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검지애 420화>
420화. 기습(2)
[준비됐느냐?]
색혈도황의 말에 광괴도가 급히 답했다.
[현재까지는 완벽하게 준비됐습니다.]
[광괴도가 일진이지?]
[예, 저희가 선봉입니다.]
[어떻게 시작할 계획이냐?]
[첩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천호방은 다른 문파에 비해 취객들에게 관대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선 일진은 취객으로 변장해 천호방 가까이 다가갈 생각입니다.]
색혈도황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진을 맡은 폭풍신마와 구혼사마를 보며 말했다.
[이번 기습의 성패가 이진과 삼진의 공격에 달려 있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알고 있다. 전략은 나 군사에게 들어 완전히 숙지했으니, 우리는 걱정 마라.]
[나도 걱정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악불군 이놈만은 솔직히 불안하다.]
색혈도황의 말에 모두는 동의한다는 듯 답을 하지 않았다. 악불군을 죽이려는 시도가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그는 여전히 건재하고 있었다.
[구혼사마.]
[예, 호법님.]
[삼진은 뒷담 쪽에 잘 매복하고 있느냐?]
[예, 첩자가 준비해 둔 안가에 모두 대기하고 있습니다. 폭풍신마님께서 정문으로 공격하는 즉시 저희도 담을 넘을 것입니다.]
[좋다. 오늘 반드시 천호방을 지워 버리고 악불군을 죽인다. 공격 시점은 자시에서 축시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모두 가서 다시 한번 수하들을 점검하고 대기해라.]
[예!]
답을 한 광괴도와 구혼사마가 사라지자 색혈도황은 폭풍신마를 보며 물었다.
[넌 왜 안 가냐?]
[색혈도황, 오늘 무슨 일이 있었냐?]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냐?]
[뭔지 모르게 네 모습이 평소와 좀 다른 것 같아서 그런다.]
[내가? 어떻게 다른데?]
[그걸 모르겠단 말이야…….]
색혈도황과 폭풍신마는 서로 이상의 친구가 없을 정도로 수십 년을 같이 생활한 벗이기도 했다.
[모르면 달라진 것이 없다는 말이다. 큰 싸움을 앞두고 이상한 말 하지 말고 가 봐라.]
‘확실히 다른데…….’
평소와 달리 가라는 말도 그가 아는 색혈도황의 말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젓고 말았다.
악불군의 명성이 너무 높아진 지금, 이번 기습에 긴장한 때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알았다. 그럼 이따 보자.]
폭풍신마가 떠나자 갑자기 색혈도황의 눈동자가 벌겋게 변하기 시작했다.
‘악불군을 죽여야 그녀를 만난다……. 반드시 죽여야 해.’
색혈도황, 그의 머리에는 임무보다 그녀를 만나야 겠다는 욕망이 더 컸다.
* * *
“사화와 잠봉단은 어떤 일이 벌어져도 전각을 떠나지 마라.”
“예!”
악불군의 명에 사화는 기합이 바짝 들어 소리쳤다. 종리화는 담수련의 특별한 부탁을 받고 남창으로 급히 돌아간 상황이었다.
천화궁주에게 자연스럽게 담무룡이 죽었음을 알리라는 부탁이었다. 그동안에도 담수련은 천화궁주에게 자신의 근황과 여러 가지 비밀이 들어가도록 했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그녀를 이용하기 위해 믿을 만한 정보를 일부러 흘린 것이다.
밖으로 나온 악불군은 전각 주위를 다시 살폈다. 천호특별단 이십 명이 대독관의 지휘하에 주위에 매복하고 있었고, 천호사기단 삼십 명은 전각 주위를 일장 간격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숨어서 침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경계였다.
한쪽에는 백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담수련을 태우고 도망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었다.
악불군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외원으로 몸을 날려 사라졌다.
* * *
“밖으로 수상한 물건을 던진 놈들이 세 명이 있었습니다. 모두 체포해서 지금 심문 중입니다.”
외원에 급히 만들어진 비상 대책 회의실에 악불군이 도착하자, 내당 당주 상경호가 기다렸다는 듯이 보고했다.
“세 명이 전부는 아닐 겁니다. 우리가 기다린다는 것을 그쪽에서 알면 공격을 포기할 수도 있으니, 절대 이 안의 정보가 밖으로 새면 안 됩니다.”
