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437화 (437/472)

<천검지애 437화>

437화. 장보주(1)

“백만금의 재산이면 삼류 무사도 거대 문파의 장이 될 수 있을 정도의 재산이라고 할 수 있지. 그게 천호방에 들어온다면 어떻게 되겠어?”

“그런데 거기에 정말 그런 금이 있을까요?”

“그건 나도 모르지. 하지만 혈교에서 그렇게 찾으려고 했다면 이유가 있지 않겠어?”

“장소는 확실할까요?”

“소군, 난 장보주가 그리는 그림자를 조합해서 하나의 그림을 그린 것뿐이야. 장보주를 만든 사람이 진실로 만들었다면 맞을 거라고 난 믿어.”

“복건이라고 했지요?”

“응, 복건.”

“구천마성에서 가만 있을까요?”

복건은 무주공산 지역으로, 아직 어느 문파도 확실하게 장악하지 못하고 수십 개의 군소 문파가 난립하고 있었다. 하지만 복건의 남쪽 삼분지 이는 구천마성의 영향력이 컸고, 북쪽 삼분지 일은 천호방의 입김이 강한 상태였다.

보통이라면 전쟁이 벌어지고도 남을 정도로 예민한 지역이었지만 둘은 불가침 조약으로 싸움을 막고 있었다.

사실 정파와 마도가 불가침 조약을 맺고 서로의 경계선을 넘지 않으며 시비를 피하는 것은 무림 역사상 흔치 않은 경우였다.

그런데 담수련이 말한 십만대산은 복건과 광동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천호방이 들어가기에는 여러모로 껄끄러운 장소였다.

“구천마성과 불가침 경계를 다시 조성하는 수밖에 없지, 뭐.”

담수련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하자 악불군은 약간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가씨, 이미 조약을 맺었는데 저희가 먼저 깰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호호호~ 소군도 정파인 다 됐나 봐. 명분 따지는 것 보니까?”

“명분을 따진다기보다는, 약속을 어기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니까요.”

악불군의 말에 담수련은 서류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게 뭔지 알아?”

“그게 뭡니까?”

“측천무후궁의 분궁 중 하나인 것 같은데, 적혀 있는 것을 보면 전력이 대단히 강해. 그런데 위치하고 있는 곳이 복건 남쪽이야. 그리고 이 서류는 구천마성에서 암약하고 있는 간세들 명단이고, 이걸로 거래하는 거야.”

“그 정도로 복건을 포기할까요?”

“복건성은 상단을 위한 큰 항구도 없고 발달한 상권도 없어. 단지 중원으로 뻗어 나가기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할 뿐이지. 거기다 지금 아수라마전과 화룡세가와 전쟁 중이잖아. 그런데 후방에 측천무후궁의 분궁이 있다면 어떨 것 같아?”

“계속 신경이 쓰이겠군요?”

“신경이 쓰이는 정도가 아니라, 전쟁에 지대한 영향을 줄 정도로 불안할 거야. 그것을 천호방에서 맡겠다면 그들 입장에선 양손 들어 환영할 테지. 거기다 간세의 명단까지 주겠다면 복건을 우리에게 넘길 거야.”

“구천마성은 자신들의 세력에 대해 엄청난 욕심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정도로는 좀 부족할 것 같은데요?”

“그럼 소군이 남무림에 대한 구천마성의 지분을 인정해 준다고 해. 그들은 호남과 안남을 아우르는 남무림을 더 탐낼 테니까.”

“남무림은 제갈세가와 점창파가 가까운데, 제 마음대로 지분을 인정한다는 소리를 해도 되겠습니까?”

“가까울 뿐, 남무림에 속하지는 않잖아? 준다는 것도 아니고 인정을 하는 건데 상관있겠어? 그리고 소군은 지금 무림 십왕이야. 그 정도의 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자격이 있어.”

사실 복건은 곡창지대로서, 복건을 차지한다는 것은 최소한 식량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이 있었다.

하지만 낙후된 농경에 너무 많은 농민들 그리고 추수한 곡식에 대한 판로가 없어 복건성의 백성들은 매우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곡식은 부피만 클 뿐 가치가 적어, 구천마성은 거의 내버려 둔 지역이었다.

“알겠습니다. 간부들하고 의논해서 곧 결정을 내리겠습니다.”

“무림맹은 언제 갈 거야?”

