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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428화 (428/472)

<천검지애 428화>

428화. 생사결(2)

“좀 더 대화해 보고 싶었는데 성격이 급하구나. 그래, 빨리 죽고 싶다는데 사양할 필요는 없겠지.”

두 팔을 들어 올리는 대공의 표정은 냉정했다. 악불군을 자신과 동등한 실력자로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의 손에 잡힌 것은 기마족들의 주 무기인 구환도(球環刀)였다.

“말학 후배로서 먼저 선공해도 되겠지요?”

“원하는 대로 하거라.”

그동안 악불군이 상대한 자들은 천하에 내로라할 절대 고수들이었다.

가장 최근에 상대한 검후만 해도, 내공의 우위로 이기기는 했지만 크게 우위를 가진 싸움은 아니었다.

심지어 눈앞의 대공은 지금까지 겪었던 강적들보다 강한 상대였다.

악불군의 몸에 금빛 강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그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악불군이 처음부터 자신의 모든 기를 빼내 공격을 준비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대공은 악불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기가 심상치 않을 느낀 듯, 역시 태양천 최고의 무공인 태양천멸강기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도 태양처럼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대단하구나…….’

악불군은 자신의 기가 대공의 기에 밀리고 있음을 느끼고, 감탄한 눈으로 그를 주시했다.

죽을지도 모를 절체절명의 생사결이었지만, 그가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절대 무공을 접하자 새로운 무공 세계를 보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두 강기가 부딪치자 월아봉에는 또 하나의 태양이 뜬 듯 엄청난 빛이 번쩍였다.

* * *

“혈해사황도 만만치가 않은 것 같은데?”

대공을 호위하며 따라온 태양십존 중 한 명인 화존은 월아봉에서 번쩍이는 빛을 보자 약간 불안한 듯 말했다.

한 명, 한 명이 담무룡과 맞먹을 정도의 초절정 고수들인 태양십존은 기의 격돌만으로도 지금 월아봉에서 얼마나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대공 전하께서는 무적이야. 혈해사황이 아무리 무림에서 무황 중 하나로 불리지만, 대공 전하를 이기기는 어려울 걸세.”

십존 중 한 명인 야존이 자신 있게 승리를 말했지만, 말과 달리 그의 얼굴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저, 저…… 지금 싸우는 자가 혈해사황이 맞긴 맞는 거냐?”

십존의 수좌인 멸존은 일장 넘게 뻗어 나온 금빛 검강이 공중을 가르자 당황한 듯 소리쳤다.

혈해사황의 성명절기는 장법과 조법이었다. 검강이 보일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때, 척후를 서고 있던 태양혈랑단 단주 우두룩이 급히 십존에게 전음을 보냈다.

[십존님, 수상한 자들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뭐라?”

멸존의 말에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은 화존은 전음을 듣자 뭔가 완전히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한 듯, 몸을 날려 우두룩의 옆으로 갔다. 제법 높은 둔덕으로 사방이 모두 보이는 곳이었다.

그리고 곧 화존의 얼굴이 단단하게 굳어졌다. 그냥 수상한 자들이 다가오는 정도가 아니었다.

말이 달리며 만들어 내는 먼지가 구름처럼 사방을 에워싸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최소한 삼백 명은 넘어 보였다.

둔덕으로 달려온 다른 십존들도 백전노장답게 금방 상황을 파악했다.

“혈해사계 이놈들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저지르는 거지?”

그들을 포위하며 달려오는 자들은 혈해사계가 분명했다.

사파가 얼마나 야비한지 잘 아는 태양천이 이런 상황을 대비하지 않은 것은, 자신들의 전력을 유지 확대하려는 혈해사계가 대공과 십존이 올 것을 알면서 공격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몰려오는 자들 중에 혈해사계의 장로급들이 다수 있다면 아무리 십존이라 해도 승리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혈해사계 역시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심지어 최소한 십존 다섯 명이 합공해야 하는 절대 고수인 혈해사황이 저들 중에 있다면 이 싸움은 상대가 안 될 것은 분명했다.

