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검지애 408화>
408화. 국면 전환(2)
“아가씨…….”
“왜 그러는데?”
“놀라지 마십시오.”
담수련은 불안한 눈으로 반문했다.
“그렇게 말하니까 더 놀랄 것 같잖아?”
하지만 그녀는 더 묻지 않았다. 악불군이 전음을 보내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흑 호법.]
[예, 주군.]
[지금 총단 안으로 귀하신 분이 들어오셨습니다. 누구도 그분을 막거나 무례한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곧 조치하겠습니다.]
“이제 얘기해 봐. 무슨 일인데 그렇게 놀라는 거야?”
전음이 끝나자 담수련은 즉시 다시 물었다.
“가주님께서 오신 것 같습니다.”
순간 담수련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담무룡이 살아 있기를 가장 원했던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그런데 막상 그가 살아서 돌아왔다는데 왜 이렇게 가슴이 철렁한단 말인가…….
“……아버지가 틀림없어?”
“제가 가주님께 무공을 배우면서 거의 몇 달을 같이 있었습니다. 가주님의 기가 분명합니다.”
“소군.”
“예.”
“아버지 무공은 어떠신 것 같아?”
“어디 다치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녀는 점점 불안했다. 담무룡의 성정상, 무공이 아무 문제가 없는데 지금까지 어디 있었단 말인가…….
“지금 어디쯤 오셨어?”
“곧 도착하실 겁니다. 전 이만 나가 봐야겠습니다.”
“소군이 왜 나가?”
“가주님께서 오시는데 당연히 나가서 맞아야지요.”
“여긴 천호방 총단이지, 더 이상 잠룡세가가 아니야. 그리고 소군은 천호방의 방주고. 그러니 굳이 나가서 맞을 필요까지는 없다고 봐.”
담수련의 반응이 뜻밖인 듯 악불군은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 효녀인 그녀가 보이는 반응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가주님께서 살아서 돌아오시기만 그렇게 바라시더니,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
담수련은 답을 하지 않았다. 분명 담무룡이 살아서 왔다면 그녀로서는 정말 너무 기쁜 일이었다.
하나, 시기가 이상했다.
[방주님, 지금 방주님께서 계신 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흑 호법, 전각 주위에 모든 호위들을 물리고 누구도 이 근처에는 못 오게 하세요.]
[알겠습니다.]
악불군은 그녀의 얼굴을 잠시 보고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그러자 딱 알맞게 건장한 체구의 중년인이 앞마당에 떨어져 내렸다.
강력한 패기를 뿜어내는 그는 분명 담무룡이었다.
악불군은 급히 그의 앞으로 달려가 공손히 인사를 했다.
“가주님께서 이렇게 건강하게 다시 귀환하시다니, 정말 천우신조라고 생각합니다.”
담무룡은 악불군의 인사에도 쳐다보지 않았다. 그의 눈은 방 안에 서 있는 담수련에게 향해 있었다.
“들어가자.”
“예!”
담무룡이 안으로 들어서자 담수련의 눈에는 눈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아무리 의아하고 불안해도, 죽은 줄 알았던 담무룡의 건강한 모습을 보자 반가움에 눈물이 저절로 나온 것이다.
“아버지!”
결국 담수련은 담무룡의 품 안에 안기고 말았다.
담무룡도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그녀의 등을 토닥거리더니 의자에 앉았다.
“이곳을 떠난 지 이 년 정도밖에 안 됐거늘, 마치 수십 년 만에 온 것 같구나.”
“아버지, 그동안 어디 계셨어요?”
담수련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담무룡은 괴로운 표정을 잠시 짓더니 고개를 저었다.
“네가 모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그래, 네 오라비는 어디에 있느냐?”
“수운 오라버니께서는 태산종가가 편하시다고 그리로 가셨습니다.”
“쯧! 쯧! 미욱한 놈, 입안에 넣어 준 밥도 삼키지 못하다니…… 둘 다 앉아라.”
악불군과 담수련이 자리에 앉자 담무룡은 그제야 악불군을 보며 말했다.
“네가 수고가 많았다. 수련이만 보호해도 큰 성과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세력을 구축하고 무림에 큰 명성까지 얻었다니 자랑스럽구나.”
“모두 가주님의 은덕입니다.”
악불군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담무룡이 약간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내 은덕이라고 생각하느냐?”
