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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440화 (440/472)

<천검지애 440화>

440화. 새로운 국면(2)

“소군, 무슨 일이야?”

오직 담수련만이 소군의 변화를 눈치챘다.

“아닙니다.”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한 기를 느꼈습니다.”

“소군이 긴장할 정도의 기라면 엄청날 텐데, 아무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은데? 어느 쪽에서 오고 있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악불군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는 그녀였다. 당장 불안한 표정이 나타나자 악불군은 급히 미소를 지으며 달랬다.

“별거 아니니까 걱정 마십시오.”

하나, 상황에 대해 말하지 않고 그저 자신을 달래는 말을 하는 악불군의 모습에서 그녀는 더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구강포에는 최소한 수십 척의 배가 떠 있었고 선착장에는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중에는 무림인들이 반이 넘었다.

지금 악불군이 느끼고 있는 기는 어디서 누가 보냈는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 큰 구강포 전체를 기가 덮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이 기운이 사람이 뿜어내는 것이라면 악불군의 내공으로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엄청난 공력이었다.

‘인간이 이런 기를 낼 수는 없어. 자연의 기일 거야…….’

악불군은 스스로를 달랬지만 자연의 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자연스러웠다.

“천호검신 악 대협이시다!”

“와아!”

배가 선착장에 다가서며 뱃머리에 우뚝 서 있는 악불군을 본 누군가가 크게 소리치자 커다란 함성이 포구를 울릴 정도로 터져 나왔다.

악불군이 열렬한 환영을 받는 모습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장령님, 일개 무림인에 대한 환영으로는 너무 과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잠시 기착하는 건데 말입니다.”

금의위 부장인 정인규는 심각한 표정으로 포구를 바라보고 있는 금의위 장령 오선두를 보며 말했다.

“무림인이 무림인다워야지, 백성들에게 저런 신망까지 받는다면 황실의 안위에 위협이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악불군에 대한 경계를 더 강화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다른 부장인 표항 역시 무척이나 불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주원장은 황제가 된 이후, 공신은 물론 아주 아끼는 수하들조차 자신의 권력에 조금이라도 누가 될 것 같으면 그대로 제거해 버리는 냉혈한으로 변해 있었다.

그가 무림을 제어하려는 이유도 권력에 방해가 되기 때문인데, 악불군의 명성이 무황을 뛰어넘으면서 이제 악불군까지 경계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식적으로 황상께 왕의 칭호를 받은 왕야의 신분이시다. 함부로 존함을 말하면 안 된다!”

“죄송합니다.”

“와아!”

배에서 내린 악불군이 모두를 향해 손을 흔들자 또 다시 커다란 함성이 포구를 흔들었다.

오선두는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악불군에 대해 자신이 보고 느낀 바를 보고서로 올리는 것이 지금 그의 임무였다. 문제는 느낀 바였다. 악불군에 대해 좋게 쓰느냐 나쁘게 쓰느냐는 그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게 바로 정치적인 문제라는 점이었다.

악불군은 주원장과 호형호제한다는 말까지 있었고, 더욱이 생명을 구해 주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나쁘게 쓴다면 주원장까지 모욕하는 일이 되어 그가 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들을 보내 악불군을 감시하고 조사를 명한 것은 주원장의 마음에 변화가 있다는 의미였다.

좋게 썼다가 주원장이 자신이 악불군을 비호하고 있다고 의심한다면, 그 역시 그는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었다.

‘황상이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그분의 생각을 읽지 못하면 어떤 보고서를 쓰건 난 죽는다. 그냥 부장 자리에 있었던 것이 더 나을 뻔했구나…….’

금의위 장령에 봉해졌을 때, 그는 뛸 듯이 기뻐했다. 황상의 친위대인 금의위 장령이면 여간한 사람들의 목을 그대로 칠 수도 있는 권력자였다.

하지만 지금 그는 장령이 된 것을 처음으로 후회하고 있었다.

