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검지애 436화>
436화. 변화(2)
“더 할 말이 있습니까?
[두 분, 수석 장로님과 태상호법님께서 의논하실 일이 있으시다고 밖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집무실로 오면 될 텐데 왜 여기서 기다리고 셰신겁니까?”
[주군께서 당신 때문에 움직이시는 것이 편하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쯧! 쯧!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들어오라고 하세요.”
[예.]
잠시후 모두가 허리를 숙인 채 안으로 들어섰다.
“앉으세요.”
“예.”
“그냥 예전처럼 하십시오. 요즘 너무 예를 찾으시니 제가 많이 불편합니다.”
“소신이 보기에 저희들이 바꾸는 것보다는 주군께서 적응하시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제가 적응하라고요?”
“이미 자격을 갖추셨음에도 너무 겸손하게 행동하시면, 오히려 상대하는 사람들이 불편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해할 여지도 있습니다.”
“편하게 하라는 것에 왜 오해를 한단 말입니까?”
“다른 문파 사람들은 주군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오히려 자신들을 배척하다고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생각보다 복잡하군요?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천호표국에 일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접수처에 줄이 길게 늘어질 정도입니다.”
“그래서요?”
“총표두 두 명과 표두급 열 명 그리고 삼십여 필의 말과 열 대의 마차를 더 구입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고 장로님께서 분석해서 나온 것이겠지요?”
“예.”
“그럼 그렇게 하십시오.”
“예산이 상당히 많이 듭니다.”
“본 방의 재정 상태는 아주 양호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양호하기는 하지만, 만약을 위한 예비비는 언제나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럼 수입을 늘릴 방안은 있으십니까?”
“그게…… 사실 지금 천하의 수많은 상단에서 저희에게 기부금을 상납하고 싶어 합니다. 기부금은 받지 말라는 주군의 명이 있어 돌려보내고는 있는데, 그것을 받는다면 본 방의 재정 상태가 한순간에 풀릴 것입니다.”
“아시겠지만 상단의 기부금은 양날의 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쓸 때는 기분 좋을지 모르지만 언제나 그들에게 반대급부를 제공해야 하니까요. 저희에게 바라는 것이 없이 그냥 기부금을 줄 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전 무림 문파가 상단에 돈으로 코를 꿰면 하고자 하는 일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부작용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익이 부작용으로 생기는 손해보다 열 배는 넘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친해지면 천호상단과 금룡상단까지 덩달아 이익이 증대될 것입니다.”
문파가 무너지는 가장 큰 이유는 내분이었다. 특히 수장이 무공도 특출하지 않으면서 우유부단하기까지 할 경우, 그 문파가 깨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할 정도였다.
그리고 문파가 깨지는 가장 많은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충성도 배가 불러야 할 수 있는 법이었다. 거기다 그들이 쉴 때 쓸 수 있는 돈 정도는 챙겨줘야 자신이 몸담고 있는 방파에 애착을 가지게 된다.
만약 수장이 돈을 모으는 재주가 없다면 그것은 아래서부터 무너지는 사상누각이나 마찬가지였다.
구천마성이나 혈해사계가 세력을 넓히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는 이유도 실상은 돈의 확보였다.
세력이 커야 돈을 낼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재정은 고 장로님께 일임했으니 알아서 해 주십시오. 단 양민들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고철황과 대화를 끝낸 악불군이 이번에는 동정어옹을 쳐다보았다. 할 말이 있으면 하라는 의미였다.
“근래 싸움이 잦아지면서 죽거나 다친 방도들이 꽤 많습니다. 죽은 자들에 대한 위로금과 다친 자들에게 들어가는 치료비가 너무 과하게 나가고 있습니다.”
“본 방을 위해 싸우다 생긴 일인데,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돈이 든다고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렇긴 한데, 원래 무림 세력에 들어오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높은 월봉을 받습니다. 죽거나 상해를 입을 것을 감안한 위험 수당이 들어 있는 것이지요. 사실 전쟁 중에 죽은 수하들에게 위로금을 주는 문파는 없습니다. 치료 역시 기본적인 치료만 해 줍니다.”
“정파의 상징적인 무림사기의 한 분이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은데요?”
“죄송합니다. 전 감정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정파에서 역시 치료는 하지만 죽은 자는 그냥 매장하는 것으로 끝입니다.”
“결국 돈 때문이군요?”
“본 방의 방도가 이천 명입니다. 다른 방에 비해 많기도 하지만 낭인 출신들이 많아. 무공이 낮다 보니 전쟁에 나가면 피해가 상당히 큽니다. 급여도 다른 문파에 비해 좀 과하고 지급하는 식사도 너무 고급스러워서, 이렇게 계속 나가다가는 방의 재정에 위험 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고 장로님, 들으셨지요?”
