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438화 (438/472)

<천검지애 438화>

438화. 장보주(2)

“어쩔 것 같습니까?”

“우리 제안을 받아들일 거야. 지금 구천마성이 이것저것 잴 여유가 없거든.”

강서로 넘어온 악불군과 담수련은 남창에서 가까운 서운현의 객잔에 집을 풀었다.

남창에 들어가면 천신문도 있고 천화궁도 있어 쉬기에는 훨씬 편했지만 담수련은 이곳에서 쉬자고 했다.

“종리 단주님께서 기다리신다고 하셨는데, 굳이 이곳에 짐을 푼 이유가 있으십니까?”

“천화궁주님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확인하려고.”

“천화궁주님이오?”

“측천무후궁에서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천화궁주야. 그녀에게 아무런 지시도 없었을까?”

“아마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오늘 담판을 지으려고. 그런데 천화궁도들이 많은 곳에서 압박하는 것은 좀 미안해서.”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냈던 천화궁도인지라, 담수련은 마지막 배려를 하려는 것이었다.

“무슨 의미인지 알겠습니다. 그럼 단주님과 천화궁주님께 수하들 없이 이곳으로 오라고 연락을 넣겠습니다.”

“응.”

대답하는 담수련의 표정은 그리 좋지는 않았다. 어려서부터 천화궁주와 가진 추억이 꽤 많았다. 무엇보다 그녀가 자신을 예뻐한 것은 진심이었다.

‘그래,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고 했어. 변하지 않는다면, 안타깝지만 처리해야 해.’

누군 봐주고 누군 안 봐주고 하는 행동은 모든 규율이 무너지게 되는 원인이었다.

담수련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 * *

“언니, 서운현으로 우리 둘만 오라는 아가씨의 연락이 왔는데 무슨 일일까요?”

천화궁주는 불안한 표정으로 종리화에게 물었다.

“내가 듣기로 지금 무림맹으로 가고 계시다고 들었다. 지나가는 길에 오랜만에 얼굴을 보고 싶어서 부르신 거겠지, 뭐.”

“남창에 들어와서 부르시는 것이 여러모로 편하지 않겠어요?”

“아마 따라다니는 자들이 많아, 눈을 피하기 위해서일 게다.”

종리화는 천화궁주가 불안해하자 걱정 말라는 듯 달래며 몸을 일으켰다.

“아가씨께서 부르셨는데 늦장을 부릴 수는 없다. 출발하도록 하자.”

“전, 아가씨께 전해 줄 정보들을 좀 챙겨서 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천화궁주는 빠지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고 만약을 위한 준비하기 위해 시간을 잠시 미뤘다.

‘휴우~ 무림에 나와 속마음을 마음대로 말할 수 있었던 한 사람이 바로 넌데, 나를 제발 실망시키지 말아다오.’

나가는 천화궁주를 보며 종리화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녀가 측천무후궁의 간세라는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는 지금에도, 종리화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녀를 향한 한 가닥 믿음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 * *

“구천마성의 만통광심을 만났다고?”

“에, 저를 만나고 즉시 복건으로 내려가 만통광심을 만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우문상일의 말에 제갈우명은 검미가 좁아졌다.

지금 상황에서 만통광심을 만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제갈우명은 달랐다. 지금까지 악불군이 움직였을 때마다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천호방에서 구천마성을 도와줄 생각은 아니겠지?”

“구천마황이 누구입니까? 도움이 필요해도 도움을 청할 사람이 아니지요.”

“하긴 그 자존심에 정파의 도움을 받을 리 없지. 그렇다면 왜 갔을까?”

“만남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만난 시간이 문제가 아니다. 악 방주가 담 군사와 함께 직접 움직였고, 한창 전쟁 중인 상황에서 만통광심이 복건까지 달려갔어. 절대 가벼운 일은 아닐 게다.”

“그럼 어찌할까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지 않느냐? 지금 악 방주의 행렬이 어디에 있다고?”

“강서 북부로 움직였습니다. 행로상 무림맹으로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림맹에 들르기 전에 만통광심을 만났다? 거참!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군.”

천하제일의 지자라 불리는 제갈우명이었지만, 장보주를 모르는 이상 짐작도 할 수 없음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보고를 하시겠습니까?”

“보고는 해야겠지. 그런데 악 방주는 누가 마중을 나가기로 했나?”

“총순찰께서 나가시기로 했습니다.”

천무성궁의 소궁주이자, 맹주의 손자.

