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424화 (424/472)

<천검지애 424화>

424화. 검후(2)

“사도비류?”

“예!”

“그 괴물이 왜 항주에 들어왔다는 거냐?”

민옥련의 보고에 백리옥빙은 아미를 치켜올렸다.

“천후님께서 사도비류를 이용해 악불군을 제거하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검봉각뿐 아니라 나까지 움직였는데, 왜 그놈이 필요해?”

“천후님께서는 검후님까지 다치시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천후궁에서 항주까지는 이틀 거리였다. 거기다 사도비류는 누가 봐도 티가 날 정도로 괴이한 행색이기에 오는 데 하루나 이틀은 더 걸렸을 것이었다.

“궁주님께서 나를 보내고 그다음 날 천후가 사도비류를 보냈다는 것은 나를 믿지 못한다는 의미렷다?”

“그런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나와 악불군은 곧 소후봉에서 생사투를 벌인다. 사도비류는 필요 없다.”

“검후님, 지금 악불군은 본 궁의 철천지원수가 되어 있습니다. 지금 정정당당한 대결보다는 악불군의 제거가 더욱 중요하다고 봅니다.”

민옥련의 말에 백리옥빙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녀 역시 자신과 악불군이 생사결을 펼친다면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악불군에게 질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그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사도비류가 알맞게 도착했는데 굳이 검후님께서 모험하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검후의 얼굴에 그늘이 서렸다.

* * *

항주 외곽의 외진 곳에 도착한 악불군은 담수련을 적설의 등에 태워서 하늘로 올려 보냈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안전한 곳은 적설의 등이었기 때문이었다.

항주 외곽의 여러 산 중 가장 험한 영소산의 최고봉인 소호봉은 깎아지를 듯한 절벽을 타고 올라가야 했다.

‘비겁하게 뒤통수를 칠 여인 같지는 않았는데?’

소호봉 앞에 도착한 악불군은 예상과 달리 많은 무인들이 주위에 숨어 있자 고개를 갸웃했다.

함정일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악불군은 아무렇지 않은 듯 절벽을 향해 몸을 날렸다.

튀어나온 바위나 나무뿌리 등을 발로 차며 절벽을 올라가는 그의 모습은 마치 하늘을 날아 올라가는 용을 보는 듯했다.

‘진짜 혼자 나타나다니, 무모한 거냐? 아니면 진짜 자신이 있는 거냐?’

악불군이 절벽 위로 사라지자 모습을 드러낸 민옥련은 탄성을 터뜨렸다.

현 무림에서 악불군의 명성은 이미 무황들을 넘어서고 있었다.

어느 정도 명성을 얻은 자도 위험한 행동은 꺼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한데 악불군 정도의 명성을 지닌 자가 함정일 수도 있는 장소에 진짜 홀로 나타난 것은, 어떤 상황도 처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라고 할 수 있었다.

[모두 준비는 끝났느냐?]

[예, 준비는 끝났는데…… 검후님께서 매우 못마땅하신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안다. 하지만 천후님의 명이시니 이해하실 게다. 악불군이 홀로 나타난 것은 실로 천재일우의 기회다. 오늘 반드시 죽여야 한다. 너희들도 죽을 각오로 싸워야 할 것이다.]

[소하봉 밑은 천라지망이 펼쳐져 있습니다. 악불군은 절대 빠져나가지 못할 것입니다.]

* * *

소하봉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짙어지는 마기를 느낀 악불군은 고개를 갸웃했다.

측천무후궁이 그동안 벌인 사건들은 매우 악의적이긴 했지만 무공에서 마기를 느낀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수를 쓸 모양이군?’

소호봉에 올라선 악불군은 검을 든 백리옥빙이 서 있자.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검후 소저를 믿었는데, 측천무후궁답게 확실하게 뒤통수를 치시는군요? 솔직히 좀 실망했습니다.”

“……이런 더러운 방법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 역시 명을 받는 사람인지라 방법이 없었다. 최소한 나와의 대결은 일대일로 하겠다. 나를 죽인다면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변명치고는 좀 약하지만 검후 소저의 말은 믿어 주지요.”

악불군은 네 명의 무인이 감싸고 있는 가마로 시선을 돌렸다.

소호봉을 덮고 있는 마기의 원천이 가마라는 것을 그는 즉각 알 수 있었다. 그동안 많은 마두들을 만났지만, 마기만을 가지고 따진다면 지금처럼 진하고 잔혹한 마기는 처음이었다.

가마의 창문이 열리며 끔찍하게 생긴 얼굴이 모습을 보였다.

