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399화 (399/472)

<천검지애 399화>

399화. 난전(1)

“할심마검, 팔앙귀마에게 대단한 살수가 들어온 것 같다고 전해라. 난 계속 수색하겠다.”

“알았다.”

할심마검이 몸을 날리자 철격마조는 수하들에게 크게 소리쳤다.

“장원의 모든 횃불을 밝히고,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곳은 샅샅이 뒤져라!”

“예!”

수십 명의 수하들은 사방으로 퍼져, 곳곳에 놓인 횃대와 화로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어둡던 장원은 단숨에 대낮처럼 밝혀졌다. 그러자 곧 사방에서 비상 호각 소리가 난무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냐?”

철격마조는 그중 한 명에게 달려갔다.

“여기…….”

그가 가리킨 수풀 속에는 또 다른 시신이 네 구나 숨겨져 있었다.

“도, 도대체 몇 명이나 죽은 거야?”

지금 호각 소리가 난 이유가 시신을 발견해서라면 이미 백 명이 넘게 죽은 것이었다. 적은 발견조차 못 했는데 백 명이라니…….

철격마조는 극도로 분노한 듯, 꽉 쥔 주먹에서 부드득 소리가 날 정도였다.

“적이다!”

그때 담장 너머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철격마조는 빠르게 소리가 난 쪽으로 몸을 날렸다.

“이게…….”

담장을 넘은 철격마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분명 소리를 듣자마자 달려왔거늘, 그곳에는 세 구의 시신만이 놓여 있었던 것이다.

“소리친 놈이 누구냐?”

그는 소리를 듣고 몰려든 수하들에게 물었다.

“양온삼이 소리쳤습니다.”

“양온삼이 누구냐?”

“저기에 죽은 자입니다.”

철격마조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그렇다면 적을 보고 소리치자마자 죽었다는 것이 아닌가…….

“너희는 이곳에 있었으면서 본 것이 없느냐?”

“소리를 듣자마자 고개를 돌렸는데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철격마조는 시신들의 상처를 살폈다. 하지만 어떤 수법에 의해 죽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철격마조.”

그때 그의 옆에 두 명의 노인이 나타났다.

“장로님! 호법님!”

“살수냐?”

나타난 자들은 혈마원의 장로인 낭아잔도와 호법인 묵운마편이었다 여간해서는 움직이지 않는 그들이 직접 나섰다는 것은 지금 상황을 대단히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였다.

“현재까지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살수로 보기에는 너무 빠르고 은밀합니다.”

“적이다!”

그 외침과 동시에 철격마조가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하나.

“역시 대단하구나.”

방금까지 그의 옆에 있던 낭아잔도와 묵운마편이 이미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철격마조는 급히 뒤를 따라 소리가 난 곳으로 몸을 날렸다.

그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서 있는 두 원로를 보자 급히 물었다.

“침입자를 보셨습니까?”

그들의 앞에는 또 세 구의 시신이 놓여 있었다.

“놀……라운 놈이다. 어느새 사라졌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시신을 살피던 낭아잔도는 묵운마편을 보더니 시신 뒤에 있는 전각의 으슥한 그림자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뭔가 감지한 것이 있는 듯했다.

“너희는 본 것이 없느냐?”

철격마조는 주위에 있는 수하들을 보며 물었다.

“저,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제 옆에서 소리쳤는데 고개를 돌리는 순간에 죽었습니다.”

“놈은 이 근처에 있다. 열 명씩 조를 이루어 찾아라!”

철격마조의 외침이 사방에 퍼지자, 사방에 퍼져 있던 수하들은 금방 열 명씩 조를 이루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훈련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총관, 도대체 무슨 일인데 우리까지 출동 명령이 내린 것입니까?”

그때 백여 명의 수하를 이끌고 강력한 마기를 풍기는 자가 앞에 나타났다.

그는 혈마단의 단주인 임수곽이었다.

외부에만 동원되는 무력 집단이 내부 일로 동원이 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혈마단만 나오셨습니까?”

“무력 집단 전부 동원됐습니다. 오다 보니 혈마원의 원로분들도 모두 출동한 것 같습니다.”

“사실은…….”

철격마조는 우선 자신이 아는 상황을 설명했다.

“지금 천하에 그럴 만한 살수가 있었습니까? 백 년 전 살수의 신이라고 했던 비영살신도 이럴 수는 없을 텐데요?”

“지금 수하들의 피해가 엄청납니다. 우선 그놈부터 빨리 찾아야 합니다.”

착! 휘잉~ 착!

