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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430화 (430/472)

<천검지애 430화>

430화. 결과(2)

이미 그의 장심을 뚫고 들어간 악불군의 기는 그의 혈맥을 잡아당기듯 빨아대면서 안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움직일 수도 없고 이미 무너진 내공으로 막아 낼 수도 없게 된 대공은, 결국 날아드는 천륭검을 피하지 못했다.

“윽!”

천륭검이 드디어 대공의 심장을 뚫자.

간신히 버티던 또 하나의 구환도가 땅에 떨어졌다. 이내 두 팔이 그대로 터져 나간 대공이 튕겨나가며 뒤에 있는 바위에 그대로 부딪히고 말았다.

“허허허~ 초원의 시대는 이제 끝났구나. 다시는 예전의 영광을 보지 못할 게야…….”

이미 내장이 완전히 부서진 대공은 입으로 피를 콸콸 흘리며 다가오는 악불군을 간신히 쳐다보다, 자신의 죽음으로 원나라와 태양천이 다시 재기하는 것이 요원해졌음이 한탄스러운 듯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위대한 무인이신 당신의 명예를 더럽히고 싶지는 않지만, 천하를 위해 얼마간 참아 주십시오. 모든 것이 끝난 후 양지바른 곳에 묻어 드리겠습니다.”

숨을 거둔 대공의 앞에 도착한 악불군이 포권하더니 그의 목을 잘라 기름주머니에 담았다. 그리고 구환도를 챙겨 낭떠러지 끝으로 가,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그리고 곧 월아봉 주위를 포위하고 있는 수백 기의 말들을 보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명색이 무황이라고 불리는 분이 이렇게 치졸한 행동을 하시다니, 정말 실망입니다. 오늘 당신의 판단이 얼마나 큰 실수인지 후에 깨달을 겁니다.”

악불군은 혈해사황이 어떤 생각을 하고 월아봉을 포위하고 있는지 즉각 알아챈 듯 매우 차가운 표정으로 중얼거리고는, 바위에 손가락을 대더니 마치 종이에 글을 쓰듯 일필휘지로 글자를 적었다.

‘이 글을 읽고 어떤 판단을 할지 두고 보겠습니다.’

글을 다 쓴 악불군은 포위한 혈해사계의 무리를 다시 한번 보더니 하늘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 * *

“주군, 월아봉의 전투가 끝난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뇌혼광뇌는 엄청난 기의 폭풍이 사라진 월아봉을 보며 어찌해야 할지를 물었다.

혈해사황의 명인 데다 그 이유에 대해 공감은 하지만, 지금의 행동이 실패할 경우 혈해사계에 얼마나 큰 보복으로 돌아올지를 책사로서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막상 포위하기는 했지만 갈등하기는 혈해사황도 마찬가지였다.

무림 십왕이자, 중원의 양민들에게 영웅으로 숭앙받고, 황제와는 호형호제한다고 소문난 악불군이었다.

그런 영웅이 중원의 불구대천 원수인 대공과 싸우는 것을 기회 삼아 죽였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혈해사계는 멸문까지 감수해야 했다.

“어차피 내려올 것이니 잠시 기다려 보자.”

혈해사황은 우선 명을 보류했다.

대공이 내려온다면 그대로 공격을 시작하고, 악불군이 내려온다면 그의 상태를 살핀 후에 결정할 생각이었다.

태양십존과의 싸움으로 상당수의 수하들이 죽었지만 아직도 이백 명이 넘는 수하들이 월아봉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을 피해 월아봉을 떠난다는 것은 무황인 그조차도 불가능했다.

고개를 들던 그의 눈에 하늘 저편으로 작은 점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하나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이 악불군의 뒷모습인 것도 말이다.

* * *

“소군, 많이 다쳤어?”

적설에 악불군이 오르자, 담수련은 깜짝 놀라 물었다. 몸 전체가 피투성이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상처가 많이 나긴 했지만 큰 부상은 아닙니다. 하지만 철포삼 시술을 받지 않았다면 제가 패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내상까지 입은 것 같은데?”

담수련의 자신의 소매로 악불군의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 주었다.

“옷 버리십니다.”

“소군이 피를 흘렸는데 이까짓 옷이 뭐가 대수야! 나는 마음 아파 죽겠는데…….”

또다시 담수련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걸리자, 악불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주님 말씀대로 금종조의 경지에 오른 모양입니다. 상당한 충격을 받았는데 금방 회복이 되더군요. 아프지도 않고 피는 좀 토했지만 오히려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니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두 시진 가까이 싸운 악불군도 힘들었지만, 적설의 등에 앉아 아래서 싸우는 그를 기다리며 온갖 안 좋은 생각에 애를 태운 담수련도 진이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소군.”

