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423화 (423/472)

<천검지애 423화>

423화. 검후(1)

“천장이다!”

추국과 연화는 천장에 구멍이 뚫리자 크게 소리쳤다. 밖에 있는 대독관에게 자연스럽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녀들의 의도는 너무도 간단히 무산되었다.

백리옥빙이 방 안 전체의 음파를 막았기 때문이었다.

사화는 구멍을 통해 나타난 백리옥빙을 보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단지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기세만으로도 상대하기 어려움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너희들 실력으로는 내 일 초도 받을 수 없다. 굳이 피를 보고 싶지 않으니 반항하지 마라.”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강력한 내공이 실려 있었기에, 그렇지 않아도 굳어 있는 사화의 몸을 더욱 웅크리게 만들었다.

방 안을 살피던 백리옥빙은 책상 옆에 쌓여 있는 서류를 보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자주 본 보타검각의 서류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생각 외로 쉽게 찾았구나.’

그녀의 목표였던 서류를 쉽게 찾아 안도한 그녀는 사화를 보며 물었다.

“담수련은 어디에 있느냐?”

“누, 누군지 정체를 밝혀라!”

다짜고짜 담수련이라는 이름을 입에 담자 깜짝 놀란 추국은 말을 더듬으면서도 최선을 다해 강하게 반문했다.

“너는 내게 물을 수 있는 자격이 없다. 담수련은 어디에 있느냐?”

“아, 아가씨는 다른 곳에 계신다.”

연화의 말에 백리옥빙은 아미를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난 거짓말을 매우 싫어한다. 담수련은 방금 전까지 이 방 안에 있었다. 셋을 셀 때까지 답을 말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죽는다.”

“아, 아가씨는 지금 방주님과 함께 계신다. 이미 이곳에 대해 들으셨으니 곧 오실 거다!”

이번에는 흑란이 항변하듯 소리쳤다.

하지만 백리옥빙은 그녀들의 말은 듣고 싶지 않다는 듯 수를 셌다.

“하나!”

초조한 표정을 한 추국은 삼화를 슬쩍 보았다. 합공을 하자는 의미였다. 상대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둘!”

수를 세던 백리옥빙의 시선이 방 안의 구석을 쳐다보았다.

“천하의 담수련이 그런 곳에 쥐새끼처럼 숨어 있다니, 실망인데?”

놀랍게도 백리옥빙은 진을 찾아낸 것이었다.

“쳐라!”

추국은 그녀가 담수련을 찾아냈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공격 명령을 내리며 백리옥빙을 향해 검을 찔러 갔다. 삼화 역시 그녀의 말과 동시에 백리옥빙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하지만 그녀들의 공격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사화는 그대로 밀리며 마치 접착제로 붙이기라도 한 듯 벽에 딱 붙고 말았다.

“너희들이 계집이 아니었다면 모두 죽였을 것이다. 여자로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여기거라.”

백리옥빙은 차갑게 말하고는 구석으로 다가갔다.

“담수련, 그 정도 진으로는 내 검을 피하지 못한다.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어떻겠느냐?”

“진 안까지 기를 감지하다니, 검후의 무공은 정말 대단하신 것 같네요?”

담수련은 진을 친 대나무를 뽑아내며 말했다.

백리옥빙은 대나무 몇 개를 세워서 완전히 모습을 감추는 진의 효용에 탄복한 듯 눈에 이채를 보이며 물었다.

“보타검각의 진을 파훼한 사람이 누굴까 궁금했는데, 이것을 보니 범인은 너였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맞느냐?”

“보타검각을 에워싼 진은 파훼가 불가능한 진이지요. 하지만 뚫고 들어가는 방법은 있더군요.”

“원래는 보타검각에서 가져온 서류만 회수해 나가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넌 그냥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백리옥빙의 얼굴을 살피던 담수련은 뭔가 느낀 듯 말했다.

“저를 죽일지, 납치할지 갈등하시나 보네요? 살려 두자니 영 꺼림칙하고, 납치하자니 데리고 나가는 것이 마땅치가 않고. 안 그런가요?”

“악불군의 무공만 경계했는데, 지금 보아하니 너 역시 악불군 못지않게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그런데, 이거 아시나요?”

