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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404화 (404/472)

<천검지애 404화>

404화. 변화(2)

“검후님, 악불군이 돌아왔다는 보고입니다.”

빠르게 검을 휘두르고 있던 백리옥빙은 유벽설의 보고에 검을 멈췄다.

유벽설은 그녀의 반응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백리옥빙이 수련 중 보고를 받는 일은 흔했다. 하지만 어떤 중요한 보고에도 하던 수련을 멈추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검을 검집에 넣은 그녀는 몸을 돌렸다.

“지금 천호방 총단에 있느냐?”

“예.”

“천호방에 은화가 몇 명이나 있느냐?”

“천호방이 신생 문파인지라, 간세는 여럿 잠입시켰지만 은화는 한 명도 없습니다.”

“담수련의 지근거리에 한 명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천후궁의 운우각주가 담수련 납치를 시도하다가 실패하면서 제거된 것 같습니다. 근래 전혀 연락이 안 됩니다.”

“납치에 은화를 사용했다는 것이냐?”

“예.”

“은화 한 명을 키우는 데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한지 알면서 그런 허접한 계획으로 소모하다니…….”

백리옥빙은 천후가 하는 일이 영 마음에 안 들었지만 더 이상 말을 하지는 않았다.

“성후님께서 수련이 끝난 후, 의논하실 일이 있다고 검각으로 오시라고 하셨습니다.”

“알았다. 가 보거라.”

“예!”

유벽설이 나가자 검을 무기대에 걸쳐 놓은 백리옥빙은 자리에 앉았다.

‘혈교의 혈마종을 단신으로 제거했단 말이지…….’

측천무후궁의 무고에는 후의 자격을 얻은 자들만이 익힐 수 있는 열 가지의 천고절예가 있었다.

검을 사용하는 무공은 모두 네 개였는데, 그중 하나가 놀랍게도 천륭검보였다.

구문황의 여동생이었던 구문정이 천륭검보의 사본을 비치해 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무공광인 그녀는 열 개의 무공을 모두 익혔다.

이해할 수 없는 자세들만 그려져 있는 천륭검보 역시 그녀는 열심히 수련했고, 그 안에 상당히 신묘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나 익히는 것과 십 성으로 완전하게 숙달시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그녀는 결국 자신의 신체에 가장 적합한 벽옥수월천라검결을 자신의 주무공으로 선택했다.

‘천륭검보를 좀 더 수련해야 했나?’

그녀는 본능적으로 악불군과 생사투를 벌여야 할 날이 다가올 것이라고 느끼는 듯했다.

* * *

“중간보고 드리겠습니다.”

혈우대마종의 집무실에는 사제 일월신마를 비롯해 혈교의 최고위 간부들이 모여 있었다.

며칠이 지난 지금, 당시 상황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악불군의 제거와는 별개로 혈마전이 어떻게 당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분석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보고해라.”

혈우대마종의 허락이 떨어지자 혈뇌는 혈마전이 있던 남민산과 그 주변이 그려진 지도가 붙어 있는 게시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갈세가를 비롯해 여러 문파가 혈마전을 봉쇄하고 있어 그 안의 상황은 아직 알려진 것이 없으니, 우선 정황에 대한 분석부터 하겠습니다. 이곳 남민산은 숲이 대단히 울창합니다.”

“혈뇌, 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이번 기습에 정파의 최고 고수들은 합류하지도 않았다고 하던데 사실이오?”

무엇보다도 그것이 가장 궁금했는지 일월신마의 말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질문을 던졌다.

혈뇌는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맞습니다. 당시 기습에 참여한 자들을 중견급 무인과 일류급의 무공을 지닌 후기지수들입니다. 제 짐작이 맞다면 악불군이 간세들과 무림맹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을 염려해 그렇게 정한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혈마전이 그런 놈들에게 당했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보시오?”

“우선 분석한 것을 다 보고한 이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혈뇌는 혈마전으로 이어진 선들을 가리키며 다시 말했다.

“이 선은 혈마전을 공격한 문파들의 동선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이들은 다른 곳을 거치지 않고 곧장 혈마전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습니다. 은밀하기도 했지만 빠르게 움직인 탓에 혈마전에서 대처할 시간이 없었다고 분석되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최학의가 질문을 던졌다.

