔존 때문에 우선 손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악불군은 자세를 비틀어 태양팔존의 괴형검을 옆으로 살짝 피하며, 태양삼존의 권을 장으로 부딪쳐 갔다.

“죽어라!”

자신이 방금 얼마나 위험했는지 짐작도 못 한 철무정은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악불군의 눈에 이채가 나타났다.

철무정의 도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태양천이 자랑하는 태양광열도였다.

극도의 양강의 진기를 머금은 철무정의 도는 광채만이 아니라 돌이라도 녹일 듯한 강렬한 열기까지 뿜어내고 있었다.

뒤는 태양팔존의 괴형검이 옆으로는 태양삼존은 태양폭혈권이 짓쳐오고 있었다.

화경의 고수 두 명의 합공을 받아 낼 수 있는 무림인이 천하에 몇 명이나 될까?

그런데 화경의 경지는 아니지만 태양천 최고의 절기를 구사하는 철무정까지 공격하고 있으니, 악불군이라도 그 엄청난 위력을 막아 낼 수는 없어 보였다.

휘이이잉!

공간을 가르는 굉음과 함께 몸을 뒤로 젖히며 철무정의 도를 피한 악불군의 손에 천륭검이 잡혔다.

검을 잡은 악불군은 몸을 젖힌 상태에서 회전했다.

그러자 악불군의 주위에 검막과 함께 강한 검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타다당!

탕!

쾅!

고막을 찢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연달아 이어지더니 곧 엄청난 폭음과 함께 강력한 강기의 폭풍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화경의 경지에 오른 태양삼존과 팔존의 내공의 합은 거의 오 갑자에 달했다. 거기다 철무정까지 합치면 육 갑자를 상회했다.

그 엄청난 힘과 악불군의 강기가 부딪쳤으니 그 힘을 실로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뒤로 피해라!”

싸움을 지휘하던 소걸아는 급히 제자들에게 소리쳤다.

퍼져오는 기의 위력이 너무 강해, 그대로 맞았다가는 치명상을 입을 것이 분명했다.

“피해라!”

소리를 지른 것은 소걸아만이 아니었다. 태양혈랑대의 대주 역시 위기를 느낀 듯 소리치자 뜻하지 않게 싸움이 멈추게 되었다.

분분히 몸을 날려 십여 장 넘게 뒤로 피했지만 결국 몇 명은 큰 부상을 입고 말았다.

물러난 모두는 싸움할 생각도 잊고 한 곳을 주시했다.

소걸아는 악불군을 믿었지만 상대가 상대인지라 손에 땀을 쥘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느껴지는 기가 한 명뿐이었는데 악불군의 기가 아니란 사실이 더욱 그를 불안하게 하고 있었다.

그때 그의 귀에 흑석영의 전음이 들려왔다.

[소걸아 소협, 흑석영입니다. 적들이 도망을 칠지도 모릅니다. 퇴로를 막도록 명령해 주십시오.]

소걸아는 흑석영의 전음에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탄성을 뱉었다.

전력이 비슷할 때 군사를 분산시켜 적을 포위하는 것은 병법에서는 금기 사항이었다.

그럼에도 흑석영이 그런 전음을 보낸 것은 악불군이 분명 이길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수하들까지 그렇게 믿는데 친구인 자신이 못 믿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 소걸아는 즉시 명을 내렸다.

[천강개들은 적들을 포위해라.]

명을 받은 천강개들은 즉시 사방으로 퍼지며 태양천의 무인들을 포위했다.

[대주님, 거지 놈들이 우리를 포위하고 있습니다.]

태양전사단원 중 한 명이 대주에게 전음을 보냈다.

[상관 말고 방격진으로 대열을 정비해라.]

개방의 천강개들만이었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 튀어나올지 모를 살수들의 공격과 악불군의 이기어검으로 인해 고전하고 있었다.

특히 온금하의 죽음으로 지휘자가 사라지며 혼란이 벌어져 무려 오십 명이 넘는 수하들을 잃고 말았다.

대주에게 지금의 소강 상태는 대열을 정리할 기회이기도 했다.

그리고.

먼지가 가라앉고 전경이 보이자 소걸아와 대주의 표정은 극명하게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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