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451화 (451/472)

<천검지애 451화>

451화. 십왕(1)

그 많은 사람들이 숨소리조차 내지 않으며, 누구를 호명하는지 듣기 위해 모두 귀를 기울였다.

이제부터 누구와 대진하느냐에 따라 십왕에 봉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첫 비무는 소림의 광천대사와 구천마성의 금갑마인이었다.

지금까지의 대진표를 분석해 보면 어느 정도는 예상이 가능한 상대였다.

“광천대사, 오랜만이외다!”

세 번째 비무장으로 들어선 금갑마인은 광천대사와 눈이 마주치자 빈정대듯 말했다.

“아미타불, 시주의 신수는 예전에 보았을 때보다 훨씬 더 좋아졌습니다. 아무래도 빈승이 오늘 호되게 힘든 싸움을 할 것 같습니다.”

“헛소리 지껄이는 놈들이 광천대사가 십대고수 중 가장 강하다고 소문을 내고 다닌다던데, 오늘 그 잘못된 서열을 확실히 바로잡아 줘야 하지 않겠소?”

금갑마인이 말하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놈들이란 이야기로 먹고사는 호사가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호사가들은 이야기에 흥미를 북돋우기 위해 무림인들에게 서열을 매기곤 했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백대고수였다. 물론 무황들은 아예 신인(神人)으로 치부하곤 했다.

처음에는 그저 흥밋거리에 불과했지만 사람들에게 사실인 양 각인되고 자꾸 퍼져 나가자, 무림인들에게 상당히 심각한 사안이 되고 말았다.

체면을 중시하는 무림인에게 있어, 자신이 누구보다 서열이 낮다는 소문이 도는 것은 실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실지로 서열 문제로 싸움이 붙어 정파끼리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까지 나타나자, 정파의 원로들은 백대고수는 허구이니 무시하자는 공감대까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거기다, 직접 싸워서 정한 서열이 아니다 보니 지역마다 차이가 좀 있었다.

그럼에도 무림인들이 인정하는 열 명이 있었다.

백대고수 중 가장 강한 열 명을 지칭하는 십대고수들이었다.

광천대사와 무상진인 그리고 매화신검이 십대고수에 들어 있는 정파의 최고수들이었고, 구천마성의 금갑마인과 흑천마왕 그리고 혈해사계의 귀안마군 역시 십대고수에 들어 있었다.

금갑마인은 같은 십대고수 중에 광천대사보다 자신이 낮게 취급되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백대고수니, 십대고수니 하는 것은 호사가들이 그저 하는 말인데 시주 같은 분이 그런 허명에 휘둘리시는지는 몰랐습니다. 빈승은 말석에 들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입니다. 수좌는 시주께서 하십시오.”

분명 정중하게 양보하는 말이었지만 금갑마인은 이상하게 더 화가 났다. 광천대사는 모든 것을 해탈한 고승이고 자신은 허명에만 연연하는 소인배가 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대사를 반드시 열반에 들도록 도와주겠소이다.”

“지옥에나 갈 돌중을 열반에 들게 도와주신다니 그거야말로 감사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광천대사가 반장을 하며 오히려 감사를 표하자 금갑마인의 몸에서는 살기가 끓어올랐다.

* * *

광천대사와 금갑마인 간의 비무가 시작되자 주원장의 얼굴은 더욱 굳어졌다. 그동안의 비무도 그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지만 이번 비무는 정말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소림의 광천대사와 구천마성의 금갑마인은 십대고수로 불린다고 했지?”

“예.”

“그럼 천제무황과 저들 간의 차이는 얼마나 나느냐?”

“십대고수와 무황이 단독으로 붙는다면 십 초를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다만 저도 남에게 들은 이야기인지라 실지의 차이는 모르겠습니다.”

“으음…….”

유백온의 답에 주원장은 나직이 침음성을 흘렸다. 광천대사와 금갑마인의 무공만으로도 두렵다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그들을 십초 안에 이길 수 있다는 무황들의 무공은 얼마나 강할 것이며, 비록 오래전의 일이지만 그런 네 명의 무황의 합공에도 살아남은 혈우대마종은 얼마나 강하다는 말인가…….

‘진짜 골치 아프군. 무림인을 대놓고 배척했다가 역모라도 꾸민다면? 그렇다고 저런 위험한 자들이 강호를 활개치고 다니는 것을 그냥 둔다는 것도 황실의 안위에 위협이 될 것인데…….’

