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416화 (416/472)

<천검지애 416화>

416화. 격변(2)

“분명하냐?”

“예, 천호무적검이 보타검각을 기습한 것이 분명합니다.”

혈교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보타검각을 감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갈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보타산을 지키는 대붕으로 인해 감시조차 가까이에서 할 수가 없었다.

“악불군이 보타산을 감싸고 있는 진을 어떻게 뚫었지? 나도 결국 뚫지 못했는데?”

예전 무림을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혈우대마종은 보타검각까지 쓸어 버리려고 했지만 진을 뚫지 못해 실패한 적이 있었다.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사전에 계획하고 기습한 것이 분명합니다. 총 네 척의 배가 동원됐는데, 배를 시커멓게 칠했다고 합니다.”

“고작 그 정도로 가능할 리가 없을 텐데? 보타산을 지키는 대붕의 눈은 어떻게 속였다고 하더냐?”

“그게 좀 이상합니다. 보타산으로 다가가던 배들이 갑자기 사라지고 한 시진 정도 되었을 때 하늘에서 대붕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어두운 밤이었지만 원체 새가 커서 확실히 보았다고 합니다.”

순간 혈우대마종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한 시진 정도가 지나서 하늘에 떨어졌다는 것이 사실이냐?”

“예.”

“그럼 대붕이 하늘에서 무엇인가와 싸웠다는 말이 아니냐?”

“상황상 그렇게 추측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천하에서 대붕을 하늘에서 죽일 수 있는 영물이 무엇이 있는지 아느냐?”

“제가 알기로 같은 대붕이나 설로(雪鷺) 그리고…… 설마?”

“설로는 남쪽으로 오지 못한다. 선학은 약하고 같은 기후대에서 대붕을 죽일 수 있는 영물은 혈응밖에 없다.”

“그렇다면 혈응이 악불군을 도왔다는 말인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보타검각의 진을 뚫어낸 놈이니 나도 모르는 어떤 방법이 있었겠지. 혈응이라면 혈마전이 당한 것이 이해가 된다. 하지만 혈응은 절대 그러면 안 되는 것이다.”

혈우대마종의 눈에 광망이 번쩍였다. 그가 매우 화가 났음을 알 수 있었다.

“아, 아직 혈응이라는 증거는 없습니다.”

혈뇌는 혈우대마종의 분노가 극에 달한 것을 느끼자 급히 말했다. 하지만 이미 확신한 그의 마음을 달래기는 역부족이었다.

“천마종에게 연락해서 천호방을 치라고 해라.”

“지금 당장 말입니까?”

“저번 공격으로 무리한 기습을 더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을 게다. 거기다 보타검각을 공격했으니 부상자도 있을 것이고 피로도도 상당할 터, 지금이 공격할 적기다.”

“그래도 삼사 일은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최대한 빨리 공격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혈뇌가 급히 나가자 혈우대마종의 주위에 묵기가 자욱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만……약 진짜 혈응이 나를 배신한 것이라면, 악불군 네놈은 죽지도 살지도 못한 꼴로 평생 고통 속에서 보내게 될 거다.’

그가 구문황의 검에 심장이 찔리고 죽어 갈 때 그를 구해 준 것이 바로 혈응이었다.

당연히 그의 혈응에 대한 사랑은 대단했다.

그 탓에 그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다 배신을 해도 혈응만은 절대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는데, 지금 그것이 무너진 것이다.

* * *

갑작스러운 소집령에 무림맹 최고 간부들이 모두 집무실에 모였다.

급보를 받은 제갈우명은 맹주에게 특급 소집령을 청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진 것이었다.

“제갈 군사,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 시간에 특급 소집까지 한 것이오?”

화산의 현천진인의 말에 제갈우명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림맹이 창설이 된 후 특급 소집령이 발령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일 정도로, 여간한 급보가 아니면 함부로 발령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미 보고서를 보셨겠지만 무림에 엄청난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틀 전, 너무 뜻밖의 사건이 벌어져 어쩔 수 없이 어르신들을 모셨습니다.”

뜻밖의 사건이라는 말에 모두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무림맹의 간부들은 대부분 거대 문파의 장로급들로서 자신들만의 정보망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정보도 받은 것이 없었다.

“제갈 군사.”

“예, 맹주님.”

“보고해라.”

“예!”