“크흐흐흑! 악불군, 네놈을 찢어 죽일 생각만으로 지내 왔다. 드디어 네놈을 만났구나!”

측천무후궁의 도움으로 혈독불사마공을 극성으로 완성시킨 사도비류의 모습은 이미 인간이라 부르기 힘들 정도였다.

눈을 제외한 피부는 독에 의해 녹고 굳기를 반복해 거의 악어의 가죽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입을 벌릴 때마다 풍겨져 나오는 독은 공기를 꺼멓게 만들 정도였다.

“난 너 같은 괴물은 만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넌 나를 잘 아는 모양이구나?”

“괴물? 카카카카카! 그래 말 잘했다. 네놈을 찢어 죽인 후, 담수련 그 계집을 이 괴물이 데리고 살면서 평생 괴롭혀 주지. 기대해라!”

사도비류의 말을 들은 백리옥빙의 얼굴에 차가운 냉기가 떠올랐다. 사도비류의 말이나 행동은 그녀가 가장 멸시하는 짓이었기 때문이었다.

“악불군, 서류는 가지고 왔느냐!”

백리옥빙은 더 듣기 싫은 듯, 화제를 바꿨다.

“난 누구와 달라서 약조한 것은 반드시 지킵니다.”

악불군은 자신이 메고 있는 보자기를 손으로 톡톡 치며 말했다.

“그럼 시작하지.”

백리옥빙은 검을 빼 들고는 기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 그녀의 몸 전체에서 검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몸 전체에서 수많은 검이 튀어나온 것 같은 느낌을 줄 정도였다.

“대단한 검법입니다. 이름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본 궁을 세우신 초대 측천무후께서 직접 창안해 내신 벽옥수월천라검이다.”

“이름은 기억해 놓겠습니다.”

말을 마친 악불군은 검을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백리옥빙은 자신과 일대일 대결을 하겠다고 했지만, 지금 상황은 그녀의 말대로 흐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가 불리해지거나 자신이 불리해지면서 틈이 생긴다면 주위에 숨어 호시탐탐한 공격의 기회만 노리는 자들이 즉각 개입할 것이 분명했다.

더욱이 그에게 원독의 눈초리를 보내며 노려보고 있는 괴물은 악불군조차 위협을 느낄 정도로 대단해 보였다.

누구라도 주눅이 들,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악불군의 표정에는 조금의 불안감도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그가 상상 속에서만 원했던 상황이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소림사의 기연 이후 운기조식만으로도 직접 수련한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얻게 된 그는, 천륭검보의 무공을 수없이 조합해 가며 새로운 상황에 대한 대처법을 연구해 왔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

‘그동안 연구했던 무공들을 드디어 마음껏 시험해 보겠군.’

상상 속으로 싸웠지만 주위에 있는 아군으로 인해 한 번도 자신의 전력을 다해 보지 못했던 악불군은, 드디어 마음껏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낼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었다.

검을 높이 든 악불군의 모습을 보는 백리옥빙의 눈에 흔들림이 나타났다.

지금 악불군의 자세는 기수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허술한 자세였다. 만약 다른 자들이 이런 자세를 펼쳤다면 상대를 무시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었다.

하나, 상대는 악불군이었다. 이유 없이 이런 자세를 취할 리 없었다.

그리고 곧 그녀는 악불군의 자세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바뀌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백리옥빙의 검기가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다.

[검후님의 곧 공격을 시작할 것이다. 모두는 준비해라!]

소호봉 주위를 완벽하게 포위하고 있던 검봉각 대원들에게 명령이 떨어지자, 모두는 길쭉한 대나무 통을 꺼내 악불군을 겨눴다.

호신강기까지도 뚫고 들어간다는 당가의 최고 암기인 탄죽만화통(彈竹萬火統)을 변형한 무기로, 검봉각에만 있는 참살시라는 암기통이었다.

드디어 백리옥빙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수백 줄기의 검기가 한꺼번에 몰아치자 악불군의 눈에 탄복의 기색이 나타났다.

그동안 혈교의 혈마종이나 보타검각의 성후 등 수많은 고수들을 상대해 왔다.

검후의 내공만을 가지고 평한다면 그들보다 강하다고 하기에는 그 차이가 매우 작았다. 하나 그녀의 검식만큼은 그들의 무공을 많이 능가한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악불군의 몸이 스르르 사라졌다. 그리고 갑자기 그의 모습이 여러 개가 나타났다. 천륭검보의 자세에 배교의 사술을 가미해 그가 만들어 낸 분신십이수라는 무공이었다.

‘사술?’

