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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397화 (397/472)

<천검지애 397화>

397화. 적(1)

“땅에서 여기까지 올라올 수는 없지만, 여기서 땅으로 내려가는 건 쉽습니다.”

“소군.”

“예.”

“여기서부터 땅까지 만길 낭떠러지보다 높아. 아무리 무공이 높아도 이 높이면 살기 어려워. 안 돼!”

“배교비전에 신기한 무공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비행낙하술인데, 시험해 보니 쓸 만하더라고요.”

“안 된다니까! 사람이 실수도 할 수 있는 거잖아? 난 소군이 위험한 행동하는 거 못 봐.”

담수련은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래도 안은 살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밤이니까 적설에게 좀 내려가라고 하면 안 될까?”

“적설은 너무 큽니다. 내려가면 즉시 들킬 수 있습니다.”

“그럼 다른 곳에 내려서 신법으로 뛰어가면 되잖아?”

“주위에 어떤 방어망이 펼쳐 있을지 알 수 없지 않습니까? 나올 때는 쉽지만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 믿고 잠시만 이곳에 계십시오.”

“정말 자신 있어?”

“예.”

악불군의 대답을 들은 담수련은 그의 손을 끌어모아 가슴에 꼭 안으며 말했다.

“절대 다치면 안 돼!”

“아가씨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일은, 제가 더 싫어합니다.”

간신히 그녀를 달랜 악불군은 품에서 천 하나를 꺼냈다.

“그게 뭐야?”

“아무리 경신술로 몸을 가볍게 한다 해도, 너무 높으면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천을 사용하면 내리고 싶은 장소까지 조종하면서 갈 수 있습니다.”

“나도 그 천 둘러쓰면 여기서 내릴 수 있는 거야?”

“……죄송합니다. 아가씨는 안 됩니다. 상당한 공력을 필요로 해서요.”

“알았어. 밑에 도착하면 내게 곧장 알려 줘야 해.”

“예.”

말을 마친 악불군은 팔과 다리에 천을 묶더니 거침없이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러자 그의 신형은 마치 바람을 따라 도는 새처럼 천천히 공중을 돌며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담수련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초조하게 기다리던 그녀의 귀로 천리전성이 들려왔다.

[아가씨, 잘 도착했습니다. 제가 살펴본 후 나가면 적설이 그쪽으로 움직일 것입니다. 그러니 따로 조종하지 마시고 그냥 두시면 됩니다.]

담수련은 알았다고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전할 방법이 없었다.

“소군이 가자마자 왜 춥고 무서워지는지 모르겠네…….”

그녀는 헤어진 지 겨우 일각 정도밖에 안 지났음에도 벌써 악불군이 보고 싶어지고 있었다.

* * *

악불군이 내린 곳은 장원의 전경이 보이는 나무 위였다. 그는 은밀잠영의 수법으로 즉시 몸을 감췄다.

그가 극도로 조심하는 이유는 모든 적을 홀로 상대하기에는 저들이 너무 강해서였다. 물론 반드시 죽을 것이라 생각하기는 어렵지만, 그는 절대 자신의 목숨을 가지고 모험을 할 생각이 없었다.

그의 목숨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담수련 때문이었다.

그에게 모든 상황의 일순위는 담수련의 안전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안전을 책임진 사람은 바로 그였다.

‘역시 장원 주위에 방어진이 펼쳐져 있고, 장원 자체도 진을 이용해 지어져 있어. 만약 땅으로 갔다면 걸릴 수밖에 없는 구조야.’

악불군은 장원 전경을 보며 감탄한 듯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상당한 돈과 인력이 필요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악불군은 기를 펼쳐 장원 전체를 살폈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악불군은 깜짝 놀라 기를 회수했다.

장원 안은 최소한 수백 명의 기가 느껴졌다. 더욱이 최소 이 갑자의 내공을 지닌 자들의 기도 여럿 감지할 수 있었다.

심지어 그중, 예기치 못한 엄청난 내공을 지닌 자가 있었던 것이다.

‘느꼈을까……?’

악불군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엄청난 무공의 소유자였다. 악불군은 자신이 뿜어낸 기를 감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다급하게 기를 감췄다.