주원장은 무림을 완전히 자신에게 복속하게 만들겠다는 생각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그의 머리에는 또 다른 계획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그때 엄청난 함성이 관망장에서 터져 나왔다.

급히 망원통을 눈에 댄 주원장은 아깝다는 듯이 혀를 찼다.

“중요한 순간을 못 보다니, 쯧쯧쯧!”

두 팔을 뻗은 채 서 있는 광천대사의 앞에는 입에서 피를 토해 내며 쓰려져 있는 금갑무인의 모습이 보였다.

초식의 싸움으로 시작된 비무는 결국 내공의 격돌로 이어졌다.

광천대사는 소림 오대 신공 중 하나인 대반야신공을 펼쳤고, 금갑마인은 자신을 십대고수로 불리게 한 금갑마강을 뿜어냈다.

두 신공의 격돌은 주위에 있는 나무와 바위들을 박살 낼 정도로 엄청난 파괴력을 보였지만, 내공에서 우위를 보인 광천대사가 승리를 거머쥔 것이었다.

금갑마인은 아직 살아 있는 듯 몸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광천대사는 더 이상 공격할 의도가 없는 듯 반장을 하며 말했다.

“시주께서 더 이상의 악행은 자제해 주시기를 바라겠소이다. 아미타불!”

* * *

[담 군사님, 유 태사령께서 또 쪽지를 보내셨습니다.]

흑석영의 전음을 들은 담수련은 가지고 오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어느새 그녀의 앞에 쪽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쪽지를 보던 담수련은 고심하는 표정으로 뭔가 생각에 잠겼다.

유백온과 담수련은 비무가 시작된 이후에도 여러 차례 쪽지를 교환하며 대진표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

이미 삼차 비무의 승자가 네 명이나 나왔다.

광천대사와 구천마황, 혈해사황 그리고 매화신검이 그 주인공이었다.

금갑무인을 제외한 나머지 패배자들은 모두 죽고 말았다. 구천마황과 혈해사황은 처음부터 상대를 살려 줄 생각이 없었고, 매화신검은 봐주면서 싸울 여력이 없었다.

지금 싸우고 있는 자는 귀안마군과 백염신불이라 불리는 새외의 고수였다. 백염신불은 포달랍궁의 전대 고수로 새외연합조차 건드리지 못하는 절대 고수였다.

그는 영웅대회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자신이 십왕이 되어 중원 무림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겠다며 홀로 대회에 참가했다.

예비 비무에서 모든 상대를 삼 초 만에 패배시키며 본 비무에 올라온 그는, 일차와 이차 비무에서도 큰 어려움 없이 승리하면서 군웅들에게 큰 놀라움을 안겼다.

심지어 지금 십대고수에 이름을 올린 귀안마군에게마저 우위를 보이며 싸우고 있었다.

담수련은 붓을 들어 유백온이 보낸 대진표 중 몇 명을 지우고 다시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이름에서 멈췄다.

그녀의 손은 약간 떨리고 있었다.

‘마지막 비무까지 올라온 사람들은 거의 내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어.’

담수련은 개방을 비롯해 그녀가 가동할 수 있는 모든 정보망을 동원해 이번 영웅대회에서 십왕이 될 수 있는 인물들을 추려 왔다.

유백온은 그녀에게 한 가지 원칙을 제시했는데, 십왕이 될 사람이 십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손에 의해 십왕이 될 사람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다만 백염신불을 비롯한 몇 명은 그녀에게 어떤 자료도 없었기에 운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가 머뭇대는 이유는 무엇일까…….

몇 번을 적으려다가 다시 멈추기를 반복하던 그녀는 삼차 비무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망원통을 들었다.

그녀의 망원통이 향한 곳은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있는 악불군이었다.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악불군을 보고 있는 담수련의 손에는 여전히 붓이 들려 있었다.

‘소군…….’

그녀는 속으로 기원하듯 악불군을 부르더니 드디어 쪽지에 이름을 적었다.

* * *

귀안마군이 백염신불에게 죽고, 다음 비무는 남궁세황과 흑천마왕이었다.

십왕 중 반이 벌써 결정된 것이다.

하지만 전체의 분위기는 아직도 무거웠다. 혈우대마종이라는 희대의 마종과 측천무후라는 요녀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밀 근위대원에게 담수련이 보내온 쪽지를 전해 받은 유백온은 몇 명의 대진표가 수정되어 있는 것을 보자 검미를 찌푸렸다. 특히 마지막 수정된 대결자들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이게 정말 담 군사의 생각인가? 정말 의외로구나?’