“예!”
“상단으로부터 기부금을 받는다면 충당이 되겠습니까?”
“솔직히 불가능합니다. 방법은 양민들에게 받는 보호비를 올리는 것뿐입니다.”
심각한 표정으로 지은 악불군은 이번에는 추명혼을 보며 물었다.
“설마, 추 호법님께서도 돈 문제 때문에 오신 겁니까?”
“죄송합니다.”
“추 호법께서 죄송할 일은 아니지요. 말씀해 보십시오.”
“육관을 통과한 후, 재질이 있는 자들은 살수관까지 수련을 시키고 있습니다.”
“들었습니다.”
“그런데 수련생들이 점점 늘면서 부서지는 곳을 고치는 비용부터 망가지는 무기, 거기에다 옷은 거의 매일 찢어집니다.”
“역시 돈이군요?”
악불군의 반문에 모두는 고개를 숙였다. 천하를 위해 목숨을 도외시하며 절대 고수들과 싸우고 있는 악불군에게 돈 얘기는 가급적 하고 싶지 않았지만, 악불군의 교시를 따르면서 돈을 구할 방법이 없자 셋은 악불군이 쉬는 지금이 기회라 생각한 것이다.
잠시 생각하던 악불군은 자신도 뾰족한 해결법이 보이지 않자, 몸을 일으켰다.
누가 뭐래도 이런 일의 해법은 담수련이 가장 잘하기 때문이었다.
“제가 방법을 찾아볼 것이니, 세 분은 현재 사용 가능한 돈과 실질적으로 들어가는 돈의 내역을 적어 오십시오. 정확하게 적으셔야 계획을 짤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모두의 인사를 받은 악불군은 심각한 표정으로 문을 나갔다. 싸우는 것보다 오히려 더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았다.
* * *
“성후와 무후는 죽은 것이 분명하고, 검후는 심한 내상에 독까지 중독돼서 사경을 헤매고, 금후는 아예 행방불명이니, 측천무후궁 탄생 이래 이런 적이 있었나요?”
측천무후의 반문에 태후와 천후는 심각한 표정만 지을 뿐 대답하지 못했다.
“천후.”
“예!”
“담무룡의 행적은 아직 찾지 못했나요?”
“죽었는지 살았는지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자면신모들의 시신도 아직 찾지를 못했는데, 혹시 같이 죽은 것은 아닐까요?”
“아직도 담수련과 악불군에 대해 완벽하게 분석하지 못했군요? 그들은 절대 담무룡을 죽이지 않아요. 아니 다치게도 하지 않습니다. 담무룡은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것이 분명하니 반드시 찾아내세요.”
“알겠습니다.”
“이제 대화하실 분이 두 분밖에 없으니, 간단해서 좋긴 하네요. 두 분이 지금 가용할 수 있는 인원이 몇 명이나 되지요?”
“첩자와 간세, 그리고 은밀히 본 궁을 돕는 외부영주들까지 합치면…….”
“천후! 지금 본 궁주를 능멸하는 것입니까? 제가 말하는 것은 믿을 수 있는 인원을 말하는 겁니다.”
“현재 도화각과 운우각 그리고 천미각 세 곳이 남아 있습니다. 원로들까지 다 합쳐도 삼백 명이 채 안 됩니다.”
“태후는 어떤가요?”
“저는 아직 큰 피해는 입지 않았습니다. 아직 가용인원이 천 명 정도 됩니다.”
“오백 명을 천후궁으로 빌려 주세요.”
측천무후의 말에 태후의 얼굴이 굳어졌다.
“궁주님, 태후궁의 제자들은 대부분 궁녀나 고관대작의 첩으로 숨어 있습니다. 그들을 오백 명이나 뺀다면 황궁에 큰 빈틈이 생깁니다.”
“태후, 솔직히 지금까지 해 놓은 것이 뭐가 있나요?”
“가사도를 회유해 송나라가 망하게 한 이후, 지금까지 태후궁은 매번 실패만 했어요.”
“지금 원나라가 패퇴한 것은 태후궁의 제자들이 열심히 그들을 반목하게 한 때문입니다.”
“원나라만 패퇴하게 하면 뭐하냐요? 그다음을 정확하게 판단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처음 예측을 잘못하여 유복통에게 정성을 쏟다가 그다음에는 진유량, 마지막으로 장사성을 택했지요? 어떻게 가장 강력한 네 명의 반란군 중 주원장만 쏙 뺐는지, 전 그게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측천무후의 비꼬는 말에 태후는 아미를 좁히며 말했다.