십존의 머리 역할을 하는 화존은 월아봉을 쳐다보았다. 태양천멸강기와 금빛 강기의 싸움은 어찌나 강력한지, 집채만 한 월아봉 주위의 바위들이 부서져 떨어지는 것이 이곳에서도 보일 정도였다.

“멸존, 저 금빛 강기 말이야, 아무래도 검강이 분명하지?”

“내가 보기에는 확실히 검강이다.”

멸존이 확신한다는 듯 말하자 이미 굳어진 화존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만약 저기서 싸우는 자가 혈해사황이 아니라면 혈해사황은 어디에 있을까?”

“혈해사황이 월아평에 도착한 것은 확실합니다.”

“월아평에 도착했는데 월아봉에는 안 갔다면, 지금 달려오는 저놈들 사이에 혈해사황이 있을 수 있다는 말 아니냐?”

“하지만 천제무황은 군산에 있는 것이 확실하고 구천마황은 지금 아수라마전과 대규모 전쟁 중인데, 누가 있어 천주님과 저렇게 싸울 수가 있겠습니까?”

우두룩의 말에 화존도 즉답을 할 수 없었다. 대공의 태양천멸강기까지 사용하며 싸우는데 아직까지 버틸 수 있는 고수라면, 무황을 제외하면 혈교와 측천무후궁의 고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혈해사황과 이런 결투를 벌이는 것도 혈교와의 약조 때문이었고, 측천무후궁의 고수는 모습을 드러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남는 자는 단 한 명이었다. 바로 악불군이었다.

“설마, 그놈이 여기까지 끼어들었다는 말인가?”

하지만 악불군이라면 왜 대공과 자신의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결투를 한단 말인가…….

화존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말의 속도가 예상보다 매우 빨라, 벌써 그들 가까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만약 혈해사황이 저들과 같이 왔다면 모두는 월아봉 쪽으로 피한다.”

하나, 월아봉 쪽으로 피하는 선택지도 그리 쉬워 보이진 않았다.

* * *

십존이 부산하게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월아봉을 보며 머리를 굴리는 사람은 또 한 명 있었다.

지붕이 없는 마차를 타고 십존을 향해 가는 혈해사황의 눈은 월아봉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이제 겨우 이립을 넘은 놈이 저런 무공을 지니고 있다니……. 만약 저놈이 태양천주까지 죽인다면 우리 무황들은 단숨에 뒷방늙은이 취급을 받을 수도 있어…….’

악불군은 스스로 정파를 표방하고 있고, 실지로도 정파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 말은 궁극적으로 혈해사계의 적이 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직접 결투 장면은 볼 수 없었지만 절대 고수인 그는 기의 흐름과 격돌만 보고도 월아봉의 상황을 그릴 수 있었다.

그가 느끼기에 악불군은 대공에게 약간 밀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차이는 실로 머리카락 하나 차이밖에 안 됐다.

만약 대공을 이기지 못한다 해도, 살아난다면 몇 년 안에 무황들을 넘어설 것은 기정사실로 보였다.

[뇌혼광뇌.]

그는 말을 타고 마차 뒤를 따르는 뇌혼광뇌에게 전음을 보냈다.

[예, 계주님!]

[네가 보기에는 어떠냐?]

[저는 무공이 약해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최소한 삼십 합을 겨룬 것 같은데, 저 젊은 나이에 태양천주와 저 정도로 싸울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로울 뿐입니다.]

[네가 보기에도 그렇지?]

[예.]

[저놈이건 대공이건 저 정도 결투라면, 누가 이기든 절대 멀쩡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선 태양천 놈들을 모두 제거한 후 월아봉을 포위한다.]

[그렇게 되면 정파와 전면전을 벌여야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에 비해 전력이 좀 약하기는 하지만, 그들 역시 혈교와 측천무후궁이 그들의 뒤통수를 노린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대규모 공격은 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 악불군 저놈이 살아 있다면 혈해사계는 결국 저놈에게 멸문당할 것이다. 본 계의 가장 큰 위협은 악불군 저놈이다.]

[계주님, 만약 공격을 한다면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악불군이 빠져나갈 우려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공격하지 않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뇌혼광뇌의 말에 혈해사황 고개를 끄덕였다.

“죽여라!”