무엇을 보았기에 그가 이렇게 놀라는 것일까?

하지만 그는 아무 말 없이 호명하는 금의위 대장에게 갈 대진표를 다시 적기 시작했다.

* * *

악불군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와 만나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었던 남궁세황의 부상 때문이었다. 그는 남궁세가의 비전절기인 제왕검식으로 흑천마왕의 가슴에 검을 박아넣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의 장을 가슴에 맞고 말았다.

흑천마왕은 죽었지만 남궁세황은 살았다. 하나 누구도 남궁세황의 승리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가슴은 매몰됐고 악취를 풍기는 검은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미 정신까지 잃은 듯 보였다.

‘살아나는 것이 천우신조라고 할 정도의 치명상이야. 남궁 어르신이 흑천마왕은 이기실 것으로 예상했는데…… 휴우~’

담수련의 계산으로는 남궁세황이 흑천마왕을 무난히 이기고 십왕에 들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한 수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생사결에서는 객관적인 분석만으로 승패를 정확히 맞추는 것은 누구라도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둘 다 탈락으로 결정이 났다. 남궁세가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항의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곧이어 정파에게는 또 한 번의 충격을 받는 일이 벌어졌다.

다음번 비무에 나선 팽우황이 천중신마에게 패한 것이다.

천중신마는 원나라 당시 세력 없이 홀로 강호를 주유하며 명성을 쌓은 마도였다. 수많은 싸움에서 이기며 십대고수에 이름을 올린 그는 지금 중경에 천중마도문이라는 문파를 세우고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이제 십왕에 봉해지면 세력은 더욱 커질 것이니, 맞닿아 있는 사천과 호북의 정파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 분명했다.

관망장의 정파에서는 당연히 탄식을 터뜨렸지만, 같은 마도와 사파에서도 그다지 반기는 것 같지는 않았다.

같은 마도인이었지만 독자적인 행보를 취하면서, 스스로를 마도의 종주라고 천명하고 있는 구천마성과는 사이가 별로 안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고, 혈해사계가 있는 감숙과도 거리가 가까워 역시 껄끄러운 관계였기 때문이었다.

다음 비무는 백천학과 백염신불과 마찬가지로 예비 비무를 거쳐 올라온 곽등이라는 무명인과 벌이게 되었다.

[백 제, 그자의 몸에서 혈우대마종과 비슷한 기가 느껴집니다. 아무래도 혈교의 인물 같습니다.]

곽등을 유심히 살피던 악불군은 그가 절대 무명인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그에게서 담무룡에게 느꼈던 강인한 지도자의 모습이 보였고, 실지로 무공도 천중신마를 능가할 정도로 강력한 마기를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악불군의 추측은 정확했다.

곽등 그는 바로 천마종이였다.

혈우대마종은 그가 천마전이 몰락한 죄를 물어, 영웅대회에 무명인으로 출전하도록 명을 내렸다.

만약 십왕에 올라가면 죄를 묻지 않겠지만 올라가지 못한다면 죽음으로 그 죄를 묻겠다고 한 것이다.

천마종으로서는 이기지 못하면 백천학에게 죽든, 혈우대마종에게 죽든, 어떠한 것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의 현재 상황을 증명하듯, 비무가 시작되자 천마종은 시작부터 강력하게 공격에 들어갔다. 백천학의 공격을 완전히 무시한 공격일변도의 그의 모습은, 승리가 목적이 아니라 백천학을 죽이는 것이 목표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일생의 숙적이라고 할 수 있는 혈우대마종의 제자와 천제무황의 진전을 모두 이은 백천학과의 결투는 지금까지의 비무와는 완연히 달랐다.

정종 무공과 마공의 진수를 보여 주듯 둘의 싸움은 마치 용호상박 같았다.

보고 있는 악불군조차 긴장할 정도로 막상막하의 대결이었다.

‘이런 싸움에서는 누가 더 집중력을 발휘하느냐가 관건인데…….’

내공은 천마종이 우위지만 초식의 현란함은 백천학이 우세했다. 천마종은 최대한 자신의 내공을 이용한 강력한 장풍과 강기로 공격을 했지만, 천무성궁의 비전 절학인 천왕무극검식을 파훼하지 못했다.

하나, 백천학 역시 방어를 도외시한 천마종의 공격에 제대로 된 공격을 시도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아직 유불리를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관망장의 정파인들도 자신이 싸우듯 손에 땀을 쥔 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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