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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419화 (419/472)

<천검지애 419화>

419화. 기습(1)

정파 연합의 지휘자들을 만난 악불군은 우선 그들에게 이번 싸움에 대해 치하한 후, 피해 상황을 듣고는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제가 조금만 더 빠르게 행동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는데, 죄송합니다.”

“아미타불! 악 방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가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동안 무림을 속이고 천하를 우롱하던 보타검각의 마각을 잡아내고 그들을 제거한 것은 모두 악 방주님의 덕입니다. 저희가 감사드리는 것이 맞습니다.”

희생자들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계속 그 이야기만 할 수는 없었다. 모두 자리에 앉자 악 방주는 본격적으로 다음 계획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제 혈교와 측천무후궁의 공격이 거세질 것입니다. 전 이들과의 전쟁을 영웅대회 전에 끝낼 생각입니다.”

“영웅대회가 이제 육 개월밖에 안 남았는데 그렇게 날짜를 정하시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남궁영호는 의아한 듯 반문했다.

혈교나 측천무후궁은 시일을 정해 놓고 제거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촉박한 것은 저도 압니다. 하지만 무림의 위협은 그들만이 아닙니다. 황상께서는 무림의 상황을 지금 안 좋게 보고 있습니다. 다만 영웅대회까지 기다려 주고 있는 것이지요. 전 모든 분란을 정리하고 영웅대회를 축제 분위기로 치러야 완벽한 평화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순간 모두의 얼굴에 감탄의 표정이 나타났다.

사실 패도적인 성격의 주원장은 무림에게는 또 다른 위협이었다.

모두가 눈앞의 현실을 보느라 외면하고 있던 또 다른 난제를 악불군은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럼 악 방주께 복안이 있으십니까?”

“보타검각에서 매우 중요한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지금 분석 중인데, 끝나는 대로 여러분과 공유할 것입니다.”

악불군의 말에 모두는 그가 측천무후궁을 없앨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정보를 획득했음을 직감했다.

“무량수불, 태상노군께서 도움을 주신 듯하군요. 그런데 측천무후궁은 그렇다 쳐도 혈교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들은…….”

잠시 말을 멈추고 모두를 둘러본 악불군이 말을 이어 갔다.

“제가 찾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악불군과 담수련은 돌아오는 동안 향후 있을 일에 대해 심도 있게 분석을 했다. 그리고 그는 담수련의 판단을 믿었다.

* * *

금잔화를 찾아나선 색혈도황은 그녀가 사라진 것을 알자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주루에서 나오지 않았으니 안에 있어야 하는데, 어디로 사라진 거지?’

주루 안을 찬찬히 살피던 그의 눈에 무엇인가 들어왔다.

“이리와 봐라.”

점소이는 색혈도황이 부르자 급히 다가와 인사를 했다.

“예, 자리를 준비해 드릴까요?”

척 보기에도 돈이 있어 보이는 상인으로 분한 그를 점소이는 친절하게 맞았다.

“저 통로는 어디로 가는 거냐?”

“저희 주루에서는 객잔도 같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객잔으로 통하는 곳입니다.”

색혈도황이 그쪽으로 걸어가려 하자 점소이가 그 앞을 막아섰다.

“손님, 저곳은 객잔에 묵으시는 분들만 가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점소이는 금방 허리를 숙이며 옆으로 비켜섰다. 색혈도황이 그의 손에 은자 한 냥을 집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객잔은 생각 외로 컸다. 근래 항주는 객잔을 잡기가 불가능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방이 모자랐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무림인들은 상인들에게는 극단의 호불호가 갈리는 손님이었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돈을 흥청망청 쓰는 편이었고, 먹는 것이나 사용하는 방도 고급으로만 원했다. 상인들에게는 최고의 손님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나, 비위를 상하게 할 경우 그들에게 죽을 수도 있었고 자칫 일이 커지면 객잔 하나는 통째로 부서질 수도 있었다. 한마디로 이익에 비해 위험도가 너무 컸다.

하나, 지금 항주의 상황은 상인들에게는 최고의 대목이었다. 돈을 잘 쓰는 무림인들이 몰려들었지만 누구도 시비를 벌이는 자들이 없었다.

천호방의 강력한 경고 때문이었다.

“이유를 막론하고 양민들에게 해를 끼치는 자들은 천호방을 능멸하고 적대시한 것은 간주한다.”

