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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413화 (413/472)

<천검지애 413화>

413화. 영웅(1)

“……태붕이 어떤 존재인지조차 모른다는 말이냐!”

“혹시 측천무후궁까지 태워다 주는 커다란 붕새를 말하시는 겁니까?”

성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보타검각과 측천무후궁 간에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도 놀랄 일인데, 태붕과 천붕이 측천무후궁까지의 운반 수단이란 것을 어찌 안단 말인가…….

“네놈을 그때 죽였어야 했구나…….”

성후는 악불군이 홀로 보타검각에 찾아왔을 때 죽이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라는 듯 중얼거렸다.

“자, 우리도 이제 시작하시지요.”

이미 싸움은 격렬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동정어옹이 이끄는 천호사기단의 활약은 그의 호언대로 대단했다.

보타검각의 제자들과 거의 맞먹는 싸움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전황을 보며 명혼파파를 비롯한 십여 명의 원로들 역시 경악하고 있었다. 무림사기를 비롯한 천호사기단의 핵심 인사들의 무공이 그들을 너끈히 받아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후나 요지파파가 왜 아직도 오지 않는 것인지 이유를 알겠구나…….’

악불군을 빼면 크게 위협이 되는 자들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판단이 오산이었다는 것을 절감할 수 있었다.

거기다 수까지 천호방이 많은 상황.

성후는 검을 꺼냈다.

‘웃! 대단하다.’

악불군의 검에서 뿜어지는 검기에 놀란 듯 자신의 검을 가슴으로 올렸다. 그동안 싸운 자들 중 가장 강한 자로 생각했던 혈마종의 무공을 상회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측천무후궁에는 정말 고수가 많군요.”

놀라기는 성후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가슴으로 검을 들어 올려 자세를 바꿨을 뿐인데, 지금껏 보이던 허점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천륭검보를 너무 쉽게 생각했던가…….’

태후가 천륭검보의 사본을 빼내 측천무후궁에 바쳤을 때, 측천무후궁의 전대 고수들은 다각도로 천륭검보를 분석함과 동시에 여러 제자들에게 그것을 익히게 했다.

그렇게 하여 나온 결론은 천륭검보가 비록 천고의 절기임에는 분명하지만 어릴 때부터 익히지 않으면 대성이 어렵다는 것과, 그녀들이 이미 입수한 다른 검공보다 특출하게 강하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천륭검보의 모든 자세를 계속 수련할 경우 몸에 심대한 무리가 갈 수도 있다는 사실도 천륭검보를 익힌 제자들을 통해 알아낼 수 있었다.

상당한 수준까지 익힌 제자들이 여럿 있었지만 허리와 다리 등 근육과 뼈에 문제가 생기며 중간에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악불군이 순식간에 절강을 장악해 나가는 상황에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은 이유도 언제든지 제거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하나, 지금 악불군의 신위를 보면 그녀들이 얼마나 큰 오판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성후는 자신의 절기인 순음등허십이검결을 십성으로 올리기 시작했다.

‘검강?’

성후의 검이 무려 반장 가까이 늘어나자 악불군은 검미를 꿈틀했다. 대부분의 무림인들이 내는 검강과는 달리, 성후의 검이 보이는 강기는 살을 에는 듯 차가웠다. 순음의 강기였기 때문이었다.

검강의 힘이 점점 강해지자, 주위에서 싸우던 자들도 무엇인가 느낀 듯 급히 싸움을 멈추고 물러섰다. 그것을 시작으로 곧 성후의 주위에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검을 들어 올리던 성후의 눈에 이채가 나타났다. 악불군은 검으로 가슴을 비스듬히 막은 채 미동도 없이 서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검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거기에 맞춰 미세하게 다른 자세로 변하고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그 자세는 그녀도 익히 알고 있는 천륭검보의 자세였다.

후의 지위를 가진 그녀였기에 당연히 천륭검보를 익힐 기회가 있었다. 하나, 자세의 변환이 너무 느리고 힘들어 포기했는데, 그 무공을 악불군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바꾸고 있었다.

성후의 검강의 기가 점점 강력해지며 범위를 넓혀 가자 악불군의 몸 주위에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의 몸 주위의 공기가 돌기 시작한 것이다.

