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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432화 (432/472)

<천검지애 432화>

432화. 비상(2)

“그럼 이제 어떡할까요?”

“그동안 소군의 행보는 너무나 힘들었어. 혈해사계에서 어떤 발표를 하는지 기다리면서, 며칠 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지금 상황이 쉴 시간이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쉬어야 해. 내상도 입었고 상처도 치료해야 하잖아? 무조건 쉬어.”

누구의 명인데 감히 더 이상 토를 달겠는가…….

악불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며칠 쉬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나는 이제부터 일어날 일에 대해 생각해 보고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을게.”

“예.”

대답하는 악불군과 담수련의 눈이 마주치자 둘은 순간적으로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기 때문이었다.

담수련이야 이런 일이 자주 있었지만, 악불군은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물론 악불군도 담수련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린 경우는 많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몸에서 이상한 반응이 온 적은 없었다.

“그런 전 아가씨 말씀대로 쉬겠습니다.”

악불군은 아무래도 안 되겠는지 급히 몸을 일으키며 인사를 하고는 방을 나가 버렸다.

‘이상하네……. 왜 갑자기 더워지는 거야…….’

나가는 악불군을 뭔지 모를 아쉬움이 남은 표정으로 보던 담수련은, 이상할 정도로 몸이 뜨거워지자 손으로 얼굴을 부쳤다.

오음절맥은 인간의 신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음기를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병이었다. 그래서 담수련은 한여름에도 추위를 느낄 정도로 몸이 차가웠다.

음공(陰功)에 당해 내상을 입을 경우, 강력한 내공으로 음기를 몰아내 고칠 수 있었다.

하지만 오음절맥은 혈맥이 강한 내공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악불군의 내공으로도 고칠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결국 신체 자체를 변화시켜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양기가 강한 약재를 먹어 음기를 중화시키는 방법밖에 없었다.

하나, 오음절맥은 몸이 너무 쇠약한 상태이기 때문에 여간한 양기는 오음절맥의 강한 음기와 충돌하여 몸에 더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그래서 음기가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극양의 영초인 만년설삼만이 고칠 수 있는 불치병으로 알려진 것이었다.

고칠 수 없고 빙설초와 같은 약제의 도움으로도 증세를 좀 낮출 수 있을 뿐, 결국에는 장기가 차가워지는 몸에 의해 기능이 떨어져 죽음을 맞아야 하는 병인데, 지금 그녀는 더워서 얼굴이 뜨거워질 정도였다.

하나, 똑똑한 담수련조차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 * *

집무실에 도착한 악불군은 우선 심호흡을 먼저 했다. 그리고 곧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감히 아가씨께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다니……. 악불군 너, 미친 것 아니냐?’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하지만 생각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지금 자책하는 것은 몸이 반응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흑석영의 전음이 들려왔다.

[주군, 고 장로님께서 오시고 계십니다. 어떻게 할까요?]

평상시에 방의 간부들이 방주 집무실에 올 경우, 보고만 할 뿐 어떻게 할지를 묻지는 않았다. 하지만 흑석영이 보기에도 악불군의 표정이 이상해 보였던 모양이었다.

“들어오게 하세요.”

[예!]

잠시후, 고철황이 안으로 들어섰다.

“간부 회의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방금, 구 총관이 봉서를 하나 가지고 왔습니다.”

“봉서요?”

“예, 방주님께서 직접 보셔야 한다고 적혀 있는데, 보낸 사람이 측천무후궁의 금후입니다.”

측천무후궁이라는 말에 악불군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천호방과 아니, 정확히 악불군과 측천무후궁은 철천지원수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대놓고 측천무후궁이라고 적은 봉서를 보낼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금후도 있었나요? 어쨌든 줘 보십시오.”

“예.”

봉서를 가볍게 흔들어 본 악불군은 안에 서찰만 들어 있다고 판단하고는 봉서를 뜯었다.

그리고 안에 든 서찰을 펴려고 하자 고철황이 급히 말리며 말했다.

“방주님, 서찰에 독 같은 암수가 들어 있을지도 모르니 확인해 보고 열어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악불군은 상관없다는 듯 서찰을 펴더니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서찰의 첫 문장은 천호방 방주 천호무적검 악불군 친전이라고 적혀 있었다.