“원래 계획은 한 삼 일쯤 있다가 가려고 했는데, 아가씨 말씀을 듣고 보니, 구천마성의 만통광심을 만난 후 가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아수라마전의 공격에 구천마황까지 나선 것 같은데, 꽤 오래 버티는 것 같지 않아?”

“저도 좀 의외입니다. 소걸아 말에 따르면 공격을 시작한 것이 벌써 일주일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싸우는 것을 보면 아수라마전의 전력도 상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구천마성에서 지지는 않겠지만 고전하는 것은 확실해 보여. 그래서 소군의 제안을 들으면 더 좋아할지도 몰라.”

“알겠습니다. 그럼 준비하시지요.”

“준비?”

“어차피 만통광심은 군사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아가씨께서 대화를 하셔야지요.”

“하긴, 그러네.”

대답을 하는 담수련의 모습이 귀여운 듯 미소를 지은 악불군은 밖을 보며 소리쳤다.

“아가씨께서 며칠간 외유를 다녀올 것이다. 사화는 마차를 준비하도록 해라.”

“예!”

사화는 나간다는 말에 서로를 보며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크게 답했다. 밖에 나가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나이들이 아니겠는가…….

* * *

대공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것은 혈교 역시 마찬가지였다.

“교주님, 이놈의 무공이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속도라면 십 년 후에는 교주님과 맞먹을 정도가 될 수도 있습니다.”

혈뇌의 말에 혈우대마종의 표정도 심각해져 있었다.

“네 말대로라면 아직 십 년이나 시간이 있다.”

“별것 아니었던 놈이 이렇게 빨리 클 수 있었던 것은 무공만 강해서 될 수는 없습니다. 제 계획대로 해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시간이 맞지를 않아…….”

“교주님, 그게 무슨?”

혈우대마종이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혈뇌는 반문했다.

“혈해마계에서 태양천주를 악불군이 죽였다고 소문을 낸 시간이 이틀 전이다. 네 말이 맞다면 그날 악불군은 천호방 총단에 있었다. 그리고 태양천주의 목과 그의 무기를 전시하듯이 총단에 매달아 놓았다. 절강에서 감숙까지는 나도 그렇게 빨리 갔다 올 수 없다.”

“그럼 악불군이 태양천주를 죽이지 않았다는 말이십니까?”

“효수까지 했는데 거짓일 리는 없겠지. 하지만 의문은, 그 거리를 어떻게 그렇게 빨리 왕복했느냐는 것이다.”

혈우대마종의 말에 혈뇌의 눈이 커졌다.

“설마, 혈응을 타고 움직였다고 보시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고서는 설명할 방법이 없지 않느냐?”

“하지만, 혈응은 성격이 원체 까칠해서 누구에게도 등을 내준 적이 없었지 않습니까? 혈응이 아니라 말을 잘 듣는 선학이나 대붕을 타고 움직인 것이 아닐까요?”

“아니, 혈응이 확실하다. 내 잠깐 외유를 나갔다 오겠다.”

말을 마친 혈우대마종이 몸을 일으키자 혈뇌가 깜짝 놀라 물었다.

“외유라고 하셨습니까?”

그가 혈교 총단 밖을 나간 것이 일 갑자 전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꼼짝도 않던 그가 갑자기 외유라니…….

“악불군 제거 계획이 꼭 필요한지 내가 직접 보고 결정을 하겠다.”

“교주님, 아직 전력을 올리시면 몸에 무리가 갈 수 있습니다.”

“내 몸은 내가 안다. 걱정 마라. 그리고 내가 혈우대마종이다. 누구나 마주쳤다고 싸우지 않는다. 넌 계획이나 더 완벽하게 짜 놓고 있어라.”

“예.”

혈뇌가 허리를 굽혔지만 혈우대마종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 * *

“천호검신께서 이것까지 직접 오시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악불군이 온다는 말에 전장터에서 급히 달려온 만통광심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예의를 갖추며 말했다.

“근래 아수라마전과의 싸움이 길어지고 있던데, 제가 괜히 군사님께 뵙기를 청한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수라마전이 좀 버티고는 있지만 조만간 함락될 것입니다.”

만통광심은 혈교의 일개 마전을 상대로 구천마성이 고전한다는 말이 돌까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그러시겠지요. 사실은 본 방의 규모가 점점 커져서 세력을 좀 높여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악불군의 말에 만통광심은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래서요?”

“제가 알아보니, 구천마성에서는 남무림에 관심이 많으시더군요.”

“관심이 많은 것이 아니라 남무림 자체가 원래 구천마성의 세력이었습니다.”