우우우우웅~

악불군의 주위를 도는 공기의 흐름이 빨라지자 곧 흐느끼는 듯한 괴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성후는 더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듯 드디어 공격에 나섰다.

[피해라!]

싸움을 잠시 멈추고 악불군의 뒤에 서서 상황을 보고 있던 동정어옹이 모두에게 전음을 날리며 몸을 뒤로 날렸다.

그만큼 성후가 내뿜는 기가 큰 위력을 가지고 있음이었다. 성후의 검강이 악불군의 전신을 감싸자 주위는 서리를 넘어 얼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얼리며 다가선 수십 줄기의 검강이 악불군을 찌르고 베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무림사기의 표정이 탈색했다.

만약 그들이었다면 그녀의 공격을 도대체 몇 초나 받아 낼 수 있었을까…….

그들은 십 초도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금빛의 강기가 차가운 검강의 기를 뚫고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모두는 십 장을 더 뒤로 물러나라!]

이미 이십 장 이상 물러서 있던 동정어옹은 그것으로 부족하다고 느낀 듯 급히 다시 전음을 보냈다.

보타검각의 수하들도 분분히 뒤로 몸을 날리는 것이 보였다.

이미 장내는 백색의 검강이 완전히 공간을 장악했고, 그 사이사이를 금빛의 강기가 뚫고 나오는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악불군이 몰리고 있었다.

[형님, 주군께서 밀리시는 것 같은데 저희가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천수옹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때 동정어옹의 귀에 악불군의 전음이 들려왔다.

[동방 장로님, 지금 백 공자께서 올라오고 계십니다. 제가 곧 반격을 시작하면서 적들의 시선까지 막을 것입니다. 그때 장로님은 방도들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가셔서 문서고를 장악하십시오.]

[알겠습니다.]

답을 한 동정어옹은 미소를 지며 천수옹을 보며 말했다.

[주군께서는 지금 밀리고 계시는 것이 아니다. 모두는 신호를 보내면 나를 따라 안으로 들어간다.]

생사투를 벌이는 와중에 전음을 보낸다는 것은 백전노장인 그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물며 밀리고 있다면 절대 할 수 없었다.

동정어옹은 악불군이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뿌지지직!

그때 격한 굉음과 함께 백색의 검강이 금빛에 의해 찢어지기 시작했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악불군을 압박하던 성후는 자신의 순음등허십이검결이 밀리자 경악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비슷한 위력의 검공들이 부딪쳤다. 거기다 시작부터 검강이 난무했다. 이런 경우 승패를 가름하는 가장 큰 요인은 각자의 내공이었다.

겉보기와는 달리 이미 팔십이 넘은 성후는 당연히 악불군에게 자신의 내공이 밀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밀리고 있었다. 거기다 시간이 갈수록 약간의 차이가 아니라 현저하게 밀리기 시작했다.

성후는 초식으로 싸워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때, 청운루 쪽에서 백천학이 정파의 무인들을 이끌고 올라섰다. 그 역시 무후를 제거하는 데 성공은 한 듯했지만, 옷이 상당히 많이 잘렸고 여러 곳에서 피까지 비치는 등, 쉽지 않은 싸움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옆을 지키는 태극검자 역시 악전고투를 벌인 듯 몰골이 엉망이었다.

[공자님, 대단하지 않습니까?]

[저와 싸운 여인보다 최소한 두 수는 강한 여인입니다. 그런데 악 방주의 무공이 예전 처음 보았을 때와는 너무 달라졌군요.]

백천학의 말에 태극검자도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솔직히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답하던 태극검자의 눈이 커졌다.

[공자님, 저거…….]

힘겹게 막아 내며 간간이 빛을 보이던 금빛의 강기가 갑자기 성후의 백색 검강을 완전하게 깨뜨리며 주위를 완전히 감싸 버린 것이었다.

“모두 쳐라!”

성후가 이기는 것으로 생각하고 내심 안심하고 있던 명혼파파는, 상황이 급변하자 급히 몸을 날려 악불군을 공격했다.

