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검지애 411화>
411화. 보타검각(1)
“성후님!”
“무슨 일이냐?”
성후의 얼굴이 굳어졌다. 무후가 이렇게 다급하게 들어서는 경우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태붕이 사라졌습니다.”
“확실한 거냐?”
“태붕이 스스로 보타산을 떠나는 경우는 없습니다. 무엇인가 태붕을 부른 것이 분명합니다.”
“태붕을 부를 수 있는 방법은 우리밖에 모르는데, 누가 불렀다는 것이냐?”
“적입니다.”
“적?”
“누군가 보타검각을 기습한 것 같습니다.”
“무후, 태붕 때문에 당황한 것은 알겠는데,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적이 침입했으면 태붕이 당장 울었을 것이다. 거기다 본 각의 주위에 펼쳐진 진은 파훼가 불가능할뿐더러 만약 파훼를 하면 우리가 당장 알 수 있다는 것…….”
뎅! 뎅! 뎅……!
순간 말하던 성후가 말을 멈추고는 벌떡 일어섰다. 지금 울리고 있는 비상 타종은 침입자가 있음을 알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무후와 함께 밖으로 나온 성후는 호위대장인 옥소정을 보자 아미를 찌푸렸다.
당황한 그녀의 표정에서 그녀 역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당장 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 와라!”
“전 성후님의 곁을 떠날 수 없습니다. 수하들이 달려갔으니 곧 알아 올 것입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총관 명유경이 달려왔다.
“성후님, 청운루 쪽에 침입자가 있다고 합니다.”
“청운루?”
보타산 중턱에 있는 보타검각을 보호하기 위해 오르는 길마다 망루가 지어져 있었다. 청운루는 왼쪽 길에 지어진 길이었다.
“어떻게 침투했다는 거냐?”
뎅! 뎅! 뎅……!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다시 막혔다. 또다시 비상 타종이 울렸기 때문이었다.
“저건 또 어디냐?”
“미혼루 쪽인 것 같습니다.”
“그럼 침입자가 한 명이 아니라는 것이냐?”
“그런 것 같습니다.”
성후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무려 십 장 가까이 떠오른 그녀는 주위를 살폈다.
‘진은 아무 이상이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청운루와 미혼루 쪽에서 불꽃이 튀는 모습은 무기와 무기가 부딪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 분명했다.
스르르 다시 바닥으로 내려온 성후는 명유경에게 명을 내렸다.
“상황을 보니 침입자가 한둘이 아니다. 장로들에게 비상이라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명유경이 몸을 날리자 성후가 다시 말했다.
“무후.”
“예.”
“본 검각이 세워진 이후, 감히 이런 식으로 공격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보타산에 들어온 놈들을 한 놈이라도 살려 보낸다면 본 각의 치욕이나 다름이 없다.”
“알겠습니다. 한 놈도 살려 보내지 않겠습니다.”
말을 마친 무후 역시 몸을 날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하필 검후가 없는 날, 침입자가 생기다니……. 왠지 모르게 불안하구나.’
보타검각의 최고수인 검후와, 태붕과 함께 보타산을 지키는 성물인 천붕이 같이 외유를 떠났다는 점이 성후는 계속 신경이 쓰였다.
* * *
[보타검각이 검의 성지라는 말이 명불허전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위 경계 무사들조차 상당한 고수입니다.]
태극검자의 말에 백천학은 고개를 끄덕였다.
악불군이 그에게 절정 고수급의 고수만 선별해서 데리고 오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수가 많으면 전쟁에서 유리한 것은 분명하지만, 무술 실력에서 너무 큰 차이가 나면 이긴다 해도 큰 피해를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실력이 비슷할 경우에는 약간의 수적 우위만으로도 거의 피해 없이 이길 수 있었다.
[어르신, 이제 제가 나설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백천학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대단한 고수가 달려오고 있었다.
[빈도도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불리한 싸움을 하는 곳을 살피던 태극검자가 몸을 날리자 백천학도 검을 빼 들었다.
“감히 보타검각을 기습하다니! 오늘 네놈들은 한 놈도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세 명의 원로들과 나타난 무후는 백천학을 보자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말투부터 고치셔야겠군요? 보타검각은 정파에게 검의 성지로 존경을 받아왔는데, 말투를 들으니 그동안 정파에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짜고짜 침입하여 혈겁을 벌이고 있는 자들에게 좋게 대해 줄 정도로 보타검각은 어수룩하지 않다. 어디서 온 놈들인지 우선 정체부터 밝혀라!”
