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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417화 (417/472)

<천검지애 417화>

417화. 귀환(1)

[조심해라, 이놈이 사술까지 쓴다!]

자면신모는 악불군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깜짝 놀라 주의를 주었다.

살수 무공이나 사술은 약한 사람이 강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술법이었다.

만약 비슷한 수준이라면 살수 무공이나 사술을 사용하는 사람이 월등하게 유리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하물며 악불군은 그들보다 강했다.

“이놈!”

극진파파의 지팡이가 땅바닥을 그대로 내려쳤다. 뭔가를 느낀 것이다.

파파팍!

극진파파의 강기가 땅속을 헤집으며 흙들이 튀어 올랐다. 순간 신룡파파가 공중으로 튀어나온 흙가루를 향해 지팡이를 찔러 갔다.

그녀의 지팡이 끝에서는 기다란 검날이 튀어나와 있었다. 단번에 열여덟 번을 찔러 댄 신룡파파는 고개를 갸웃했다.

틀림없이 무엇인가가 땅속에 튀어나온 것을 느끼고 공격했지만 걸리는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극진!”

자면신모 역시 악불군의 이상한 수법에 당황한 듯 주위를 살피더니 갑자기 극진파파를 향해 소리쳤다. 그녀의 그림자 속에서 누군가 눈을 떴기 때문이었다.

자면신모의 외침에 극진파파는 즉각 상황을 눈치채고 보법을 바삐 밟으며 물러섰다.

“억!”

극진파파의 보법은 실로 대단히 빨랐다. 하지만 피한 곳이 오히려 악불군이 있는 곳이라면 피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턱을 뚫고 머리까지 관통당한 극진파파는 짧은 단발마를 끝으로 즉사했다. 자신의 실력을 전혀 발휘하지도 못하고 죽은 것이 원통한지, 그녀는 눈도 감지 못한 채 쓰러지고 말았다.

“이놈!”

“죽어라!”

극진파파의 죽음에 극대로한 신룡파파와 자면신모가 동시에 악불군을 향해 공격했다. 극진파파를 죽이면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허나, 둘의 공격은 이번에도 허공을 찌르고 말았다. 간발의 차이로 악불군의 모습이 다시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무림 십왕까지 봉해진 놈이 이따위 사술로 상대를 현혹하다니, 창피하지도 않느냐!”

급히 신룡파파와 등을 맞댄 자면신모는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당황함이 그대로 묻어나고 있었다.

자신들과 무공이 비슷한 극진파파가 너무 쉽게 당하는 모습을 보았으니, 당황하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일 것이었다.

‘저, 저놈이 펼치는 게 무슨 수법이지?’

그 모습을 보며 놀라는 사람은 한 명 더 있었다. 담무룡이었다.

지금 악불군이 사용하는 수법은 그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지금 같은 공격을 당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생각하던 그는 가슴이 서늘해 옴을 느꼈다. 그 역시 상대할 방법이 만만치 않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내 예상을 몇 배나 뛰어넘었어……. 악불군이 저 정도로 대단한 무재를 지녔던가……?’

측천무후에게 악불군에 대해 대충 얘기는 들었지만, 직접 보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악불군에게 시술을 함으로써 기초를 다져 준 것은 확실했지만, 이 정도 강해지는 것은 전혀 예상을 못 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더 좋은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담무룡의 입가에 뜻밖에도 회심의 미소가 살짝 걸리고 있었다.

* * *

그때, 측천무후궁은 보타검각과의 연락이 끊기며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보타검각은 측천무후궁의 총궁에 문제가 생길 경우 제이의 총단으로 사용하는 아주 중요한 거점이었다.

특히 모든 정보를 그곳에 보관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측천무후궁의 모든 정체가 까발려질 수도 있었다.

측천무후궁이 지금까지 천하를 농락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무공보다는 완벽한 비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묘묘선자.”

“예, 궁주님.”

“본 총궁과 보타검각 둘 중에 하나를 공략한다면 어디가 더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궁주님을 포함하지 않는다면 총궁보다는 보타검각이 더 공격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 보타검각의 주위를 보호하는 진법은 오로지 보타검각의 자연지형에서만이 칠 수 있다. 거기다 보타산에 사는 태붕과 천붕은 누구의 침입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데 넌 어찌 보타검각에 문제가 생겼다고 단정하는 것이냐?”

질책에 가까운 측천무후의 목소리에 묘묘선자는 조심스럽게 답했다.

