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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400화 (400/472)

<천검지애 400화>

400화. 난전(2)

그때 모두의 두려움을 없애 주는 목소리가 모두의 귀를 파고들었다.

“삼 전각의 담장을 에워싸라!”

전혀 큰 소리가 아니었음에도 모두의 귀에는 천둥처럼 크게 들렸다.

그러자 모두 빠르게 삼 전각의 담장으로 모여들어 완전하게 포위했다. 혈마원의 원로들은 물론 무력대들조차 망설임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혈마종이었다.

“삼절쇄혼마진을 펼쳐라!”

다시 혈마종의 목소리가 모두의 귀를 울리자 장원 주위를 에워싼 수십 명의 수하들이 자신들의 무기를 땅바닥에 깊이 박아 넣었다.

“금쇄비공진!”

이어지는 말에 담장에 서 있던 원로들이 공중을 향해 두 팔을 뻗었다. 그러자 강력한 기가 뻗쳐 나오며 공중을 덮었다.

“임수곽!”

“예! 전주님.”

“사사지주망을 펼쳐라.”

“예!”

임수곽의 대답이 떨어지자 백여 명의 혈마단원들이 각기 품에서 가느다란 줄을 꺼내더니 담장 안의 땅에 거미줄처럼 펼치기 시작했다.

전각을 제외한 모든 땅에 사사지주망이 펼쳐졌다.

“모두는 눈을 똑바로 뜨고 있어라. 놈이 튀어나오면 곧바로 공격해라!”

이어지는 혈마종의 말에 모두는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공격 준비에 들어갔다.

‘대단하네……. 더 이상 숨어서 상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배교의 사술이 배합된 백인막의 은신술은 정말 신묘했다. 사실 악불군의 무공이 대단하다 해도 지금까지 혈마전에 입힌 피해는 그조차도 놀랄 정도의 성과였다.

더욱이 원래 그의 계획대로 혈마전의 주력을 한 곳으로 모은 것도 완벽하게 진행이 된 듯했다.

‘꽤 끈질긴 놈이군……. 이놈이 이 안에 있는 것은 분명한데……?’

혈마종은 혈광이 번뜩이는 눈으로 진 안을 쳐다보았다.

자신의 집무실을 나온 혈마종은 수많은 수하들이 사방을 수색하는 모습을 보면서 천천히 침입자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는 미세한 움직임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허나, 잠시도 멈추지 않고 움직이는 악불군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혈마종조차 공격의 초점을 잡기 힘들 정도였다.

결국 그는 직접 잡는 방법이 아니라 침입자를 포위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악불군을 가두는 데 성공했으니 효과적이라고 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악불군이 일부러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은 몰랐다.

사사지주망이 펼쳐졌음에도, 악불군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혈마종이 다시 명을 내렸다.

“홍진태!”

“예!”

“나무와 전각의 벽면을 모두 부숴라.”

명을 받은 혈혼단의 단주 홍진태는 수하들을 이끌고 전각과 나무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깊은 산속에 전각을 짓는 데는 큰돈이 들어가기에 이는 대단한 손해였지만, 현재로서는 재산상의 피해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전각까지 부서지자 포위망 안은 전경이 모두 보일 정도로 훤해졌다. 그리고 혈마종의 눈이 한곳에 꽂혔다.

혈마종이 팔을 뻗자 그의 손바닥에서는 검붉은 혈강기가 뻗어나갔다.

펑!

부서진 전각의 옆에 있던 커다란 바위가 커다란 폭음과 함께 가루가 되어 버렸다. 혈교의 사대마종답게 대단한 위력이었다.

뿌연 먼지가 피어올랐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구나…….”

혈마종은 뿌연 먼지 안에 서 있는 한 인영을 보자 살소(殺笑)를 지었다.

먼지가 사라지고 흑의를 입은 채 검을 쥔 한 청년의 모습이 드러나자 혈룡단이 그의 주위를 둘러쌌다.

툭! 툭!

악불군은 마치 마차 먼지라도 덮어쓴 듯, 태연하게 먼지를 손으로 털어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모두를 더욱 분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네놈을 드디어 잡았구나!”

낭아잔도는 친했던 묵운마편의 죽음으로 매우 화가 난 듯 살기를 풀풀 풍겨 대며 앞으로 나섰다.

“멈춰라.”

“전주님, 제가 저놈의 껍질을 벗겨 버리겠습니다!”

“잡은 이상 시간은 있다.”

혈마종의 이어지는 말에 낭아잔도는 결국 물러나고 말았다. 혈마종은 악불군를 한 번 훑더니 다시 살소를 지으며 물었다.

“네놈의 정체가 뭐냐?”

“어르신께서 생각하신 것이 맞을 것입니다.”