담수련도 힘든지, 악불군의 가슴에 등을 대며 작게 불렀다.

“예.”

“나, 점점 무림이 싫어져.”

그녀의 한마디에 악불군은 그녀가 자신이 대공과 싸우는 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솔직히 저도 무림이 그다지 좋지는 않습니다.”

악불군 살생이 아예 생활화되다시피 한 무림이 그리 탐탁지는 않았다.

“…….”

담수련이 눈을 감은 채 답을 하지 않자, 악불군이 다시 물었다.

“정말 그러고 싶으십니까?”

악불군은 그녀가 원하면 다른 이유 없이 무조건 그러자고 답했지, 이런 식으로 반문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악불군은 그녀가 원한다고 무조건 따르기에는 거느린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는 명성이나 지위 같은 것은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다. 하지만 그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은 그가 사라지는 순간, 다른 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도망치고 숨어야 하는 상황이 될 확률이 많았다.

혈교와 측천무후궁의 표적이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래도 담수련이 꼭 그렇게 하자면 그는 할 것이었다.

하나, 계속 답이 없던 담수련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벌인 일은 마무리해야지. 안 그러면 소군만 믿고 따른 사람들에게 너무 큰 배신감을 줄 거야. 힘들기는 하지만 이제 끝이 보이는 것 같으니까…….”

여전히 악불군의 가슴에 폭 안긴 채 힘없이 말하는 그녀를 보며, 악불군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둘의 분위기를 적설도 느낀 듯 최대한 조심하여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사실 이번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적설 덕이었다.

적설이 아니라면 시간에 맞춰 감숙까지 갈 수도 없을뿐더러, 누구의 눈에도 걸리지 않고 대공과 단둘이 월아봉에서 만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 * *

한 시진을 기다렸지만 아무도 내려오는 자가 없자 결국 직접 월아봉 정상에 올라온 혈해사황은, 바위에 눕혀져 있는 대공의 시신을 보고 얼굴이 굳어졌다.

목이 잘리고 몸까지 으스러져 있어, 처음에는 그 시신이 대공인지 악불군인지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시신이 눕혀져 있는 바위에 쓰여 있는 글을 보고 대공임을 알 수 있었다.

‘그 격렬한 싸움을 하고도 이렇게 깔끔하게 바위에 글귀를 남길 수 있다니…….’

내공을 이용해 손가락으로 바위를 긁어 글을 쓰면 대부분은 상당히 거칠고 모양이 엉망이 된다.

하지만 악불군이 남긴 글귀는 정을 이용해 정성들여 새긴 듯 너무 깨끗하고 마치 종이에 붓으로 글을 쓴 듯 화려했다.

‘대공은 위대한 무인입니다. 그의 시신을 훼손하지 말고 그대로 두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 악불군이 대공을 제거했다는 것을 혈해사계에서 직접 천하에 알려 주십시오. 인사를 못 드리고 그냥 가서 죄송합니다. 기회가 되면 반드시 찾아뵙고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악불군.’

글을 읽는 혈해사계의 얼굴 근육이 꿈틀했다.

바위에 시신을 올려 둔 것은 원나라에서 시신을 처리할 때 사용하는 풍습 중 하나였다.

하지만 굳이 혈해사계에서 직접 악불군이 대공을 제거했다는 소문을 퍼뜨리라는 것은 의미가 있는 글귀였다.

만약 혈해사계에서 모른 척하거나 상황을 축소하여 소문을 낸다면, 악불군은 혈해사계를 더 이상 협력자가 아닌 적으로 간주할 것이 분명했다.

당연히 두 세력 간의 약속도 없던 것이 될 터였다.

하나, 그가 느꼈던 둘의 결투 상황을 그대로 소문낸다면, 많은 희생을 하며 태양십존을 제거한 혈해사계의 공은 그대로 사그라지고, 중원 무림의 최대 원수인 태양천주를 죽인 악불군은 모든 영광을 다 갖게 될 것이었다.

명성은 더 높아질 것이고, 그 영향력은 더 커져, 그렇지 않아도 악불군에 의해 사파가 괴멸할 것을 두려워하는 혈해사황의 염려가 더 빨라질 수도 있었다.

“주군, 월아봉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주위 상황을 보면 분명 이곳에서 싸운 것이 분명한데, 어떻게 저희 포위망을 뚫고 사라진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같이 올라온 고수들과 월아봉 주변을 모두 뒤진 뇌혼광뇌가 헐레벌떡 달려와 보고를 했다.