“그것은 측천무후궁의 군사련의 의견을 따른 것이지, 제 독단으로 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따진다면 그럼 분석을 제게 전한 군사련 아이들을 벌하시는 것이 맞겠지요.”
“어쨌든 제가 태후께 죄를 물을 수는 없으니 오백 명을 천후궁에게 보내세요. 하수들이 아니라 원로와 정예들 위주로 보내 주세요. 태후께서는 황궁에서 여자들과 싸우지만, 천후는 이제부터 무림인들을 직접 상대해야 합니다. 그 정도는 해 주셔야지요.”
태후는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지금 거절할 수는 없었다.
“다음 달 초까지 보내드리겠습니다.”
“천후.”
“예.”
“천화궁주가 아직 종리화와 같이 있지요?”
“예, 아직까지는 눈치를 못 챈 것 같습니다.”
“악불군이 천화궁의 정보망을 이용한다고 했는데, 건진 것은 있었나요?”
“실망스럽게도 아직까지는 대부분 상단에 대한 정보만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보내기는 보내는데 중요한 정보는 없다? 그놈 참 헷갈리게 하네요. 지금 천호방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실해요. 천화궁주에게 종리화를 회유해서 천화궁 총단을 천호방 총단으로 옮기게 하세요.”
“그게 가능할까요?”
“만약 거절한다면 이미 천화궁주와 종리화를 의심하고 있다는 의미겠지요. 아직 믿는다면 받아 줄 겁니다.”
“알겠습니다.”
“담수련은 이제부터 생포가 아닌 암살로 바꿉니다.”
“그렇게 되면 악불군을 회유해서 이용한다는 계획은 포기하시는 것입니까?”
“성후와 무후가 그의 손에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용하겠다고 살려 둔다면 후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요. 그는 아주 냉정해요. 담수련이 죽고 나서도 냉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 한번 두고 보지요.”
“그럼 담수련에 대한 척살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그건 자신이 있나 보네요?”
“악불군이 철저히 경호를 하는 상황에서 납치하는 것이 힘들었을 뿐, 무공도 삼류에 불과한 담수련을 제거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악불군이 이번에 대공을 죽이면서 천호검신으로 불린다고요?”
“그놈에게는 너무 과분한 명호라고 생각합니다.”
“대공은 최소한 나한테 이십 초 이상을 버틸 수 있는 실력이에요. 악불군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내가 직접 죽이겠어요.”
“그럼 그대로 조치하겠습니다.”
천후와 태후가 나가자 측천무후는 미묘한 미소를 지며 중얼거렸다.
‘늙은 것들이 모두 사라지면 그땐 내 세상이 되겠지? 옆에서 훈수 두는 것도 귀찮단 말이야.’
* * *
“돈?”
“예, 방이 커지면서 자금이 부족해지는 모양입니다.”
“고 장로님께서 가져온 골동품들을 보니까 못 받아도 황금 만 냥 이상은 받을 수 있는 물건들이던데? 몇만 냥 가치가 있는 것도 있고?”
“그것들은 비상시에 처분할 생각입니다.”
“소군 할아버님께서 골동품 모으기를 좋아하셨다고 하더니, 팔고 싶지 않구나?”
“귀중한 예술품들이 남의 손에 넘어가 모욕을 받는 것 같아 좀 그렇습니다.”
그러자 담수련은 미소를 지며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이게 뭡니까?”
“장보주가 만드는 그림자를 종합해서 내가 완성한 그림이야.”
“시간도 없으셨을 텐데 아직도 이것을 연구하고 계셨습니까?”
“내가 궁금한 것은 못 참는 거 소군도 알잖아. 거기다 이것을 만든 사람과 누가 똑똑한가 시합하는 재미도 있었고.
“그래 뭘 알아내셨습니까?”
“고 장로에게 이 그림의 복사품을 만들어 천호방을 오가는 상인들에게 어느 산인지 알아보게 했는데, 드디어 알아냈어. 그리고 이 선들은 이 점에 도착하기 위한 통로 같아.”
“지금은 바빠서 갈 수가 있겠습니까?”
“내가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어. 천 년 전, 천년마교가 십만대산에 총단을 만들었어. 지금 새외에 있다는 십만대산은 상상의 산이래. 진짜 십만대산은 바로 여기 복건에 있었어. 그런데 천마신교의 총단에는 백만금에 달하는 보물들이 있다는 거야. 어때! 그것만 찾아내면 돈 걱정은 안 하고 살 것 같지 않아?”
“백만금이면 중원 전체의 금과 맞먹을 정도 아닙니까?”
말하는 악불군의 얼굴에도 호기심이 가득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