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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403화 (403/472)

<천검지애 403화>

403화. 변화(1)

“다음부터는 이런 계획은 난 무조건 반대할 거야.”

담수련은 객잔의 방에 누운 악불군을 보며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혈교 역시 그런 상황을 만들 정도로 허술하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제부터 절대 소군이 다치지 않도록 내가 확실하게 안전한 계획을 짤 거야.”

담수련의 말에 악불군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아무리 훌륭한 계획을 만든다 해도, 싸우지 않고 이길 수는 없었다. 결국 그가 상처를 입는 것은 상대의 무공이 얼마나 강하냐가 좌우하는 것이었다.

“아가씨, 누울 정도로 심한 부상이 아닙니다.”

악불군은 일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담수련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소군의 상처가 다 아물 때까지 내가 간호할 거야.”

“아가씨도 아시겠지만 지금 객잔에서 이렇게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습니다. 우선 천호방 총단으로 돌아가는 것이 급선무일 것 같습니다.”

“그렇긴 한데…… 우리 지금 이곳에 묵은 지 반나절도 안 됐거든!”

“그래도 아직 날이 밝지 않습니까?”

잠시 생각하던 그녀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급하니까 가긴 하겠는데, 소군은 나와 같이 마차 타고 가.”

“마차요?”

“내가 간호하면서 갈 거야.”

“아가씨, 전 정말 괜찮습니다.”

“나도 무림세가의 여식이야. 내상은 확실한 휴식과 운기조식으로 완전히 고치지 않으면 평생 고생한다는 거 알거든.”

악불군은 말리기 어렵다는 것을 느낀 듯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예, 예, 알겠습니다. 같이 마차 타고 가겠습니다.”

사실 악불군이 담수련에게 이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담수련이 악불군의 허락 없이 결정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무래도 두 분이 점점 수상한 사이가 되어 가는 것 같지 않아?”

마차를 함께 타는 둘을 보고 연화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하자, 흑란이 어이없다는 듯 반문했다.

“넌 정말, 몰라서 물은 거니? 아니면 알면서 물어보는 거니?”

“그냥 그렇다는 거지. 아가씨하고 악 방주님하고 사이가 미묘한 것을 모르면 바보지!”

“내가 보기에는 연화 너 바보 같거든?”

“나보다는 매향이 더 바보거든!”

연화의 반박에 매향이 눈이 동그래져서 말했다.

“왜 가만히 있는 나를 걸고넘어지는 건데? 그리고 내가 왜 바보야?”

“소걸아 소협이 얼마나 너한테 공을 들이는지 모르잖아?”

“그래서 바보야? 그럼 내가 부부 거지가 되어야겠냐?”

“호호호!”

매향의 항변에 모두는 까르르 웃었다.

“마차 떠난다. 가자.”

추국의 말에 모두는 웃음을 멈추고 말고삐를 움켜잡았다.

[방향으로 보아 천호방 총단으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주루의 창으로 악불군의 행렬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던 중년인이 누군가에게 전음을 보냈다.

[주위에 저들의 행렬을 감시하는 자들이 상당히 많다. 걸리지 않게 조심해서 따라라. 사망부 가장 첫 줄에 악불군이 이름이 오른 이상, 반드시 죽여야 한다.]

[예.]

혈교의 사망부는 무림 공략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죽일 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장부였다.

그리고 며칠 전 혈마종의 죽음과 함께 수정되었는데 첫 장, 첫째 줄에 악불군의 이름이 오른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리 누우라니까?”

“제가 눕기에는 너무 좁습니다.”

“빨리 안 누워!”

담수련의 악불군에게 자신의 다리를 베고 누우라고 계속 종용하고 있었다.

결국 타의 반, 자의 반으로 담수련의 다리를 베고 누운 악불군은, 담수련이 자신의 머리를 만지며 함박웃음 띤 얼굴로 쳐다보자 그동안 느껴 보지 못했던 좋은 기분을 느꼈다.

그게 사랑의 행복감임을 그는 아직 몰랐다.

자신들을 죽이려는 자들이 쫓고 있고, 실질적으로 현 무림의 상황이 일촉즉발의 위험이 가득했지만, 어떤 걱정이나 고민도 지금의 그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 * *

“으으윽…….”

공중으로 삼 자가량 떠오른 담무룡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생각지 않은 강력한 기가 단전에서 치솟아 올랐기 때문이었다.