‘어르신?’

혈마종은 어이없는 표정을 짓더니 다시 말했다.

“악불군이냐?”

“저를 본 적도 없으실 텐데 저라고 생각한 이유가 뭔지 궁금하군요?”

악불군의 답은 혈마종의 생각이 맞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었다.

“감히 이곳을 홀로 들어올 정도의 배짱이 있는 젊은 놈이 너 이외에 있겠느냐?”

“천호방의 방주 악불군이라고 합니다.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악불군이 포권을 하자 혈마종의 눈에 이채가 나타났다.

지금 악불군을 포위하고 있는 수하들의 수는 거의 오백 명에 가까웠다. 더욱이 오합지졸이 아닌 정예 무력대가 삼백 명에 가까웠다.

거기다 마왕급의 고수인 혈마원의 원로 삼십 명이 마기를 풀풀 풍기며 그를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젊은 놈이 명성을 얻으니 보이는 것이 없어서 치기를 부린 모양인데, 스스로 죽을 곳을 찾아온 것은 용기가 아니라 미련한 짓이다.”

“죽기 전에 누구신지는 알려주시는 것이 강호의 도의가 아니겠습니까?”

“이곳은 어떻게 침입했느냐?”

“후배로서 선배의 질문에 답을 해야겠지만 문파의 비밀인지라 말씀드리지 못하는 점을 이해해 주십시오.”

혈마종은 너무 예의 바르게 말하는 악불군을 보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혈우대마종은 백 명의 기재를 뽑아 무공을 가르쳤다. 그들은 자라 오면서 상대를 죽여야만 자신이 산다는 것을 철칙으로 알고 살아왔다.

분명 사형제였지만, 그들은 자면서도 경계해야 했고 밥을 먹거나 무공을 배우는 와중에도 조심해야 했다.

혈우대마종은 어떤 방법이건 서로 죽이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권장했다.

그렇게 수십 년을 싸워서 모두 죽고 남은 자들이 사대마종이었다. 그들에게는 두 부류의 인간만이 있었다.

바로 당장 죽일 자와 천천히 죽일 자였다.

“네놈은 별종이구나. 당장 죽여야 할 놈인데 천천히 죽이고 싶다는 생각도 드는구나.”

말을 마친 혈마종은 주위를 보며 눈짓했다.

공격 신호였다.

“죽여라!”

혈마종의 허락이 떨어지자 낭아잔도가 가장 먼저 공격에 들어갔다.

악불군은 처음으로 시작부터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머뭇거렸다가는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크억!”

낭아잔도는 도와 함께 몸이 두 동강이 나서 죽어버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혈마전 무력대의 전력은 대단했다. 거기다 혈마원의 원로들까지 합세했으니, 그들의 공격을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천하에 손꼽을 정도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악불군이 바로 그중의 한 명이었다.

검을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두세 명씩 죽어 나가자 혈마종은 검미를 찌푸리며 소리쳤다.

“사사지주망을 옮겨라!”

혈마종의 명이 떨어지자 악불군을 공격하던 자들이 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땅에 펼쳐졌던 밧줄망이 공중으로 오르는가 싶더니 악불군을 뒤덮기 시작했다.

망은 하늘 전체를 덮으며 떨어져 내려, 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응……?’

떨어지는 망을 검으로 잘라대던 악불군의 눈에 이채가 나타났다. 망이 잘리지 않고 검에 달라붙고 감싸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밧줄이 검에 완전히 달라붙는다면 검의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었다.

‘접착초? 비싼 것을 차치하고 구하기조차 힘들다는 접착초로 이렇게 많은 밧줄을 만들다니, 감탄스럽군.’

접착초(接着草)는 줄기에 끈끈한 액체를 함유해 몸에 붙으면 달라붙고 떼려고 할수록 더 조여들어, 관부에서도 특별한 죄인을 상대할 때 사용하는 오랏줄에 사용하는 특수 재질이었다.

하지만 생산되는 양이 적어 가격이 대단히 높았고 시중에서는 보기조차 힘든 것인데, 이곳에 커다란 마당을 거미줄처럼 덮을 정도로 많을 줄은 몰랐다.

한 줄이라도 악불군의 몸에 붙는다면 그의 행동까지 방해할 것은 분명했다.

휭!

피잉!

그때 악불군을 향해 철강시가 날아들었다.

쏟아지는 시시지주망에 사방에서 날아오는 철강시만도 빠질 곳이 없었거늘, 갑자기 삼십여 명의 긴 창을 든 자들이 나타나더니 악불군의 주위의 땅을 강하게 찔러갔다.

하늘과 옆을 완벽하게 막힌 악불군이 숨을 곳은 땅밖에 없었다. 혈마종은 악불군의 살수 무공이 신경(神境)에 달했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모든 퇴로를 막은 것이었다.