제갈우명은 공손히 고개를 숙이더니 모두를 둘러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틀 전, 천호방의 방주인 천호무적검께서 보타검각을 공격했습니다.”

순간 장내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산동장가의 장우삼이 벌떡 일어서더니 크게 말했다.

“지금 남무림은 구천마성이 움직이고 있고, 서무림에는 새외연합의 침공으로 시끄러운데 정파인 천호방에서 같은 정파인 보타검각을 공격하다니,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일이란 말이오! 천호무적검이 명성이 좀 높아졌다고 너무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까?”

“맞소이다. 당장 천호방에 연락해 그런 행동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미타불! 빈도는 소림의 무애입니다.”

이곳저곳에서 흥분한 소리가 들려오는 와중에 내공이 깃든 목소리에 장내가 조용해졌다.

천제무황을 제외한다면 소림의 무애 대사는 무림맹 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이번 공격에 소림사도 도왔음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모두는 놀란 눈으로 무애 대사를 쳐다보았다. 그때 무당파의 청운 진인이 일어나더니 합장하며 말을 보탰다.

“무당에서도 이번 공격에 가담했습니다.”

둘이 물꼬를 틀자 곧 연이어 남궁세가를 비롯한 여러 문파에서 일어서며 자신들도 가담했음을 시인하자, 웅성거리던 장내는 이제 누구도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이렇게 많은 문파에서 천호방과 함께 행동했다는 것이 실로 놀랍습니다. 그런 이유가 있을 터인데,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잠시 침묵을 흐르며 서로를 눈치를 보던 간부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점창파의 점창일검이었다.

“본 군사가 받은 보고에 의하면 보타검각이 측천무후궁의 예하 조직이라고 합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보타검각은 몇백 년 전부터 정파의 성지였습니다. 그런데 측천무후궁의 예하 조직이라니요? 그게 말이 됩니까?”

“그리고, 천호방은 무림맹의 일원도 아닌데 무림맹의 일원인 여러 문파에서 무림맹에 알리지도 않고 그런 중차대한 일에 가담했다니, 어떻게 된 겁니까?”

하북팽가 팽위조도 기분이 무척이나 상한 듯 소리쳤다.

“무림맹의 중원 총순찰이신 백천학 공자께서 이번 공격에 같이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어 나온 제갈우명의 말에 모두는 다시 조용해졌다.

백천학이 가담했다는 것은 천무성궁에서 허락을 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맹주님께서 허락했다는 말입니까?”

다시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팽위조가 태사의에 앉은 천제무황을 보며 물었다.

눈을 감고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던 천제무황은 팽위조의 질문에 눈을 떴다.

그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중원 총순찰이 총단에 들어왔으니 직접 들어 보도록 합시다.”

그의 말에 시선을 문 쪽으로 돌린 모두는 의연한 표정으로 들어오는 백천학의 모습을 보자 표정이 굳어졌다. 순찰단의 간부 두 명이 커다란 상자를 들고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가 보아도 상자 안에 대단히 중요한 정보가 들어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순간 제갈우명의 눈이 모두를 빠르게 훑기 시작했다. 만약 측천무후궁의 간세가 이중에 있다면 분명 틈을 보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보타검각의 멸문이 무림맹에 또 다른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지만, 이곳의 간부들은 아직 그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다.

* * *

반나절 가까이 달린 악불군은 드디어 적설을 발견하자 말에 내렸다.

[백설아, 이제 넌 좀 쉬어라. 수고했다.]

백설을 쓰다듬으며 치하한 악불군은 빠르게 나무 위로 몸을 날렸다.

그렇게 다시 이각 정도 달린 악불군은 드디어 담수련의 기를 느끼자 더욱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자면신모, 좀 이상하지 않아?]

극진파파의 전음에 자면신모도 뭔가 느끼는 것이 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전 이런 불안감은 처음 느낀 것 같다. 밀령각주!]

[예, 신모님!]

[지금 우리 주위의 경계는 확실히 서고 있느냐?]

[밀령각의 사십 명의 제자들이 이 주위를 완벽하게 호위하며 따르고 있습니다. 누구든 나타나면 즉각적으로 제게 알려집니다.]

[분명 우리를 추적하는 자들은 없겠지?]

[분명…….]

대답하던 밀령각주의 답이 멈췄다.

[밀령각주! 무슨 일이냐?]