* * *

어수선한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운기조식을 하고 있던 혈마종은, 자신을 스치고 지나간 수상한 기를 감지하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눈에서는 시뻘건 혈광이 번쩍하고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만으로도 그의 내공이 이미 극마지경을 넘어 초마 단계에 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뭐지? 이곳은 어떠한 기도 새어 나갈 수가 없는 곳인데?’

그의 혈류폭마강은 그 위력이 너무 강해서 운기조식만으로도 장원 전체에 피해를 줄 정도였다. 그래서 그는 어떤 상황에도 부서지지 않도록 만년한철과 현철석을 조합해 수련관을 만들었다.

당연히 그의 기도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조그마한 틈새도 완전하게 막아 둔 터였다. 안에서의 기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못한다는 의미는, 밖의 기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과 같았다.

혈마종이 수련관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문을 지키고 있던 열 명의 무인이 급히 허리를 숙였다.

“팔앙귀마!”

“예, 전주님.”

“주위에 수상한 느낌은 없었느냐?”

“조용했습니다.”

“그래?”

자신이 있는 수련관에서 느껴질 정도라면 매우 강력한 기가 분명했다. 그런데 느낀 자가 없다니, 그로서는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혈마종은 주위를 둘러보며 진기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사방에서 쥐가 뛰어나오고 새가 날아갔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 있는 동물들이 견디지 못하고 도망을 치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대로 즉사한 동물까지 있을 정도였다.

‘대단하구나…….’

악불군은 싸늘한 기가 자신을 스쳐 가자,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동안 만났던 마두들과는 급이 다른 마기였다.

‘아까부터 심기가 불안하더니, 뭔가 잘못 느꼈나?’

혈마종은 아무런 기척도 감지하지 못하자 고개를 갸웃하고는 다시 수련관으로 들어갔다.

찜찜하기는 했지만, 그는 자신의 앞에서 기를 감출 수 있는 자는 있을 수 없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더욱이 이곳은 이중 삼중으로 경계가 펼쳐 있어 누군가 들어온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그의 판단에 영향을 끼쳤다.

혈마종이 수련관으로 들어가고 수하들이 다시 문 앞에 경계를 서자, 악불군은 조심스럽게 한 전각의 지붕 위로 몸을 날렸다.

전각의 진법에 의거해 지어져 있었다. 중요한 전각은 그 진의 핵심 지역에 위치할 것은 분명했기에 안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담수련 덕에 진에 대해 상당한 조예를 갖춘 악불군은 쉽게 진의 핵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악불군은 핵심에 지어져 있는 세 곳의 전각을 살폈다. 오른쪽에 있는 전각은 이곳의 핵심 고수들이 모여 있는 듯, 마기를 풀풀 뿜어내는 자들이 최소한 이십 명 이상이 느껴졌다.

중앙의 전각 역시 오른쪽 전각보다 약하기는 하지만 삼십 명이 넘는 무인들이 모여 있었다.

‘중앙에 있는 전각은 아까 본 자가 묵는 곳일 거야……. 그렇다면!’

악불군은 왼쪽에 있는 전각의 지붕 위로 날아갔다.

기와에 귀를 댄 악불군은 몇 명의 경계 무사들만 느껴지자 고개를 갸웃했다. 핵심 지역에 있는 전각에 경계 무사가 적다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거나 대단히 중요하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악불군은 기와에 손바닥을 댔다. 매우 단단하게 붙어 있던 기와였지만 신기할 정도로 소리도 안 내고 사람이 들어갈 정도만 떠올랐다. 더구나 그가 그 구멍 안으로 들어서자 마치 그런 일이 없었다는 듯 다시 덮였다.

* * *

적설의 등에 탄 담수련은 계속 밑을 보며 초조해하고 있었다. 악불군이 내려간 지 벌써 두 시진이나 지났기 때문이었다.

‘날이 밝아 오는데, 왜 아직 연락이 없는 거야? 불안해 죽겠네.’

공중에 떠 있는 그녀에게는 더 빨리 동이 트고 있었다.

그때 빙빙 돌고 있던 적설이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적설아, 소군한테 연락 온 거야?”

담수련은 좋아서 물었지만, 그녀는 악불군과 달리 적설의 말까지는 들을 수가 없었다.

빠르게 날아간 적설은 하강하기 시작했다.

* * *

“소 대장님, 악 방주님께서 연락하셨습니다.”

소걸아는 깜짝 놀라 쪽지를 받았다.