“당연한 말씀을 어찌 다시 물으십니까? 가주님께서는 제 목숨을 구해 주셨고 무공까지 가르쳐 주셨으니, 제게는 부모님이자 사부님 같으신 분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무슨 명령을 내리건 내 말을 따르겠구나?”
예전 같으면 그냥 명을 내렸겠지만, 그도 악불군의 위상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있는지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건 당연하…….”
답을 하던 악불군의 말이 끊겼다. 담수련이 끼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큰일을 겪고 만났는데, 어찌 회포를 풀기도 전에 이상한 말씀부터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담무룡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담수련을 보며 반문했다.
“이상한 말이라니, 그게 무슨 의미냐?”
“저희 모두 큰일을 겪고 이 년 만에 다시 만난 자리입니다. 당연히 종리 유모님에 대해서도 물으셔야 하고 잠룡밀이나 잠봉밀도 궁금하셔야 당연할진대, 갑자기 소군에게 명령을 듣겠느냐고 물으시니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아 드리는 말입니다.”
“이 아비가 하는 말은 무림에 대한 것이다. 네가 끼어들 일이 아니니라.”
예전에도 자주 듣던 말이었지만 담수련은 이 말이 무척 싫었다.
“아버지께서는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내가 뭘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이냐?”
“아버지께서는 소군에게 명령을 내리실 권한이 없으십니다. 소군에게 명을 내리시려면 먼저 제게 말씀하셔야, 제가 타당한지를 분석한 후 소군에게 시킬 수 있습니다.”
담무룡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딸을 쳐다보았다. 담수운이라면 몰라도 담수련은 그의 말을 거역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니 이런 식으로 토를 단 적도 없었다.
“악불군이 스스로 인정했듯이 나는 명령을 내릴 자격이 있다.”
“소군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제가 부탁을 할 수는 있습니다.”
“네가 감히 이 아비에게…….”
큰 배신감을 느낀 듯 담무룡의 얼굴에 노기가 떠오르자, 악불군이 급히 입을 열었다.
“가주님, 아가씨께서는 가주님을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잃으실 뻔하셨습니다. 아가씨의 말씀이 좀 도가 넘기는 하지만, 그래도 오늘같이 좋은 날 불상사가 일어나면 되겠습니까? 화를 참으시고 아가씨를 용서해 주십시오.”
악불군까지 나서자 담무룡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악불군이나 담수련은 여전히 그에게 매우 공손했다. 하지만 할 말은 다 하고 있었다.
‘내가 예전 생각만 하고 너무 급했어…….’
“하하하! 강호 생활을 하더니 둘 다 강단이 세졌구나. 내가 너희 둘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를 보고 좀 흥분했던 것 같구나. 그래, 종리 단주는 어떻더냐?”
담무룡은 조금 돌아서 가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유모께서는 언제나 아버지 걱정뿐이시지요.”
순간 담무룡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 효웅으로 불리던 그도 종리화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부채 의식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룡밀과 잠봉밀은 어찌 되었느냐?”
“둘을 합쳐 천신문이라는 새로운 문파를 만들었습니다.”
“천신문이라……. 그 정도로 무림맹의 추적을 피하기는 어려울 텐데?”
“천호방의 분타가 가까이 있습니다. 그 덕에 무림맹에서도 그쪽은 함부로 조사하지 않고 있어요.”
“……무림맹에서 천호방을 우대하고 있다는 것이냐?”
측천무후에게 들은 정보만 알 뿐, 아직 진정한 천호방과 악불군의 위상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는 그로서는 분타가 옆에 있다고 무림맹에서 조사하지 못한다는 말을 매우 놀랍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곳에 들어오면서 보니까 경계도 상당히 철통같고 방도 수도 꽤 많은 것 같던데, 방도들은 어떻게 구했느냐?”
“우선 낭인들을…….”
악불군은 방도들을 구한 방법을 설명했다.
“낭인들이다……? 남들은 믿지 못해서 절대 들이지 않는 낭인들을 방도로 들여 우선 크기를 불린 것은 아주 신묘한 수로구나. 그런데 들어오다 보니 낭인들로 볼 수 없는 방도들이 꽤 있던데?”
“그건…….”
“아버지, 소군은 천호방의 방주입니다. 방주에게 방의 비밀을 말하라고 하시는 것은 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도 담수련이 제동을 걸자 담무룡은 심기가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수련이 너, 이 아버지에게 왜 자꾸 이러느냐? 악불군의 명성이 커지니 너도 욕심이 생긴 거냐?”
