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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425화 (425/472)

<천검지애 425화>

425화. 격랑(1)

사도비류는 악불군을 향해 시꺼멓게 변한 손을 들어 올렸다.

몸 전체에서는 묵기가 호신강기처럼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방어 태세가 전혀 안 되어 있어? 거기다…… 독?’

악불군은 사도비류의 발이 닿은 곳의 땅이 녹아내리는 것을 보며 검미를 찌푸렸다.

흙과 바위로 이루어진 땅이 녹는다는 것은 그의 몸에서 풍기는 기가 매우 강력한 독을 함유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가마를 들고 온 자들이 온몸을 사슴 가죽으로 두르고 얼굴까지 덮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악불군은 사도비류의 악어가죽처럼 변해 버린 피부와 땅까지 녹이는 독을 몸 전체에서 뿜어내면서도 멀쩡한 몸을 보고서, 그가 이미 금강불괴와 같은 신체로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핑!

악불군은 다가오는 사도비류에게 시험 삼아 천호궁을 날렸다.

피시식!

‘대단하군…….’

천호시는 사도비류의 몸에 닿기도 전에 녹아 버렸다. 그의 몸에서 뿜어지는 독기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알 수 있었다.

“크하하하! 네놈이 어떤 잔재주를 벌인다 해도 나의 혈독불사마공을 깰 수는 없다.”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리며 사도비류는 천살독장을 펼쳤다.

벌건 혈선을 중심으로 시커먼 묵기가 악불군을 향해 날아오자, 잠시 갈등하던 악불군은 우선 몸을 피했다. 독공의 고수들과 싸운 경험이 많지 않은 그로서는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이 좋을지 나쁠지를 아직 가늠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분신처럼 아끼는 천륭검이 천호시처럼 손상을 입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더욱 맞상대하기가 꺼려졌다.

“언제까지 네놈이 피할 수 있는지 두고 보겠다!”

사도비류는 무차별적으로 독장을 날리며 수시로 입으로 침을 뱉었다.

사실 말이 뱉는다는 것이지, 그의 침은 거의 암기 수준의 속도로 악불군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침이 떨어지는 곳에서는 자욱한 연기와 함께 풀이고 나무고 모조리 타 버렸다.

악불군은 슬쩍 백리옥빙을 쳐다보았다.

심한 내상을 입고 간신히 검에 의지하며 버티던 그녀를, 사도비류의 공격에 강력해지자 민옥련이 급히 부축해 독기가 미치지 않는 곳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적이고 아군이고 없군…….’

사도비류가 뿜어내는 독기가 어찌나 강력한지, 그에게 참살시를 날리던 검봉각 대원들조차 암습을 포기하고 더욱 멀리 몸을 날리고 있었다.

심지어 몇 명은 이미 독에 중독이 된 듯 쓰러져 괴로운 듯 몸을 비틀고 있었다.

그때 악불군은 약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멀리 있는 여인들조차 중독이 될 정도로 강한 독이라면, 비록 피하고는 있다지만 그 독기의 범위 안에 있는 자신도 분명 그 독기를 느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자신은 독기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래……. 가주님께서 내게 시술할 때 만독불침이 될 거라고 했어. 만약을 위해 최대한 조심은 해야겠지만, 크게 타격을 주지는 못할지도 몰라.’

악불군은 사도비류가 자신의 독공에 대해 크게 자부심을 가지고 방어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어쩌면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피하는 와중에 천륭검에 자신의 전 내공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공격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검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이기도 했다.

“이놈, 상당한 명성을 얻었다고 들었는데 어찌 치사하게 도망만 다니느냐! 남자답게 덤벼봐라!”

사도비류는 악불군이 자신의 공격을 계속 피하자 자신이 붙은 듯 더욱 기세등등하게 소리쳤다.

‘지금이다!’

악불군의 신형이 눈에 띄게 느려지자 사도비류는 중독의 신호라고 판단한 듯 악불군을 향해 달려가며 독장을 날렸다.

파멸폭강(破滅爆剛).

천륭검보의 가장 파괴력이 강한 자세들을 조합해 만든 초식으로, 그 위력이 너무 강해 아직 한 번도 시전해 보지 않았던 초식이었다.

악불군의 검이 자신을 향해 떨어져 내리자 사도비류는 비소를 날렸다.