그가 공식적으로 직접 나간다는 말은 악불군의 위상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었다.

“그래, 총순찰 정도가 나가야 격이 맞는다고 할 수 있겠지…….”

제갈우명은 자신을 처음 찾아왔을 때의 악불군의 모습을 상기하며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고 말았다.

‘무림 역사상, 이렇게 빨리 젊은 나이에 천하제일인 소리를 듣는 사람은 악 방주가 최초일 것 같구나.’

* * *

악불군이 묵고 있는 객잔에 도착한 종리화와 천화궁주는, 사효조의 안내로 큰 방에 들어서자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

탁자도 없이 줄이 맞춰져 놓여 있는 의자에 천신문의 간부들이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종리 단주도 오셨구려?”

경직된 자세로 앉아 있던 누진봉은 종리화를 보자 좀 안심이 된 표정으로 일어서며 인사를 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담수련이 종리화까지 불렀다면 나쁜 일은 아닐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단주님께 인사드립니다.”

곽부용을 비롯한 다른 간부들도 일어나 반갑게 포권을 했다.

“천신문은 어쩌고 전부 다 오신 겁니까?”

“요즘 천신문은 거의 상단 일밖에 하지 않으니, 진성기 행수만 남기고 다 왔습니다.”

종리화는 사효조를 보며 물었다.

“우린 지금 아가씨와 악 방주를 만나 뵈러 왔는데, 대접이 영 마음에 안 드네요?”

“다과와 차라도 준비해야 했는데, 여기 객잔에 제일 큰 방이 이곳밖에 없었습니다. 방이 좁아서 그런 것이니 양해를 해 주십시오.”

“아가씨는 어디 계시지요?”

“방주님과 함께 안채에 계십니다. 곧 한 분씩 부실 겁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종리화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지금 상황은 보고를 받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심문을 받는 자리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따질 수 없었다. 어느새 악불군이 어려워진 것이다.

그때 문이 열리며 대독관이 들어왔다.

“종리 단주님, 방주님께서 찾으십니다.”

종리화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를 가장 먼저 불렀다.

[누 장로님,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무슨 일일까요?]

[사실 천신문은 잠룡세가의 속가문으로 임시적인 조직이다. 아무래도 아가씨께서 천신문을 정리하시려는 모양이다.]

[서, 설마 우리를 버리실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곽부용은 불안한 듯 반문했다.

[지금 악 방주님에게 가장 큰 방해물이 누구일 것 같으냐?]

누진봉의 말에 곽부용의 표정이 핼쑥하게 변했다.

지금 명성이 하늘을 찌를 것 같은 악불군에게 약점이란 바로 잠룡세가였다.

[그럼 요즘 세간에 떠돈다는 소문 때문일까요?]

[방주님께서 우리를 제거하려고 하셨다면 이렇게 번거롭게 굳이 부를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부르실 때까지 기다리거라.]

말을 마친 누진봉은 입을 다물고는 눈을 감아 버렸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역시 불안한 것만은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 * *

“유모!”

약간 긴장한 모습으로 방 안으로 들어선 종리화는, 담수련이 예전과 다름없이 활짝 웃으며 반갑게 맞이하자 얼굴이 펴졌다.

“아가씨, 저희만이 아니라 천신문 간부들까지 모두 부르셨던데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아버지께서 연락한 적 있어요?”

“아직 없습니다.”

“지금 아버지께서는 사면초가예요. 무림맹은 물론 측천무후궁에게까지 추적당하고 있으니까요.”

“그때, 가주님과 같이 있던 자들을 모두 죽이면서 가주님도 죽은 것으로 하셨잖습니까?”

“저에 대해서 빤히 아는 자들이에요. 제가 아버지를 죽였다고 믿지 않을 겁니다.”

“가주님께서 천신문 간부들과 만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고립무원이시니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겠지요. 그중 천신문에 있는 분들은 아버지께서 특히 믿는 자들이었고요.”

“어쩌시려고요.”

“오늘 부로 천신문을 해체하고 천호방에서 흡수하도록 할 생각이에요. 그 전에 확답을 받으려고요.”

“천신문의 간부들은 이미 잠룡세가에서 명성을 날렸던 자들이 많습니다. 정파에서도 아는 자들이 꽤 많을 겁니다. 그런데 그들을 천호방에 흡수한다면 오히려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깨끗하게 입막음을 하면 되겠지요.”