‘이…… 이게 뭐지? 설마 주화입마? 아닌데…….’

담무룡은 잠시 당황했지만, 그동안 말랐던 혈맥을 힘차게 뚫고 지나가는 기의 용솟음은 다행히 주화입마는 분명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절기인 건천이화신공(乾天以火神功)을 극도로 올렸다. 순간 그의 몸에 운무가 퍼져 나왔다.

운무는 그의 머리 위로 올라가더니 다섯 개의 고리를 형성했다.

잠시 후, 바닥으로 사뿐히 내려앉은 그의 코로 고리를 형성한 운무가 흡수됐다.

“드디어 몸이 예전 상태로 돌아간 것 같구나.”

담무룡이 일어서자 문이 열리며 능파선고가 안으로 들어섰다.

“내 음식에 뭘 넣은 거냐?”

“궁주님께서 너를 위해 공청석유를 열 방울이나 약에 넣으셨다.”

“……나를 위해 공청석유를 줬다고?”

담무룡은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공청석유는 한 방울로 십 년 이상의 공력을 올려 준다고 알려져 있어, 무림인들이 보물처럼 여기는 영약이었다.

“궁주님께서 너와의 대결을 앞당기고 싶어 하신다.”

“단지 그 이유 때문이라면 좀 어이가 없군.”

“정말 버릇없는 놈이로구나. 본 선고의 나이가 네놈의 두 배는 될 게다.”

능파선고는 담무룡의 말투가 매우 마음에 안 드는 듯했다.

“하녀와 주인은 나이로 정해지지 않는다.”

능파선고의 한쪽 눈썹이 바짝 올라갔다. 측천무후의 명만 없었다면 당장이라도 때려죽이고 싶었다.

“건방진 놈! 궁주님과 대결이 끝나고도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을지 두고 보겠다.”

“두 시진 후 대결을 하겠다. 그만 가 봐라.”

담무룡은 더 이상 말을 섞기 싫다는 듯 몸을 돌렸다.

‘네놈이 쓸모없어질 때, 이 선고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될 게다.’

능파선고는 담무룡의 등을 향해 살광을 보이더니 몸을 돌려 나가 버렸다.

* * *

악불군이 항주 외곽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항주의 모든 양민들이 악불군을 환영하기 위해 성문으로 몰려들었다.

무림 역사에서 무림인이 외유를 나갔다가 돌아온 다고, 양민 전체가 자발적으로 몰려나온 경우는 아마 처음일지도 몰랐다.

“선배님, 이런 광경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항주 시내의 주루에 앉아 같이 술을 마시던 백룡신권은 창밖을 슬쩍 보더니 종산은자에게 물었다.

“전에도 보지 않았나?”

“그때도 대단했지만 지금처럼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요. 전 어떤 무림 세력의 장도 양민들에게 이런 존경을 받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악 방주께 어떤 흠이 있는지는 전 모릅니다.”

“이미 보여 주지 않았나?”

“그랬지요……. 이번에는 증거가 없다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그 문제를 꺼내 악 방주를 공격한다면 천하는 다시 예전처럼 혈겁의 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백룡신권의 말에 종산은자는 갈등하는 눈으로 창밖을 보았다.

드디어 악불군이 항주 시내로 들어왔는지 환호하는 함성이 들리고 있었다.

원나라 시대, 백성들은 끊임없는 고통 속에서 살았다. 원나라가 물러난 지금, 백성들은 여전히 힘겹게 살고 있었다.

무림맹이 조직됐고, 정파들이 다시 문파를 재건하며 예전의 세력권을 다시 복구하고 있었지만, 백성들의 삶이 달라진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절강성만은 달라졌다.

악불군의 천호방은 사파와 흑도들에게 잔인하다고 할 정도로 단호하게 징치를 했다. 다른 정파와 같은 타협이 없었다.

그러면서 모든 정책을 양민들을 위해 실시했다.

안전한 상행위를 보장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구호 활동,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에 대한 복수까지 해 주니, 천호방은 실로 하늘이 내린 복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닌 것은 아닌 것 아니겠나?”

“그럼 끝까지 악 방주를 음해하는 행동을 계속하시겠다는 것입니까?”

“좀 그렇게 보채지 말게, 나도 지금 갈등 중이네.”

종산은자 역시 괴로운 듯 말했다.