“보타검각에서는 중요한 일이 있건 없건, 하루에 세 번 이상 정해진 시간에 보고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틀째 보고가 없습니다. 성후의 성격상 이렇게 연락이 끊어질 수는 없습니다.”

“궁주님, 제가 당장 보타산으로 가 보겠습니다.”

듣고 있던 백리옥빙이 급히 소리쳤다.

“검후!”

“예, 궁주님.”

“이미 일이 벌어졌다면 지금 가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그것보다, 네가 출발할 때까지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했지?”

“예, 그때까지는 아주 평온했습니다.”

여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보이지 않는 백리옥빙이었지만, 이번 소식만은 충격이 큰지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묘묘선자.”

“예.”

“만약 보타검각이 공격을 받았다면 어떤 세력의 짓일 거라고 생각하느냐?”

“혈교의 무리들이 보타산을 계속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혈교의 짓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정황으로는 그들의 짓일 확률이 가장 큽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보타검각을 공격해서 생길 이득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 혈교 놈들은 태양천과의 싸움을 극구 피하면서 일 갑자 가까이 숨을 죽이고 숨어 있을 정도로, 자신들에게 이득이 없다고 생각하면 절대 먼저 손을 쓰는 놈들이 아니지. 그럼 또 누가 있겠느냐?”

“천호방입니다. 그놈들은 절강을 장악하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마도와 사파를 제거했습니다. 보타검각이 절강의 성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 눈엣가시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거기다 보타검각이 본 궁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명분까지 완벽하게 갖춰진 것이겠지?”

“하지만 천호방에 모인 정파 연합 세력이 움직였다는 보고는 없었습니다.”

“담무룡이 담수련을 납치해 나올 동안 악불군은 어디에 있었느냐?”

“그냥 외유를 나갔다고 했습니다.”

“어디로?”

“그건……. 설마 그놈이?”

측천무후가 묻는 의미를 눈치챈 묘묘선자의 눈이 커졌다.

“자면신모는 지금 어디쯤 오고 있느냐?”

“마지막 보고가 전오산이었습니다. 아마 내일 아침에는 본 산에 도착할 것입니다.”

“능파선고.”

“예!”

“당장 장로 열 명을 데리고 자면신모를 마중 나가라. 최대한 빨리 가라.”

“알겠습니다.”

“보타검각에 문제가 생겼다면 분명 악불군의 연관이 있을 것이다. 본 궁의 모든 정보망을 동원해 상황을 파악해라. 보타검각의 기밀들이 놈들의 손에 넘어가면 큰일난다. 최대한 빨리 알아내라.”

“예!”

묘묘선자와 원로들이 급히 밖으로 나가자 측천무후는 검후를 보며 말했다.

“검후.”

“예!”

“넌 지금 항주로 잠입해라. 만약 보타검각을 공격한 것이 악불군이 분명하다면, 넘어간 기밀 서류들을 다시 회수해라.”

“알겠습니다.”

검후까지 나가고 방에 홀로 남은 측천무후는 손을 턱에 대며 빙긋 웃었다.

‘역시 세상은 재미있어. 그래, 너무 쉽게 모든 것을 굴복시키는 것보다는 특별한 놈들이 있는 것이 덜 심심하지.’

이미 생사경을 뛰어넘는 경지에 오른 그녀에게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단지 재미일 뿐이었다.

* * *

짝! 짝! 짝!

“아주 훌륭해. 하하하! 내가 정말 대단한 물건을 만들어 냈구나.”

자면신모를 끝으로 모두를 제거한 악불군이 모습을 드러내자, 담무룡은 감탄했다는 듯이 박수까지 치며 커다랗게 웃었다.

“가주님, 아가씨를 제게 주십시오.”

악불군이 한 걸음 다가서며 말하자 담무룡이 대로한 목소리로 버럭 소리쳤다.

“네 이놈! 네가 지금 감히 내 앞에서 검을 들고 뭐하자는 거냐? 내가 수련이를 네게 주지 않는다면 나를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것이냐?”

담무룡의 외침에 악불군의 검미가 꿈틀했지만, 담무룡에게 덤빌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는 그에게는 은인이자 무공을 가르쳐 준 스승 같은 존재였고, 더구나 그가 가장 아끼는 담수련의 아버지였다.

“제가 어찌 가주님께 무례를 저지르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악불군은 검을 검집에 꽂았다.