“이놈! 너의 정체가 뭐냐!”

그때 전각의 뒤로 달려갔던 묵운마편이 외치는 소리와 그의 편이 떨어지는 파열음이 동시에 들렸다.

“호법님께서 놈을 찾은 것 같습니다.”

철격마조는 곧장 소리 나는 곳으로 달려갔다.

“따라와라!”

임수곽이 그 뒤를 따라 몸을 날리자 단원들도 급히 뒤를 따랐다.

“드디어 잡았다!”

철격마조는 묵운마편의 채찍과 낭아잔도의 도에 공격을 받고 있는 검은 인영을 발견하자, 손에 쥔 조로 그의 등을 그어 갔다.

휙!

채찍과 도, 거기에 조까지 삼 면으로 공격받은 검은 인영은 피할 곳 없이 죽을 수밖에 없어 보였다.

“이, 이놈이 어디 갔지?”

철격마조는 자신의 조가 허공을 가르자 놀란 듯 중얼거렸다.

분명 등을 조로 강타했는데 마치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낭아잔도 역시 당황한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낭아잔도……. 이, 이상해…….”

“왜 그래?”

묵운마편이 자신의 배를 손으로 잡으며 몸을 돌리자, 낭아잔도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 이게 언……제…….”

배에서 손을 뗀 묵운마편은 피로 덮인 손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언제 당했는지도 모르게 그의 배에 큰 구멍이 뚫려 있었던 것이다.

그도 자신의 배에 구멍이 뚫린 것을 몰랐던 듯, 어이없는 표정으로 낭아잔도를 보더니 앞으로 엎어졌다. 그제야 그의 배에서는 많은 양의 피가 터져 나오며 주위를 피로 물들였다.

낭아잔도는 급히 그의 몸을 돌리더니 임수곽을 보며 소리쳤다.

“임 단주, 그놈은 이 근처에 있다. 은신술을 사용하는 것 같으니 의심스러운 곳은 무조건 공격해라.”

“알겠습니다.”

“철격마조.”

“예!”

“내전을 지키는 수하들은 이놈을 못 잡는다. 직접 상대하지 말고 방어진을 펼친 채, 놈을 발견하면 소리만 치라고 해라.”

“예!”

명을 내린 낭아잔도는 죽은 묵운마편의 상처를 살폈다. 묵운마편 정도의 고수가 배에 구멍이 뚫린 정도로 이렇게 빨리 죽는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묵운마편이 죽었냐?”

그때 낭아잔도의 주위로 열 명이 넘는 노인들이 떨어져 내렸다. 혈마원의 원로들이었다.

“죽었어. 그런데 내장이 갈가리 찢어져 있다. 마치 검에서 강기가 뿜어져 나온 것 같다.”

낭아잔도는 심각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강기란 화경급의 고수라면 강약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든 만들 수 있었다. 문제는 싸우는 와중에 강기를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악뇌사심 군사도 단순한 살수가 아닌 것 같다고 하더라.”

“혈마원에서 몇 명이나 나온 거냐?”

“삼십 명이 나왔다.”

삼십 명이면 거의 다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낭아잔도는 자신의 도를 꽉 쥐며 말했다.

“이놈을 반드시 찢어 죽일 거다. 너희들도 발견하면 그냥 죽이지 마라.”

죽이지 말라니…….

그럼 생포하라는 말인데, 낭아잔도는 아직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는 듯했다.

* * *

“흑 호법, 아직도 연락이 없습니까?”

소걸아의 질문에 흑석영은 우뚝 서 있는 백설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연락이 없습니다.”

공격 준비를 완벽하게 마친 정파의 연합 세력은 안으로 들어간 악불군의 연락이 없자 초조한 듯, 소걸아를 보내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알아보라고 했다.

아직 소걸아는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천호방과의 소통이 그를 통해서만 된다는 것, 더욱이 모두가 어려워하는 악불군에게 반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란 것은 그를 영향력이 있는 무림의 중요한 인물로 부각시키기에 충분했다.

“벌써 들어간 지 한 시진이 넘었는데, 잘못된 것은 아닙니까?”

“소걸아 소협께서는 방주님의 가장 친한 친구이신데 아직도 방주님에 대해서 완전히 알지는 못하신 모양입니다. 방주님께서는 할 수 없는 일은 하지 않으십니다.”

소걸아는 흑석영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방도들에게 이런 신뢰를 받다니…….’