“전 무림맹의 중원 총순찰인 백천학이라고 합니다.”
“백천학이면 천제무황의 손자가 아니냐? 본 각과 천무성궁과는 어떤 원한도 없거늘 감히 이런 짓을 벌이다니,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보타검각은 무림의 일에는 상관없이 검에 대해 연구만 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정보력이 생각 외로 대단하시군요?”
“닥쳐라! 지금 본질은 정파에서 정파의 성지인 보타검각을 기습 공격한 것이다.”
“그럼 저도 본질을 얘기해 드려야겠군요. 보타검각이 측천무후궁의 일원이라는 정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백천학의 말에 무후는 흠칫 놀랐다. 기습한 이유가 측천무후궁 때문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놈이 그따위 말도 안 되는 정보를 흘렸는지 모르지만, 본 각은 측천무후궁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다!”
“그거야, 곧 알게 되겠지.”
예의 바르게 말하던 백천학의 말투가 급변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검이 무후를 향해 찔러 갔다.
* * *
흑석영이 이끄는 백인막 출신의 천호방도들은 백천학이 이끄는 정파 연합과는 달리 처음에는 아주 조용하게 적들을 제거해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보타검각의 원로들 열 명이 나타나면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원로들을 이끌고 도착한 요지파파는 미혼루에 도착한 후 깜짝 놀랐다.
미혼루는 검후 소속으로 제자들의 무공이 대단히 높았다. 무공광인 검후가 쉴 새 없이 수련을 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제대로 싸운 흔적도 없이, 무려 열 명이 넘게 죽어 있었다.
[살수다. 모두 조심해라.]
요지파파와 원로들은 즉각 상황을 파악했고, 곧 기습을 노리던 살수들을 감지해 냈다.
“이놈!”
요지파파의 지팡이가 나무 밑에 놓인 바위를 때렸다.
“크윽!”
그러자 침음성이 울리며 바위가 핏빛으로 변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순식간에 네 명이 죽자 흑석영이 급히 전음을 보냈다.
[사효조! 최욱걸!]
흑석영의 전음을 받은 사효조와 최욱걸이 급히 답했다.
[왜?]
[저자들의 무공이 너무 강해서, 계속 이런 식으로 싸우다가는 피해가 너무 커지겠다. 삼형환환진(三形幻幻陣)을 펼친다.]
[우린 삼형환환진을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데 어떡하려고?]
[내가 중앙을 맡을 거다.]
[중앙을 맡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잖아? 네가 당하면 우리도 전부 위험해진다는 것을 모르냐?]
사효조의 말에 흑석영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가 안전하기 위해 수하들이 계속 죽어 나가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다. 무엇보다 시간을 끈다고 해도 결국 정면 대결로 저자들을 이기기는 힘들다. 시전 준비해라.]
[알았다.]
사효조와 최욱걸이 옆으로 붙자 흑석영이 대독관에게 다시 전음을 보냈다.
[대독관, 저기 지팡이를 든 노파를 공격할 거다. 그때 넌 수하들과 함께 다른 여자들을 총공격해라. 잘못하면 우리가 죽는다는 거 명심해라!]
삼형환환진은 백인막에서 상대하기 어려운 고수를 대적할 때 사용하는 최고의 살수진이었다.
보통 살행을 할 때, 미끼로 하위 살수를 칼받이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삼형환환진은 반대로 특급 살수가 미끼가 되기 때문에 효과는 대단히 컸다.
하지만 죽이려는 상대가 지금처럼 초절정 고수일 때 진을 주도하게 되는 미끼는 대단히 위험해진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그래서 특급 살수가 되면 배우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사용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무리 큰 청부라도 특급 살수를 잃는다면 백인막 전체적으로 오히려 손해이기 때문이었다.
“뭔가 이상하다! 전부 조심해라!”
지금까지 느꼈던 기와는 판이하게 강력한 살기를 느낀 요지파파는 모두에게 급히 경고를 했다.
하지만 그녀는 물론 다른 원로들도 살기가 어디서 뿜어지고 있는지 방향을 알 수가 없었다.
바로 삼형환환진의 효과였다.
‘이것들이 감히!’
살기의 정체를 찾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요지파파는 강력한 살기가 노리는 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느끼자 다급히 지팡이로 자신의 가슴을 방어했다.