가장 깨끗한 입막음은 살인멸구였다. 종리화의 눈이 커지자 담수련이 미소를 지으며 부언을 했다.

“걱정마세요. 그러지 않기 위해 부른 것입니다. 단 그들은 오늘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거예요.”

“어떤 선택을 하게 하시려고요?”

“아버지께 계속 충성할 것인지, 천호방으로 방향을 전환할지 선택이에요.”

“가주님의 마지막 줄까지 끊어 버리실 생각이십니까?”

“아버지께 당신의 시대가 끝났음을 확실하게 알려 드리려는 겁니다.”

“그래도 가주님을 너무 몰아세우시면 어떤 일을 벌이실지 모르십니다. 혹, 누군가 돕고 있다면 모른 척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유모, 모든 일을 깨끗하게 정리하려면 시기가 매우 중요해요.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아버비를 선택한다 해서 내칠 생각은 아니에요. 대신 아버지를 따르는 분들은 더 이상 천호방에 남을 수는 없겠지요.”

담무룡은 집념이 강한 사람이었다. 특히 권력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담수련은 그의 강력한 집념을 포기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다시 세력을 키울 어떤 방법도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저는 가주님께서 연락이 오면 그분을 따를 것입니다.”

종리화는 여전히 일편단심이었다.

“안타깝지만 말리지는 않을게요. 숨어 사신다면 평생 먹고살 돈도 준비해 드릴 것입니다.”

“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유모, 그리고…….”

담수련이 말을 얼버무리자 종리화의 표정이 확 변했다.

“혹시, 령 매도 오늘 정리하실 예정이십니까?”

“측천무후궁과 관련된 정보는 더 이상 천화궁주에게 얻을 것은 없어 보여요. 얼마 전 많은 정보를 입수했거든요.”

“아가씨, 죽이실 생각이십니까?”

“죽일 생각이면 굳이 여기까지 부르지 않았을 겁니다. 이제부터 생사는 천화궁주님께 달렸어요. 어떤 결과가 나타나더라도 유모께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유모는 오른쪽 방으로 들어가세요.”

담수련과 악불군이 있는 방은 삼면으로 문이 있었다.

“대 호법, 누 장로님을 불러 주세요.”

“예.”

천신문의 간부는 모두 여덟 명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한 명씩 방에 들어와 담수련과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종리화가 있는 오른쪽 방에는 다섯 명이 들어갔고, 왼쪽 방에는 예상대로 누진봉과 양호철 그리고 유징, 세 명이 들어갔다.

잠룡밀과 잠봉밀을 전적으로 맡겼던 인물들이었다. 분류가 생각보다 잡음 없이 끝나자 악불군은 좀 안됐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가주님께서 조만간 저희를 다시 찾아오지 않을 까 싶습니다.”

천신문의 정리는 마지막 남은 담무룡의 동아줄을 끊어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존심이 있으셔서 쉽게는 오지 않으실 거야. 하지만 모든 길이 막히면 결국 찾아오시기는 하겠지. 아버지 문제는 나타나시면 그때 생각하자고.”

담수련의 목소리도 그리 편치는 않아 보였다.

“알겠습니다.”

“천화궁주 들어오시라고 해요.”

한 명, 한 명이 나가고 돌아오지 않는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천화궁주의 속은 타들어 갈 정도로 불안했다.

“천화궁주님, 들어오시랍니다.”

드디어 자신이 호명되자 그녀는 오히려 속이 편한 듯 급히 일어나 대독관을 따라갔다.

“아가씨! 악 방주님!”

안으로 들어선 천화궁주는 담수련과 악불군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자 언제나처럼 친화력이 있는 웃음과 몸짓을 취하며 반갑게 소리쳤다.

“앉으세요.”

하나, 그런 그녀의 행동이 무색하게 차가운 담수련의 목소리는 그녀를 다시 굳게 만들었다.

천화궁주가 자리에 앉자 담수련이 그녀의 눈을 무심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오랜 시간 잠룡세가와 천호방의 정보를 측천무후궁에 보내셨더군요?”

“제가요? 아가씨, 그건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입니다. 아시다시피 천화궁이 정보를 사고 파는 조직이다 보니 우연히 측천무후궁에 정보가 들어가는 경우가 없다고는 하지 못하겠습니다. 하나 저는 종리 언니와 의자매로서 그녀를 위해 도움을 주었을망정 그런 짓은 안 했습니다.”

천화궁주는 실로 억울하다는 듯 펄쩍 뛰며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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