[신모님, 뭔가 이상이 생긴 것 같습니다. 밀령하방진을 펼치겠습니다. 잠시 멈추셔야겠습니다.]

[알았다.]

자면신모는 손을 들어 움직임을 멈췄다.

[자면신모, 무슨 일이냐?]

앞장서 가던 신룡파파가 급히 몸을 돌려 물었다.

[누군가 나타났다.]

신룡파파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우리 모두의 이목을 숨기고 나타날 수 있는 자가 있겠어?]

[넌 이 위험 신호를 못 느낀 것이냐?]

자면신모의 말에 신룡파파의 얼굴이 굳어졌다.

[너도 느낀 거냐?]

아무 일 없다는 듯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지만 신룡파파 역시 이상한 느낌을 계속 느끼고 있었던 듯했다.

모두가 위험 신호를 느꼈다는 것은 진짜 위험하다는 의미일 가능성이 높았다.

자면신모는 담무룡을 보며 말했다.

[담무룡, 누군가가 적이 나타난 것 같다. 담수련을 내게 넘겨라.]

[수련이는 나도 보호할 수 있으니 당신들 걱정이나 하시오.]

[궁주님과 한 약조를 정녕 지키지 않을 생각이냐?]

[궁주님께서 내게 내린 명령은 수련이를 설득해 악불군이 측천무후궁의 명령을 따르게 하는 것이었소. 이렇게 데려가는 것도 설득을 위한 것일 뿐, 인질로 데려가는 것은 아니니 더 이상의 강요는 하지 마시오.]

자면신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런 놈은 다스리기가 어려워서 이용하기 어려운데…… 그냥 죽이고 담수련만 끌고 가?’

자면신모의 눈에 살광이 잠시 나타났지만 곧 갈무리했다. 담무룡은 마음만 먹었다고 제거할 수 있는 그런 상대가 아님을 그녀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놈은 궁에 돌아가면 궁주님께 말씀드려서 제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지 않냐?]

휘이이잉!

그때 모두의 귀를 찌르는 강렬한 파공음이 들려왔다.

순간 자면신모를 비롯한 측천무후궁의 원로들의 표정이 일변했다.

파공음에 담긴 기가 그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기 때문이었다.

“아악!”

“악!”

그리고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밀령각 제자들의 비명 소리였다.

[밀령각주! 어떻게 된 거냐?]

자면신모는 급히 전음을 날렸다.

[엄청난 자입니다. 밀령하방진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자면신모, 설마…… 악불군?]

[악불군은 외유 중이라고 했지 않느냐? 거기다 우리를 어찌 추적한다는 거냐?]

“아악!”

그들이 대화하는 동안에도 밀령각의 제자들은 계속 비명을 지르며 죽어 나가고 있었다.

악불군의 손속에는 조금의 사정도 없었다. 담수련이 자신의 옆에 없다는 사실이 그를 살신으로 만들고 있었다.

“신모님! 피하십시오.”

그때 피투성이로 변한 밀령각주가 나타나더니 급히 소리쳤다.

“피해? 오늘 여기서 누구도 살아 돌아갈 수 없다.”

밀령각주가 앞으로 고꾸라지자, 그 뒤에 한 청년이 모습을 보이며 원로들을 보며 소리쳤다.

첫 만남에서 악불군이 이렇게 강하게 말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만큼 그의 분노가 크다는 방증이었다.

“누구냐?”

자면신모가 소리쳤지만 악불군의 시선은 한 사람을 보고 있었다.

“가주님, 제가 아는 가주님이 맞으십니까? 어떻게 아가씨를 가주님께서 납치할 수가 있으십니까?”

“네놈이 지금 감히 내게 따지는 것이냐?”

“제가 어찌 가주님께 따지겠습니까? 하지만 아가씨를 생각하시면 이러시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네 이놈! 넌 나의 하인에 불과하다. 지금 네가 하는 행동이 얼마나 배은망덕한 행위인지 아느냐!”

담무룡이 크게 소리치자 원로들은 나타난 자가 악불군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제 보니 네놈이 악불군이구나. 그래, 담수련만 데려가는 것이 뭔가 아쉬웠는데, 네놈까지 데려가면 궁주님께서 진짜 기뻐하시겠구나.”

“기뻐할지, 후회할지는 곧 알게 될 게다.”

말을 마친 악불군은 검을 들어 올렸다.

평소보다 더욱, 그의 두 눈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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