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433화 (433/472)

<천검지애 433화>

433화. 새로운 별호(1)

악불군은 고철황과 동정어옹 그리고 추명혼 세 명을 불렀다.

“제가 잠시 외유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겨, 두 분 수석장로님과 태상호법님을 불렀습니다.”

“방주님, 밤새 태양천주와 싸우고 상처까지 입고 돌아오신 것이 이제 겨우 두 시진 전입니다. 조금은 쉬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러려고 했는데, 측천무후궁에서 쉴 시간을 안 주는군요.”

“……가기로 결정하신 겁니까?”

고철황의 말에 악불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가기에는 상대가 너무 거물인 것 같더군요.”

“개방과 하오문에서 올라오는 정보량이 엄청납니다. 지금 상태라면 그들의 근거지를 찾아내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그런데 굳이 함정일 수도 있는 장소에 방주님께서 직접 가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서찰에 적힌 미끼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담 군사께서 제게 신신당부한 말이 있어서 가는 거지요.”

담수련이 신신당부했다는 말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그럼 언제 가실 예정이십니까?”

“반 시진 후에 나갈 겁니다. 그래서 세 분께 부탁을 드릴 일이 있습니다. 오래 걸리지는 않지만 총단의 경계를 더 철저하게 해 주십시오.”

“걱정 마십시오. 특히 담 군사님 숙소는 누구도 가까이하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들도 악불군이 누구를 가장 중요시하는지 잘 알고 있는 듯 즉시 답했다.

* * *

소문은 감숙과 사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가주 형님!”

아직 세가의 정비가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 새외 연합의 출몰로 골머리를 않던 당치웅은, 수석 장로인 당치우가 크게 소리치며 집무실로 들어서자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수석 장로나 되는 놈이 이렇게 호들갑을 떨면 제자들이 뭐라고 하겠느냐? 이제 너도 나이가 들었으면 좀 주위를 생각해서 행동하여라.”

이미 환갑을 넘은 당치우였지만 당치웅의 눈에는 여전히 어린 동생인 모양이었다.

“형님, 지금 어떤 소문을 제가 듣고 왔는지 아십니까?”

“뭔데?”

“태양천주가 천호무적검에게 죽었답니다.”

“……그, 그게 무슨 말이냐?”

원나라가 물러났지만 태양천에 대한 공포는 무림인들에게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과거 무림 최고 고수들이 모두 태양천주에게 패했다는 충격이 모든 무림인의 머리에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태양천주가 무림의 정파인 악불군에게 죽었다면, 태양천에 대한 패배감을 극복하고 자존감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쾌거였다.

“혈해사계에서 나온 정보이니 소문이라기보다는 사실일 확률이 높습니다.”

“언제 싸웠다고 하더냐?”

“어제였답니다. 태양천주와 태양십존의 움직임을 혈해사계에서 찾아낸 모양입니다. 그래서 혈해사황이 급히 악 방주께 도움을 청했고, 악 방주께서 태양천주를 직접 상대했다고 합니다. 태양십존은 혈해사황이 제거했다고 하더군요.”

“태양십존까지 죽였다는 것이냐?”

“예!”

혈해사황이 태양십존을 모두 죽였다면 그것 역시 천하를 격동시킬 대단한 전과였다.

하지만 악불군이 태양천주를 죽였다는 사실과 비교하자면, 마치 태양빛 앞의 반딧불처럼 작은 사건일 따름이었다.

당치웅은 태양천주가 죽었다는 것에 크게 놀라면서도, 혈해사황 같은 자가 왜 모든 공이 악불군에게 몰릴 수 있는 소문을 스스로 냈는지 의아했다.

“악 방주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말인데, 혈해사계와 천호방이 그럴 만한 사이였던가? 더욱이 태양천주는 악 방주에게 맡기고 혈해사황이 태양십존과 싸웠다면 오히려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행동이 아니겠느냐?”

“명색이 무황 소리를 듣는 자가 직접 태양천주를 상대하지 않고 악 방주가 상대하게 했으니 여러 가지 뒷말이 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악 방주의 명성은 이제 무황을 넘을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악 방주와 본 가는 지금 사이가 좋은 편이냐?”

“저번 태룡세가 공격을 통해 매우 우호적인 사이가 된 것은 분명하지만, 그 이후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거의 없습니다.”