“총단 밖으로는 아무도 나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통제하고 있습니다. 경계를 서는 수하들도 네 명을 한 조로 해서 서로 감시하게 했으니, 네 명이 다 간세가 아닌 이상 다른 짓은 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번에는 마진우가 보고했다.
“고 장로님, 준비는 어떻게 됐습니까?”
“진의 통로마다 철사망(鐵絲網) 깔아 놓았고, 궁수들도 배치가 다 끝났습니다. 누구든 들어오면 살아서 돌아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악불군은 이번에는 동정어옹을 보며 물었다.
“정파 연합에는 공격이 시작되면 그때 알려 주십시오. 그들이 돕겠다고 나서면 말리지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악불군은 천호방의 일이니 천호방 자체적으로 처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담수련의 생각은 달랐다.
어떤 자들이 기습한 것인지 정파에서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었다.
자신을 돕겠다고 찾아온 정파 연합에 또다시 피해가 가는 상황은 막고 싶었지만, 그녀의 주장도 틀리지는 않았기에 악불군도 반대하지 못했다.
대신 천호사기단을 그쪽으로 배치시켜 적들이 얼마나 강한 자들인지는 그들이 알게 하되,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방식을 택한 것이었다.
“추 호법님.”
“예!”
“오늘 본 방에 잠입해 있는 간세들을 전부 다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솎아내야 합니다. 추 호법님은 싸움에 끼지 마시고, 간세로 추정되는 자들을 감시하면서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제거하십시오.”
담수련과 고철황에 의해 의심스러운 자들의 명단은 이미 만들어 놓은 상황이었다. 다만 증거가 없기에 손을 못 대고 있었는데, 악불군은 오늘 그들을 최대한 정리할 생각이었다.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기다리고 있는 자들과 충분한 전력을 지니고 공격하려는 자들의 한판 승부가 이어지려는 그때…….
* * *
“금후가 항주에 있다고?”
항주로 잠입한 백리옥빙은 검봉각 대주 민옥련의 보고에 아미를 찡그렸다.
“예, 금후궁의 금령들과 은령들을 수하들이 보았다고 합니다.”
“궁주님께서 금후에게 총궁으로 들어오라고 명을 내린 것으로 아는데, 왜 이곳에 있는 거지?”
측천무후궁에는 계급이 존재했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후(后)의 핏줄을 타고나지 못하면 궁주가 될 수 없었다.
후에 봉해지는 데에는 역시 핏줄이 중요했다.
금잔화는 측천무후궁에서도 드문 큰 공을 세우고 후로 봉해졌지만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 수 없었다.
아니, 대접은커녕 엄청난 무위를 지닌 후들은 미모와 미혼술로 공을 세워 온 금잔화를 경멸하고 있었다.
“금후를 부를까요?”
잠시 생각한 백리옥빙은 고개를 저었다.
“놔둬라.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지 우선 두고 보자.”
“알겠습니다. 그리고 정파 연합에 있는 간세로부터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뭐라고 하더냐?”
“악불군이 보타검각에서 가져온 서류에 본 궁에 심대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정보가 있다는 말을 넌지시 비췄다고 합니다.”
“정녕 그놈이 보타검각을 친 것이 사실이었구나!”
예상은 했지만 그렇다고 확증이 된 것도 아니었기에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던 백리옥빙은, 드디어 악불군의 짓이라는 것이 확인되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가 아끼던 심복들도 다 죽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총궁에 급히 전서는 보냈습니다. 아무래도 그 서류를 빨리 회수하든가 없애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끌어모을 수 있는 수하들이 몇 명이나 되느냐?”
“외부 영주 십여 명이 항주에 있습니다. 거기에 검혼각 대원 사십여 명이 전부입니다.”
“외부 영주 한 명이 대충 이십 명 정도의 수하들을 이끌고 있지?”
“예.”
“……총 이백사십 명 정도란 말이지…….”
백리옥빙은 고심에 빠졌다.
검혼각의 대원들은 측천무후궁의 정예들로서, 비록 사십 명이라고는 하지만 여간한 중견 문파 하나 정도는 단숨에 무너뜨릴 수 있었다.
거기다 절정 고수급의 외부 영주 열 명에, 보타검각 최고의 고수였던 검후 자신까지 합친다면 남궁세가 같은 거대 문파라도 쳐들어갈 만한 전력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보타검각이 무너진 것이 마음에 걸렸다. 지금 그녀가 이끌고 있는 전력과 보타검각의 전력은 비교할 수가 없을 만큼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민 대주.”