천천히 정독한 악불군은 처음부터 한 번 더 읽었다. 내용에 숨어 있는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측천무후궁에서 보낸 것은 맞습니까?”

고철황은 악불군의 표정이 그리 변화가 없자 조심스럽게 물었다.

“맞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금후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이런 서찰을 보낸 이유는 더욱 모르겠군요?”

“어떤 내용인지 저도 알 수 있겠습니까?”

“당연하지요.”

악불군은 서찰을 고철황에게 건넸다. 그러자 고철황은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들였다.

별거 아닌 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방주만 보라고 보내 온 서찰을 보여 달라는 수하나, 선선히 보여 주는 방주나, 보통 문파에서는 있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만큼 서로 간에 믿음이 굳건하다는 방증이었다.

“주군, 제 짐작이 틀렸을지도 모르겠지만, 함정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고 장로님의 짐작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함정 같기는 한데, 만나자는 장소가 함정을 파기에는 좀 부적절한 장소인지라 확신하기 어렵군요.”

“주군, 전 주군께서 가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함정으로 의심은 되지만, 무시하기에는 제게 던진 미끼가 상당히 유혹적이네요. 고 장로님.”

“예.”

“이 서찰에 대해 아는 사람이 누구누구입니까?”

“구 총관이 제게 가져왔는데, 누가 그 모습을 봤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럼, 나가서 모두에게 입단속을 시키십시오.”

“알겠습니다.”

고철황이 급히 나가자 악불군도 서찰을 들고는 몸을 일으켰다.

* * *

‘소군이 나를 이상한 여자로 보지는 않겠지?’

악불군에게 특별히 한 행동도 없었건만, 담수련은 자신이 이상한 모습을 보인 것은 아닌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가씨, 방주님께서 오셨습니다.”

흑란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리자 담수련은 깜짝 놀라 눈이 커졌다.

‘나간 지 반 시진도 안 됐는데 왜 다시 온 거지? 혹시 내 생각을 알았나?’

담수련이 답이 없자 흑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가씨?”

“……응, 들어오시라고 해.”

안으로 들어선 악불군은, 그녀가 시선을 피하자 다시 가슴이 뛰는 것을 느끼고는 급히 운기를 해 마음을 다스렸다.

“아가씨, 급히 의논할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의논? 혹……시 아까 일 때문에?”

악불군도 뭔가 뜨끔한 듯 당황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아까…… 일이요?”

“아, 아니야. 무슨 의논인데?”

담수련은 악불군이 다른 일 때문에 왔다는 것을 직감하자 얼굴이 붉어지며 물었다.

“의문의 서찰이 와서 왔습니다.”

“무슨 서찰인데?”

악불군이 서찰을 내밀자 그녀는 어색함에서 빨리 벗어나려는지 서찰을 낚아채듯 받더니 즉시 읽기 시작했다.

“누구인 거 같아?”

서찰을 다 읽은 담수련은 방금까지의 어색함은 잊은 듯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글귀로 판단컨대, 저를 아는 자인 것은 분명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측천무후궁의 금후라고 했으니까 여인인 것은 분명한데, 소군을 아는 여인은 극소수잖아?”

“잠룡세가의 여인들 빼면 남해성모궁과 광한궁 정도입니다. 하나, 후로 불리는 것을 보면 간세로 있을 지위는 아니지 않겠습니까? 남자가 여인인 척했을 수도 있고 말입니다.”

“남자는 아니야. 그리고 나이도 소군보다 크게 많지는 않을 거야.”

담수련은 서찰의 내용에서 젊은 여인 특유의 섬세함과 부드러움을 느꼈다.

“그 내용이 사실이라면 측천무후궁의 최상층부에서 반역을 꾀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사실이라면 그렇긴 하지. 하지만 왜 굳이 소군에게 보냈을까? 무림맹에 보내는 것이 안전을 도모하기가 더 나을 텐데?”

“보타검각과 검후까지 제게 당했으니 측천무후궁에서는 저를 반드시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더구나 이 사실이 알려지면 대단히 위험하다는 것을 뻔히 알 텐데 굳이 측천무후궁의 금후라고 자신의 정체까지 봉서에 밝혔습니다. 여러모로 상식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저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기에는 너무 속 보이지 않아? 그리고 글 속에서 뭔지 모르지만 조급함이 보여.”

