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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410화 (410/472)

<천검지애 410화>

410화. 아버지(2)

그때 앞쪽에서 흑석영의 전음이 들려왔다.

[방주님, 손님들이 도착했다는 보고입니다.]

[우선 배로 모시라고 해라.]

[예!]

소걸아는 악불군이 누군가와 전음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듯 잠시 기다리더니 다시 물었다.

[배 타고 어디 가는 건데? 나한테만은 먼저 말해 줄 수 있지 않냐?]

[……보타검각.]

이어지는 악불군의 답에 소걸아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야! 악 방주, 너 미쳤어? 보타검각은 정파야.]

[정파로 변신한 측천무후궁이기도 하지.]

[너, 명확한 증거가 없으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거 알지?]

[아직 증거는 없다. 하지만 이제 곧 증거가 쏟아져 나올 거다.]

[어디서?]

[보타검각 안에서.]

[그럼 지금은 증거가 없다는 거잖아?]

[소걸아, 넌 나를 안 믿냐?]

[나야…… 당연히 믿지. 하지만 증거가 만약 안 나오면 다른 문파에서 믿어 주겠냐?]

[난 내 친구인 소걸아만 믿어 주면 그걸로 족하다.]

소걸아는 이어지는 그의 말에 얼굴에 함박 미소가 떠올랐다. 골통 취급만 받던 그를 천하의 천호무적검이 이렇게 믿고 신뢰를 보인다는데 기분이 나쁘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전음에 얼굴이 팍 구겨졌다.

[그리고 어차피 네가 다른 사람들도 나를 믿도록 설득해 줄 거잖아?]

‘이씨! 남들 설득하는 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데…….’

드디어 출구에 도착한 악불군은 잠시 밖을 살폈다. 그가 나온 출구는 예전에 나온 곳과는 다른 장소였다.

[이제부터 제가 발을 디디는 곳을 정확히 따라서 뛰십시오.]

모두에게 전음을 보낸 악불군이 몸을 날렸다. 그가 선 곳은 수면에 살짝 드러난 돌이었다. 그는 어디에 돌이 있는지 아는 듯 거침없이 물을 밟고 뛰어갔다.

그러자 뒤를 따른 자들도 몸을 날렸다. 절정고수답게 누구 하나 악불군의 발길을 놓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제법 규모가 큰 배였다. 다만 배의 색이 보통 배와는 달리 매우 어두워, 도착하고 나서야 배라는 것을 알 정도였다.

배에 뛰어오른 정파의 지휘자들은 뒷짐을 진 채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한 청년을 보고서 눈이 커졌다.

도와주러 올 사람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상대가 백천학일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백 공자님께서 와 주셔서 힘이 많이 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악불군이 포권을 하자 백천학도 답권을 하며 말했다.

“측천무후궁에 대한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당연히 무림인의 한 사람으로서 힘을 보태야지요.”

그때 이미 안면이 있는 듯 먼저 와 있던 동정어옹을 비롯한 무림사기와 인사를 나누던 태극검자가 다가와 포권을 했다.

“그동안 잘 계셨소?”

“오랜만에 뵙습니다. 태극검자 어르신.”

“천하의 무림사기가 모두 천호방에 있을 줄은 몰랐소이다.”

백천학을 보고 멈칫했던 사람들은 이번에는 태극검자와 무림사기라는 말에 또 한 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배 곳곳에 서서 경계를 하고 있는 천호방 무인들의 자세를 본 그들은, 천호방이 아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 이 분은 모두 아시겠지만 무림맹의 중원총순찰이신 백천학 공자님이십니다. 인사를 하시지요.”

* * *

달도 없는 하늘을 흐르는 시꺼먼 그림자는 사람들 눈으로는 볼 수 없었다. 더욱이 그 그림자가 만길 허공을 날고 있다면 더더욱 보일 리 만무였다.

하지만 그것을 볼 수 있는 존재들이 있었다. 아니 느낀다고 하는 편이 맞았다.

대붕은 보타검각의 수호새로 천붕과 태붕으로 불렸다. 남쪽의 선학과 북쪽의 설로 그리고 서쪽의 혈응과 함께 전설의 영물로 알려져 있었다.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살 수 없다고 했던가…….