도검불침의 신체를 형성한 그는 악불군의 공격을 완전히 도외시하고 있었다. 더욱이 천륭검이 자신의 몸에 닿기도 전에 검과 악불군의 몸이 먼저 녹아내릴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나,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니, 찰나라고 할 정도로 짧았다.

사도비류는 그의 몸을 보호하던 독강기가 악불군의 검에 의해 뚫리자 급히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를 강하게 만든 것은 금강불괴에 버금가는 피부와 그를 둘러싸고 있는 독무였지, 무공 자체는 예전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사도비류는 피하기 어렵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두 손을 들어 검을 막아 갔다.

“크아아아아악!”

소호봉 전체를 무너뜨릴 듯한 처절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도비류의 두 팔을 그대로 잘라 낸 악불군의 검은 그대로 내리꽂히며, 그의 머리부터 시작해 사타구니까지 완전하게 둘로 갈라 버렸다.

사도비류의 자만을 놓치지 않고 유인해 단번에 그를 제거한 악불군은 급히 몸을 뒤로 날리더니 그대로 소호봉 밑으로 뛰어내렸다.

소호봉에 남아 있던 검봉각의 대원 삼십여 명은 갑작스러운 사태에 어안이 벙벙한 듯 서로를 쳐다보았다.

분명 이긴 자는 악불군이었는데, 그는 오히려 도망을 친 듯했기 때문이었다.

민옥련조차 상황 파악이 안 된 듯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 대주! 빨리 모두에게 소호봉에서 뛰어내리라고 해라!”

내상이 심해 급한 대로 운기조식을 하던 백리옥빙이 눈을 뜨고는 급히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의 경고는 한발 늦었다.

검봉각의 대원들이 목을 손으로 잡으며 쓰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도비류의 몸에 축척되어 있던 독이 그의 죽음과 함께 급속도로 공기중에 퍼지며 소호봉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죽이고 있었다.

* * *

혈교가 엄청난 전력으로 천호방을 공격했지만 오히려 모두 전멸했다는 소문이 퍼지며, 천호방의 위상은 무림맹과 맞먹을 정도로 높아져 버렸다.

하나, 동시에 이상한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천호방 방주 집무실.

악불군의 앞에 고철황과 추명혼 그리고 동정어옹이 앉아 있었다.

소호봉의 혈투가 끝난 지 삼 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세 분이 같이 들어오신 것을 보니 매우 중요한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말씀해 보십시오.”

방주와 태상호법 그리고 두 명의 수석장로가 모였으니 천호방의 최고 간부 회의라고 할 수 있었다.

“방주님, 지금 이상한 소문이 나돌고 있습니다.”

고철황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떤 소문입니까?”

“……말씀드리기조차 민망한 말이지만 그냥 넘어가기는 어려운 소문인지라 말씀드리겠습니다. 방주님께서 잠룡세가의 호위 무사 출신이었고 무공도 담무룡에게 배웠다는 소문입니다. 거기다 지금도 담무룡의 천금인 담수련을 비롯한 잠룡세가의 잔당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말이 퍼지고 있습니다.”

“고 장로님께서는 그 소문을 믿으십니까?”

고철황은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제겐 그 소문이 사실이고 아니고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제가 충성을 맹세한 분은 방주님이니까요.”

“추 호법님은 어느 정도 아시면서 천호방에 들어왔으니 넘어가겠습니다. 동방 장로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천륭검가의 신하로서 방주님께서 천륭검가의 후계자시라는 것만 중요할 뿐, 다른 것은 생각한 적도 없습니다.”

악불군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물었다.

“그럼 천호방의 공기는 어떻습니까? 그 소문 때문에 많이 흔들립니까?”

“조금의 혼란도 없습니다. 그 점만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뭐지요?”

악불군의 반문에 모두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소문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지면서 매우 심각하다는 생각으로 달려왔지만, 막상 악불군의 말을 들으니 다급히 온 그들의 모습이 오히려 머쓱해진 것이다.

“저희들이나 방도들은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다만, 여전히 방주님을 질시하며 어떻게든 흠집을 내려고 하는 자들에게는 호재가 될 것 같아 걱정일 뿐입니다.”

고철황의 말에 추명혼이 즉시 부언했다.

“방주님께서 명을 내리신다면 소문을 퍼뜨리는 자들을 모조리 추포하겠습니다.”