한 문파의 수장과 수하 간에 이런 믿음이 있다면 문파의 전력을 두 배 이상 높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흑 호법은 악 방주에게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믿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전 친구로서, 믿음을 떠나 마음이 불안합니다.”

“이해합니다. 방주님께서 좋은 친구를 가지신 것 같아서 저도 기쁩니다.”

히이이잉!

타타다닥!

그때 백설이 갑자기 크게 울며 앞발로 땅을 연달아 두드리기 시작했다.

“소걸아 소협! 신호가 왔습니다. 공격하십시오.”

백설의 기이한 행동을 본 흑석영은 급하게 말했다.

‘뭐야? 신호가 말이 우는 거였어……?’

소걸아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악불군이 적설에게 천리전성을 보내면 적설이 백설에게 동물들만이 들을 수 있는 초음파를 보내는 연락 방식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기상천외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의문을 가질 시간도 없었다.

“그럼 공격에 들어가겠습니다.”

답한 소걸아는 그대로 몸을 날려 사라졌다.

그러자 흑석영의 옆에 사효조를 비롯한 세 명의 호법이 나타났다.

“오랜만에 우리 특기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됐네.”

최욱걸의 말에 사효조가 흑석영을 보며 말했다.

“그럼 우린 먼저 들어갈 테니까 뒤를 부탁한다.”

“조심해라.”

흑석영의 말에 모두는 피식! 웃었다. 흑석영이 그들을 걱정하는 말을 한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 * *

“몇 명이나 죽었다고?”

“백 명이 넘게 죽었습니다.”

“침입자는 몇 명이냐?”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혈마원이 나서고 혈마단, 혈혼단, 혈룡단까지 동원했는데 몇 명이 침입했는지도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냐?”

“혈마원의 원로님들도 여섯 분이나 당했다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네가 죄송할 일은 없지.”

혈마종은 손을 옆으로 뻗었다. 그러자 무기대에 놓여 있던 커다란 도가 그의 손에 잡혔다.

“직접 나가실 생각이십니까?”

“내가 나가지 않으면 그놈은 못 잡는다.”

혈마종의 눈에서는 혈광이 번쩍였다.

그가 느꼈던 위험 신호가 점점 가까워 옴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쾅!

콰광!

수색을 하는 수하들을 지휘하며 침입자의 기를 감지하기 위해 사방을 면밀히 살피던 붕권추혼은 마정신력권을 한 곳을 향해 연달아 쳐 댔다.

그곳을 수색하던 수하 두 명이 신음도 내지 못하고 고꾸라졌기 때문이었다.

“이 쥐새끼 같은 놈! 네놈도 남자라면 당장 모습을 보여라!”

땅이 반자 가까이 파일 정도로 강력한 권을 쳤지만 아무것도 발견 못 한 붕권추혼은 극대노한 듯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붕권추혼, 피해라!”

그때 뒤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오자 붕권추혼은 급히 보법을 밟으며 피했다.

치지지지지직!

소리를 치며 날아온 노인의 소매에서 검붉은 액체가 빠르게 날아오더니, 붕권추혼이 있던 자리를 중심으로 일 장 넘게 뿌려졌다. 액체가 닿은 땅은 섬찟한 소리를 내며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노인은 혈마원의 원로 중 한 명인 독광귀옹이었다.

그가 뿌린 액체는 사람의 피부에 조금만 묻어도 그대로 살을 태우며 안으로 파고들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매우 강력한 독액이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놈이군! 도대체 이게 무슨 수법이기에 독수혈망까지 빠져나갈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붕권추혼의 뒤를 노리는 검은 그림자를 보고 자신의 최고 절기 중 하나인 독수혈망을 펼쳤다.

독수혈망은 반경 일 장을 그물이 떨어지듯 독액이 뿌려지기에, 그의 눈에 걸린 이상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었다. 더욱이 그가 그림자를 발견한 곳은 거리가 이 장도 안 될 정도로 가까웠다.

독은 땅을 녹이며 빠르게 안으로 흡수되기 때문에 지둔술을 쓴다 해도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연기만 피어오를 뿐 걸리는 것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적이다!”

황당한 표정으로 서 있던 독광귀옹과 붕권추혼은 다른 곳에서 들려오는 외침에 인상을 구기며 몸을 날렸다.

쾅! 쾅! 펑!

몸을 날린 그들의 눈에는 사방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하고 있는 다른 원로들을 보였다.

그들의 주위에는 세 명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도, 도대체 어떤 놈이 이러는 거지? 설마 유령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독광귀옹은 자신들이 방금 당했던 상황과 똑같다는 것을 느끼자 처음으로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