“남무림 전체가 아니라 동남무림이라고 하시는 것이 맞겠지요.”

“악 방주님께서 뵙자고 해서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대화가 좀 이상한 대로 흐르는 것 같군요? 악 방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모르지만 구천마성은 자신의 세력만은 절대 지킵니다.”

“호남 남부와 광서, 그리고 안남경계까지 남무림의 모든 영역을 본 방에서는 구천마성의 영역이라고 인정하겠습니다.”

“……정말입니까?”

다른 곳은 몰라도 호남 남부는 남무림 영역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제갈세가의 견제로 구천마성에서도 함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예, 제가 인정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해 드릴 수는 있습니다.”

만통광심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천호방에서 그런 제안을 하실 때에는 원하시는 것이 있을 듯한데, 말씀해 보시지요.”

“복건성을 천호방에 넘겨주십시오.”

“복건성 전부를 말입니까?”

“제가 얼마 전 측천무후궁의 중요 근거지가 복건성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이 왜 근거지를 그곳에 세웠을까요? 그들이 구천마성을 노리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복건성을 넘기면 측천무후궁을 천호방에서 맡아주시겠다는 겁니까?”

“당연합니다. 또한 구천마성에서 암약하는 간세들의 명단도 넘겨 드릴 수 있습니다.”

만통광심은 지금 구천마성이 고전하는 이유 중 하나가 간세들이 자신들의 정보를 저쪽에 넘겨주기 때문임은 짐작하고 있었다.

“흠~”

만통광심이 갈등하는 표정으로 잠시 생각에 잠기자 악불군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제가 알아본 바에 위하면 원나라 이전에도 복건성은 구천마성의 세력이 아니었더군요. 그런데 원나라가 사라진 후 무주공산이 되자 구천마성에서 흡수하신 거고요.”

“공식적인 세력은 아니었지만 복건성은 언제나 본 성의 영향력하에 있었습니다.”

“세력인 것과 영향력이 있는 것은 다른 문제지요.”

“만약 제가 거절한다면 불가침 조약을 깨실 생각이십니까?”

“그럴 리가요. 거절하시면 그냥 지금처럼 지내는 거지요. 제갈세가와 점창파는 계속 구천마성이 호남 남부를 장악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 견제할 것이고, 무림맹은 구천마성이 조금이라도 북진을 하는 낌새가 보이면 공격 준비를 할 겁니다.”

만통광심의 표정이 미미하게 변했다.

현실적으로 구천마성이 처해 있는 상황이었다. 세력이라고 장악을 해도 제갈세가나 점창파에서 인정을 안 하니, 언제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긴장된 상황.

구천마성이 아무리 패도적인 마도라 할지라도 무척이나 피곤한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악 방주께서 인정을 한다 해도 다른 문파에서 따르겠습니까?”

“그것까지 제가 책임은 못 지지요. 하나, 무림 십왕 중 한 명인 저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명분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만통광심의 눈동자가 돌고 있었다. 단지 말뿐인 인정한다는 단어와 실질적인 세력인 복건성과의 교환.

터무니없는 제안이었다. 섣불리 답했다가는, 아무리 전권을 받고 온 그였지만 구천마황의 분노를 사 죽을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하나, 그는 악불군의 제안에 솔깃해짐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거기다 측천무후궁까지 맡아주고 간세들의 명단을 준다는 부수적인 선물까지 있었다.

북쪽 방비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익은 거의 없는 복건을 포기하고 알짜라고 할 수 있는 광동과 호남 남부를 차지하게 된다면 구천마성으로서는 이익임에 분명했다.

문제는 악불군의 말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느냐였고, 만약 그가 배신이라도 한다면 복건성을 넘긴 것은 구천마성에게 가장 최악이 될 수도 있었다.

“복건성과 본 성의 주무대인 광동성은 지척입니다. 악 방주님께서 본 성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주실 수 있습니까?”

“이미 불가침 조약을 맺지 않았습니까? 정파에서는 마도와 무슨 조약이냐며 아직도 회의적인 생각을 하고 있지만, 다시 말하지만 구천마성이 먼저 공격을 하기 전에 본 방이 먼저 공격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태양천주를 죽이면서 떠오른 샛별이 아니라 이미 중천에 뜬 태양 같은 존재가 된 악불군이었다.

‘말하는 것을 보아, 복건성을 끝까지 고수하려고 하다가는 천호방과 결국 척질 수밖에 없겠구나.’

만통광심은 고심하는 듯하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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