“그냥 두십시오. 소문이란 것이 막으려고 하면 뭔가 있나 보다 하면서 더 부풀려지고 사실처럼 굳어지는 법입니다.”

“하지만 계속 이대로 퍼지게 둔다면 분명 무림맹에서 조사를 명목으로 압박해 올 것입니다.”

“제가 태양천주를 죽인다면 어떻게 될까요?”

“……태양천주를 죽이실 예정이십니까?”

“어쩌면 태양천주를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태양천주는 무황보다 더 강할지도 모릅니다. 만만히 볼 수 없습니다.”

“제가 묻는 것은 태양천주를 이길 수 있겠느냐가 아니라, 태양천주를 죽인다면 그 소문은 어떻게 될 것 같으냐는 것입니다.”

“소문을 낸 자의 속셈은 방주님을 부역자로 몰려는 것입니다. 한데, 중원의 가장 핵심 원수인 태양천주를 죽이신다면 누가 있어 감히 그런 말을 묻겠습니까?”

“그럼 태양천주만 죽이면 모든 소문은 저절로 가라앉겠군요?”

“그, 그렇긴 합니다만…… 너무 무리하실 필요는 없다고 사료됩니다.”

모두는 악불군이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굳이 태양천주까지 찾아내 죽이려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혈해사황이 제게 서찰을 보냈더군요.”

“혈해사황이요? 뭐라고 했습니까?”

“태양천주가 일대일 결투를 신청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대결의 장소와 시간까지 자세히 써서 보냈습니다.”

“혈해사황의 음모입니다. 그자의 말은 절대로 믿으시면 안 됩니다.”

“분명 음모겠지요. 하지만 제게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태양천주를 놓친다면 그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요.”

“방주님의 지금 명성이시면 지금 도는 소문이 좀 귀찮기는 하지만 얼마든지 무마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계속 위험한 결투를 직접 하시려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고철황은 악불군이 모든 일에 직접 나서는 것이 좀 불안한 듯했다.

“제 무공은 아직 완전하지 않습니다. 저를 단련하여 무공을 완성하기 위한 구도의 과정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악불군의 말에 모두는 더 이상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리고 모두는 악불군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진정한 강자만이 가질 수 있는 무림인의 자세에 존경을 표한 것이었다.

* * *

“검후가 십 초 만에 큰 내상을 입었고, 사도비류는 제대로 공격도 못 하고 죽고, 오히려 그놈이 죽으면서 퍼뜨린 독에 의해 검봉각 대원들은 전멸했다는 말이냐?”

측천무후의 반문에 묘묘선자는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제가 악불군의 무공에 대해 잘못 분석한 것 같습니다. 제 불찰입니다.”

“검후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내상이 심한 상황에서 사도비류의 인독까지 중독되셔서, 우선 안가에서 몸을 추스르고 계십니다.”

“천붕을 보내 총궁으로 오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천후가 결국 악불군의 정체에 대해 소문을 냈다고?”

“예, 이틀 전에 소문을 시작됐는데 이미 전 중원에 퍼진 상황입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퍼뜨렸다고 티가 나지 않겠느냐?”

“천후님께서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천호방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였다고 하더냐?”

“그게…… 이상하게 아무런 반응이 없다고 합니다. 하다못해 총관이 나서서 음해라고 발표라도 할 만한데, 이상하게도 정말 조용하다고 합니다.”

“얼마든지 무마할 자신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겠느냐?”

“천후께서 무림맹에 숨어 있는 모든 은화에게 천호방과 무림맹 간에 싸움이 나도록 부추기라고 명을 내렸다고 합니다. 악불군이 소문을 무시하는 방식으로 슬쩍 넘기려고 한다면 오산입니다.”

“어디 천후의 예상대로 일이 진행되는지 두고 보자.”

말을 마친 측천무후는 능파선고를 보며 다시 말했다.

“능파.”

“예, 궁주님!”

“가서 천륭검보를 가지고 와라.”

“천륭검보는 궁주님께서도 이미 완벽하게 익히지 않으셨습니까?”

“익혔지. 그런데 악불군, 이놈을 보니까 내가 놓친 것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난 천륭검보를 가지고 오늘부터 보름간 폐관에 들어갈 것이니, 우선은 능파가 궁의 지휘를 맡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측천무후가 천륭검보를 가지고 폐관에 든다는 것은, 직접 악불군을 죽일 준비를 한다는 의미였다.

새로운 격랑이 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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