무림맹에 버금갈 정도 위상이 높아진 천호방의 경고를 무시할 무림인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이 항주의 양민들이 무림인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였다.

그런데 방이 없어 난리인 항주의 객잔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조용했다.

색혈도황의 눈이 살짝 커졌다. 한 여인이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포착됐기 때문이었다.

색혈도황은 다시 한번 혀로 입술을 훔치더니 여인이 사라진 방으로 향했다.

하필 자신이 객잔으로 들어오자 여인이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는 것에 대해 그는 조금의 이상함도 느끼지 않았다.

그도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녀의 섭혼금령제혼술에 넘어간 것이다.

색혈도황은 미혼술의 대가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렇게 쉽게 상대의 미혼술에 넘어갔다는 것이 의아할 정도이지만, 그만큼 금잔화의 미혼술이 너무 강하다는 방증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색혈도황의 눈이 커졌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완벽한 금빛 머리에 홍옥처럼 반짝이는 아름다운 눈, 면사를 벗은 그녀의 중원인들과는 다른 신비한 얼굴은 색혈도황이 평생 처음 본 우물 중의 우물이었다.

거기에 더해 그녀는 옷을 갈아입는 중이었는지 새하얀 어깨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누, 누구세요?”

금잔화는 색혈도황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란 듯 옷을 들어 가슴을 가리며 물었다.

놀란 듯 크게 커진 눈과 뭔지 모르게 끈적한 목소리에, 색혈도황은 올라오는 흥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색혈도황의 눈에 변화가 나타났다. 상대의 의지를 장악하여 조종하는 그의 미혼술이었다.

“이제 너를 행복하게 해 줄 주인이시다.”

“저의 주인이시라고요?”

색혈도황의 눈과 마주친 금잔화의 눈이 몽롱하게 변해 갔다.

“그렇다. 넌 이제 나의 노예다.”

“아~ 주인님이시구나.”

행복한 듯 말하며 금잔화가 자신의 품에 뛰어들자 색혈도황은 와락 그녀를 껴안더니 입술을 그녀의 얼굴에 대며 탐닉에 들어갔다.

[그런데 주인님은 어디서 오셨나요?]

침상에 누운 채 베개를 안고 몸을 뒤틀던 색혈도황은 감미로운 금잔화의 질문에 술술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난 혈교 천마전의 호법인 색혈도황이다. 네가 나를 즐겁게 해 준다면 네게 부귀영화를 줄 수 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항주에는 왜 오셨나요?]

“오늘 천호방은 사라진다…….”

색혈도황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절대 해서는 안 될 중요 계획까지 모조리 금잔화에게 말했다.

‘천호방을 오늘 친다고……? 잘하면 기회가 될 수도 있겠는데?’

의자에 앉아 환상에 빠져 베개를 안고 온갖 추악한 행동을 하는 색혈도황을 보던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혈교를 이용해 악불군을 자신의 충실한 수하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주인님, 전 할 일이 있어 가 봐야 합니다. 잠시 주무시고 깨어나면 반드시 천호방을 없애 주세요. 성공하시면 제가 주인님을 찾아오겠습니다.]

“그래, 걱정 마라. 반드시 천호방을…….”

말하던 색혈도황은 스르르 잠이 들어 버렸다.

금잔화는 색혈도황이 잠들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그녀의 금발을 흑발로 변해 있었고, 얼굴 역시 면사로 가려져 있었다.

‘너 같은 놈을 내가 가장 싫어하지만, 이번만은 살려 둔다.’

중얼거린 금잔화는 스르르 사라져 버렸다.

남자를 홀려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그녀는 어찌 보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여인이었다.

* * *

“좀 쉬어 가면서 하시지요?”

담수련의 집무실에 들른 악불군은 서류를 열심히 살피고 있는 담수련을 보자 안쓰러운 듯 말했다.

총단에 돌아온 지 두 시진 넘게 그녀는 쉬지 않고 서류만 분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쉴 새가 어디 있어? 지금 적들의 제거 일순위는 더 이상 무림맹이 아니라 소군일 거야. 그들은 우리보다 전력도 강하면서 정보 역시 우리보다 더 많이 알아. 하지만 이젠 이 서류들 덕에 측천무후궁은 무너질 거야.”

악불군이 고개를 끄덕이자 담수련이 다시 물었다.

“총단의 방어진은 완벽하게 작동하지?”