검강이 깨지며 나타난 금빛강기가 성후에게 집중되면서 악불군의 모습이 훤히 드러나며 빈틈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악불군의 함정이라는 것을 그녀들은 조금도 생각 못했다. 그만큼 성후의 상황이 다급했기 때문이었다.

성후를 집중적으로 압박하던 금빛 강기가 그들이 공격하면서 갑자기 수십 가닥으로 퍼졌다. 한 가닥 한 가닥이 모두 검이 되어 모두를 찔러 간 것이다.

“이, 이게 정녕 천륭검보의 무공이란 말이냐?”

성후는 믿기지 않는 눈으로 악불군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미 그녀의 가슴은 시뻘건 피로 완전히 물들어 있었다. 악불군의 천륭검이 그녀의 가슴을 찔렀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믿던 순음호신강기도 악불군의 검에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뚫려 버렸다.

“천륭검보에 대해 알고 계실 줄은 몰랐던 터라, 처음에 많이 당황했습니다.”

초반에 그가 밀린 이유는 그녀가 자신의 무공을 너무 잘 대처했기 때문이었다.

악불군으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 그녀가 자신의 무공에 대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곧 반전을 이룰 수 있었다.

이미 그는 천륭검보의 자세를 변형시킬 수 있는 경지까지 올랐기 때문이었다.

“우쭐댈 만하다. 하지만 궁주님을 만나다면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알게 될 게다.”

성후는 자신의 심장이 이미 조작이 난 터라 이곳을 빠져나간다 해도 희생이 불가능함을 이미 느끼고 있었다.

아니,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할 수 있었다.

악불군도 그녀가 마지막 남은 선천진기를 이용해 간신히 말을 하는 것을 아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세상에 남겨 두고 갈 것이 많아 아까우신 모양입니다만 더 버티지 마시고 그만 가시지요.”

“여, 여인천하가 눈앞에 다가왔거늘…… 그걸 못 보고 죽다니…….”

자신의 마지막 회한을 내뱉은 성후는 결국 앞으로 엎어지고 말았다.

‘이미 나를 많이 능가했구나……. 스스로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고 억지로 넘어서려고 하는 것은 많은 부작용을 수반하는 법이지.’

악불군과 성후가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백천학은 마지막 죽어 가는 적에게까지 끝까지 예의를 잃지 않는 악불군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뱉었다.

“휴우~”

“왜 그러니까, 공자님?”

태극검자도 자신으로서는 넘볼 수 없는 신위를 보인 악불군을 보고는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백천학이 한숨까지 내쉬자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무래도 어르신께서 찾던 진정한 영웅은 제가 아니라 악 방주인 것 같습니다.”

백천학의 말에 태극검자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빈도가 도가 높지는 않으나 사람을 보는 눈은 있다고 자부합니다. 악 방주님께서도 영웅이시지요. 하지만 공자님도 영웅이십니다. 세상에 영웅은 한 명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세상은 크고 넓어서 한 명의 영웅만으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빈도는 영웅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분들과는 생각이 다르시군요.”

“그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시던가요?”

“한 산에 두 명의 영웅이 있을 수는 없다고 하시더군요.”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영웅이 아니라 패웅이겠지요.”

태극검자의 말이 위로가 된 듯 희미하게 미소를 지은 백천학은 앞으로 걸어갔다. 악불군이 몸을 돌려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백천학이 먼저 포권을 하며 치하하자 악불군도 포권을 하며 말했다.

“백 공자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성공할 수 없는 기습이었습니다. 저를 믿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전 악 방주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믿었습니다.”

“그러셨습니까? 그때는 저에 대해서 잘 모르셨을 텐데요?”

“담 군사님께 진심으로 대하는 것을 느꼈으니까요.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하는 사람은 남도 속이지 않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악 방주야말로 절 무엇을 믿고 이번 일에 합류시켜 주신 건지 모르겠습니다.”

백천학의 반문에 악불군이 즉답을 하지 않자, 백천학이 미소를 지며 물었다.

“답하시기 곤란하시면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아, 아닙니다. 다만 들으시면 이상하실 것 같아서요.”

“악 방주의 말을 이상하게 여길 수 있는 사람이 천하에 누가 있겠습니까?”

백천학의 말에 악불군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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