“뭘 말이냐?”

“죽일 자는 생각하지도 말고 그냥 죽이는 것이 가장 좋다는 거예요. 측천무후궁도 아니고 남의 방의 중지에 와서 그런 갈등을 하며 시간을 끄는 것은 아주 미련한 짓이라는 것이지요.”

백리옥빙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그녀가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인지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죽이는 것이 낫겠구나!”

백리옥빙이 마음을 굳힌 듯 말하자 담수련이 미소를 지으며 받았다.

“안타깝게도 이미 기회는 사라진 것 같네요.”

담수련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벽에 붙어 괴로워하던 사화가 툭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녀들을 제압했던 기가 사라진 것이다.

백리옥빙의 표정이 굳어졌다.

누군가 나타나 자신이 장악한 방 안의 공간을 뚫은 것이 분명했는데, 그녀가 감지를 못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손이 움직이자 강력한 경고가 그녀의 귀에 들려왔다.

“움직이는 즉시 제 검이 검후의 등을 찌를 겁니다.”

백리옥빙의 눈꺼풀이 꿈틀했다.

그녀의 무공으로 담수련을 죽이는 것은 간단했다.

하나, 그녀를 죽이고 자신까지 안전할 수 있을지는 그녀도 장담할 수가 없었다.

“총단의 상황이 한가하지 않을 텐데,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군?”

백리옥빙은 몸을 돌렸다.

검을 든 채 서 있는 악불군을 보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올바른 판단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악불군은 그녀가 몸을 돌리자 안심한 듯 말했다. 그가 백리옥빙을 즉시 공격하지 못한 이유는, 좁은 방 안에서 그녀가 저항할 경우 담수련은 물론 사화까지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놀랍군! 우리가 만난 것이 한 달 정도밖에 안 됐는데 더 강해졌어…….”

“이대로 돌아가시면 막지는 않겠습니다.”

악불군의 말에 백리옥빙의 얼굴에 미소가 살짝 그려졌다. 보타검각까지 공격한 그가 자신을 그냥 보내 주려는 이유를 눈치챈 것이다.

“내가 여기까지 들어온 목적이 있는데 그냥 갈 수는 없다.”

“목적이 아가씨를 죽이는 것이었습니까?”

“담수련은 내 목적에 없었다. 보타검각에서 입수한 서류만 내게 주면 조용히 돌아가겠다.”

그녀의 말에 악불군은 서류 속에 그의 예상을 뛰어넘는 중요한 정보들이 많이 있음을 직감했다.

그렇지 않다면 검후 같은 최고 간부가 직접 들어와 서류를 회수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지금 본 총단이 좀 시끄럽습니다. 정리를 끝내면 서류를 가지고 검후를 만나러 가겠습니다. 저와 결투를 원하셨지요? 서류를 두고 저와 결투를 하시지요. 제가 진다면 깨끗이 모든 서류를 돌려 드리겠습니다. 물론 제 목숨까지도 원하면 드려야겠지요.”

“여기서 가지고 가면 될 것인데 굳이 그런 귀찮은 짓을 내가 할 이유가 있을까?”

“가져갈 수 있겠습니까?”

악불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이 열리며 대독관이 안으로 들어섰다.

“방주님, 완벽하게 포위했습니다.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할 것입니다.”

백리옥빙의 표정은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머리는 빠르게 돌고 있었다. 자신이 죽는 것까지 감수한다면 서류를 없애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가지고 모험하고 싶지 않았다.

“서류를 가지고 장난을 치지 않겠다고 약조할 수 있느냐?”

“전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만나기 전까지 서류를 보지 않겠습니다.”

“언제쯤 정리가 끝날 것 같으냐?”

“묘시 전에 끝날 것입니다.”

“그럼 묘시에 항주 외곽에 있는 소호봉에서 만나자.”

백리옥빙은 다시 악불군은 쳐다보았다. 그는 조금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담수련을 해치려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먹는 순간, 그는 목숨을 도외시한 공격을 할 것이 분명했다.

강함만을 선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온 그녀였다. 그런데 손을 살짝만 움직여도 죽일 수 있는 약한 존재인 담수련이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 * *

천호방의 전투는 악불군의 예상대로 묘시 전에 끝났다. 누가 보아도 천호방의 대승이었다.