“군사, 혈마전의 주위에는 본 교의 구천십지대금쇄진(九天十地大禁鎖陣)이 펼쳐져 있어 누구든 진 안에 들어서면 당장 안에서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은밀하게 움직였다 해도 진에서는 걸려야 하는 것이 맞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이번 일에는 의문점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중 두 가지만 말한다면 첫째 이들이 혈마전의 위치를 어떻게 정확히 알고 있었느냐, 그리고 또 하나는 방금 최 부제께서 제시한 혈마전을 감싸고 있는 구천십지대금쇄진을 어떻게 파훼할 수 있었느냐는 점입니다.”

“그래서 결론을 말해 봐라.”

혈우대마종의 말에 혈뇌는 고개를 한 번 숙이더니 입을 뗐다.

“구천십지대금쇄진 같은 대형진을 파훼한 것이나 혈마전이 쉽게 무너진 상황들을 상정해 분석한 결과, 전혀 생각도 못 한 지점에서 기습을 당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정파에서 공중으로 침입한 것 같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혈우대마종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기습한 자들의 숫자가 몇 명이나 되느냐?”

“아직 정확한 숫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소 삼백에서 최대 오백 명이 동원됐다고 추정됩니다.”

“그렇게 많은 수가 공중으로 침입했다면 어떤 방법을 썼다고 생각하느냐?”

날카로운 질문에 혈뇌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답했다.

“공중으로 침투하기 위해서는 연을 이용하거나 높은 지역에서 활강하는 방법이 가장 유용합니다. 하지만 그 지역은 숲이 너무 많아 연을 띄울 수 없고 지형상 혈마전까지 활공할 높은 곳이 없어 두 방법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아직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혈뇌조차 짐작할 수 없는 방법이라니…….

만약 악불군 혼자 침투했다고 생각한다면 새를 타고 침입했다는 가정을 분명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혈우대마종조차 악불군이 혼자 먼저 침입해 그런 상황을 만들었다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럼, 악불군이 어떻게 혈마전을 찾아냈는지 알아냈느냐?”

이 모든 사건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바로 혈마전의 위치가 밝혀진 것이었다.

이번에도 혈뇌가 즉답을 하지 못하자 일월신마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희 사제단에서 그 문제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하지만 혈마전의 위치가 다른 문파에게 알려졌다는 증거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짐작한 것인데, 측천무후궁이라는 계집들이 알려 준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신비 조직이 측천무후궁이라는 것이 다 알려진 것 같았다.

알월신마의 말을 들은 혈뇌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혈뇌전에서 알아낸 것에 의하면 측천무후궁에서 각 문파에 보낸 본 교의 정보에 사대마전의 위치는 없었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혈뇌.”

“예, 교주님.”

“지금 보고대로라면 결국 의문만 더 많아졌을 뿐, 도대체 알아낸 것이 전혀 없지 않느냐?”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금 더 자세한 정보가 속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곧 모든 정황을 밝힐 수 있을 것입니다.”

“전부 나가라!”

혈우대마종은 심기가 매우 불편한 듯 모두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내가 나서는 일은 없기를 바랐는데…… 결국 직접 나서야 하는가…….’

정파에서 말하는 생사경의 경지인 마선(魔仙)의 경지에 도달한 그는 언제부터인가 직접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을 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악불군은 직접 죽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악불군의 집무실.

악불군과 담수련은 몇 시진째, 주산군도가 그려진 지도를 보며 숙의를 하고 있었다.

“아가씨, 날이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이제 좀 쉬시지요?”

악불군은 그녀가 너무 무리하는 것 같자, 슬쩍 휴식을 취하라고 강권했다. 하지만 한번 무엇에 꽂히면 완전히 그것에 몰두하는 그녀의 성격상 악불군의 말이 통할 리 없었다.

“아직 잘 시간이 아니잖아?”

“그래도 하루 종일 지도만 보고 계셨지 않습니까?”

“소군이 위험한 계획을 짜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내가 반드시 좋은 계획을 짜야 해. 그러기 전에는 쉴 수 없어.”

“제가 다시는 위험한 계획을 짜지 않을 것이니 걱정 마시고 쉬십시오.”

하지만 악불군의 말을 귓전으로 흘려들은 듯 담수련은 화제를 돌렸다.

“소군.”

“예.”

“어떤 싸움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번 보타검각과의 전쟁은 우리가 그들에게 들키지 않고 보타산에 들어갈 수 있느냐 마느냐가 승패를 가늠할 것 같아.”