“예, 호법들이 직접 침투하는 방식으로 점검했는데 완벽하게 침입을 잡아냈습니다. 역시 아가씨의 진법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냥 신기해서 익힌 건데 이렇게 효용성이 많을 줄은 몰랐어. 저번 기습 건도 있었지만 이제 저들의 공격은 무차별적일 거야. 경계를 절대로 소홀히 해서는 안 돼.”

“알고 있습니다. 추 호법이 수련시킨 방도들 역시 이제 한몫을 할 정도이니, 어떤 세력이 공격한다 해도 막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얘기할 거 있어?”

담수련은 악불군의 손에 잡힌 종이를 보자 뭔가 있다는 것을 직감한 듯 물었다.

“혈해사계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담수련은 혈해사계라는 말에 눈에 이채를 띠며 종이를 받아들였다.

종이에는 알 수 없는 비문이 적혀 있었다.

혈해사계의 비문이었다. 하나, 전에 만났던 나백귀왕이 전해 준 비문 해독법 덕에 내용을 파악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소군 생각은 어때?”

“혈해사계에서 저와 태양천주 간에 싸우도록 유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와는 서로 돕는 관계를 만들고 싶다고 하더니, 처음부터 뒤통수를 치네.”

비문에는 태양천주가 혈해사황에게 일대일 비무를 제안했다는 내용과 만나기로 한 장소와 일시가 적혀 있었다.

“태양천주가 바보가 아닌 이상 누가 약속된 장소에 올지 다 감시를 하고 있을 겁니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보인다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겠지요.”

“만약 태양천주까지 소군이 제거한다면 더 이상 소군을 의심하는 자들은 없을 거야. 어찌 보면 기회이긴 한데…….”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하지만 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태양천주인 대공의 무공은 무황들을 능가한다고 했어.”

그녀의 목소리에는 기회이긴 하지만 악불군에게 강요할 수 없는 그녀의 심정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기회란 자주 오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자신 있어?”

“제가 피한다면 대공과 싸울 일이 없을까요?”

“어려울 거야……. 하지만 소군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는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해…….”

“아가씨께서 계시기만 하면 전 바랄 것이 없습니다. 이 모든 일이 아가씨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갈 때 나도 같이 갈 거야.”

“당연히 그러셔야지요. 저도 이제 아가씨만 두고 어디 가는 일은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담무룡 때문에 크게 식겁한 악불군은 더 이상 담수련을 놔두고 움직이는 상황은 최대한 만들지 않을 생각이었다.

[주군!]

그때 흑석영의 전음이 들려왔다.

[무슨 일입니까?]

[수상한 자들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는 보고입니다.]

악불군의 검미가 찌푸려졌다. 그는 근래 자신의 모든 오감을 최대로 작동시키며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 아무런 이상도 감지를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디쯤에서 포착이 된 겁니까?]

[주루거리입니다.]

혈교나 측천무후궁에서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천호방을 지키는 사람들은 천호방도만이 아니라 항주 백성 전부라는 사실이었다.

수많은 전란에 휩싸여 지옥 같은 삶을 살았던 그들은 천호방이 나타난 후 갖게 된 평화와 안전 그리고 더 이상 굶지 않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모든 양민들이 조금이라도 수상한 움직임이 보이면 지체 없이 천호방에 고변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천호방을 노린다면 아직 시간이 좀 있겠군요. 방 내에 그들의 간세가 분명 있을 겁니다. 눈치 못 채게 계획대로 방어진을 시작하십시오.]

[알겠습니다.]

“흑 호법?”

“예.”

“또 기습?”

“그런 것 같습니다.”

“저번 기습이 실패해서 얼마간은 조용할 줄 알았는데, 역시 내 예상대로 소군의 제거를 가장 중요하다고 인식하기 시작한 것 같네.”

“아가씨의 예상이 그대로 맞는 것을 보면, 영웅대회전에 모든 분란을 끝낸다는 계획도 성공적으로 진행할 것 같습니다.”

“그럼 나가 봐야겠네?”

“이곳은 철저하게 경비를 서고 있으니 밖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휴우~ 더 이상 싸움 없는 삶을 살고 싶어…….’

악불군이 나가자, 담수련은 안타까운 듯 작게 한숨 내쉬더니 다시 서류 분석에 들어갔다.

싸움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더 큰 싸움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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