그러나, 진법과 준비된 함정, 거기다 고수들만 골라 가며 악불군이 제거했음에도 피해는 만만치 않았다.

“원시천존! 이들의 힘이 어느 정도이기에 이런 공격을 이렇게 짧은 시간에 연달아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싸움이 끝나고 모인 정파 연합의 지휘자들의 얼굴에는 황당함을 넘어 두려움까지 보이고 있었다.

만약 오늘 천호방을 공격한 전력이 자신들의 문파를 공격했다면 버텨 낼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끔찍하기까지 했다.

“악 방주의 계획대로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소걸아의 말에 모두가 그를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제갈신욱이 즉각 반문했다.

“악 방주께서 제게 한 말이 있었습니다.”

“아미타불! 소 시주, 무슨 말인지 자세하게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악 방주가 여러 문파를 찾아가 연합을 제안했지만, 사실 각 문파의 최고수 분들은 없고 저 같은 후기지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제 적에 대해 아시겠지만, 악 방주에게 우리들의 도움은 그리 크지 않다고 봅니다.”

모두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어찌 보면 그들을 무시하는 발언이었지만 반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미 그들 역시 악불군의 무공에 승복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무량수불, 그렇다면 굳이 우리를 모은 이유가 뭡니까?”

“악 방주는 무림이 안정하기 위해서는 모든 공을 정파 전체와 나누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순간 모두의 얼굴에 감탄의 표정이 나타났다.

진정한 영웅의 표상이 무엇인지 모두에게 각인된 것이다.

* * *

“나도 갈 거야.”

담수련의 말에 악불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연히 같이 가셔야지요.”

“이길 자신 있지?”

“걱정 마십시오.”

무조건 큰소리를 쳐야 그녀가 좋아한다는 것을 아는 그는 담수련 앞에서는 절대 겸손하지 않았다.

“대승입니다. 적들은 한 명도 살아서 나가지 못했습니다!”

악불군이 담수련과 함께 밖으로 나오자, 대기하고 있던 천호방의 간부들이 허리를 숙이며 크게 소리쳤다.

“수고 많았습니다. 전 잠시 나갔다 올 것이니, 뒤처리는 고 장로님과 추 호법님께서 해 주십시오.”

악불군의 말에 고철황과 추명혼은 다시 한번 허리를 숙이며 답했다.

“예,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이미 대독관에게 안에서 있던 상황에 대해 알고 있던 그들이었다.

더욱이 침입했던 여인이 얼마나 대단한 고수였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악불군을 믿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백설을 탄 악불군과 담수련이 사라지자 고철황은 모두를 보며 소리쳤다.

“방주님께서 돌아오기 전에 총단을 깨끗하게 정리한다. 빨리 빨리 움직여라.”

* * *

[금후님, 혈교의 천호방의 공격이 실패한 모양입니다.]

[나도 안다.]

금령각주의 보고에 금잔화는 신경질적으로 받았다.

섭혼금령제혼술은 시술자와 시술당한 자의 뇌가 연결된다. 생각까지 전부 알 수는 없지만, 그가 죽는다면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바보 같은 놈, 그 무공으로 도움도 제대로 주지 못하고 죽다니……. 역시 천호방의 간부 중 한 명을 포섭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금잔화는 계획을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금후님, 그런데 악불군이 총단을 나왔다고 합니다.]

[정말이냐?]

[예, 방금 말을 타고 어디론가 달려가는 것을 보았다는 보고입니다.]

‘방금 전투가 끝났는데 나갔단 말이지……. 왜?’

금잔화는 대단한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있겠느냐?]

[말의 속도가 너무 빨라 거기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다만 방향은 서호 방향이었습니다.]

금잔화는 잠시 생각하더니 급히 물었다.

[검후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천호방에서 나온 것은 분명한데, 어디로 갔는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한데…….]

[한데라니? 무슨 일이냐?]

[사도비류가 항주에 들어온 것 같습니다.]

[확실하냐?]

[천후궁에 제가 아는 친구가 있습니다.]

[사도비류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내라.]

[알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악불군의 외유와 사도비류의 등장에 금잔화는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이 급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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