“당연히 그래야지. 사람으로 태어나 은혜를 모른다면 그것은 더 이상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가주님, 아가씨께서는 체질적으로 혈도가 오래 막혀 있으면 건강에 치명적입니다. 우선 혈도라도 풀어 주셨으면 싶습니다.”

“불군아.”

“예, 가주님.”

“수련이는 내 딸이다. 그리고 네게 수련이를 보호하라는 명을 내린 사람도 나야.”

“알고 있습니다.”

“그럼 내가 수련이에 대해 더 잘 알겠느냐, 네가 더 잘 알겠느냐? 수련이가 위험해질 행동은 하지 않으니 걱정 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벌써 손을 썼겠지만, 담무룡에게만은 그럴 수 없었던 그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가주님께서 아가씨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저도 잘 압니다.”

“불군아.”

“예.”

“너도 내가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하느냐?”

“전 그런 정치 문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주원장이 너를 무림십왕 중 한 명으로 봉했다고 들었다. 거기다 천호방은 잠룡세가가 장악하고 있던 절강을 그대로 이어받았어. 그런데 정치 문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솔직히 아가씨께서 소원이라고 하셔서 그 뜻을 따라주었을 뿐입니다.”

“천호방도 수련이 때문에 만들었다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담무룡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채 자고 있는 담수련을 보더니 다시 생각에 잠겼다.

만약 악불군의 말이 사실이라면 실세는 담수련이었다. 그리고 그가 아는 악불군이라면 사실일 확률이 높았다.

“나 담무룡은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다. 잠룡세가를 다시 일으킬 것이다. 나를 돕겠느냐?”

“전…… 아가씨의 명만 따릅니다.”

“수련이는 오음절맥이라 오래 살지 못한다. 수련이가 죽는다면 그땐 어떡할 생각이냐?”

“전 아가씨께서 돌아가신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전 아가씨를 모시고 무림을 떠날 것입니다.”

“만약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너의 모든 조직을 내게 넘겨줄 수 있겠느냐?”

“그게 제가 가주님께 받은 은혜를 갚는 길이라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아가씨께서 저보다 먼저 돌아가시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수련이를 데리고 돌아가면 내가 죽었다고 종리화에게 전해라.”

“예?”

“난 지금 측천무후에게 매여 있는 상태다. 아예 죽어 있는 것이 더 편해. 추후 다시 연락하겠다.”

담무룡도 지금 자신이 전면에 나서는 것이 현명한 처사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좀 더 상황을 지켜보며 가장 좋은 방법을 생각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악불군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담수련의 몸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였다.

“수련이를 무사히 잘 보호해 준 것에 대해서는 치하해 주마.”

말을 마친 담무룡은 훌쩍 몸을 날려 사라졌다.

그리고 그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악불군은 포권을 했다.

그래도 담수련을 아무 이상 없이 다시 구할 수 있었던 것이 담무룡이었기에 가능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 * *

“천호방을 없애라는 명이 떨어졌다.”

천마종의 말에 나채현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거치지 않고 천마종에게 직접 명을 내렸다는 것은 교주의 특명이라는 의미였다.

“전주님, 지금 천호방을 치는 것은 무리입니다.”

태양천의 잔당과 혈마전의 혈투로 인해 악불군의 이름이 무황들을 능가할 정도로 올라가면서, 지금 천호방의 위상은 무림맹에 버금갈 정도로 올라가 있었다.

수많은 기인이사들이 천호무적검을 만나겠다고 항주로 몰리고 있었고, 천호방에 입방하기 위해 모여든 무인들도 매우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 천호방을 친다면 안팎으로 포위를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교주님께서 내게 직접 내리신 명을 따르지 않을 수는 없다. 나 군사는 가장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내도록 해라.”

“언제까지 공격해야 하는지요?”

“빠를수록 좋다고 하셨다.”

혈우대마종이 빠를수록 좋다고 했다면 그것은 최소한 열흘 안에는 공격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전주님, 지금은 정말 시기가 안 좋습니다. 교주님께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하시는 것이…….”

나채현의 말에 천마종의 표정도 편치는 않았다.

하지만 군사전을 통해 들어오는 명령은 전주로서 거절할 권한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혈우대마종이 직접 그에게 명령을 내렸을 경우에는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천호방을 없애지 않고는 대계에 큰 지장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신 듯하다. 그대로 행해라.”

점점 모든 세력의 칼끝이 악불군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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