이들 역시 자신들의 영역에 들어올 경우 죽기로 싸웠다.

특히 영역이 남쪽과 북쪽으로 극명하게 다른 선학과 설로와는 달리 혈응과 대붕은 이따금 만나는 경우가 많아, 보는 즉시 사즉생의 전투가 벌어지곤 했다.

물론 모든 것은 책에서나 전해지는 전설일 뿐, 둘이 싸우는 광경을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깎아지를 듯한 보타산의 꼭대기에 우뚝 서서 사방을 둘러보고 있던 태붕이 갑자기 날개를 펄럭였다.

날아오르려는 것이 아니라 전투를 벌이기 위한 사전 동작 같았다.

태붕의 눈이 하늘로 향했다. 굳이 볼 필요도 없이 가까워지면 저절로 느껴지는 천적의 위험이었다.

계속 사방을 살피며 외인의 침입을 감시하던 태붕의 눈이 한 지점으로 향한 후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의 눈에는 자그마한 점에 불과했다. 더욱이 사방이 시꺼먼 그믐밤이었지만 둘의 눈에는 서로가 또렷이 보이고 있었다.

적설의 입이 벌어졌다.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초음파는 그대로 태붕의 귀에 꽂혔다.

그러자 태붕 역시 뾰족한 부리를 하늘로 들더니 역시 날카로운 소리를 뿜어냈다.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둘 사이의 공간이 크게 흔들린 것이다.

적설의 몸이 공중으로 더 떠올랐다. 공격하기 위한 사전 동작이었다. 태붕 역시 위험을 느낀 듯 날개를 퍼덕이더니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태붕의 형제인 천붕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들에게는 대단히 운이 나쁜 날이었다. 천붕은 측천무후의 부름을 받은 검후를 태우고 총궁으로 떠나 있었던 것이다.

태붕은 빠른 속도로 적설을 향해 날아갔다. 적설이 보타산으로 다가가지 않은 것은 태붕을 보타산에서 최대한 멀리 유인하기 위해서였지만, 태붕은 그것까지는 몰랐다.

[적설, 다치지 마라.]

주산군도에 들어선 악불군은, 태붕이 적설을 향해 날아가는 것을 보자 우선 적설에게 전음을 보냈다.

“흑 호법.”

“예, 방주님.”

“담 군사께서 말한 장소로 빨리 배를 몰아라.”

“예!”

담수련은 보타산을 감싸고 있는 진을 파훼할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문제는 보타산에 가까워지면서 정파인들이 술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악 방주.”

“예, 공자님.”

“남궁 대협께서 말하시기를 이 길이 보타검각으로 가는 길 같다고 하는데, 맞습니까?”

악불군은 더 이상 감추는 것은 어렵다고 느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희들이 가는 곳은 보타검각입니다.”

악불군이 인정했지만 생각 외로 백천학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악 방주께서는 보타검각이 측천무후궁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연관이 아니라 보타검각이 측천무후궁의 일원입니다.”

“증거가 있습니까? 만약 증거가 없다면 이후 상당한 역풍이 불 수도 있습니다.”

“역풍이 두려워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측천무후궁이 지금 같은 괴물 같은 조직이 된 것이 아닐까요? 전 천하의 안녕을 위해 혈교와 측천무후궁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없앨 생각입니다.”

“하하하! 역시 악 방주는 다르군요. 좋습니다. 전 악 방주를 믿습니다. 다른 분들은 제가 설득해 보지요.”

백천학은 악불군의 답이 아주 마음에 드는 듯 커다랗게 웃더니, 정파인들이 모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흑 호법, 곧 진에 구멍이 날 것이다. 그 속으로 배를 몰아라.”

“예, 준비하고 있습니다.”

보타산의 동쪽에 도착한 악불군은 하늘의 별자리와 산의 위치를 살피더니 한쪽으로 향해 두 팔을 벌렸다.

곧 그의 손바닥에서 진동이 일어나더니 진을 이루는 기운을 흔들기 시작했다. 바다의 기운을 담아 엄청난 위력을 지닌 자연진이었지만, 가장 약한 고리를 공략하자 견디지 못하고 구멍이 생기고 말았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보던 모든 사람은 입이 벌어지고 말았다. 공간에 구멍을 뚫는 이런 장면은 무림인인 그들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진을 사람의 힘으로 구멍을 내다니! 이게 가능한 일인가……?”