“저도 그게 가장 중요할 것 같습니다.”

“분명 말하지만 저번 같은 방법은 안 돼!”

“보타산을 가려면 바다를 건너야 합니다. 제가 그때 보았던 새들의 눈을 피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거기다 보타산 주위에 펼쳐 있는 자연진도 만만치 않을 거고요.”

“참! 그때 보타검각에서 적설만큼 큰 새를 두 마리나 봤다고 했지?”

“예, 종류는 확실치 않지만 분명 사람을 태우고 공중을 나는 새를 봤습니다.”

“남해 성모궁에서 보았던 선학과는 달랐어?”

“선학 종류는 아니고, 그림에서 본 붕조(鵬鳥)와 비슷했습니다.”

“붕조라면 영물이잖아?”

“확실히 붕조인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을 태울 정도로 영민하다면 영물이 맞지 않을까요?”

담수련은 잠시 생각하더니 신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적설과 그 새들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싸우게 하시려고요?”

“그들이 보타산 주위에 펼친 진은 내가 파훼할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그 새들이 적설과 같이 사방을 다 볼 수 있다면, 은밀하게 다가가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겠어?”

담수련의 말에 악불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보타검각에 방문할 때, 적설은 보타산의 새들을 느끼자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보타산의 새들 역시 적설을 느꼈는지 둘 다 날아올랐고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그 반응은 분명 친근함이 아닌 아주 적대적인 반응이었다.

보타산에 도착한 후, 악불군은 은밀하게 보타산의 새들에게 자신의 동물들과의 감응 능력을 발휘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그 새들은 악불군에게 반응하지 않았었다.

‘잘못하면 적설이 아주 위험해질 수도 있는데…….’

악불군이 염려한 것은 적설이 다치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쪽은 둘이었다. 현저하게 적설이 불리한 싸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아가씨, 그 문제는 적설에게 물어보고 결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럼 지금 물어보러 가자.”

“지금요?”

“바람 좀 쐬고 싶었는데 잘됐잖아?”

바람은 핑계고, 그녀는 악불군과 함께 나들이를 하고 싶었다.

“그럼 가시지요. 백설이도 좀 뛰고 싶을 겁니다.”

* * *

“사방에 노리는 자들이 수두룩할 텐데, 두 분만 나가셔도 되겠냐?”

챙이 달린 모자를 쓰고 얼굴을 가린 악불군과 담수련이 말을 타고 총단을 나가자 사효조가 불안한 듯 말했다.

“그러게. 따라오지 말라고 하셨지만, 그래도 끝까지 따라겠다고 하는 것이 맞는 거 아닌가 싶다.”

최욱걸이 말을 받자 흑석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둘을 보며 말했다.

“우리가 진짜 방주님을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하냐? 만약 방주님을 시해할 정도의 적이라면 우리는 열 명이 있어도 소용이 없다.”

“쩝! 그렇긴 한데, 그래도 명색이 우리가 방주 호법 아니냐? 주위에 머물며 하다못해 심부름이라도 하는 게 우리의 임무 같아서 그런다.”

“그래서 방주님께서 우리에게 임무를 주셨지 않느냐?”

“어떤 임무를 주셨는데?”

흑석영의 말에 다른 세 명은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들은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쉬라는 임무를 줬잖아?”

“그게 무슨 임무냐?”

“방주님을 모시기 위해서는 우리도 너무 피곤하면 안 좋다. 오랜만에 편히 쉬면서 피곤을 풀고 몸을 최상으로 유지하는 것도 우리의 임무다.”

말을 마친 흑석영이 사라지자 나머지는 서로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백인막 시절, 최고의 고수로 막주의 말까지 우습게 보던 흑석영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저 자식이 누구에게 진심으로 충성하는 성격이 아닌데, 방주님께는 진짜 마음으로 승복한 것 같지 않냐?”

대독관의 말에 사효조가 이상한 눈으로 보며 물었다.

“그럼 넌 방주님께 진심으로 충성하지 않는구나?”

사효조의 말에 대독관은 화들짝 놀라며 반박했다.

“뭔 소리야? 우리들 중에 방주님께 대한 충성심은 내가 제일 높을 거다.”

악불군의 외유가 생각지 않은 충성 경쟁을 유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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