드디어 그의 눈에 수많은 양민들에 둘러싸인 채 다가오는 천호방의 기가 보였다.

“악 방주님은 무림의 자존심이라고 불리던 천륭검가의 후계자입니다. 선배께서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전 그것을 모두 파기하셨으면 싶습니다.”

“…….”

종산은자는 자신을 마치 수하라도 되듯 무시하던 인표규의 모습이 생각났다.

“황보 대협.”

“예.”

“노부는 누구보다도 황보 대협을 믿네.”

“감사합니다.”

“정말 악 방주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믿는가?”

“믿습니다.”

“알았네.”

악불군을 음해하기 위해 계속 활동하던 종산은자가 드디어 마음이 변하고 있었다.

담수련의 예측대로 악불군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그에게 악의적인 감정을 가진 자들까지 변하고 있음이었다.

* * *

“방주님의 귀환을 환영합니다!”

천호방 방주 집무실에 모인 천호방의 간부들은 악불군과 담수련이 들어오자 동시에 소리쳤다.

“제가 없는 동안 고생하셨지요?”

“고생은 수많은 전쟁을 치르신 방주님께서 하신 것이지요.”

고철황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악불군은 옆에 놓인 서류를 집어 들었다. 그동안 방에 있었던 여러 사안들을 정리한 서류였다.

“방의 재정이 갑자기 많이 늘었군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남궁세가와 제갈세가까지 천호상단과 연계를 하기로 해서 자금을 좀 충분히 준비했습니다.”

“그것은 알겠는데 어떻게 구했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제 보물 창고의 보물들을 모두 가져와서 현금화를 좀 했습니다. 천호방의 이름으로 처리하니까 예전처럼 후려치지 않고 제값을 다 쳐 주더군요.”

“고 장로님께서 평생을 모으신 것인데 방으로 전부 다 귀속을 시키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제 평생 지금이 가장 행복한데, 그까짓 재물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고 장로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미소를 지으며 치하한 악불군은 다시 서류를 읽기 시작했다.

“염상들은 어떻게 처리하셨어요?”

담수련이 외당당주인 마진우를 보며 물었다.

“절강성의 염상들은 모조리 철퇴를 내렸습니다.”

지독하다고 알려진 염상 조직답게 기회만 생기면 천호방에 대한 나쁜 소문을 퍼뜨리고 천호상단의 거래를 방해했다. 심지어 천호방 총단에 수십 명이 몰려와 선량한 장사치들을 억압한다며 난동까지 벌였다.

마진우는 담수련의 명대로 그들을 가차 없이 징치했다. 무림인이 양민들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믿던 염상 조직은 천호방의 무자비하다고 할 정도의 공격에 결국 무너졌다.

“가장 큰 문제가 왜구들이군요?”

서류를 다 읽은 악불군이 고개를 들며 말하자 고철황이 다시 받았다.

“원나라 때도 여러 차례 수군이 왜구들을 제거하기 위해 출동했지만, 수군들의 능력으로는 그들을 제거하기 불가능했습니다.”

“그럼 본 방이 나설 수밖에 없겠군요?”

“저희도 그 생각을 못 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주산군도를 지나야 하는데, 보타검각이 무림인들의 통행을 불허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 문제는 이제 사라질 겁니다.”

“무슨 방법이 있으십니까?”

“보타검각을 없앨 생각입니다.”

순간 모두는 깜짝 놀라 악불군을 쳐다보았다.

“방주님, 보타검각은 정파에게는 신화와도 같은 곳입니다. 그곳을 친다면 많은 정파에서 천호방이 절강을 완벽하게 장악하기 위해 보타검각을 쳤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동정어옹은 보타검각을 친다는 것은 무리하다고 생각한 듯 급히 반론을 펼쳤다.

“그래서 지금까지 보타검각이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보타검각이 측천무후궁의 근거지중 하나라는 것을 증명만 한다면 아무도 반발하지 않을 것입니다.”

“증거를 찾으셨습니까?”

“측천무후궁이 그 정도로 허술한 곳이 아니지요. 그래서 먼저 친 후, 증거를 찾을 생각입니다.”

악불군의 말은 지금은 증거가 없다는 의미였다.

모두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그들이 느낀 악불군은 매우 신중한 성격으로, 증거 없이 누구를 핍박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누구보다도 확실한 증거가 있었다. 그가 무조건 믿는 담수련의 분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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