그리고 그녀의 예상대로 바닥에서 검은 인영이 튀어나오더니 가슴을 향해 검을 찔러 왔다.
“난, 너 따위 살수 따위가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요지파파는 가슴을 방어하던 지팡이를 빠르게 변화시키며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은 인영의 목을 향해 뻗었다.
대단한 임기응변이었고 속도였다. 하지만 상대는 백인막 역사상 최고의 기재일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듣던 흑석영이었다.
그의 목이 거북이처럼 밑으로 쏙 들어가는가 싶더니 가슴을 노리던 검이 그녀의 아랫배를 노렸다. 하지만 요지파파 역시 만만치 않았다. 찔러 가던 지팡이가 아래로 회전하며 다시 흑석영의 머리를 찔러 갔다. 찰나 간에 몇 번씩 변하는 그들의 공격은 실로 현란했다.
“큭! 이 비겁한 놈들이…….”
그리고 요지파파의 입에서 짤막한 침음성이 터져 나왔다.
흑석영의 머리에 곧 구멍이 나려는 순간 그녀의 팔을 무엇인가가 낚아채 방어를 방해하고는, 잇따라 옆구리를 무엇인가 쑥 뚫고 들어와 그녀의 내장을 휘젓고 나간 것이었다.
사효조의 겸(鎌)과 최욱걸의 단창이었다.
세 명이 똑같이 움직여 상대가 한 명으로 인식하게 한 후 모든 공격을 흑석영 홀로 받아 내어 다른 곳을 방어할 새가 없게 하는 것이 삼형환환진의 핵심이었다.
요지파파가 피를 분수처럼 뿜어내며 비틀거리자, 그녀의 위기를 직감한 원로 몇 명이 모습을 드러낸 세 명을 향해 맹공을 펼쳐갔다.
삼형환환진의 또 다른 단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공격에 전력을 다하기 때문에, 상대가 한 명일 때는 괜찮지만 고수가 여럿이 있을 때는 성패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모두 위험에 빠진다는 점이었다.
[쳐라!]
대독관의 전음과 함께 기다리던 삼십 명의 살수들이 총공격에 나섰다.
* * *
“그게 뭐냐?”
성후는 명유경이 쪽지를 보자 물었다.
“방금 전서가 날아왔습니다.”
“이런 바보 같은 놈들!”
쪽지를 펼쳐 본 성후는 화가 난 듯 쪽지를 그대로 비벼 가루를 만들어 버렸다.
“무슨 소식인데 그러십니까?”
“천호방에 도착한 정파의 고수들이 악불군과 회의한다며 어제 초저녁에 총단 안으로 들어갔는데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보고다.”
언제나 부드럽던 성후의 목소리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럼 지금 기습한 놈들이 그놈들일 확률이 많겠군요?”
“예상대로 악불군 그놈이 주도한 일이었어…….”
성후는 이미 보타검각을 침입할 배짱이 있는 세력은 혈교와 천호방 둘 중 하나일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악불군, 그놈이 본 각을 침입한 이유가 뭘까요? 설마 본 궁에 대해 뭔가 알아낸 것일까요?”
측천무후궁과 보타검각이 같은 세력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보타검각 내에서도 극소수뿐이었다.
“이제 이유는 아무 의미가 없다. 감히 본 각을 기습한 이상, 한 명도 이곳에서 살아 돌아가지 못한다.”
단호하게 말하는 성후의 표정은 그리 밝지는 않았다. 무후가 원로들까지 끌고 내려간 이상 벌써 진압하고 올라와 보고했어야 했다. 미혼루 쪽 역시 원로원의 최고수인 요지파파가 나섰으니 당연히 이미 상황 종료가 되었어야 했다.
하나, 그녀의 귀에는 여전히 싸우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적들의 전력이 만만치 않다는 의미였다.
“성후님, 그런데 왜 살혼루는 조용할까요?”
명유경의 질문.
그녀 역시 불안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살혼루는 성후의 직계 세력으로, 보타검각의 정문을 지키는 세 개의 루 중 가장 전력이 강한 곳이었다. 그런데 너무 조용했다.
“성후님, 저희가 내려가 볼까요?”
나머지 원로들을 이끌고 있는 명혼파파가 물었다.
감히 보타검각을 침입한 놈들을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은 것이 그들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성후는 고개를 저었다.
분노가 커질수록 위험 신호 역시 점점 커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