설명은 길었지만 모든 것은 거의 동시에 벌어진 것이었다.

하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낭아잔도의 죽음으로 본노가 극에 달했던 원로들 이십여 명이 그 뒤를 따라 악불군을 죽이기 위해 몸을 날린 것이다.

“저, 저게!”

보고 있던 혈마종의 눈이 커졌다.

악불군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그는 방어를 위한 것으로 생각했다.

하나, 악불군의 몸이 회전하며 금빛 강기가 그의 몸 주위에 어리는 것이 보였다.

방어가 아니라 그 상황에서 오히려 공격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 모습을 본 혈마종의 몸이 떠오르더니 악불군을 향해 도를 내려쳤다.

쾅!

콰과쾅!

펑!

커다란 폭음과 함께 엄청난 기의 폭풍이 주위로 퍼져나갔다.

* * *

[생각보다 경비가 매우 허술한 것 같지 않습니까?]

수경대사는 소걸아를 보며 전음을 보냈다.

진을 해체하고 안으로 들어선 정파 연합은 수십여 명의 경계 무사들을 제거했다.

하지만 그들이 예상했던 경계에는 많이 부족한 것이 분명했다.

[여기 보십시오!]

그때 가장 앞쪽을 맡고 있던 화산의 운양자의 전음이 들려왔다.

소걸아와 수경 대사는 따르던 무인들에게 손짓을 하고는 앞으로 빠르게 달려 나갔다.

그들의 앞에는 여러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건물들 뒤에는 높은 담장이 보였고, 그 안에는 커다란 전각들이 보였다.

외전에 도착한 것이다.

[상당히 많은 자들이 이곳에 거주했던 것 같은데, 전부 어디 간 걸까요?]

운양자의 전음에 소걸아는 탄복한 표정으로 말했다.

[악 방주 덕분일 것입니다. 빨리 가서 그를 도와야 합니다.]

숙소들을 조사하던 남궁영호가 급히 달려왔다.

[숙소들 안에 족히 수십 구의 시신들이 마치 잠자듯이 죽어 있었습니다.]

[남궁 시주, 수 명이 아니라 수십 명이라는 말입니까?]

[예, 다른 숙소들과 길가에서 죽은 시신들까지 합친다면 백 명이 넘을 것 같습니다.]

남궁영호의 말에 정파 연합의 지휘자들의 표정이 변했다. 처음 악불군이 침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는 안에서 혼란을 야기해야 한다고 했을 때, 그들은 악불군이 말 그대로 혼란을 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실지로 담장 안에서는 불길도 보이고 곳곳에서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면 혼란이 아니라 공격이었다.

[빨리 가시지요!]

소걸아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고 본 듯 전음을 날린 후 곧장 담장을 넘었다. 그러자 다른 문파도 그의 뒤를 따라 담장을 넘었다.

“세상에…….”

담장을 넘은 모두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방이 피였고 곳곳에 시신들이 보였다. 땅을 무기로 찌른 흔적도 보였고, 몇몇 담장과 전각에는 강한 공격을 받은 듯 여기저기 부서진 모습도 있었다.

[설마 이 모든 것을 악 방주 혼자 한 것은 아니겠지요?]

모두는 지금 보이는 모습이 악불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런 말이 나올 만큼 상황을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들은 주위의 흔적만으로도 악불군이 수백 명과 싸우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웬 놈이냐!”

그때 외곽을 지키던 경계 무사 십여 명이 소리를 지르며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그들은 곧 얼굴색이 사색으로 변했다.

수상한 낌새를 느끼고 달려온 것인데, 침입자가 수백 명이나 될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급히 몸을 돌리며 도망을 치려고 했다. 물론 입으로 비상을 알리는 호각을 불었다.

쾅, 콰과광!

하지만 엄청난 폭음에 그들의 호각 소리는 멀리 퍼지지 않았다.

공중 일 장 높이까지 먼지가 떠오르고 곧이어 이어진 기의 폭풍에 전각과 담장들이 부서지는 모습을 본 그들은 경악한 표정으로 멈춰서고 말았다.

정파의 무인들도 안쪽 깊은 전각에서 일어난 상황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럴 때가 아닙니다. 빨리 가야 합니다. 곧 적들이 우리의 존재를 알아챌 것입니다.]

그때 흑석영의 전음이 들려왔다.

그는 멈춰선 혈마전의 경계 무사들을 제압한 후 전음을 날리고는 안쪽으로 달려갔다.

정파의 무사들도 방금 본 연기와 기의 폭풍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짐작한 듯 급히 몸을 날려 흑석영을 쫓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전쟁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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