공격을 하던 백리옥빙의 눈이 살짝 커졌다. 하지만 그녀는 곧 안정을 찾은 듯 공격을 분산했다.

진짜 사술이라면 실체는 하나고 나머지는 허상이어야 했다. 하나, 그녀는 모두가 실체라는 느낌을 받았다. 사술이 아니라 무공이라는 방증이었다.

당황하기는 검봉각의 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참살시를 겨냥해야 할 목표가 여럿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진짜 대단하구나!’

악불군은 백리옥빙의 공격이 분산되었음에도 그 위력이 크게 다르지 않자 다시 한번 탄복을 했다.

그리고 곧 검을 백리옥빙을 향해 뻗었다.

당연히 피할 줄 알았던 악불군이 오히려 공세로 나오자 이번에는 백리옥빙의 얼굴에 감탄의 표정이 나타났다.

거기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악불군의 분신들이 모두 다른 무공을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마치 열두 명의 합공을 받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참월!”

백리옥빙의 입에서 짧은 기합이 터져 나왔다.

하늘의 달까지 잘라 버린다는 벽옥수월천라검법의 궁극의 경지였다.

그녀의 몸이 회전하며 주위 삼 장 가량의 공간을 모조리 찢어 버리기 시작했다.

악불군이 몇 명이건 삼 장 안에 있다면 모조리 잘려 나갈 공격이었다.

타타타타타타탕!

찰나 간에 수십 번에 달하는 타격음이 소호봉 전체를 휘감았다.

[쏴라!]

단 한 번의 격돌이었지만 이미 주위는 초토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분신했던 악불군의 모습이 하나로 돌아오자 민옥련은 기회라는 듯 명령을 내렸다.

핑!

핑!

핑……!

참살시가 빛의 속도로 악불군을 향해 날아갔다.

맞기만 한다면 방패고 호신강기고 어떤 방어도 무력화시키는 무서운 암기였지만, 맞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저, 저게 가능한가?’

탱! 탱! 탱……!

민옥련은 참살시가 악불군의 천륭검에 의해 모조리 튕겨나가자 경악한 듯 입이 벌어졌다.

참살시는 눈으로 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빠른 암기였다. 그래서 공격할 때는 피할 곳까지 염두에 두고 날렸다.

한데, 악불군은 그 빠른 참살시를 모조리 검으로 튕겨 낸 것이다. 그의 검이 얼마나 빠르길래…….

뒤로 오 장이나 밀려나 검을 짚은 채 서 있던 백리옥빙은, 참살시를 악불군이 튕겨 내는 장면을 보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완전 참패다…….’

둘의 승패가 끝날 때까지는 합공은 없다고 했던 그녀의 말이 또다시 허언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읍!”

보고 있던 백리옥빙은 갑자기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녀의 벽옥수월천라검은 천륭검보의 무공에 전혀 꿇리지 않는 천고의 검결이었다. 하나 비슷한 위력의 무공이라면 승패를 가르는 것은 경험과 내공이었다.

백리옥빙은 무공광으로 불릴 만큼 수련을 멈추지 않았지만, 수 년 동안 매일을 긴장 속에 살며 수많은 생사투를 거친 악불군의 경험에는 견줄 수 없었다.

더욱이 담무룡의 시술 속에 뜻하지 않은 기연으로 얻은 그의 내공은 백리옥빙의 내공을 많이 상회했다.

한마디로, 일대일 대결로 백리옥빙이 악불군을 이길 확률은 애당초 없었다고 할 수 있었다.

“크아아아악!”

백리옥빙이 무릎을 꿇자, 기다렸다는 듯이 가마가 터져 나가며 사도비류가 튀어나왔다.

“드디어 네놈을 죽일 시간이구나.”

혈광을 뿜어내며 다가오는 사도비류를 보며 악불군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보이는 원한은 실로 깊어서 분명 아는 사이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사도비류가 누구인지 그는 알 수가 없었다.

겉모습만이 아니라 몸에서 풍기는 기운까지 완전히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와 내가 어떤 원한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유 불문하고 너는 살려 두면 안 될 것 같구나.”

악불군의 말에 사도비류는 다시 광소를 터트리며 말했다.

“크하하하하하! 내 네놈의 가죽을 벗기고 살을 저며 내어, 감히 이 사도비류에게 덤빈 천한 놈의 실상을 천하에 까발려 주마!”

“네가 사도비류라고? 그렇지 않아도 네놈을 너무 쉽게 죽인 것 같아 아쉬웠는데 아주 잘 됐구나.”

괴물이 사도비류라는 말에 악불군의 얼굴에는 오히려 잘됐다는 표정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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