“쏴라!”

그때, 선봉에 선 나백귀왕과 둑수염라의 외침이 들려왔다.

십존을 위시한 태양천 무인들과 혈해사계의 무인들 간에 드디어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 * *

월아봉에서 공전절후의 결투가 벌어지고 있는 그 시각, 천호방 총단을 공격한 천마전의 정예무사들이 모두 전멸했다는 혈뇌의 보고를 듣고 있던 혈교의 최고 간부들의 얼굴은 바짝 굳어 있었다.

“양패구상을 한 것도 아니고 천호방은 멀쩡한데 본 교의 교도들만 전멸했다면, 나채현의 계산이 잘못된 것이 아니오?”

일월신마의 질문에 혈죄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나채현만의 잘못은 아닙니다. 혈뇌전에서도 큰 실수를 했습니다.”

“어떤 실수를 했다는 것이오?”

“우선, 천호방의 전력이 저희의 예상보다 최소한 서너 배는 더 강했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천호방 총단이 진과 기관으로 방어망이 구축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혈뇌.”

혈우대마종의 부름에 혈뇌는 급히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예.”

“진과 기관으로 방어망을 구축한 문파가 천호방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그 방어망이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천호방이 옮겨 온 후에 새롭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본 교의 간세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미 저희 간세들까지 염두에 두고 방어망을 구축했다는 것이지요. 아무래도 저를 능가하는 책사가 있는 듯합니다.”

“너를 능가하는 책사라……. 너답지 않은 말이구나?”

“그동안 혈뇌전에서 천호방에 대해 정밀 분석을 하고, 그들의 다음 행동을 예측했습니다. 하나, 대부분의 예측이 어긋났습니다. 제 짐작이 맞다면 천마전이 있는 만물상단의 공격과 구천마성이 아수라마전을 공격한 것도 모두 그 계집의 머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천마전의 정예들이 천호방을 치러 간 사이에 공격을 받으면서 혈교의 재정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던 만물상단이 붕괴되어 버린 사건은 실로 뼈아픈 일이었다.

다행히 천마종은 만물상단을 빠져나와 제이 총단으로 몸을 피했지만, 이미 전력은 삼분지 일로 줄어들어 버렸다.

심지어 아수라마전의 상황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구천마성이 구천마황까지 합세하여 대대적인 공격을 하면서 아수라마전 역시 괴멸의 위기에 빠져 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혈교에서 도움을 주러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악불군의 책사라면 담수련이라는 계집을 말하는 것이냐?”

“천호방의 거의 모든 계획이 그녀의 머리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천마전과 아수라마전에 대한 공격까지 그 계집이 계획했다는 증거는 있느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아직 증거는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구천마성과 연통을 하고 있다는 증거는 있습니다.”

변화가 없던 혈우대마종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인내의 한계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계집부터 제거해야겠구나?”

“담수련은 악불군이 한시도 옆에서 떼어 놓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 큰 싸움을 할 때도 데리고 다닐 정도입니다.”

“혈뇌!”

“예!”

“안 되면 되도록 방법을 찾는 것이 네 일이라는 것을 잊은 것이냐?”

“아닙니다. 다행히 악불군과 담수련을 동시에 제거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정말이냐?”

“지금 계획을 짜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명히 통할 것입니다.”

“한번 말해 봐라.”

“그동안 천호방에서 벌인 일들을 보면 한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보통 방파들은 방주는 지휘를 하고 수하들이 움직입니다. 하나, 천호방은 악불군이 방주인지 무력대 대장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악불군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냐?”

“담수련은 대단한 머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모든 싸움에 악불군이 계속 투입되고 있다는 것은, 그녀의 계획을 따라 줄 수 있는 고수가 천호방에 없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악불군이 스스로 함정에 들어오도록 만들겠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네 말대로 담수련이 그렇게 똑똑하다면 넘어가겠느냐?”

“이틀 안에 계획을 만들어 교주님께 대령하겠습니다.”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내가 아무리 너를 아끼더라도 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또 실패한다면 제 스스로 목을 바치겠습니다.”

혈뇌 역시 자신의 목까지 걸며, 이번만은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비장함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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