“뭐야, 이거? 또 계획이 바뀐 거야?”

쪽지를 읽어 본 소걸아는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행선지가 바뀌었다.”

“어디로 바뀌었습니까?”

“그다지 멀지는 않다. 천호방 총단으로 움직이고 있는 다른 문파에도 연락해야 하니까 전서를 준비해라.”

“알겠습니다.”

보고한 천강개가 나가자 소걸아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악불군 성격상 갑자기 계획을 바꿨다는 의미는 심각한 일이 벌어졌단 것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었다.

‘후우~ 저번에도 꽤 죽었는데, 또 죽게 생겼네……. 내 형제 같은 애들인데…….’

소걸아는 천강개들이 또 죽을 것을 생각하자 마음이 아팠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무림인이 된 이상 죽음은 숙명처럼 따라붙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 * *

산속의 무너진 폐찰에 내린 악불군과 담수련은 상당한 분량의 서류들을 나눠서 읽고 있었다.

“소군, 여기 적힌 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엄청난 조직 아니야?”

담수련은 혈교의 엄청난 전력에 당황하고 있었다.

“제가 발견한 곳이 혈마전이라고 혈교의 사대 거점 중 하나입니다. 이곳을 없애는 데 성공한다면 혈교에게 꽤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고수들이 엄청 많다고 했잖아? 괜찮을까?”

“아마도 꽤 큰 희생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후기지수들이면 대부분 젊은 사람들일 텐데…….”

담수련은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렸다.

“저도 그 부분이 가장 마음이 아픕니다.”

악불군의 말에 담수련은 마음을 추슬렀다. 악불군이 강한 것 같지만 마음이 얼마나 여린 줄 잘 아는 그녀로서는, 자신까지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을 그냥 두면 더 큰 희생을 치르게 될 거야. 우린 안타깝지만 해야 해.”

“황상께서 무림에서 대규모 혈겁이 일어나는 것을 매우 싫어하던데, 괜찮을까요?”

“그래서 우리가 많은 정보를 전해 드렸잖아. 이해하실 거야. 그런데 이들이 눈치 못 채게 와야 할 텐데, 괜찮을까?”

“그래서 제가 생각한 계획이 있습니다.”

“소군이 생각한 계획이 있다고?”

“예.”

“그런데 왜 말 안 했어?”

담수련의 반문에 악불군은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어차피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장원 주위에 펼쳐진 진은 아가씨께서 파훼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쉬운 진은 아니지만 가능해.”

“하지만 진을 파훼할 동안 적들이 알게 될 것이고, 방어할 시간을 주면 더 큰 피해가 올 수 있습니다.”

순간 담수련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안 돼!”

“제 얘기를 다 듣지도 않으셨습니다.”

“어쨌든 안 돼.”

담수련이 완강하게 반대하자 악불군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이미 그의 계획이 무엇인지 눈치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가씨,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담수련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녀 역시 장원 안의 고수들과 장원 밖의 진에 대해 들은 후, 피해를 줄일 방법에 대해 꽤나 고심했었다.

그대로 공격하는 것은 큰 피해가 예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떠올린 최선의 방법이, 아주 강력한 고수가 먼저 장원 안으로 들어가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아주 강력한 고수였다. 악불군이 가장 최적의 대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실행하기 싫은 가장 큰 이유는, 악불군이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소군이 들어가서…….”

담수련은 뒷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다치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말을 입에 올릴 수가 없었다.

“아가씨, 저 못 믿으십니까?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니 걱정 마십시오.”

“그럼 나는 누가 보호해?”

“싸움이 시작되면 완전 혼전이 될 것입니다. 아가씨는 적룡을 타고 계셔야 합니다.”

“진은 누가 파훼해?”

“제갈세가에서도 올 것입니다. 그들에게 파훼할 방법을 알려 준다면 간단히 파훼할 수 있을 겁니다.”

그녀가 괜한 억지를 부렸지만, 척척 대안을 말하는 악불군이었다.

“답을 들어 보니 이미 모든 상황에 대해 생각했나 보네?”

“방법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담수련은 더 이상 반대할 수 없었다. 악불군만 안전하기를 바라는 것은 그녀의 이기심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정말 다치지 않을 자신 있지?”

“……다치지 않겠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절대 죽지는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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