“……절강과 사천이 멀긴 좀 멀지. 그렇다 해도 우리에게는 은인이나 마찬가지인데,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좀 문제가 아니냐?”

“그게, 무림맹에 천호방이 가입을 하지 않은 터라 대놓고 우호적으로 보이는 것은 아직 눈치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림맹에 나가 있는 당무기 장로도 천호방과 너무 친밀하게 지내는 것은 좀 생각해 봐야 할 일이라고 했습니다.”

“악 방주가 태양천주를 죽였다면 무림의 판도는 큰 변화가 생길 게다. 더구나 소문을 혈해사계에서 퍼뜨렸다는 것은 악 방주의 영향력이 혈해사계에까지 뻗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치우야.”

“예, 형님.”

“우호적인 사이라라는 것은 우리의 생각일 뿐, 아는 세력은 없다. 천호방과 좀 더 친밀한 관계로 발전할 계기를 만들어 봐야겠다. 간부 회의를 소집해라. 모두의 의견을 들어 보고 결단을 내려야겠다.”

“알겠습니다. 당장 소집하겠습니다.”

악불군이 태양천주를 죽였다는 소문이 퍼지며 모든 문파의 셈법에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 * *

악불군이 총단을 나가고 얼마 안 되어 소걸아가 나타났다. 그는 악불군과 친구인 덕분에 천호방 정문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다.

“악 방주, 있습니까?”

다급하게 뛰어 들어온 그는 내당 당주 상경호와 총관 구여풍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자 그쪽으로 다가가더니 급히 물었다.

“지금 잠시 외유 나가셨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생기셨습니까?”

“방금 섬서 분타에서 본 방으로 급보가 왔습니다.”

“어떤 급보인데?”

“소문이 퍼지고 있나 본데, 사실 확인을 좀 하려고요.”

“어떤 소문인지를 알면, 저희가 확인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상경호는 섬서 분타라는 말에 즉각적으로 태양천주에 대한 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좀 예민한 소문입니다.”

“아무리 예민해도 이미 소문이 퍼지고 있다면 말씀해 주셔야지요.”

“하긴, 지금 퍼져 나가는 속도로 보면 이삼 일 안에 천호방에서도 알게 되겠군요. 다른 것이 아니라, 악 방주가 태양천주를 죽였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답니다. 혈해사계에서 나온 소문이라고 하니 좀 헷갈려서 말입니다.”

“아~ 그거요. 소문이 아니라 확실한 겁니다. 방주님께서 나가셨다가 어젯밤 돌아오셨는데 태양천주를 죽이고 왔다고 하시더군요.”

“……아니! 태양천주를 죽인 것이 얼마나 큰일인데 그런 중차대한 일을 공표도 안 하고 계셨던 겁니까?”

“방주님께서 태양천주의 목과 그의 무기인 구환도를 가지고 오셨더군요. 그렇지 않아도 본 방에서 공표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그게 준비할 것이 무에 있다고? 당장 공표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악 방주가 태양천주를 죽였다고 공표한다면 아마 악 방주와 천호방은 무림의 전설이 될 겁니다.”

소걸아는 조금의 사심이 없이, 진정으로 악불군을 위하고 있었다.

“방주님께서 외유를 나가셔서 당장은 어렵습니다. 돌아오시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쨌건 확인했으니 전 먼저 가 보겠습니다. 이따 다시 온다고 전해 주십시오.”

소걸아는 확인이 끝난 이상 빨리 총단에 보고해야겠다고 판단한 듯 그대로 몸을 돌려 사라졌다.

“바쁘시기는 엄청 바쁘시구먼?”

소걸아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상경호가 미소를 지며 말했다.

“그러게, 소걸아 소협이 개방에서는 매우 게으르다고 소문이 났는데, 내가 보기엔 부지런하기만 하신 것 같단 말이야.”

구여풍의 얼굴에도 회심의 미소가 나타났다. 잠시 공표를 미루자고 했을 때, 모두는 매우 실망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소문이 퍼지다니…….

“상 당주, 빨리 가서 장로님들과 호법님께 알려라.”

“알았다.”

말하는 둘의 얼굴에는 미소와 함께 자부심까지 보이고 있었다.

* * *

커다란 챙을 두른 모자를 쓰고 검은 말을 탄 악불군은 경비 무사가 인사를 하려하자 못하게 막은 후, 천천히 총단을 나섰다.