* * *

배에서 내린 악불군은 백천학이 기다리는 주루로 가는 동안 쉴 새 없이 주위 사람들에게 포권을 하며 인사를 했다.

무림의 최고수 중 한 명이라는 권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그저 친밀한 이웃 같은 미소를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조여 오는 기를 확실히 감지하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많은 사람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기의 감지 능력이 악불군과 맞먹을 정도로 예민한 흑석영조차 모르고 있었다.

‘누굴까? 도대체 누구기에 이런 무공을…….’

그동안 그가 만난 수많은 절정 고수들 중 누구도 지금 그에게 기를 보내는 자와 견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하나, 악불군은 긴장은 하고 있었지만 두려움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고수를 만나게 된 것에 피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조차도 모르고 있던 승부사의 기질이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마치 바다가 갈라지듯 인파 사이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 주루 앞까지 도착하자, 백천학과 태극검자가 공손히 인사를 하며 영접했다.

현 무림 최고의 후기지수, 아니 더 이상 후기지수라고 할 수 없는 두 명의 신성이 만나는 특별한 자리를 자신들이 보고 있다는 감격 때문인지 주위는 정말 조용했다.

“공자님을 뵙게 되니 정말 좋습니다.”

악불군은 백천학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처음부터 느끼고 있었다.

처음엔 그의 무공이 악불군을 능가했기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가 담수련에게 좋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 이후 경계심은 많이 풀어진 상태였다.

악불군과 담수련이 백천학의 안내를 받으며 주루 안으로 사라지자, 주루의 주위를 무림맹의 영웅용단과 천호방의 천호사기단에 포위를 하고 경계에 들어갔다.

주위에 모인 군웅들은 분명 굉장히 중요한 대화가 오고갈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고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군중들의 모습은 감시하는 금의위의 신경을 더욱 거스르게 하기에 충분했다.

* * *

“아주 흥미로운 아이로군.”

백천학이 빌린 주루에서 그리 멀지 않은 또 다른 주루에는 손님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그중 가장 좋아 보이는 이 층 창가에 두 명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신선풍에 인자한 인상의 노인은 악불군이 들어간 주루를 보며 특이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일 갑자 만에 강호에 나왔는데, 뭔가 소득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우선 저 아이를 직접 만나 볼 생각이다.”

“소신의 짧은 소견입니다만, 이왕 나오신 김에 악불군과 백천학까지 모두 제거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장비 수염을 한 일월신마는 대단히 신중한 성격이었다. 하지만 근래 악불군의 두각을 나타내며 태양천의 압박에도 끄떡없이 버텨 오던 사대마전이 무너져 가자 조급함을 보이고 있었다.

“지금 구강포에 모여든 무림인들이 천 명이 넘는다. 저 아이들 주위에는 초절정 고수들도 여럿이 있고 절정급의 고수는 이십 명이 넘는데, 아무리 나라 해도 저 속에 들어가 둘을 죽인다는 것은 쉽지 않다.”

혈우대마종의 말에 일월신마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저들의 무공이 그 정도로 강한 것입니까?”

악불군과 백천학이 약하다면 주위에 아무리 많은 고수가 있다 해도 혈우대마종은 주머니속의 동전 꺼내듯 그들의 목을 자를 수 있었다. 하지만 악불군과 백천학이 예상보다 강하다면 주위에 있는 고수들은 상당한 방해가 될 수 있었다.

“분명한 것은 죽이고 싶다고 아무 때나 죽일 수 있는 상대는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스스로 찾아온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

“스스로 죽을 자리를 찾아오겠습니까?”

“글쎄다……. 좀 있으면 알게 되겠지.”

혈우대마종은 악불군이 들어간 주루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구강포에 들어서면서 악불군이 느꼈던 그 광대한 기의 정체는 바로 혈우대마종이 뿜어낸 것이었다.

* * *

담수련과 태극검자만 배석한 채, 주루의 가장 깊은 밀실에 자리 잡은 악불군과 백천학은 서로의 전공에 대해 칭찬을 시작했다.