고심하던 백리옥빙이 결정한 듯 입을 열었다.
“예!”
“기밀 서류의 양이 상당히 많다. 간세들 중 서류가 옮겨지는 것을 본 자들이 있을 게다. 서류가 옮겨진 곳이 어디인지 당장 알아보라고 해라.”
“공격하시려고요?”
“싸우기 위해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서류만 없애고 빠져나온다.”
“당장 알아보겠습니다.”
“모을 수 있는 수하들은 모두 모아서 천호방 총단 가까운 곳에 집결시켜라. 장소만 알아내면 즉시 들어간다.”
“예!”
담수련은 적들이 조만간에 쳐들어올 것을 예상하고 준비를 다하고 있었지만, 변수란 언제나 존재하는 법이었다.
혈교와 측천무후궁이 동시에 공격하는 일은 그녀 역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 * *
악불군의 양민 친화 정책으로 인해, 밤이 되어도 천호방 총단 주위는 사람들 통행이 많았다.
기루거리와 주루거리가 가까운 탓이었다.
한밤중임에도 술을 마시러 가는 사람들과 이미 술을 마시고 취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자들이 섞여 있는 거리는 항주를 무림 삼대 색향 중 하나로 부르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자시가 지나고 축시가 가까워지자 붐비던 거리도 조금씩 한산해졌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이곳저곳에서 취객들 간의 시비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미 주먹다짐까지 하는 자들도 여럿 있었다.
싸움이 나면 당연히 구경꾼들이 몰려드는 것은 인지상정(?)이었다.
천호방 정문을 경계하던 방시종은 옆에 있는 하성을 보며 말했다.
“저거 어떡하지? 싸움이 점점 심해지는데, 가서 말려야 하나?”
그의 말마따나 둘이 시작한 싸움은 친구들의 합류로 집단 싸움으로 번졌고, 당연히 구경꾼들은 더 많이 모이고 있었다.
“저쪽도 만만치 않아! 오늘따라 왜 이렇게 싸우는 놈들이 많은 거야? 하여간에 항주 놈들은 겁대가리가 없어. 감히 무림 세력의 총단 앞에서 싸우고 말이야.”
하성은 다른 곳을 보며 말했다.
그곳 역시 싸움이 난 듯 구경꾼들이 모여 있었다. 분명 다른 날보다 싸움이 많고 규모도 컸지만, 취객간의 이런 싸움은 거의 매일 비일비재로 일어났기에 그들은 크게 이상하게 보지는 않았다.
쭈주주주주쭛쭛!
그때 어디선가 새소리가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총단 주위를 통행하던 자들이 천호방 총단의 담을 넘기 시작했다.
방시종과 하성은 상황이 이상하게 변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총문을 빠르게 닫으며 그대로 총단 내로 들어섰다.
하나, 무림인들에게 문이 닫혀 있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백 명의 흑의인들이 담장 안으로 사라지고, 곧이어 안에서는 무기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비명 소리가 연이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진과 삼진, 공격 시작한다!]
멀리서 보고 있던 색혈도황은 계획대로 되는 것 같자 다시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조금 멀리서 잠복하고 있던 폭풍신마의 지휘를 받으며 이백 명의 흑의인이 다시 천호방의 담장을 넘었다.
구혼사마의 지휘를 받는 백 명의 삼진 역시 천호방의 뒷담을 넘기 시작했는데, 이진과 다른 점은 그들은 매우 은밀하게 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다시 일각쯤 지나고, 천호방을 주시하고 있던 색혈도황의 검미가 좁아졌다.
안에서 들리는 무기 소리와 비명 소리 그리고 다급히 외치는 소리 등으로 미루어,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한 명도 담장 밖으로 넘어오지 않는다는 것은 백전노장인 그가 보기에 심히 이상했다.
이런 집단전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후퇴하거나 도망치는 자들이 꼭 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낭인들을 위주로 구성된 천호방도들이라면 담장을 넘어 도망치는 자들이 속출해야 했다.
[호법님, 불입니다.]
그때 천마단 대주의 전음이 들려왔다. 그가 기다리던 불길이 천호방 총단 안에서 피어올랐기 때문이었다.
[본 진, 공격 시작한다!]
그의 명과 함께 다시 백 명 가까운 흑의인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천호방 총단 안으로 뛰어들었다.
실로 엄청난 공세가 아닐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