근래 그가 나오면 성민들이 몰려와 인사하곤 했던 터라 이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나를 주시했던 자들이 대략 이십여 명, 그중 나를 계속 쫓아오는 자들은 다섯 명……. 거기다 풍기는 기까지 비슷하다는 것은 모두 한패라는 의미겠지?’

악불군이 총단을 감시하는 것까지는 막지 않겠지만, 방에서 나온 사람을 미행까지 할 경우 그 문파에 직접 책임을 묻겠다고 공표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뒤를 따르는 무림인은 거의 없었다.

천천히 항주성을 나온 악불군은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 외곽에 있는 산으로 접어들자 갑자기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은밀하게 따르던 동령각주와 수하들은 깜짝 놀라 급히 그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각주님, 안 보입니다.]

지금까지와 달리 찰나지간 만에 악불군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수하 중 한 명이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멀리 따라왔어!’

동령각주는 아뿔싸 하는 표정으로 주먹으로 다른 소 손바닥을 한 번 쳤다.

악불군이 말을 타고 있지 않았다면 그들은 위험하더라도 좀 더 가까이 쫓았을 것이었다.

말이 달린 자리는 말 발자국과 함께 먼지가 휘날리기 때문에 조금 멀더라도 언제든지 따라잡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늘로 솟은 건지 땅으로 사라진 건지, 여기까지 흔적이 있는데 그다음은 보이지를 않습니다.]

땅을 살피던 수하의 전음대로, 한 지점에서 흔적이 완벽하게 사라져 있었다.

좌우는 말이 달리기에는 나무들이 너무 빽빽했고, 말까지 들고 위로 오르기에는 나뭇가지들이 너무 약했다.

[아무래도 악불군 이자가 딴마음을 먹을 것 같다. 우선 금후님께 피하라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다.]

동령각주는 품에서 전서구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작은 쪽지에 뭔가를 급히 적어, 전서구 다리에 달린 작은 통에 넣고는 하늘로 날렸다.

[우선 금후님이 계신 쪽으로 가면서 계속 찾아본다.]

[예!]

모두가 사라지자 하늘에서 악불군이 툭 떨어졌다. 그의 손에는 동령각주가 날린 전서구가 들려 있었다.

‘아가씨의 예측이 정말 신기할 정도로 잘 맞는군.’

악불군은 중얼거리고는 한쪽을 보며 말했다.

“잠시만 있거라, 내가 곧 와서 풀어 주마.”

말은 진으로 감춰져 있었다.

악불군은 전서구의 통에 있는 쪽지를 읽어 보더니 씨익! 미소를 짓고는 전서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전서구는 악불군에게 잡힌 것이 아니라, 날아가다가 스스로 악불군에게 온 것이었다.

천하의 영물인 적설까지 회유하는 그의 감응 능력이 여실히 발휘된 것이었다.

악불군의 말을 들은 전서구는 알아듣기라도 한 듯 다시 날갯짓을 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같이 몸을 날린 악불군은 나무의 꼭대기를 밟으며 전서구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 * *

금잔화는 금령각과 은령각의 보위를 받으며 절벽 한쪽에 서 있었다. 그녀는 지금 한곳을 보고 있었다.

악불군과 만나기로 한 장소였다. 그녀는 악불군이 누구든 데리고 왔을 경우 나타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녀가 있는 곳은 아래의 상황을 모두 선명하게 파악할 수 있었지만. 절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 들켰다 해도 쫓기에는 불가능한 장소였다.

동령각주까지 보냈지만 그것에만 의지하기에는 악불군의 무공이 너무 높은 것 같아 최대한 주의를 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악불군 제발, 혼자 오너라. 지금 당장 난 네가 너무도 필요하다.’

금잔화는 간절한 마음으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악불군과 눈만 마주친다면 그를 자신의 치마폭에 싸이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황금색의 방울처럼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섭혼금령제혼술을 최대한 뽑아 올렸기 때문이었다.

가볍게 흘겨보는 것만으로도 아군끼리 싸우게 만드는 그녀가 전력을 다해 준비하고 있으니, 누구라도 걸리기만 하면 벗어날 수 없을 것이었다.

“금후님, 저거 전서구 아닙니까?”

계속 밑을 살피고 있던 금령각주가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동령각주가 보낸 전서구가 맞는 것 같습니다.”

하얀 점으로 보였지만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은 금잔화가 기다리던 동령각주의 전서구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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