악불군은 백천학이 만물상단 공격에 성공하며 천마전의 총단이라는 것까지 알아낸 것을 치하했고, 백천학은 무림의 최대 원수인 태양천주를 죽인 쾌거에 대해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렇게 덕담이 오고간 후, 잠시 침묵이 오갔다. 백천학은 담수련을 슬쩍 쳐다보았다.

역용하지 않은 모습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그도 처음이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목례를 하자 백천학은 급히 같이 목례를 하고는 시선을 악불군에게 돌렸다.

“맹주님께서 저를 총단에 초청하셨습니다. 제가 우문 총책께 총단에 도착하기 전, 백 공자님과 먼저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청하신 이유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냥 총단이나 군산의 수상(水上)에서 영접을 해도 될 것을 굳이 번거롭게 이곳 구강포에서 만나자고 먼저 제안한 것은 뜻밖에도 악불군이었다.

“경청하겠습니다.”

“맹주님께서 갑자기 저를 총단으로 초청하신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게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맹주의 의중을 안다 해도, 단 한 사람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 그 단 한 사람이 백천학이었다.

“우선 무림맹에 가입하라는 부탁을 하실 것 같습니다.”

“제가 이미 거절했는데 맹주님께서 또 요구하신면 여러모로 불편한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천제무황이 직접 부탁했는데 악불군이 거절한다면 그 자체로 천제무황의 체면을 깎고 권위에 도전한 꼴이 될 수 있었다. 비록 악불군의 명성이 하늘을 찌른다 해도 천제무황 같은 대원로의 부탁을 말학후배인 악불군이 거절했다는 말이 돈다면 정파의 어른들은 분노할 것이 분명했다.

“거절하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단 그래야 하는 명분만 확실하게 해 주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맹주님께서도 문제를 삼지 않으실 것입니다.”

“명분이 확실치 않다면 무림맹에서 천호방을 적대시할 수도 있다는 의미인가요?”

담수련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아무리 무림맹이라 할지라도 지금 천호방을 적대시할 수는 없지요. 맹주님께서는 같은 정파로서 왜 같이 협조하지 않고 따로 행동하려고 하는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악불군의 검미는 좁아졌고 담수련의 얼굴에는 고심하는 표정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판단을 믿기로 하고, 큰 결단을 내린 듯 입을 열었다.

“두 분께서는 여기서 들은 얘기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실 수 있나요?”

백천학은 태극검자를 쳐다보았다. 그는 약속할 수 있으나 태극검자에게까지 강요를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태극검자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자, 백천학이 답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나눈 대화는 아무에게도 하지 않겠다고 백천학의 이름으로 약속드리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저희가 무림맹에 가입하지 않는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항간에 떠도는 악 방주님에 대한 소문은 들으셨겠지요?”

“들었습니다.”

“제 짐작이 맞다면 측천무후궁에서 천호방과 무림맹을 이간질하기 위해 퍼뜨린 소문입니다.”

“저도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이 문제겠지요.”

담수련의 말에 백천학과 태극검자의 눈이 커졌다.

사실 악불군의 현 명성은 소문의 진위와 상관없이 확고해진 상태였다.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증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악불군이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것이 될 터였다.

그러나 스스로 소문이 맞다고 인정한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의심은 악불군의 명성을 뛰어넘을 수 없지만, 사실이라면 악불군이라 해도 그 멍에에서 벗어나기는 불가능했다. 더욱이 무림맹은 물론 주원장 역시 부역자들을 색출해서 죽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실이라 해도 그것을 스스로 밝힐 필요가 있겠습니까?”

정직을 생명처럼 여기는 백천학이었지만 이번 일만은 처리가 난감한 듯 뜻밖의 말을 던졌다.

그만큼 담수련의 말은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담수련의 도박이 성공할 수 있을지…….

다시 침묵이 방 안을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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