“글만 보고 그런 것까지 보이십니까?”

“누가 보냈는지를 알면 의도가 뭔지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소군.”

“예.”

“소군이 느끼기에 강력한 인상을 준 여인들이 누가 있었어?”

“글쎄요……? 제가 강력한 인상을 받은 여인이 거의 없어서……. 굳이 말한다면 철룡세가의 천금인 철상아, 금령군주, 성모궁의 진소혜 그리고 보타검각의 검후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악불군이 말한 이름은 그가 만났던 여인 중 가장 무공이 강했던 여인들이었다. 그리고 순간 담수련의 눈이 번쩍했다.

그녀에게도 아주 강력한 인상을 준 여인의 이름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맞아! 그 여자야. 내가 왜 그 여자를 잊고 있었지? 정말 위험한 여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누구 말입니까?”

그녀의 생일날 찾아왔던 금령군주는 담수련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담무룡조차 아래로 보는 듯한 거만함과, 그녀가 본 여자 중 가장 아름답고 특이하기까지 했던 여인.

“금령군주!”

“이 서찰을 쓴 여인이 금령군주라는 말이십니까?”

“금령군주가 그때 소군을 보던 눈을 내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금령군주라면 함정이 아니라 소군을 회유하려고 이 서찰을 보낸 것이 분명해.”

“정말 저를 회유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버지께서 내게 그러셨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여자라고. 특히 남자들은 그녀를 만나면 눈을 마주치면 안 된다고 하셨던 기억이 나.”

“눈을 마주치면 안 된다고요?”

“왜 그런 말을 하셨는지 나도 이유는 몰라. 하지만 무서운 여자는 확실하다는 것을 생일날 만났을 때 분명하게 느꼈어.”

“그럼 어떻게 할까요?”

금잔화의 서찰에는 자신이 지정한 장소로 혼자 온다면, 측천무후궁의 총궁은 물론 그녀가 아는 각 문파 및 무림맹에서 활약하는 간세들 그리고 자금줄까지 모두 말해 주겠다고 적혀 있었다.

함정이라고 판단하면서도 무시하라는 고철황의 고언에 생각해 보겠다는 듯 답한 이유도, 그녀가 제시한 너무나도 중요한 정보를 그냥 버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담수련은 악불군을 보며 입을 열었다.

“당연히 만나 봐야지.”

“하긴 서찰에 적어 놓은 정보들이 사실이라면 그냥 놓치기는 좀 아쉽지요.”

“가서 그녀를 만나면, 내 말대로 해 줄 수 있어?”

“당연하지요. 아가씨의 말이라면 제게는 무엇보다도 일순위입니다.”

“좋아 그럼!”

담수련은 금잔화를 만난 후 악불군이 해야 할 일을 전하기 시작했다.

* * *

[금후님! 천호방 총단에 청기가 걸렸다고 합니다.]

금령각주의 전음을 들은 금잔화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약속 시간에 혼자 자신을 만날 의향이 있다면 청기를 총단 정문에 걸고, 거절한다면 흑기를 걸어 달라고 서찰에 써 놓았다.

서찰을 보낸 후, 그녀는 또다시 총궁으로 들어오라는 명을 받았다.

들어간다면 이미 여러 차례 들어오라는 명을 듣지 않은 벌을 받을 수도 있었고, 벌을 받지 않는다 해도 궁주는 물론 천후와 태후의 눈치를 보며 시녀 같은 생활을 할 수도 있었다. 그녀로서는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이번에도 거역한다면 반도로 몰려 그녀를 죽이라는 명이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녀로서는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악불군이 자신을 만나겠다는 대답이 오기를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었다.

[금령각주.]

[예, 금후님.]

[그럼 난 먼저 약속 장소에 가 있겠다. 한 시진 안에 악불군이 총단에서 나올 것이다. 만약 악불군이 혼자가 아니면 즉시 신호탄을 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은밀히 따르는 자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확실하게 감시해야 한다.]

[예, 그래서 지금 동령각주가 직접 천호방 총단 근처에서 감시하고 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고개를 끄덕인 금잔화는 몸을 날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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