진에 대해 잘 아는 제갈신명은 고개를 살래 저으며 중얼거렸다. 진을 이루는 물건을 없애 진 자체를 파훼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미 이루어진 진에 구멍을 뚫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자님, 제게 무슨 수법이신지 아시겠습니까?]

보고 있던 태극검자가 고개를 갸웃하며 백천학에게 물었다.

악불군이 올린 손에 의해 진에 구멍이 난 것은 분명해 보였지만 공력을 사용하는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였다.

[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자연에 존재하는 기를 이용해 진의 기를 상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악 방주께서 자연경의 경지에 올랐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빈도가 상당히 많은 고사를 알고 있지만, 저 나이에 자연경을 이룬 사람이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화경이나 현경과는 달리 자연경은 분명 무공의 경기는 아니었다. 더구나 젊은 나이에 자연경에 오른 자는 역사상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만큼 자연경에 이르기 위해서는 자연을 이해할 수 있는 인생 경험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악 방주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의미겠지요.]

대화를 나누던 백천학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왜 그러십니까?]

[하늘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요.]

[이상한 일이라니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대단한 혈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 같군요.]

백천학은 의미 모를 말을 하더니 다시 시선을 보타산으로 돌렸다.

백천학의 말대로 하늘에서는 엄청난 혈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다만 너무 높은 곳에서 벌어지고 있기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을 뿐이었다.

태붕과 적설과의 싸움은 누가 더 강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슷했다.

하지만 상황이 태붕에게 매우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새의 싸움에서 가장 많이 상처를 입는 곳은 얼굴과 배였다. 부리와 발톱이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보니 대부분의 공격이 얼굴과 배에 집중하기 때문이었다.

담수련이 만든 방호복은 적설의 배와 머리를 완벽하게 가려 주었다.

호랑이도 찢어발긴다는 태붕의 부리와 발톱이지만 만년한철까지 찢을 수는 없었다.

이미 태붕의 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 * *

“성후님! 태붕이 사라졌습니다.”

무후와 대화 중이던 성후는 명유경의 보고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사라지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보타산 정상에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를 않습니다.”

“배가 고파 먹이라도 잡으러 간 것 아니냐?”

“먹이는 이미 한 시진 전에 먹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간에 보타산을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성후는 별걱정을 다 한다는 듯 말했다.

“태붕을 해칠 수 있는 것이 천하에 어디 있다고 그리 호들갑이냐? 곧 돌아올 것이니 걱정 말거라.”

“성후님, 혹시 모르니 제가 태붕을 불러 보겠습니다.”

하지만 무후는 뭔가 불안감을 느낀 듯했다.

“걱정이 되면 가서 불러 보거라.”

“예!”

밖으로 나온 무후는 한 정자로 가더니 품에서 호각을 꺼내 세게 불었다. 역시 소리는 나지 않았다.

“……?”

그녀는 호각을 불었음에도 태붕이 나타나지 않자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태붕을 주로 타는 사람이 그녀였기 때문이었다.

다시 호각을 크게 분 무후는 여전히 태붕이 나타나지 않자 사색이 되어 급히 성후의 방으로 달려갔다.

* * *

[흑 호법.]

[예.]

[보타검각으로 오르는 길은 모두 세 개입니다. 흑 호법은 오니 쪽길을 타고 올라가십시오. 나타나는 자들이 있으면 가차 없이 제거하십시오.]

[알겠습니다.]

백인막 출신의 천호방도들을 이끌고 흑석영이 먼저 산을 오르자 악불군은 백천학을 보며 말했다.

“백 공자님께서는 오른쪽 길을 맡아 주십시오.”

이미 조를 나눈 듯 백천학은 정파인들을 이끌고 몸을 날렸다.

“저희는 가운데 길로 올라갑니다.”

악불군은 가운데 길이 보타검각의 정문으로 향하는 곳으로 가장 경계가 심한 것을 알고 일부러 자신이 그 길을 택한 것이었다.

악불군은 이번 싸움이 측천무후궁과의 전쟁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반드시 이겨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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