“이쪽으로 와서 확인해 보거라.”

혈해사황은 보고에는 답 없이 글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글을 읽던 뇌혼광뇌의 표정이 창백하게 변했다.

“네 생각을 가감 없이 말해 보거라.”

“악불군이 저희가 무슨 계획을 꾸몄는지 알고 떠난 것 같습니다.”

뇌혼광뇌는 인사를 못 하고 그냥 가서 죄송하다고 정중하게 적혀 있었다. 하지만 기회가 되면 ‘반드시’ 찾아오겠다는 글이, 너희들 계획을 다 알고 우선은 피하지만 너희들 하는 것을 보고 다음을 계획하겠다는 경고로 읽힌 것이다.

“어찌했으면 좋겠느냐?”

“주군, 태양천주의 시신을 보시고, 악불군의 무공 수위를 짐작하실 수 있겠습니까?”

혈해사황은 대공의 시신을 다시 한번 눈여겨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분명 내 밑은 아닌 것 같구나.”

그의 말은 그보다 강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소문을 좀 더 미화해서 더 대단하게 퍼뜨리시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있는 그대로 소문을 내도 엄청난 반응이 뒤따를 텐데, 오히려 미화까지 해 주라는 것이냐?”

“그가 본 계에서 월아봉을 포위하고 있는 장면을 보고 떠났을 것입니다. 글귀에도 은근한 경고의 의미가 보입니다. 태양천의 위협은 이번 일로 사라지게 됐지만 아직 새외연합이 계속 준동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악불군과 척까지 진다면 후일이 아니라 당장 내일을 기약하기도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어린놈에게 고개라도 숙이라는 것이냐?”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잠시 쉬어가는 것입니다. 악불군은 이번 협력을 바탕으로 본 계가 감숙을 장악하는 일을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대공을 죽인 일은 천하가 열광할 일입니다. 저희가 어떤 소문을 내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저희가 미화까지 해서 소문을 낸다면 악불군은 저희에게 고마움을 느낄 것입니다.”

“수십 년을 원나라의 압박을 받고, 태양천과 마룡세가에게 수많은 치욕을 견디며 버텨 왔는데, 이번에는 겨우 이립밖에 안 된 아이의 눈치를 봐야 한다니…… 어이가 없구나.”

“소계주의 무공이 일취월장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다른 공자님들도 계속 성장하고 있으니, 곧 본 계가 천하를 장악하고 큰소리칠 때가 올 것입니다.”

혈해사황은 상당히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안 된다고 하지 못했다.

뇌혼광뇌가 제시한 방법이, 책사로서 현재 상황에 가장 적합한 방책을 제안했음을 그도 알기 때문이었다.

“악불군은 이곳에 없다. 더 이상 뒤질 필요 없다. 우선 본 계로 돌아간다.”

혈해사황은 바위에 누워 있는 대공의 모습을 슬쩍 보더니 모두에게 명을 내리고는 월아봉의 낭떠러지를 그대로 뛰어내렸다.

* * *

새벽에 담수련과 함께 악불군이 도착하자, 간부들은 깜짝 놀라 난리가 났다.

악불군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방주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고철황과 추명혼이 눈이 동그래져서는 다급하게 물었다. 악불군의 뒤에 서 있는 네 명의 방주 호법들의 표정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방주를 호위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인데 악불군이 피투성이로 돌아왔으니 마음이 편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얼핏 보기엔 출혈이 심하지만 크게 다친 것은 아니니 시끄럽게 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이 시간에 왜 다 깨어 있으신 겁니까?”

동정어옹을 비롯한 무림 사기까지 걱정 어린 눈으로 서 있자, 악불군은 조금 당황한 기색으로 물었다.

“방주님께서 아무 말씀도 없이 사라지셨는데, 저희가 어찌 잠을 잘 수가 있겠습니까?”

사실 그들은 악불군이 담수련과 단둘이 나갔다는 말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흑석영을 비롯한 방주호법들도 담수련과 잠시 항주 구경을 하러 나갔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인시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모두는 방주전 정청에 모여 상황 파악에 들어간 것이었다.

“다음부터는 제가 좀 늦더라도 잠은 주무십시오. 어쨌든 모두 깨어 있으시니 잘됐습니다. 그럼 전 좀 씻고 옷부터 갈아입고 나올 것이니 모두는 정청에서 회의 준비를 해 주십시오.”

“그런데 이건 뭡니까?”

악불군이 넘기는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기름 주머니에, 고철황이 놀란 듯 다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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