“아버지, 제가 오음절맥인 거 아시잖아요? 제가 얼마나 더 산다고 욕심을 부리겠어요?”
순간 악불군의 검미가 좁아졌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담수련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아가씨!”
“소군의 마음은 알아. 하지만 아버지께서 오셨으니 확실하게 정리하는 것이 좋아.”
담수련의 말에 담무룡의 표정에는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처음 측천무후에게 천호방을 접수하라는 명을 받았을 때, 담무룡은 아주 쉽게 생각했다.
악불군은 그에게 충성스러운 하인에 불과했고, 담수련은 그의 말은 뭐든 따르는 착한 딸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나, 예상이 어긋나고 있었다. 그것도 악불군이 아니라 담수련이 문제가 될 줄은 전혀 생각도 못 했던 일이었다.
“정리라니, 무슨 말이냐?”
이제 화를 내는 방식은 안 된다고 판단한 그는 부드럽게 반문했다.
“아버지께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버지의 시대는 지나갔어요. 지금 아버지께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실 생각을 하신다면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내 시대가 지나갔다고? 악불군을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한 사람이 나다. 그리고 넌 내 딸이야. 그럼 내 시대는 아직 진행 중이지, 지나간 것이 아니다.”
“아버지, 지금 잠룡세가에 몸담았던 분들은 부역 세력으로 몰려 중원 무림의 추격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 그것을 소군이 보호해 주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 아버지께서 전면에 나서신다면 무림은 천호방에 적대적으로 변할 거예요.”
“난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내가 큰 계획을 세운 것이 있다. 너희는 내 뜻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측천무후궁과 어떤 거래가 하셨는지 말씀해 주세요.”
“……측천무후궁과 거래라니, 무슨 말이냐?”
“운우각주라는 여인이 그러더군요. 아버지를 구금하고 있으니 살리고 싶으면 저 혼자 나오라고요. 구금되어 있던 분이 무공도 전혀 잃지 않고 이렇게 오실 수 있는 것은 거래했기 때문이 아닌가요?”
“오랜만의 부녀상봉인데 너무 날카롭구나.”
“아버지, 날카로운 것이 아니라 순리를 따르자는 것뿐이에요.”
“순리, 뭐가 순리라는 것이냐?”
“소군이 아버지께 큰 빚이라도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라는 거예요.”
“아가씨, 가주님께 너무 심하신…….”
“소군, 이건 사적인 감정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리고 소군은 아버지가 아니라 내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 잊지 마.”
담수련이 한 말은 악불군에게 한 말이 아니라 담무룡에게 한 말이었다.
“오늘은 이만 쉬시고 내일 말씀하시죠. 침실은 원래 쓰시던 곳으로 가시면 됩니다.”
평소와 다르게 단호히 말을 끝낸 그녀가 악불군과 함께 일어났다.
* * *
‘여긴 예전 그대로이군.’
잠룡세가 시절 자신의 침실로 들어선 담무룡은 소소한 가구부터 벽까지 전혀 변한 것이 없자 입가에 살짝 미소가 걸렸다.
담수련이 자신을 얼마나 생각했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자리에 앉은 그는 눈을 감았다.
예전 같으면 그의 한마디에 사방에서 수하들이 모여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고립무원이었다.
거기다 측천무후의 수하의 신분이었다.
담무룡은 태사의 손잡이를 꼭 잡았다. 그러자 손잡이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지금 그의 가슴에 일어나는 불길이 그대로 투영되는 것 같았다.
“우선은 측천무후, 네 뜻대로 해 주마, 하지만 내 반드시 다시 세력을 일으켜 이 모든 치욕을 갚아 줄 것이야.”
담무룡은 악불군이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를 이룬 것이 자신에게 다시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 *
“아가씨, 그토록 가주님이 무사 귀환하시기를 학수고대하셨는데 왜 그러십니까?”
담무룡이 침실로 돌아간 후, 악불군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소군, 아버님은 내게 너무 소중하신 분이야. 그런 분이 또다시 잘못된 판단을 하실까 봐 걱정하는 것뿐이야.”
“가주님께서는 매우 현명하신 분입니다.”
“알아, 하지만 그 뛰어나신 머리를 권력을 챙기는 데만 쓰시는 것이 문제지.”
담수련은 직접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담무룡의 등장이 악불군의 모든 미래를 망쳐 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 너무 불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